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더불어민주당이 정치개혁의 시계를 거꾸로 돌리고 있다. 지난 21대 총선 직전 도입했던 준연동형 비례대표제를 폐기하고 22대 총선에서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도입하기로 당 내부 논의를 주도하고 있기 때문이다. 명분보다는 실리를 선택한 것이다. 민주당 안팎에서 준연동형 비례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지만 이재명 대표와 홍익표 원내대표등 지도부는 요지부동이다. ‘정치 개혁이라는 이상보다는 총선 승리라는 현실이 더 중요하다는 전략적 판단인 셈이다. 이 과정에서 멋지게 지면 무슨 소용이냐는 이재명 대표의 탄식도 흘러나왔다. 윤석열정부의 독주를 방지하기 위해 22대 국회에서도 안정적인 의석확보가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것이다. 물론 민주당 안팎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고 있지만 집권 여당인 국민의힘 역시 병립형 비례대표제를 선호한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야 합의로 병립형 비례제도로 회귀할 가능성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걸핏하면 탄핵 추진으로 절대 과반의석을 과시했지만 현실적 이해 앞에서는 180도 입장을 뒤집을 조짐이다.

이재명 대표와 홍익표 원내대표. 뉴시스
이재명 대표와 홍익표 원내대표. 뉴시스

- 병립형·연동형 비례제 선거제 논란 속 비례위성정당 우후죽순
- 민주, 준연동형 비례제 폐기하고 병립형 비례제 회귀 조짐
- 조국신당·송영길신당 등 민주당계열 신당 난립방지 목적

문제는 민주당이 스스로 내세운 원칙을 허물고 있다는 점이다. 그야말로 내로남불(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의 전형이다. 민주당은 김대중·노무현정부 이래로 선거제 개혁을 추진해왔다. 87년 체제 이후 승자독식에 기반한 소선거구제의 폐해를 방지하기 위해 독일식정당명부제·중대선거구제·석패율제·권력별 비례대표제 도입 등 다양한 논의를 주도해왔다. 결과물은 지난 21대 총선 직전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의 강력 반발 속에서도 패트스트랙을 통해 탄생한 준연동형 비례대표제였다. 물론 여야 거대 양당의 비례 위성정당 꼼수로 빛이 바랬지만 소수정당의 안정적인 원내진입을 보장하는 획기적인 장치였다. 민주당은 22대 총선에서 비례 위성정당 방지조항으로 준연동형 비례제를 수정 보완한다고 수차례 공언해왔지만 사실상 물거품이 될 우려다.

선거제 뭐길래연동형·병립형비례제에서 위성정당까지

국회의원 선출방식은 크게 두 가지다. 지역구 의원과 비례대표 의원이다. 재적 300명의 국회의원 중 지역구 의석은 253, 비례대표 의석은 47석이다. 승자독식이 특징인 소선거구제가 적용되는 지역구 선거는 1위 득표자만 국회에 진출한다. 비례대표 의석은 보통 정당 득표율을 반영해서 선출한다. 여야는 내년 총선을 앞두고 선거제 개편을 논의 중이다.

문제는 비례대표 선출 방식의 변동 가능성이다. 여야는 지난 201620대 총선까지는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의석을 단순 배분하는 병립형 비례제를 유지해왔다. 다만 21대 총선에서 도입한 준연동형 비례제를 도입했다. 핵심은 정당 득표율과 국회의원 의석수를 일치시키는 것이다. 다시 말해 정당득표율보다 지역구 의석수가 부족할 경우 모자란 의석수의 50%를 비례대표로 채워주는 방식이다. 100%가 아닌 50%였기 때문에 준연동형 비례제라는 명칭이 붙었다. 전체 비례대표 47석 중 30석에만 적용하는 상한을 뒀다. 이는 특정정당이 정당득표율보다 지역구 의석을 많이 얻을 경우 비례대표 의석 배분에서 손해를 볼 수 있다. 반면 정당득표율보다 낮은 지역구 의석을 얻을 경우에는 비례대표 의석 배분에서 상대적 이익을 볼 수 있다. 사표 방지와 표의 등가성 회복, 소수정당의 원내진출을 명분으로 한 것이지만 21대 총선 당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과 더불어민주당 모두 미래한국당, 더불어시민당이라는 꼼수 위성정당 창당에 나서면서 제도 자체가 사실상 무력화됐다.

국민의힘은 내년 422대 총선에서 위성정당 출현 방지를 위해 병립형 비례제 회귀를 주장하고 있다. 민주당은 준연동형 비례제 유지와 위성정당 방지를 공언해왔지만 최근 기류는 병립형 회귀에 가깝다. 현형 준연동제가 유지될 경우 비례 위성정당의 탄생은 불가피하다. 여야 외곽에서 비례신당 창당을 준비 중인 인사들은 한둘이 아니다. 지역구 당선자를 배출하지 못해도 3% 이상의 정당 득표율을 얻으면 의석 확보가 가능하다. 이 경우 지역구 의석이 없을수록 비례대표 배분에서 유리한 고지에 오르는 역설적인 상황도 발생한다.

