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반란표’ 비명계 숙청 아닌 탕평으로 총선 큰그림?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비명계 모임 토론회인 '민심으로 보는 민주당의 길'에 참석해 인사를 하고 있다. 2023.01.31. [뉴시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비명계 모임 토론회인 '민심으로 보는 민주당의 길'에 참석해 인사를 하고 있다. 2023.01.31. [뉴시스]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이제 칼자루는 이재명이 쥐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표의 구속영장 기각 후 야당 계파 갈등을 바라보는 정치권의 한결같은 반응이다. 이 대표는 지난해 8월 당대표 취임 후 줄곧 자신을 둘러싼 사법리스크로 인해 당내 비명(비이재명)계의 견제 속에 외줄타기 리더십을 이어왔다. 국회 체포동의안 표결 등 주요 국면마다 이 대표 본인과 친명(친이재명) 지도부를 향한 비명계의 퇴진 요구가 솟구쳤다. 민주당이 내년 총선에서 이기려면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로 빚어진 ‘방탄 정당’ 족쇄를 털어내고 혁신정당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게 비명계의 논리였다. 그러나 지난달 27일 법원의 이 대표 구속영장 기각으로 전세는 완전히 뒤집혔다. 친명계와 강성 당원들을 중심으로 이 대표 체포안 가결을 주도한 ‘반란군’ 비명계를 숙청해야 한다는 여론이 들끓으며 당내 소수파가 코너에 몰린 것. 이런 가운데 당무 복귀를 앞둔 이 대표가 비명계에 어떠한 처분을 내릴지가 정치권 최대 관심사로 떠올랐다. 대척점에 섰던 비명계를 해당 행위로 징계할지, 내년 총선 승리를 위해 이들을 품을지 귀추가 주목되는 상황이다.

이 대표에 대한 구속영장이 기각된 이후 민주당에선 국회 체포동의안 가결 여진이 거세다. 당내 강성 친명계에서는 비명계를 ‘배신자’, ‘반란군’으로 칭하며 해당 행위에 대한 중징계 내지는 숙청을 요구하는 모습이다. 

실제로 지난달 이 대표의 체포안이 국회 문턱을 넘자 광주·전남 등 호남에서는 가결파로 지목된 비명계 의원 5~6명의 실명이 언급되며 이들의 낙천(落薦)을 호소하는 SNS(사회관계망서비스) 파동이 일었다. 아울러 이 대표의 강성 지지층인 개딸 등을 중심으로 ‘비명 살생부’가 작성되는가 하면 비명계 의원실을 향한 문자폭탄과 항의전화가 빗발치기도 했다. 심지어 최근에는 비명계 색출을 위한 온라인 사이트 ‘수박아웃’이 등장, 해당 사이트를 중심으로 비명계를 폄하하는 표현인 이른바 ‘수박(겉은 민주당, 속은 국민의힘) 감별 명단’마저 돌고 있다.

반면 당내 일각에선 총선 전 적전분열을 우려하며 이 대표가 총선 승리와 당 대통합 등 대승적 차원에서 비명계를 적극 포용해야 한다는 제언도 나온다.  

장기 단식으로 병원에서 회복 중인 이 대표는 당무 복귀를 앞둔 6일 현재까지 비명계 처분과 관련해선 말을 아끼고 있다. 당내 질서 재정립과 총선 동행이라는 두 선택지를 놓고 고심이 깊은 모양새다. 이 대표의 결정에 따라 현 민주당의 계파 갈등사가 종지부를 찍거나 극단적 상황에 이를 수 있다. ‘이재명의 시간’이 임박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수석 최고위원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1대 국회 더불어민주당 제4기 원내대표 보궐선거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수석 최고위원이 26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1대 국회 더불어민주당 제4기 원내대표 보궐선거 의원총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뉴시스]

친명 “체포안 가결=해당 행위” “가결파 영구제명”

친명 중진 홍익표 원내대표 선출로 ‘친명 퍼즐’을 완성한 민주당 지도부는 이 대표 체포영장 기각과 함께 국회 체포안 가결에 힘을 실은 것으로 추정되는 비명계에 대한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특히 친명 지도부는 ‘체포안 가결표를 던진 것은 곧 해당(害黨) 행위’라며 당내 가결파에 대한 엄벌을 거듭 촉구하고 있다. 이재명 지도부의 일원인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이 그 선봉에 있다. 정 최고는 이 대표의 체포안이 가결된 지난달 22일 “제 나라 국민이 제 나라를 팔아먹었듯이 같은 당 국회의원들이 자기 당 대표를 팔아먹었다”라며 “(그에) 상응한 조치를 취하겠다”고 가결파에 으름장을 놨다.

