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8년 한국알파시스템 설립, 100억대 매출 회사로 키워”
“2000년초 CCTV분야 개발에 눈 돌린 것이 효자사업 돼”
“농수산물도매시장, 문화예술허브의 달성군 이전은 부당”
“지역구 넓어 해야 할 일 많아”
“경일대 대학원서 경영학 박사 취득이 20여 년 대학생활 마무리”

[일요서울ㅣ대구 김을규 기자] “산동네 깡촌에서의 삶은 가난에서 벗어나기 어려웠다”

대구광역시의회 김재용 의원은 “가난에서 벗어나고자 도시로 내몰린 삶은 시련덩이었다”며 이같이 말했다.

김 의원은 20대 초반에 IT관련 자격증을 취득한 것이 첫 직장을 얻을 수 있었고, 1998년 설립한 한국알파시스템 회사를 현재 100억대 매출을 자랑하는 IT기업으로 일구었다.

성공한 사업가로 승승장구 하던 그가 대구 북구의회 의원을 거쳐 대구광역시의회에 입성해 정계에 입문하기까지의 인생사를 지난 19일 오후 대구시의회 사무실에서 추석을 앞두고 인터뷰를 진행했다.

다음은 일문일답이다.

-고향은 어떤 곳입니까.

▲경북 영덕에서도 골짜기, 산동네에서 시내까지 나오는데만 오랜시간이 걸리는 깡촌입니다.

-청소년기는 어떻게 보냈습니까.

▲가난한 부모님 밑에서 힘든 청소년기를 보냈습니다.

어린 제게 가난은 남들보다 일찍 인생의 치열함을 깨닫게 한 달갑지 않은 손님이었습니다.

성실하고 정직한 아버지의 중노동도 가진 것 없이 시작한 저희집 살림을 나아지게 하지는 못했고, 돈을 벌겠다고 도시로 내모는 비켜가고 싶은 ‘시련덩이’ 었습니다.

막상 돈을 벌어 보겠다고 집은 떠났지만, 약육강식의 도심생활은 어린 청소년에게 쉽지 않은 정글과도 같았습니다.

제대로 된 월급을 받을 수 있는 일자리는 없었고, 집 떠나 홀로 떠도는 처지는 외로움의 연속이었습니다.

도시에서 일찌감치 사회의 쓴 맛을 경험한 제가 다시 선택한 것은 직장을 찾는데 유리한 자격증 취득이었고, 군 입대 전까지 좋은 자격증을 취득하는데 힘을 쏟았습니다.

-청년기의 삶을 소개해주세요.

▲20대 초반에 몇 개의 자격증을 취득한 이후 바로 군에 입대해 군복무를 마치고 IT업계에 첫 직장을 얻었습니다.

IT계통 입문 계기는 군입대전 따놓은 자격증이었습니다.

이 첫 직업이 이후 지금까지 제 삶을 IT라는 한우물을 파는 단초가 될 줄을 당시는 예견하지 못했습니다.

첫 직장에서 제가 맡았던 분야는 정보통신분야의 기술직과 유지관리 및 영업파트였습니다.

몸담은 회사는 한국정보기술이라는 곳이었는데 관공서 업무 전산화를 전담하는 회사였습니다.

저의 두 번째 시련은 IMF사태였습니다.

대량해고가 불가피했던 회사 경영방침에 따라 저와 많은 동료들이 직장을 잃고 살길이 막막한 불안한 시기를 맞게 됐습니다.

한국알파시스템 사옥 전경. [사진=김재용 대구시의원 제공]
한국알파시스템 사옥 전경. [사진=김재용 대구시의원 제공]

-사업은 언제 어떤 계기로 시작했습니까.

▲IMF때 함께 해직된 동료 4명이 의기투합해 한국알파시스템이라는 회사를 설립했습니다.

1998년 3월부터 사업을 시작해 지금까지 운영해오고 있습니다.

주로 네트워크 공사위주로 업무를 시작했습니다.

2001년 법인을 설립해 CCTV영상 관련 개발회사로 확장해서 지금까지 영위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해외법인 등 4개 법인을 운영하고 있으며 대구시 프리스타기업 등으로 지역의 ABB산업에 기여하는 회사로 성장했습니다.