민주당 외곽에서는 조국·추미애 전 법무부장관과 송영길 전 민주당 대표가 제3지대에서 비례 위성정당 창당을 저울질 중이다. 창당에 나설 경우 비례대표 선수위를 받으면 원내진입이 거의 확실시된다. 이준석 전 국민의힘 대표가 주도하는 신당 역시 지역구 의석을 얻지 못할 경우 비례의석 확보를 기반으로 원내에 진입할 수 있다. 이밖에 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양향자 전 의원이 주도하고 있는 제3지대 정당 역시 일정한 지지세를 얻을 경우 비례의석 확보를 바탕으로 22대 국회에서 원내 진입이 가능하다. 아울러 민주당 일각에서는 조국·추미애 전 장관과 송영길 전 대표의 경우 22대 국회에 진입할 경우 차기 도전에 나설 게 확실시되기 때문에 준연동형 유지는 어려울 것이라는 반론도 나온다.

정치개혁 이상’vs총선승리 실리민주당 갑론을박

선거제 개혁관련 이 대표와 각을 세우는 3총리. 뉴시스
선거제 개혁관련 이 대표와 각을 세우는 3총리. 뉴시스

선거제 개편과 관련 민주당 논의의 물줄기는 크게 두 가지였다. 준연동형 비례제 유지강화라는 정치개혁을 지속적으로 추진해야 한다는 입장과 총선승리라는 현실적 이해를 고려할 때 병립형 비례제로 회귀해야 한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섰다.

문제는 당의 대주주인 이재명 대표도 본인의 속내를 공개적으로 내비쳤다는 것이다. 이 대표는 지난달 28일 유튜브 라이브 방송에서 선거제 개편과 관련해 병립형 비례제 회귀 가능성을 시사했다. 이 대표는 만약 내년 총선에서 우리가 1당을 놓치거나 과반을 확보하지 못하면 지금 이 폭주와 과거로의 역주행을 막을 길이 없다지금은 국회에서 어느 정도 막고 있지만, 국회까지 집권여당에 넘어가면 상식이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될 것이다. 어쨌든 선거는 결과로 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심지어 홍익표 원내대표는 병립형 회귀 반발에 모든 약속을 다 지켜야 하느냐고 목소리를 높였다.

명분과 실리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기 위한 당 안팎의 갑론을박이 이어졌다. 지난달 30일 국회에서 비공개로 열린 의원총회에서는 그야말로 난상토론이었다. 우선 현행 준연동형 비례제를 유지하면서 꼼수정당 논란을 낳은 비례 위성정당 창당을 금지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이는 지난 대선 당시 민주당의 공약사항이었다. 민주당 의원 168명 중 절반에 육박하는 75명이 공직선거법 개정안 발의에 동참했다.

준연동형 비례제 유지를 강조해온 이탄희 의원은 내년 총선을 '윤석열 정권 폭주 심판'이라는 단일전선, 연합전선으로 치를 수 있다민주당은 결단해야 한다. 이재명 대표가 그 결단에 앞장서야 한다고 촉구했다. 비명게 의원모임인 원칙과 상식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위성정당 금지 입법을 결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탄희 의원은 특히 이재명 대표의 결단을 촉구하면서 내년 총선에서 본인의 지역구인 경기도 용인정 불출마를 선언하기도 했다. 김종민 의원은 노무현의 말이 떠올랐다. 노무현의 길과, 이재명의 길, 어느 쪽이 지도자의 길인가. 어느 쪽이 승리하는 길인가. 어느 쪽이 민주당이 가야할 길인가라고 탄식했다.

반론도 만만치 않았다. 준연동형 비례제 유지를 전제로 국민의힘이 또다시 위성정당 창당에 나서면 내년 총선에서 다수당의 지위를 잃을 수 있다는 우려였다. 깃발은 민주연구원 부원장을 지낸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장이 들었다. 최병천 소장은 내년 422대 총선에서 준연동형 비례제 유지를 전제로 민주당이 비례 위성정당 창당에 나서지 않을 경우 비례대표 의석은 민주당 0, 국민의힘 26석이라는 충격적인 시뮬레이션 결과를 발표했다. 이러한 추정치는 여야 양당 모두 지역구 120석 확보와 정당득표율 35% 달성을 가정한 것이다. 공개 언급을 꺼리는 상당수 의원들은 총선승리라는 현실적 목표를 위해 당 지도부에 위임하자는 분위기다.

