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속세 신고 전까지 ‘비자금관련’ 첩보 수집

‘4대강 사업’ 등 대형 국책사업으로 인해 대한민국의 국가 재정이 힘들어지면서 국내 사정기관들이 세수확보에 발 벗고 나섰다. 국내예산이 300조가 안되는 상황에서 연간 국채이자만 17조에 2010년에는 50조 적자가 예상되고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이들 기관에서는 거물급 인사들의 고액 추징금 누락과 재산 상속에 따른 세금을 국고로 포함시키겠다는 복안이다. 매해 고액 법정 추징금은 늘고 있지만 회수율이 점점 떨어진다는 점도 한몫하고 있다. 또한 역대 대통령이나 대기업 회장 등 미납된 추징금뿐만 아니라 노무현, 김대중 등 두 전직 대통령의 서거로 인한 납부하게 될 상속세에도 높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 특히 국내 사정기관에서는 DJ의 재산에 주목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사정기간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상속세를 신고하면 일반적인 세무조사를 하게 된다. 이때를 대비해 세간에 알려진 DJ비자금의 실체를 파악하는데 주력하고 있다”고 전했다. 본지는 DJ재산 상속과 맞물린 사정기간들의 수사전망을 미리 짚어본다.

노무현 전 대통령은 지난 5월말 경에 김대중 전 대통령은 8월 중순경에 서거했다.

세법에 따르면 6개월 내에 국세청에 상속세를 신고해야 한다. 국세청 관계자에 따르면 신고는 신고기간이 임박했을 때 한다는 점에서 노 전 대통령의 경우 11월, DJ의 경우 내년 2월에 신고를 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국세청과 검찰이 주목하는 것은 노 전 대통령보다는 DJ 재산 신고 내역이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DJ는 유언을 통해 부인 이희호 여사에게 전 재산의 절반을 나머지 절반은 홍업, 홍걸, 홍일 3남에게 물려줬다는 후문이다. 그러나 실제로 상속세 신고를 하기 전까지 DJ 재산이 얼마인지는 아직 가늠하기 힘들다.

그동안 DJ가 보유한 재산이나 은닉한 비자금관련 알려진 게 별로 없다. 단지 루머 수준으로 김 전 대통령의 비자금관련 소문은 무성하다.

정치권에서는 지난 2000년 DJ가 북한 방문을 전후로 8억 달러 이상이 현대를 통해 북한에 전달했다는 소문이 있었다. 그러나 대북특검으로 밝혀진 것은 4억5천 달러다. 나머지 3억 5천 달러의 행방에 대해 각가지 루머들이 쏟아졌다.


국세청, DJ 은닉 비자금 찾을 수 있나

‘DJ 측근 이름의 차·가명계좌에 스위스 은행과 LA 한미 은행 등에 예치되어 있다’, ‘DJ 측근들이 뉴욕에 DJ 비자금중 일부를 수많은 빌딩과 건물, 대형 상가를 매입해 운영한다’ 등이다.

이 같은 루머들은 확인되지 않은 채 ‘DJ 비자금 은닉설’로 확대 재생산되어 시중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특히 보수언론을 중심으로 ‘미 FBI 김대중 대통령 비자금 미국 내 불법 유입 혐의 내사 착수’(월간조선 2006년 9월호), ‘2001년 국내 금융기관을 통해 비자금 3000억을 조성했다’(상동, 2007년 1월호) 등이 보도되기도 했다.

DJ 비자금 거론시 단골로 등장하는 인사들은 DJ 핵심 측근들로 홍일, 홍업, 홍걸 등 3형제를 비롯해 동교동계 맏형인 권노갑 전 고문, 권 전 고문 측근 김영완, 처조카 이형택(전 예금보함공사 전무), 박지원(국회의원), 조풍언(무기중개상), 김대중의 집사 이수동 등이 꼽히고 있다.

최근 정치권 일각에선 동교동계가 DJ사후 비자금을 둘러싸고 갈등을 빚고 있다는 내용의 실체 없는 루머가 돌았다.

