[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사형집행의 명령은 판결이 확정된 날로부터 6월 이내에 하여야 한다.”(형사소송법 제4641) 사형제 부활 여론이 들끓고 있다. 신림동 성폭행 살인사건이나 신림역·서현역 묻지마 칼부림 등 여성을 상대로 한 강력범죄나 무고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묻지마 범죄가 속출하고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최근에는 인터넷 공간에서 수시로 살인예고 글이 올라오면서 사회 전체적으로 치안불안과 공포감이 날로 커지고 있다. ‘자고나면 칼부림이라고 할 정도로 흉악 범죄가 빈발하면서 강력한 법집행을 촉구하는 목소리도 늘고 있다. 실제 사형집행에 대한 찬성 여론은 압도적이다. 일부 여론조사에서 찬성 여론은 무려 70%에 달할 정도다. 이러한 가운데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최근 전국 교정기관에 사형 집행시설 점검을 지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미묘한 파장이 일었다. 199712월 마지막 사형집행 이후 26년 만에 사형집행이 재개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기 때문이다. 흉악범죄 빈발로 우리사회 최대 화두로 떠오른 사형집행 재개를 둘러싼 복잡다단한 고차방정식을 집중 해부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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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폭행·칼부림 등 흉악범죄 급증에 사형집행 재개 여론 급증
97년 이후 26년째 미집행대한민국, 실질적 사형폐지국 분류
- 한동훈 사형집행 시설 점검지시에 사형 재개되나 촉각

사형제는 수많은 위헌시비 논란에도 불구하고 헌법재판소에서 여러 차례 합헌 판결을 받았다. 게다가 잔학무도한 흉악 강력범죄를 예방·억제하는 효과도 부인할 수 없다. 인권을 중시했던 과거와는 달리 강력 흉악범죄에 대한 단죄 효과를 기대하는 분위기다. 살인범에 대한 세금지원도 반발이 상당하다. 다만 사형집행에 대한 압도적인 찬성여론에 불구하고 현 단계에서 사형집행은 불가능에 가깝다. 1997년 문민정부를 마지막으로 26년간 사형집행이 이뤄지지 않았다. 이 때문에 대한민국은 국제사회에서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되고 있다. 인간 존엄과 생명권을 중시하는 종교계의 반발도 넘어야 할 과제다. 아울러 유럽연합과의 외교관계 등 국제사회의 변수도 적지 않다.

실질적 사형폐지국문민정부 9712월 사형집행 마지막

우리나라에서 사형제는 합헌이다. 다만 마지막 사형집행은 26년 전이다. 문민정부 마지막 해인 1997123023명의 흉악범에 대한 사형집행이었다. 이후 10년간 사형집행이 이뤄지지 않으면서 국제 인권단체인 앰네스티는 2007년부터 우리나라를 실질적 사형폐지국으로 분류했다. 이 때문에 대법원 최종심에서 사형을 확정받고도 형이 집행되지 않고 있는, 이른바 사형집행을 대기 중인 수형자는 총 59명이다. 여기에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부모를 찍러죽인 패륜범죄를 저지른 박한상과 연쇄살인범 강효순과 유영철 등이 포함된다. 이러한 사형수들에 의한 피해 사망자는 무려 200여명이 넘는다.

국제흐름은 사형제 폐지가 대세다. 사형집행국은 인권을 탄압하는 야만국이라는 오명 탓이다. 국제인권단체인 앰네스티 집계에 따르면 세계 200여개국 중 사형제 전면 폐지국은 112개국, 사형 집행국가는 56개국, 사형 집행을 중지한 국가는 29개국이다. 구체적으로 보면 나라별로 차이가 상당하다. 기독교 영향으로 유럽 대부분의 나라는 사형제 폐지국이다. 한국, 중국, 일본 등 아시아는 사형제 존치 국가가 적지않다. 51개 주로 이뤄진 미국의 경우 캘리포니아를 비롯한 38개주에는 사형제가 있고 알래스카주를 비롯한 13개주에는 없다.

역대 정부는 사형집행에 부담을 느껴왔다. 국민정서는 사형제 찬성이 압도적이지만 국제 흐름을 무시할 수 없다. 만일 강력 흉악범죄를 이유로 사형을 재개할 경우 국제사회에서 인권 후진국이라는 주홍글씨가 불가피하다. 대통령과 법무장관 역시 사형집행을 재개 또는 승인했다는 역사적 낙인이 불가피하다. 이밖에 사형제 폐지는 인권이고 사형제 부활은 반()인권이라는 논리가 또한 여전히 횡행한다.