안정과 도약의 전기는 1999년에서 2000년으로 넘어가면서 생긴 관공서의 밀레니엄 네트웍 공사였습니다.

저희는 이시기를 활용해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게 됐습니다.

그런 바탕속에서 2000년 초기 당사는 초창기 기술이었던 CCTV분야 개발에 눈을 돌렸습니다.

이 기술의 성장 가능성을 예견하고 시작한 개발이었고, 예견은 빚나가지 않아 시대 상황과 맞아 떨어지는 효자 사업이 돼 주었습니다.

저희는 이후 3개 회사를 더 설립했고, 지금은 연 매출 70~100억대, 협력업체 직원을 포함하면 100여 명이 종사하는 건실한 회사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만학도의 길을 걸었습니다.

▲2014년 2월은 대학에서의 긴 도전에 종지부를 찍는 달이었습니다.

경일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박사(마케팅 전공)를 받으면서 20여 년의 긴 대학생활을 마무리했기 때문입니다.

제 도전의 시작은 첫 직장을 다닐 때였습니다.

20대였기 때문에 대학 졸업장을 갖춰야 유리할 것 같다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에서 방송통신대학에 도전하게 된 것입니다.

당시 결혼한 가장의 신분에 쉽지 않은 공부였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포기하지 않았고 열심히 했습니다.

그리고 몇 년 뒤 또 한 번의 대학 도전 전기가 마련되는데 그것 역시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의 발로였습니다.

회사를 설립하고 주거래처가 관공서가 되면서, 지역 관공서 IT분야의 공무원들이 영진전문대학 출신들이 대거 포진해 있었기 때문에 학연 인맥 형성의 필요성을 느꼈기 때문입니다.

저 역시 영진전문대학에서의 2년 과정은 2년이 하루처럼 훌쩍 지나갈 만큼 유익한 시간들로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그리고 몇 년뒤 대구사이버대학교 경영학, 영남대학교 경영대학원 경영학 석사, 경일대학교 대학원 경영학박사 과정에 도전하게 되는데 이때부터는 목적보다는 지식과 이론을 겸비한 내공 있는 자랑스러운 아들, 믿음직스러운 남편과 아빠가 되겠다는 더 큰 이유가 도전의 계기가 되었습니다.

-추석하면 특별히 생각나는 것은 무엇입니까.

▲추석에 집에 가는 것이 싫을 때가 있었습니다.

벌초 때문에요. 추석전에 친구들과 새벽까지 놀다 보면 다음 날 일어나기 싫잖아요.

또 생각나는 것은 친척들이 찾아오셔서 어머니가 밥하고 뒷바라지에 힘들어 하시는 모습이 생각이 나는데요.

지금은 그때가 그립습니다.

-이번 추석에 고향에 내려가실 계획입니까.

▲당연히 내려가야지요.

부모님이 계시고 추억이 있는 곳이니까요.

평소에 자주 가고 싶은데 그렇지 못해 아쉬움이 많습니다.

-고향에 가신다면 추석에 하고 싶은 일은 무엇입니까.

중풍으로 앓아 누워 계시는 어머님을 바깥세상 구경 시켜주고 싶습니다. 

또 산소 벌초와 성묘를 하고 마을 어르신들께 인사를 드릴려고 합니다.

친구들과 만나서 술 한잔도 하고 싶습니다. ‘하하’

-고향 영덕에 고향사랑기부금 300만원 기탁했습니다.

▲타지에 살면서 나이가 들수록 늘 그리운 게 고향이지요.

고향이 지척에 있지만 늘 마음 쓰지 못한 게 미안하고 아쉬워 기부로라도 제 마음을 표현했습니다.

우리나라는 나고 자란 고향에 정주하기보다도 상경한다거나 큰 도시로 옮겨가는 경향이 강한데요.

고향사랑기부제도가 더욱 활성화되었으면 합니다.

-대구 북구의회 의원을 지냈습니다. 기초의원과 광역의원의 차이가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아무래도 권한과 책임이 더욱 막중해졌다는 차이가 있겠지요.

구의원 시절에는 아무래도 구민 대표하고 구민을 위해 일한다는 인식이었는데요.