사정기간에선 DJ비자금과 관련 재미교포 무기중개상 조풍언 씨에 대한 첩보를 수집중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조 씨는 지난 2008년 3월 입국해 검찰 조사를 받은 바 있다. 하지만 2009년 초 DJ비자금과 관련해 주요부문 무죄판결을 받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정기간이 그에 대한 첩보수집에 매달리는 이유는 따로 있다. 조 씨가 DJ의 일산사저를 매입하는 등 DJ와 가까운 관계였다. 특히 검찰수사 당시 ‘DJ 비자금관련 몇 구좌를 가지고 있다’, ‘금액이 수백억원에서 수천억원대에 이른다’는 말이 흘러나오기도 했다. 조 씨는 DJ정부 인맥을 동원해 김우중 전 대우그룹 회장이 퇴출위기에 놓이자 그룹 구명을 위해 DJ 정부시절 로비를 시도한 바 있다.


올해 11월 내년 2월 노-DJ 개인 재산 드러나

당시 검찰은 조 씨로부터 DJ의 장남인 김홍일 전 의원과 돈 거래사실을 밝혀냈다. 김홍일 전 의원이 조씨 부인 계좌에 30억원을 입금했고, 이 가운데 10억원을 조씨가 삼일빌딩 구입 계약금으로 사용한 사실을 밝혀냈다. 하지만 30억원의 성격과 출처는 밝혀내지 못한 채 유야무야 수사가 마무리 됐다.

DJ의 비자금 문제는 정치권의 이슈가 되기도 했다. 지난해 국정감사에서 한나라당 주성영 의원 역시 DJ 비자금으로 추정되는 100억원 상당의 무기명양도성증권(CD)을 검찰에 제출했다. 하지만 검찰은 CD가 진본임을 인정하면서도 DJ 비자금은 아니라고 결정을 내린 바 있다. 또한 주 의원은 ‘DJ 비자금 6조가 이희호 여사에게 들어갔다’고 폭로한 바 있다. 이로 인해 이 여사는 주 의원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해 법정다툼을 벌이고 있다.

DJ 비자금 은닉설은 실체 없이 온갖 루머들을 만들어내며 정치권과 세인들의 관심을 뜨겁게 달구고 있다. 이 때문에 국세청이 DJ비자금에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다.

사정기관의 한 고위인사에 따르면, 국세청이 DJ측의 상속세 신고 내역을 통해 숨겨진 재산을 찾겠다는 복안으로 신고일인 내년 2월까지 DJ 비자금 관련 첩보를 수집하는 데 열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국세청은 통상 상속세 신고를 할 경우 신고자에 따라 다르지만 세무조사를 하고 있다. 이런 차원에서 DJ일가의 세무조사는 일상적인 조사에 지나지 않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그러나 국세청 세무조사과정에 DJ 불법 비자금이나 해외 재산이 발견될 경우 그 후폭풍은 정치권에 엄청난 파장을 예고하고 있다. 자칫 DJ 측근들의 재차 줄 소환을 당할 수 있기 때문이다.


대기업 총수 비자금 들통 나면 사회 환원

그는 “차명 계좌나 해외에 숨겨놓은 재산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라면서도 “그러나 필요하다면 출장조사나 첩보를 통해 꼼꼼하게 확인한다”고 말했다.

국세청은 은닉 재산이나 비자금을 찾을 경우 검찰 고발을 통해 전부 환수해 국고로 예속시킨다.

검찰과 국세청에 의해 비자금이나 검은 돈이 밝혀져도 국고로 환수된 예는 적다. 대부분 사재를 털어 사회 환원한다며 재단 등이 기부하는 행위로 조세를 회피하는 꼼수를 쓰고 있기 때문이다.

2006년 2월 ‘삼성 이건희 장학재단’(현 ‘삼성고른기회장학재단’) 기금 등으로 8000억원 상당을 사회에 헌납했다. 에버랜드 전환사채(CB) 증여 문제 논란과 무관하지 않다. 삼성은 또 지난해 4월 삼성 특검 수사로 드러난 이 전 회장의 4조5천억원대의 차명 계좌를 실명으로 전환하면서 조세포탈이 문제가 된 계좌의 돈중 2조3천억원을 ‘사회 환원’에 쓰겠다고 밝힌 상태다.