정치권에서는 사형제 폐지론자들의 목소리가 더 크다. 유신시절 인혁당 사건으로 사형선고를 받았던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이 사형제 폐지운동에 앞장선 게 대표적이다. 반면 공개적으로 사형집행을 촉구하는 인사는 극소수다. 홍준표 대구시장이 대표적이다. 홍준표 시장은 최근 묻지마 흉기 난동에 따른 사회 불안과 관련, “다시 한번 사형집행을 생각한다흉악범에 한해 반드시 법대로 사형집행을 하자고 주장했다. 홍 시장은 특히 미국, 일본, 중국도 매년 사형집행을 하고 있는데 유독 우리나라만 범죄자 생명권 보호를 위해 사형집행을 하지 않고 있다가해자 인권만 중요하고 피해자 인권은 경시되는 그런 나라는 정의로운 나라가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지난 대선에서 사형집행을 공약으로 제시했던 홍 시장은 자유한국당 대표 시절인 20206월에는 “‘법무부 장관은 흉악범죄나 반인륜범죄를 저지르고 사형이 확정된 자에 대해서는 6개월 이내에 반드시 사형을 우선해 집행하도록 의무화하는 내용을 핵심으로 하는 형사소송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한 바 있다.

한 장관의 승부수사형집행 시그널’ vs 강력범죄 경고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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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구치소·부산구치소·대구교도소·대전교도소 등 사형 집행시설을 보유한 4개 교정기관에 관련 시설을 제대로 유지하라.”

한동훈 법무부 장관이 교정기관에 사형집행 시설 점검을 지시했다는 내용이 언론보도로 알려진 지난달 30일 전국이 들끓었다. 표면적으로만 본다면 한동훈 장관이 사형집행 재개를 위한 시그널을 보낸 것으로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다. 시설 유지 차원이라는 설명에도 최근 사회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다만 사형집행 재개가 현실적으로 쉽지 않은 만큼 강력 범죄에 대응을 위한 주무 장관의 고강도 경고 메시지라는 해석도 나왔다.

한 장관은 최근 국회 예결위 전체회의에서 출석, 사형집행 재개에 대한 본인의 의견을 밝혔다. 한 장관은 사형제를 유지하는 이상 법 집행 시설을 적정하게 관리·유지하는 것은 법무부의 본분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가 실질적 사형폐지국이지만 사형제 자체는 합헌이라는 점을 고려한 대목이다.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오랜 기간 사형미집행으로 집행 시설이 황폐화된 것은 물론 사형수들이 교도관 폭행 등 각종 문제를 불러 일으켰다. 아울러 실질적인 사형집행 재개 여부에는 신중한 태도를 취했다. 한 장관은 사형 집행은 형사정책적 기능이나 국민의 법 감정, 국내외 상황을 잘 고려해서 정해야 할 문제라며 말을 아꼈다.

형사소송법 465조는 사형집행명령의 시기를 규정했다. 다만 김대중정부 이후 역대 모든 정부의 법무부장관은 사형 확정 이후 6개월 이내에 형을 집행해야 한다는 형사소송법을 위반했다. 사실상 법무장관의 직무유기 상태가 장기화되면서 해당 규정은 사실상 사문화됐다. 이 때문에 만일 한 장관이 사형집행 재개를 선택한다면 메가톤급 회오리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앞서 사형 확정 이후 30년 동안 집행이 이뤄지지 않으면 사형수가 석방될 수 있는 규정인 사형의 집행시효 30년 폐지를 골자로 한 형법 개정안도 지난해 6월 국무회의를 통과했다는 점도 상징적이다. 해당 규정은 현재 수감 중인 사형수 59명 중 최장기간 수용자인 원 모씨가 오는 11월이면 수감 30년을 맞기 때문이다. 97년 이전만 하더라도 사형확정 이후 형을 집행했지만 97년 이후 26년째 사형집행이 이뤄지지 않아 초장기 수감자가 적지않다.

