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춘추전국 시대 사람들은 고난만 가중시키고 탁상공론에 불과했던 유가에 불만을 지녔다. 이러한 시대적 배경에 따라 지배계층의 사상인 유가와 법가를 비판하면서 피지배층의 입장을 대변한 ‘묵가(墨家) 사상’이 등장했다.

묵가의 시조인 묵자(墨子, BC 470~BC391) 사상의 핵심은 ‘겸애(兼愛)와 교리(交利)’이다. “서로 사랑하고 이익을 서로 나누라”는 뜻이다. 묵가는 유가의 인문주의적인 경향에 대해 실용주의적 관점에서 유가의 허례허식을 배격하였다.

위당(爲堂) 정인보는 “조선의 역사를 알려면 다산(茶山) 정약용을 알아야 한다.”고 했다. 다산은 18년 동안의 고난(유배) 속에서도 뜻을 굽히지 않고 세상이 온통 썩고 부패해, 어느 하나 병들지 않은 분야가 없다고 개탄했다. 그래서 전 생애를 걸고 자신의 실학사상을 완성했다.

허균(許筠, 1569~1618)은 다산보다 200년 앞선 인물이다. 세 번 유배와 여섯 번 파직으로 굴곡 있는 삶과 파격적인 학문을 한 ‘위대한 사상가’였으며, 묵자처럼 차별 없는 사회를 꿈꾼 ‘시대를 앞선 혁명가’였다. 21세기에 태어나야 마땅한 사람이 500년 일찍 태어나 ‘비운의 주인공’이 되었다.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단보(端甫), 호는 교산(蛟山)이다. 1569년 동인의 영수인 초당 허엽(許曄)과 강릉 김씨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강릉에서 태어났다. 9세 때에 시를 지을 줄 알았다. 학문은 류성룡에게 배우고, 시는 삼당시인(三唐詩人) 중 하나인 이달에게 배웠다. 25세에 정시문과(庭試文科)에 급제했고, 2년 후 문과 중시(重試)에 장원했다.

허균은 아버지 허엽, 형 허성·허봉, 누나 허난설헌과 함께 ‘허씨 5문장가’로 유명했다. 천재시인 허난설헌의 시를 명나라 주지번(朱之蕃)을 통해 중국에서 출판하는 계기를 만들었다. 명나라에 여러 차례 다녀오면서 수천 권의 서적을 가져왔는데, 이때 양명학자 이탁오(李卓吾)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성리학의 허구성을 비판하였고, 민중을 위한 실용적 학문으로 조선사회의 변화를 추구했다. 학문의 기본을 유학에 두고 있었으나, 불교·도교에 깊이 빠져들었다.

허균은 광해군이 즉위하자 대북파(大北派) 이이첨과 함께 집권세력을 형성하였지만, 자신의 딸이 세자의 후궁으로 내정되자 이이첨은 허균이 더 커지기 전에 제거하기로 작정하였다. 1618년(광해군10) 8월10일. 남대문에 “포악한 임금을 치러 하남대장군 정 아무개가 곧 온다!”는 격문(檄文)이 나붙었는데, 이것이 허균의 외가 서얼인 현응민의 소행으로 판명되면서 허균은 역모 혐의에서 벗어나지 못하게 되었다. 49세의 허균은 형신(刑訊, 형문)도 받지 않고, 결안(結案, 사형을 결정한 문서)도 없이, 3일 만에 “할 말이 있소이다(欲有訴言·욕유소언)”라는 외마디 비명만을 남긴 채 능지처참형을 당했다.

허균은 <성소부부고(惺所覆瓿藁)>의 논설을 통해서 절대 권위에 도전하는 사회비판을 시도하였다. ‘병론(兵論)’ ‘관론(官論)’ ‘정론(政論)’에서 양반들의 군 미입대, 참다운 학자 미등용, 당파싸움의 성행 등에 대한 책임을 왕에게 돌렸다. ‘유재론(遺才論)’에서 재능은 신분의 귀천과 관련 없다는 평등사상에 입각해 신분제도와 서얼차별을 비판하였다. ‘호민론(豪民論)’에서 “천하에 두려워할 만한 자는 오직 백성뿐”이라는 민주주의의 핵심 이념을 주장했다. 이런 그의 사상은 최초의 사회소설이자 한글소설인 <홍길동전>에 구체화 되었다.

허균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상반된다. 만인이 꿈꿨던 이상향인 사민평등의 ‘율도국(聿島國)’을 건설하려 했던 미완의 혁명가. 스스로 “세상과 화합하지 못한다(不與世合·불여세합)”고 했지만, 죽음이 헛되지 않은 ‘시대의 선각자’. 교산 선생을 경모하는 필자의 자작 한시를 소개한다.

名家後裔破天推(명가후예파천추) 명가의 후손으로 전통과 시류를 역행했고

進學豐原韻益之(진학풍원운익지) 학문은 류성룡에게 배우고 시는 이달에게 배웠네

顚沛風波行路艱(전패풍파행로간) 세파에 엎어지고 자빠져 인생길 참으로 어려웠고

浮沈寵辱宦途遲(부침총욕환도지) 영예와 모욕 부침 심해 벼슬길 더디기만 했네

豪民昱昱東邦主(호민욱욱동방주) 세력 있는 백성은 빛나게 우리나라 주인이 되고

義賊乾乾聿島基(의적건건율도기) 의적들은 자강불식하여 율도국의 기초가 되네

莫吐一言身處二(막토일언신처이) 한마디 말도 하지 못하고 거열형에 처해졌고

畸人不合俗人師(기인불합속인사) 기인은 세상과 화합 못했으나 범인들의 스승이라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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