삼성·현대·SK 회장 ‘사회환원’ 조세 도피처?

정몽구 현대·기아차 회장은 2006년 4월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 소환을 앞두고 “사재를 출연해 1조원의 사회공헌기금을 조성, 사회에 환원하겠다”고 공언했다. 정 회장은 7년간에 걸쳐 1조원을 환원키로 했다. 그리고 지난해 7월까지 글로비스 주식을 팔아 모두 900억원 상당을 해비치 재단에 출연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그룹 경영이 고비를 맞았을 때 마다 기업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면서 SK C&C, 워커힐, SK증권 지분 등 사재를 출연해왔다. 최 회장은 지금까지 3차례 사재를 출연했다. 이를 현재 가치로 환산하면 6000억원대 이상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에 국세청 한 인사는 “조세포탈이나 분식회계, 비자금 조성 등 불법을 저지른 이후 이를 반성한다는 측면에서 사회 환원을 운운해 세금을 회피하는 것은 옳지 않다”면서 “그러나 현재 공익 성격이 강하거나 공공기관에 기부할 경우 세금을 매길 수 없다는 점에서 ‘세금도피처’로 악용될 소지가 있다”고 대책마련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검찰 역시 그동안 고액 추징액이나 벌금을 받은 인사들에 대한 미징수률을 낮추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 현재 가장 추징액이 높은 인사는 김우중 전 회장이다. 김 전 회장은 뇌물 및 조세포탈 등 혐의를 인정받아 17조 상당의 추징금을 받았다. 임직원들 추징금을 모두 합할 경우 23조원에 이른다. 삼성 이건희 회장의 경우 삼성특검으로 인해 1100억원 추징금과 함께 ‘삼성 애버랜드 CB 헐값 매각 배임혐의’ 인정으로 추징금 3000억원을 구형받았다.


검찰, 고액추징액 25조억원에 첩보-제보 기대

잘 알려진 전두환 노태우 전 대통령의 천문학적인 추징액 역시 상위에 랭크돼 있다. 1997년 2천628억여원의 추징금을 선고받은 노 전 대통령의 경우 2천111억원을 거둬들여 80%대의 징수율을 보였다. 반면 전두환 전 대통령은 2천205억원 추징금을 선고 받았으나 미납액이 1천670억원대에 달한다.

그밖에 현대 비자금 사건으로 구속 기소돼 징역 5년과 추징금 150억원이 확정된 권노갑 전 민주당 고문은 추징금을 몇 백만원을 낸 게 전부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연평균 1,000억원이 넘는 벌금 및 추징금이 결손처리되고 있는 형편이다. 2007년 연초 대검찰청 자료에 따르면 지난 2002년 1조699억원이던 추징금 미징수액은 2003년 1조2,065억원, 2004년 1조4,156억원으로 늘어나다 2005년 대우 추징액으로 24조4천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2006년에도 미징수액이 전년비 3천억원 가까이 늘어난 24조8천억원을 기록하면서 추징액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났다. 특히 공소시효가 3년 만료로 결손 처리된 금액이 벌금과 합쳐 1조억원에 육박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양대 사정기관에서는 이처럼 국고 환수돼 세원 부족분으로 충당돼야 할 거액의 금액이 결손처리되면서 대책 마련에 나섰다. 그러나 첩보와 제보에 따른 숨겨놓은 재산을 찾아야 한다는 점과 차명이나 부인, 자식 등 가족 명의로 될 경우 몰수할 수 없다는 점에서 한계를 느끼고 있다.

최근 한나라당은 거액의 추징금을 받고도 특별사면되거나 집행유예가 횡횡하면서 사회적 문제로 번지자 법 개정 노력마저 보이고 있다.

검찰 출신 박민식 한나라당 의원은 “특별 사면 남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도 형기의 최소한 3분의 1을 채우고 벌금이나 추징액을 완납한 인사들에 한해 특별사면 대상이 되도록 법개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홍준철 기자]mariocap@dailysun.co.kr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