다만 사형집행 재개는 여전히 난제다. 이 때문에 가석방 없는 종신형이 현실적 대안으로 거론된다. 각종 흉악범죄에도 사형집행이 이뤄지지 않은 법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다. 한동훈 장관은 가석방이 허용되지 않는 무기형이 도입될 경우 흉악범을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하는 실효적 제도로 운영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가석방 없는 종신형은 국회에서도 적극적이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과 서영교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비슷한 내용의 형법 개정안을 대표 발의했다. 한국갤럽의 최근 여론조사에서 흉악범죄 대상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에 대한 찬성 여론은 87%도 압도적이었다. 현행 형법에 따르면 무기형도 20년 형기를 채울 경우 심사를 거쳐 일정 요건을 충족하면 가석방이 가능하다. 법무부 집계에 따르면 무기징역을 선고받은 이후 가석방된 수형자는 최근 5년간 100여명에 달한다.

강력범죄마다 부활 목소리총선 사형제 존폐 논란

가석방 없는 종신형 도입 유무와 관계없이 사형제 부활 여론은 상당하다. 특히 전체 사형범죄 중 여성이나 아동을 대상으로 한 반인륜 흉악범죄에 대한 우선 집행으로 공동체를 안전하게 유지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형 미집행으로 피해자 유족들은 극심한 분노와 더불어 평생을 트라우마에 시달린다. 또 잔혹한 연쇄 살인마를 국민 세금으로 하루 세끼 먹여 살리는 것에 대한 반발도 상당하다. 반면 사형수의 하루 일과는 태평할 정도로 한가하다. 한국형사법무정책연구원의 사형확정자의 생활실태와 특성보고서에 따르면 사형수들은 종교활동은 물론 독서, 필사, 편지쓰기, 작업 등으로 하루를 보낸다. 죗값에 비하면 지나치게 여유로운 생활이다. 교정당국 역시 사형수 관리에 상당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사형수는 교도관 폭행이나 동료 재소자들과 갈등은 물론 때로는 사형수 신분으로 인권운운하면서 교정당국을 애먹이기도 한다.

한 종교단체의 사형제폐지 조명 퍼모먼스. 뉴시스
한 종교단체의 사형제폐지 조명 퍼모먼스. 뉴시스

이 때문에 흉악범죄 기승과 치안불안의 여파로 내년 422대 총선 국면에서 사형제 존폐 및 사형집행 재개 여부가 총선 이슈로 떠오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흉악범죄 사형단죄국민적 요구가 높을 경우 여야 모두 어떤 식으로든 사형 재개 여부에 대한 분명한 입장을 내놓을 수밖에 없을 것으로 전망된다. 이는 강력범죄 발생 시마다 되풀이되는 가해자 인권 중시와 피해자 인권 경시라는 국민적 법감정을 해소하기 위해서도 필수적이다.

다만 사형제 부활은 쉽지 않다. 가장 큰 난제는 종교계의 반대다. 인간의 존엄성과 생명권 존중이다. 생명은 절대적 가치인 만큼 국가가 법의 판단이라는 이름으로 박탈할 수 없다는 것이다. 종교단체들은 사형제 폐지를 촉구해왔다. 이와 관련해 천주교, 개신교, 불교, 원불교, 천도교 등 7대 종단이 모두 참여하는 한국사형제도폐지범종교연합회도 활동 중이다. 또 글로벌 사회에서 대한민국의 위상과도 결부된 문제다. 특히 유럽연합과의 외교적 관계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사형집행을 부활할 경우 EU와의 관계가 회복 불가능한 상황으로 악화될 수 있다. 반론은 없지 않다. EU는 사형집행이 이뤄지고 있는 미국, 일본, 중국과도 여전히 외교관계를 맺고 있다. 이밖에 재판부의 오심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법관이 신이 아닌 인간인 만큼 잘못 판단할수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유신시절 사법살인이라는 비판을 받은 인혁당 사건이다. 이밖에 화성 8차 살인사건 약촌오거리 살인사건 삼례 나라슈퍼 사건 등 오심에 따른 재심 사건도 적지 않은 점도 사형집행의 위험성을 방증하는 사례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사형 집행은 사람의 생명을 인위적으로 뺏는 형벌이라는 점에서 그야말로 최후의 수단이라면서 역대 대통령이나 법무장관들이 압도적인 사형집행 부활 여론에도 결단을 내리지 못한 이유라고 분석했다. 다만 강력 흉악범죄의 일상화와 연쇄화 속에서 언제까지 사형집행 부활의 목소리를 외면하기는 힘들 것이라면서 사회 여론에 따라서는 전격적인 사형집행이 재개될 가능성을 전혀 배제할 수 없다. 국내외적인 요인에 따라 힘들다면 가석방 없는 무기징역추진으로 대안입법의 흐름이 가속화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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