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정치적 승부수가 좌초 위기다. 이재명 대표는 사즉생의 각오로 민주주의 파괴를 막아내겠다며 무기한 단식을 선언했다. 사법리스크 돌파와 대정부투쟁의 일환으로 꺼내든 히든카드였다. 다만 반응은 뜨뜻미지근하다 못해 차갑다. 정기국회를 하루 앞둔 831일 제1야당 대표의 단식 선언에 여야 정치권은 물론 국민들도 어리둥절한 모양새다. 국민의힘은 사법리스크 해소를 위한 방탄단식으로 평가절하했다. 게다가 단식 지속 중 흘러나온 크고작은 잡음에 이 대표가 내심 기대했던 효과는 사실상 전무한 상태다. 과거 민주화를 이끌었던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의 단식과도 대비됐다. 이 대표는 윤석열정부를 무능폭력 정권으로 규정하고 국민항쟁을 선언했지만 명분과 실리를 모두 잃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도저히 수용 불가능한 조건만을 내건 탓에 내년 422대 총선을 앞두고 여야의 강대강 대치전선만 가팔라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 대표의 무기한 단식을 둘러싼 고차방정식을 짚어봤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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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임 1주년 기자회견서 퇴로없는 무기한 단식투쟁 선언
정부 수용불가 요구조건에 단식 장기화로 건강악화
YS·DJ와 성공사례와는 달리 방탄용 꼼수 단식비판

이대로 가면 이 대표의 단식 투쟁은 실패로 마무리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예측불허의 무기한 단식은 그야말로 묘수 아닌 자충수가 돼버린 셈이다. 단식 도중에 대통령 탄핵까지 거론한 것 또한 악수였다. 이 때문에 단식 중단이라는 출구전략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다. 윤석열정부의 이 대표의 요구조건을 수용하지 않은 상태에서 단식을 중단할 명분이 없기 때문이다. 장기간 단식에 따른 건강 악화로 탈진해 병원에 실려가거나 주변 권유나 만류로 중단하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다. 단식 이후 정국도 관심사다. 이 대표의 무리한 강경투쟁이 오히려 민주당의 지지율을 깎아먹으면서 총선전망 또한 어두워졌다. 민주당 안팎에서는 이 대표가 조만간 거취를 결정해야 하는 상황에 내몰릴 것이라는 관측이 커지고 있다. 당 대표직 사퇴 또는 조기 비상대책위원회 추진설이 흘러나온다. 내년 422대 총선 승리를 발판으로 차기 대선 도전을 꿈꿔온 이 대표로서는 설상가상이다.

무능폭력정권 국민항쟁십자포화 내부 우려

사즉생의 각오로 민주주의 파괴를 막아내겠다. 윤석열 정권은 헌정질서와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국민을 향해 전쟁을 선포했다. 마지막 수단으로 오늘부터 무기한 단식을 시작한다. 이 순간부터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무능 폭력 정권을 향해 국민 항쟁을 시작하겠다

이 대표의 단식 선언은 전격적이었다. 당 대표 취임 1주년 기자간담회라는 점에서 그동안의 소회와 민주당 쇄신과 총선전망, 정기국회 전략과 대정부 견제 등에 대한 입장 표명이 주를 이룰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었지만 완전히 빗나갔다. 이 대표는 고강도 투쟁과 더불어 퇴로없는 무기한 단식을 선언했다. 윤석열정부의 국정난맥상을 지적하면서 내건 3대 요구조건은 강경했다. 민생 파괴·민주주의 훼손에 대한 대통령의 대국민 사죄 일본 핵 오염수 방류에 반대 입장 천명 및 국제 해양재판소 제소 전면적 국정 쇄신 및 개각 단행이었다. 사실상 윤석열 대통령이 수용 불가능한 조건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다. 이 대표는 독립영웅인 홍범도 장군 흉상 철거 논란 해병대 채상병 순직 사건 수사 외압 의혹 서울-양평 고속도로 종점 변경 의혹 이동관 방통위원장 임명 논란 등을 제기하면서 단식투쟁의 정당성을 강조했다.

여야 반응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국민의힘은 땡깡단식·웰빙단식·뜬금포단식이라며 십자포화를 퍼부었다. 과거 야당 대표의 단식에는 정부와 여당의 만류가 적지 않았지만 현재는 정말 단식이 맞느냐며 비아냥이 난무할 정도다.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가 지금 단식하고 있나. 잘 모르겠다고 비꼰 게 대표적이다.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 해소를 겨낭한 방탄단식이라는 것이다. 비판은 거침이 없었다. 윤재옥 원내대표는 사법처리 회피용 단식, 체포동의안 처리를 둘러싼 내분 차단용 단식, 당권 사수를 위한 단식으로밖에 볼 수 없다고 꼬집었다. 김예령 대변인은 경호상의 핑계로 출퇴근 단식을 한다니, 국회 본관 내 모처에서 취침한다는 이 대표에게 초밥이 배달될지도 모르겠다는 상상도 해보게 된다고 조롱했다.