물론 시의원 신분인 지금도 지역구는 있습니다만, 대구시 전체를 위해 일하고 대표한다는 사명감과 자부심이 있습니다.

다만 의원에게 부여된 권리보다 의무를 먼저 생각하는 의정활동을 좌우명으로 삼고 있다는 점은 변함이 없습니다.

-초선 대구시의원으로 1년 여를 보냈습니다. 스스로 의정활동을 평가해주세요.

▲숨 가쁘게 달려온 1년이었습니다.

저도 사람인지라 잘한 것도 있고, 미진한 부분도 있었는데요.

지나온 길보다 가야할 길이 더 많이 남았기에 이를 반면교사 삼아 의정활동에 더욱 매진하겠습니다.

-대구시의회 5분 자유발언을 통해 지역구에 있는 농수산물도매시장의 달성군 이전과 북구 도청후적지에 들어서기로 한 문화예술허브의 달성군 이전에 대해 부당성을 지적했습니다.

▲북구 도청후적지에 문화예술허브를 조성하기로 한 것은 전임 시장으로부터 약속된 것임은 물론 대통령의 공약사항이기도 했습니다.

물론 정책과 계획이란 것이 기존과 달리 변경돼 진행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납득할만한 이유가 있어야겠지요.

교통접근성이나 관광객이 몰릴 수 있는 집적 효과 등 그 어떤 조건을 보더라도 원안대로 가는 것이 맞습니다.

농수산물 도매시장도 같은 맥락이고요.

설령 다른 사유라 하더라도 당사자인 북구 주민들과의 논의, 소통, 설명 등이 있어야 하는데 그런 절차 없이 지극히 일방적이었기에 부당성을 지적했습니다.

-대구참여연대 좋은정책네트워크는 제9대 대구시의회 1년 평가를 통해 의원님을 우수의원으로 선정했습니다.

▲지역민을 최우선으로 한 입법과 의정활동에 노력했던 부분을 좋게 평가해 주신 것 같아 매우 뜻 깊게 생각합니다.

제9대 대구시의회에 등원해 시민들을 위해 봉사할 수 있는 기회라 생각하고 초심을 잃지 않고 최선을 다해 달라는 뜻으로 받아들여 더욱 낮은 자세로 의정활동을 펼쳐 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의원님께서 발의한 대구시 조례 중 대표적인 조례 한가지 소개해주세요.

▲심각해진 지역의 대다수 중소영세기업들의 경영난을 해소해 경쟁력을 강화하고, 지역 내 일자리 창출로 이어지도록 대구시 차원의 구체적인 지원 근거를 마련하고자 한 ‘대구광역시 중소기업제품 구매촉진 및 판로지원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지역구 발전을 위해 하신 일을 소개해주세요.

▲지역이 넓어 해야 되는 일들이 아주 많습니다.

대구시의원이 되면서 예산결산 위원장을 맡아 지역의 일들을 조금 쉽게 할 수 있었는데요.

먼저 태전화물차고지 연속사업 진행, 화담공원 및 치유의 숲 조성, 동화천 산책로 조성사업, 그밖에 태전공원 공사, 칠곡ICㆍ동변교 조명사업 등이 있습니다.

-남은 임기동안 지역구를 위해 하고 싶은 일이나 의정활동의 주안점이 있습니까.

▲제 지역구 북구는 대구의 자치구들 중에서 여려 현안들이 많이 산적해 있는 곳인데요.

‘군위 선거구 조정 문제’, ‘문화예술허브’, ‘농수산물도매시장’ 건 등 지역은 물론 전국을 뒤흔든 이슈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이슈들을 조속히 해결하는데 집중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제 지역구인 무태조야동, 관문동, 태전1동이 더 발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계획입니다.

-좌우명이 있습니까.

▲‘초심에서 최선을 다하자’입니다.

-마지막으로 추석을 앞두고 고향민들과 지역구민들게 한말씀 하십시오.

▲제 고향 영덕의 한자어가 ‘찰 영(盈)’에 ‘덕 덕(德)‘자인데요.

말 그대로 덕이 보름달처럼 차오르는 풍성한 한가위 보내시길 기원합니다.

정치가 여러분들의 삶을 조금이나마 낫게 하겠다는 약속을 다시금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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