이어 지난 2일에도 자신의 SNS에 당 통합을 명분으로 비명계 처분을 가볍게 하는 일은 없을 것이란 취지로 ‘퉁치고 합? 퉁합과 통합은 다르다’는 글귀를 실으며 가결파 색출을 거듭 강조했다. 

같은 당 서은숙 최고도 “가결표 색출은 반대하지만, 당대표가 구속되지 않았다고 해서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유야무야 넘어가는 것도 반대한다”고 가결파에 대한 응분의 징계가 이뤄져야 한다고 주장했다. 체포안 가결 여파로 박광온 원내지도부가 총사퇴하면서 바통을 이어받은 홍익표 신임 원내대표 역시 “일부 당원, 지지층에서 (체포안 가결과 관련해) 문제 제기한 것에 대해 잘 알고 그런 부분을 책임 있게 해결하겠다”는 취임 일성을 냈다.  

민주당 친명 원외조직에서도 비명계를 강력 규탄하는 메시지가 나왔다. ‘더민주 혁신회의’는 지난 1일 체포안에 찬성표를 던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비명계 핵심 인사들에 대한 당의 출당 조치를 강력 촉구하고 나섰다. 민주당 홈페이지 권리당원 게시판에서도 강성 당원들의 ‘비명계 영구제명’ 요구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시스]
이원욱 더불어민주당 의원 [뉴시스]

“가결표 색출, 반대급부도 커”...이재명의 선택은

반면 야권 일각에선 비명계를 사지로 내모는 것은 내년 총선을 앞두고 당력을 분산시키는 자충수라며 이 대표가 대승적 판단을 내려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야권 원로인 박지원 전 국정원장은 “반명(反明) 의원들을 색출해서 징계한다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며 “이재명 대표는 통합의 정치로 당을 단결시키고 강한 민주당을 만들어서 윤석열 폭정과 투쟁하는 그런 민주당으로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한 발 나아가서 윤석열 정권에 대항하기 위해서 반윤, 범진보 세력의 단결을 해 나가야 된다”고 당부했다.

문재인 청와대 출신인 최재성 전 정무수석도 “정청래 최고가 이렇게 (가결파 숙청을) 얘기한 것 자체가 적절하지 않다. 정청래 의원은 그냥 개인 의원이 아니라 친명 지도부고 수석 최고위원 아니냐”라며 “무기명 비밀투표였는데 가결표 던진 의원들을 색출해서 징계하겠다는 건 불가능하고 당론으로 (체포안 부결을) 정하지도 않았다. (징계 시) 파장이 더 커질 것”이라고 우려를 내비쳤다.

체포안 가결파로 지목되며 도마에 오른 이원욱 의원 등 비명계도 각종 매체를 통해 ‘가결표는 온전히 민주당을 위한 결단’이라며 물러서지 않는 모습이다. 친명 지도부와 가장 대립각이 선명한 이 의원은 “이번에 (체포안을) 가결한 의원들 덕분에 민주당은 방탄 프레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고 주장하며 가결 판단에 명분을 실었다. 또 다른 비명계인 김종민 의원도 당 차원의 가결표 색출과 징계는 정당민주주의에 위배된다는 취지를 밝혔다.

이런 가운데 이 대표는 침묵을 이어가고 있다. 정치권에선 당무에 복귀한 이 대표가 비명계에 대한 ‘단죄’에 치중하기보다 ‘탕평’에 무게를 둘 것이란 관측이 지배적이다. 이달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와 국정감사를 앞두고 있는 데다 총선까지 불과 6개월여 남은 만큼, 집안 이슈에 당력을 쏟는 것은 자칫 무리수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당 관계자는 “지금으로선 이 대표가 반란표 색출이나 비명 징계에 직접 나설 이유가 없다”라며 “일단 강서구청장 (보궐)선거에 집중하고 이후 대외적인 상황이 일단락되면 지도부가 가결파 처분을 논의하는 것도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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