민주당 안팎의 반응은 엇갈렸다. 정청래 최고위원 등 친명계 지도부는 물론 광주·전남 지역 총선 출마 예정자들이 릴레이 동조당식에 나섰다. 이런 가운데 문재인 전 대통령과 이해찬 전 대표는 지지를 선언했다. 문 전 대통령은 윤석열 정부의 폭주가 너무 심해 제1야당 대표가 단식하는 상황이 염려스럽다고 격려전화를 했다. 이 전 대표는 단식현장을 직접 방문해 이대로 가면 파시즘라고 동조했다. 대선 라이벌이었던 이낙연 전 대표과 추미애 전 법무장관의 격려성 발언도 이어졌다. 다만 명분없는 단식에 대한 우려도 상당했다. 이상민 의원은 명분도 실리도 별로 없고, 공감을 얻기도 어려우며, 여론은 매우 냉소적이라며 단식중단을 촉구했다. 조응천 의원도 핵심 지지층은 굉장히 결집하고 있는데 외연 확장은 일정한 한계가 있다방법은 하나밖에 없다. 탈진해서 쓰러지고 이건 생명이 위독하겠다고 해서 실려가는 것 외엔 지금 달리 방법이 없지 않나고 지적했다.

이 대표는 단식논란의 와중에 대통령 탄핵까지 거론하며 투쟁수위를 한껏 끌어올렸다. 이 대표는 유튜브 채널 김어준의 겸손은 힘들다 뉴스공장과의 인터뷰에서 정말로 국민의 뜻에, 국리민복(國利民福)에 반하는 행위를 하면 끌어내려야 하는 것이다. 그게 민주주의라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국민의힘은 강력 반발했다. 김기현 대표는 이 대표의 탄핵 시사 발언에 내란선동이라고 맹비난하면서 민주당은 여전히 정신을 못 차린 채 국민 선택을 부정하며 대통령 탄핵을 운운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YS·DJ 성공사례와 달라명분.실리 부족

1983년 5월 18일부터 6월 9일까지 23일 간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하던 김영삼 전대통령의 모습이 미국 UPI통신이 취재한 사진. 2015.11.22. 뉴시스
1983년 5월 18일부터 6월 9일까지 23일 간 목숨을 건 단식투쟁을 하던 김영삼 전대통령의 모습이 미국 UPI통신이 취재한 사진. 2015.11.22. 뉴시스

단식은 비폭력 저항을 뜻하는 최후의 투쟁 수단이다. 과거 권위주의 정부 시절 학생운동이나 노동운동에 투신했던 재야인사들이 민주화투쟁의 수단으로 단식을 활용했다. 한국 정치사에서도 단식은 떼래야 뗄 수 없는 관계였다. 주로 진보 정치인들의 투쟁 수단이어었다. 2007년 문성현 전 민주노동당 대표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에 반발해 단식한 게 대표적이었다. 이 대표 역시 지난 2016년 성남시장 시절 지방재정 개편 철회를 촉구하는 단식농성에 나선 바 있다. 문재인 전 대통령 역시 야당 시절이던 20148월 새정치민주연합 상임고문 자격으로 세월호특별법 처리를 촉구하는 유민아빠의 단식중단을 설득하다가 광화문광장에서 열흘간 동조단식에 나섰다.

단식은 진보진영의 전유물만도 아니었다. 보수 정치권에서도 투쟁 동력으로 활용했다. 2016920대 국회에서 정세균 국회의장의 개회사의 중립 의무 위반을 비판한 이정현 전 새누리당 대표의 단식,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의 석방을 촉구한 조원진 전 대한애국당 대표의 단식, 20185월 드루킹특검을 촉구한 김성태 전 자유한국당 원내대표의 단식, 201911월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GSOMIA·지소미아) 종료 결정 철회를 명분으로 내건 황교안 전 자유한국당 대표의 단식이 대표적이다.

