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銅錢)은 스스로 자신의 뒷모습을 보여주지 않는다. 한 인간을 이해하는 일도, 사건을 판단하거나 세상의 갈등을 바라보는 일도 그래서 늘 복잡하고 어렵다.

언젠가 체납세금을 추징(追徵)하는 세무당국 직원들의 활약상(?)을 보여주는 영상을 봤다. 집안 물품 곳곳에 딱지를 붙이는 사람들은 당당하고 고압적이었다. 반면 추징당하는 사람들은 죄인인 양 전전긍긍(戰戰兢兢)하기도 하고 더러는 욕설 섞인 고함으로 거칠게 반응한다. 이를 지켜보는 시청자들의 반응은 통쾌하다’, ‘후련하다’, ‘고소하다가 주()를 이룬다.

하지만 다른 입장에서도 한번 생각해본다. 만약 그 세금 미납자가 평생 먹을 것 안 먹고, 입을 것 안 입으며, 그야말로 검소하고 부지런하게 일해 돈을 모았다면 어떤가. 그동안 적지 않은 세금을 꾸준히 납부해왔지만, 현금 유동성이 나빠져 세금 납부를 미뤄온 사람이라면 어떨까. 집 팔고 차 팔고 명품백 팔면 세금 낼 돈은 되겠지만, 그거 안 팔고도 밀린 세금 내보려고 궁리하던 사람이라면 어떨까.

우리는 쉽게 세금 미납자를 욕하고 손가락질하지만, 그들이 평생 살아오면서 낸 세금액이 보통의 우리가 낸 세금보다 금액 측면에서 훨씬 더 클 가능성이 많다. 게으르게 살아오면서 국가와 사회의 보살핌으로 살아온 사람과, 단순체납자를 비교한다면 누가 더 정의로우며, 누가 더 국가와 사회에 유익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을까?

많이 버는데도 세금 적게 낸다고, 또는 세금 늦게 낸다고 손가락질하는 우리의 손은 그렇게 당당할 수 있는 것인가. 우리가 비난하고 욕하는 소위 있는 놈들이, 실상은 평생 고통스러운 과정을 견뎌내며 치열하고 성실하게 일해 돈 모아 많은 세금 내고 국가와 사회에 그만큼 기여해 온 사람은 아니었을까. 평생을 모은 돈 수억 원 또는 수십억 원을 사회에 환원해 칭송받는 사람들은 과연 누구나 그동안 살아오면서 세금을 꼬박꼬박 잘 내 온 사람들일까.

얼마 전 어른 김장하라는 다큐멘터리를 뒤늦게 봤다.

해당 방송을 보면서 처음 들었던 의문은, 이분은 '과연 살아오면서 투명하게 세금을 제대로 냈을까?' 하는 것이었다. 신용카드도 없던 시절, 무자료거래가 대부분이었던 오랜 세월을 감안해 보면, 그가 한약재 따위를 팔았을 때 받은 것은 '현금' 아니면 '현물'이었을 것이다. 당연히 의도했건 의도치 않았건 탈루한 세금이 그만큼 많았을지 모른다. 버는 족족 투명하게 세금 뜯기는 상황이었으면, 아마도 그는 그만큼 재산을 모으기도, 베풀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그는 결국 '탈세범'인가, 아니면 그렇게 번 돈을 좋은 일에 썼으니 그냥 '어른 김장하'인가.

"똥은 쌓아두면 구린내가 나지만 흩어버리면 거름이 되어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습니다. 돈도 이와 같아서 주변에 나누어야 사회에 꽃이 핍니다."

어른 김장하가 하신 말씀이다. 옳은 말씀이긴 한데, 세금으로 나누는 것과, 자신이 알아서 직접 나누는 것에는 과연 어떤 차이가 있을까?

세상에 세금 내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이 누가 있을까. 버는 만큼 정직하게 세금을 내는 사람들은 존경받아야 할 훌륭한 사람들이다. 그러나 평생을 열심히 살면서 많은 세금 내 온 사람들이 어쩌다 세금을 제때 못 냈다고 해서, 그들을 악()으로 손가락질할 정도로 우리는 모두 깨끗하고 정의로운 사람들인가. 물론 체납자를 옹호하자는 얘기가 아니다. 체납세금 하나만으로 한 사람의 모습을 비난하고 매도하기엔, 사람마다 숨겨진 삶의 사연들이 많을 것이란 점 때문이다.

정작 자신은 부자가 돈 버는 데 별로 보태 준 적도 없고, 국가와 사회의 부조(扶助) 또는 보조(補助)에 기대 살아왔으면서도, 부자들에게 세금 더 많이, 빨리 내라고 재촉하고 윽박지르는 가난한 사람들의 악다구니는 그냥 순수하고 정의로운가. 세상의 부자들이 다들 도둑놈이라는 주장의 근거는 도대체 누가 만들어낸 것인가. 가진 사람 비난하기 전에, 못 가진 우리의 모습도 먼저 살펴보며 역지사지(易地思之)해 보는 것이 보다 양심적이지 않을까. 세금 많이 내는 사람들을 화나게 하지 말자. 그들은 도둑이 아니다. 동전에도 양면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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