당 일각에서는 중재안으로는 권역별 비례대표제 도입을 전제로 병립형 비례제 회귀 주장도 나왔다. 권역열 비례제가 도입될 경우 영호남 지역주의라는 한국정치의 고질병을 완화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이재명 당대표 정무조정실장인 김영진 의원은 수도권·중부권·남부권을 나눠서 권역별 비례대표를 통한 병립형이 지금 여야가 최소한 합의할 수 있는 안이 아닌가 보고 있다고 언급했다. 역시 무게추는 병립형 회귀다.

대선공약 파기퇴행 내로남불에 소탐대실 우려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선거제 개혁 당 지도부 결단 촉구 기자회견' 에서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의 참석 의원들이 "선거제 협상에 임하는 당의 입장을 다시 한번 명확하게 밝히고, 위성정당 창당 방지 선언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2023.09.14. 뉴시스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선거제 개혁 당 지도부 결단 촉구 기자회견' 에서 홍영표 더불어민주당 의원을 비롯한 의 참석 의원들이 "선거제 협상에 임하는 당의 입장을 다시 한번 명확하게 밝히고, 위성정당 창당 방지 선언과 연동형 비례대표제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촉구했다. 2023.09.14. 뉴시스

민주당 지도부는 고심 속에서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표면적으로 병립형 비례제 선택이 유리하지만 당 일각에서는 반()윤석열 연대 차원에서 준연동형 비례제를 유지해야 한다는 주장도 상당하기 때문이다. 다만 대세는 기울었다는 평가다. 대선공약 파기와 정치개혁 후퇴라는 비판에도 병립형 비례제 회귀에 무게가 실리자 당 안팎의 비판여론도 확산하고 있다. 민주당 정치원로는 물론 청년정치인까지 가세했다. 아울러 여의도정치와는 다소 거리를 뒀던 김동연 경기지사도 힘을 보탰다.

지난 4일 국회 정론관에는 백발의 노신사가 나타났다. 준연동형 비례제 도입의 주역으로 과거 민주당 대표를 지낸 손학규 동아시아미래재단 상임고문은 이재명 대표의 병립형 비례제 회귀 시사에 거대양당의 적대적 공생관계를 공고화하고 정치적 대결구조를 심화시키는 처절한 후퇴라고 맹비난하면서 연동형 비례제의 실질적인 유지를 위한 입법에 힘을 모아주길 바란다고 당부했다. 야권 원로인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 역시 병립형으로 회귀한다면 완전히 노무현을 부정하는 얘기라면서 민주당에 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지기 때문에 거기에 입는 손실이 훨씬 더 클 것이다. 영원히 못 믿을 당으로 낙인이 찍힐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밖에 이낙연·정세균·김부겸 등 문재인정부 시절 국무총리를 지낸 원로 역시 이재명 대표의 당 운영과 병립형 회귀 시사를 비판해왔다.

20대 대선 이후 민주당 구원투수로 활약했던 박지현 전 공동비상대책위원장은 민주당이 만들고 민주당이 약속한 제도를 민주당 스스로 폐기하려 하고 있다대선 때 수없이 반복했던 정치개혁의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면 이재명 대표님의 정치적 미래도 사라질 것이다. 병립형으로 회귀하는 일은 결코 없어야 한다고 압박했다. 김동연 경기지사는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거대 정당이 기득권을 유지, 확대, 독식하는 병립형으로 회귀해서는 안 되고 정치판을 사기의 장으로 몰았던 위성정당과 같은 꼼수도 안 된다민주당이 말로만이 아니라 솔선해서 실천에 옮겨야 한다고 촉구했다. 이밖에 지난 총선 당시 선거제 개편의 희생양이었던 정의당도 강력 반발했다. 김준우 정의당 비대위원장은 선거제 개혁에 민주당이 최소한 병립형으로의 퇴행을 막는 유의미한 결단을 해달라이재명은 한다는 구호에 걸맞는 역사적 응답을 기대해보겠다고 압박했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흔히 게임의 룰로 불리는 선거제 개편은 여의도 정치권의 최대 난제다. 준연동형 비례제 도입 역시 수많은 난관을 거쳐 탄생했고 보수정당의 반발 속에서도 힘으로 밀어붙인 건 민주당이었다내년 총선이라는 현실적 이해 앞에서 정치개혁을 원칙을 저버린 것은 소탐대실의 결과를 낳을 수 있다고 전망했다. 특히 민주당은 지난 2021년 서울·부산시장 재보선 국면에서 기존 당헌당규상 무공천 원칙을 뒤집고 후보 공천을 강행했다가 참패하는 아픔을 경험한 바 있다민주당의 내로남불에 정치개혁 후퇴라는 여론이 확산될 경우 후폭풍은 예상 밖으로 커질 수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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