돌이켜보면 역대 정치인의 단식 중 가장 성공사례는 YSDJ였다. 민주화의 거목인 YSDJ의 단식은 목표도 분명했고 성과도 확실했다. 민주화를 앞당긴 것은 물론 꽉 막힌 정국의 돌파구 역할을 했다. YS는 전두환정권 시절인 1983년 서울 상도동 자택에서 23일간 곡기를 끊었다. 광주민주화운동의 진상규명과 양심수 석방 및 정치활동 규제 폐지 등 민주화 조치 5개항을 촉구했다. 깜짝 놀란 전두환정권은 YS를 강제로 병원에 이송하며 방해했다. 결과적으로 YS의 단식은 서슬퍼런 전두환정권에 균열을 내면서 상도동계와 동교동계가 민주화를 명분으로 뭉치는 계기가 됐다. 이는 반독재민주화투쟁으로 이어졌고 12대 총선 신민당 돌풍, 876월항쟁과 대통령직선제 도입으로 이어졌다.

DJ의 단식도 YS 못지 않았다. 87년 대선 패배 이후 13김의 위태로운 정치구조 속에서 제1야당인 평민당 총재였던 DJ는 지방자치제 전면 시행과 정치사찰 중단을 내걸고 13일간의 단식 투쟁에 나섰다. 3당합당 이후 민자당이라는 공룡정당 탄생 이후 불리한 정치환경 극복을 위한 해답을 지방자치의 부활로 봤기 때문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의 요구로 1991년 지방의회 선거와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 선거가 실시됐다. ‘지방자치라는 풀뿌리 민주주의의 막을 올리면서 DJ97년 대선에서 수평적 정권교체의 발판을 마련할 수 있었다.

리더십 추락 대표직 사퇴·조기비대위 등 2선후퇴론

생각에 잠긴 이 대표. 뉴시스
생각에 잠긴 이 대표. 뉴시스

이 대표의 단식 승부수는 반응이 엇갈린다. 대체적인 평가는 득보다 실이 많다는 점이다. 지지층 결집과 사법리스크 해소를 통해 당의 분열 방지와 단일대오 형성이라는 다목적 포석에도 결과는 좋지 못했다. 무엇보다 사법리스크 국면전환을 위한 방탄용 꼼수단식이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다. 목숨을 건 이 대표의 단식에도 불구하고 민주당 지지율의 정체상태는 여전하다. 마치 김은경 혁신위원회 출범으로 위기 탈출을 노렸지만 무소득에 그친 것과 유사한 상황이다.

더 큰 문제는 출구전략이 사실상 없다는 점이다. 이 대표는 지금은 목숨을 걸어야 될 만큼 세상이 절박하다며 무기한 단식을 선언했다. 단식 9일째인 8일에도 대통령은 민주주의 파괴, 민생 파괴, 한반도 평화 파괴에 대해서 국민에게 사죄하고 국정 방향을 전면 전환해야 한다총리를 포함한 내각이 총사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성과없이 단식을 중단하지 않겠다는 완고한 의지다. 다만 단식이 장기화되면서 친명계 내부에서는 이 대표의 건강악화를 우려해 출구를 모색 중이다.

이 때문에 여의도 정치권에서는 이 대표의 건강악화로 인한 단식중단 이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다는 우려가 흘러나오고 있다. 과거 여야 정치인의 단식 역시 건강악화를 명분으로 의사의 권유나 가족, 지인의 만류로 중단된 게 대부분이다. 이 대표의 단식이 예상외로 장기화되면서 탈진상태로 병원으로 실려가면서 중단될 가능성이 가장 높다.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인도적 차원에서 여야 중진이나 의원들이 단식 중단을 요청하고 이 대표가 이를 수용하는 경우를 그려볼 수 있다. 만일 이 대표가 끝까지 고집을 꺾지 않는다면 최악의 경우 사법절차에 의한 강제중단까지도 거론된다. 아울러 정치권 일각에서는 이 대표가 당대표직 사퇴와 조기 비대위 출범을 내건 2선후퇴 선언으로 단식투쟁을 마무리할 것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현 정치상황을 되돌아보면 이재명 대표의 정치행보는 지난 대선 이후 악수의 연속이다. 단식은 사회적 약자의 최후 수단인데 제1야당 대표의 느닷없는 무기한 단식선언에 많은 국민들이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다국회 체포동의안 부결 등 본인의 사법리스크 해소를 위한 정략적 목적의 단식이라는 의심을 해소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재명 대표의 퇴로없는 강경투쟁은 오히려 본인의 정치적 위상을 깎아먹고 있다차기 대선을 꿈꾸는 이 대표로서는 2보 전진을 위한 1보 후퇴라는 전략적 관점에서 단식중단 이후의 정치행보까지 제로베이스 상태에서 전반적인 재검토가 필요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대표직 거취까지 고민해야 할 것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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