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복궁 낙서 테러… ‘문화재’ 경시 태도에 여론 들끓어
문화재청 “앞으로 국가유산 훼손 엄중히 대응하겠다”

보수 공사 중인 경복궁 낙서 테러 훼손 현장. [박정우 기자]
보수 공사 중인 경복궁 낙서 테러 훼손 현장. [박정우 기자]

[일요서울 | 박정우 기자] 경복궁이 두 번이나 훼손됐다. 숭례문 전소 이후 문화재 피해가 이어지는 가운데, 여론은 훼손범에 대한 비판과 함께 문화재청의 대처를 지적했다. 한편 서경덕 교수는 “어릴 때부터 장기적으로 문화재 관련 교육이 이뤄져야 한다”라며 대안을 제시했다. 숭례문 이후 흥인지문, 수원화성 등도 ‘문화재 테러’로 고초를 겪어온 상황. 문화재청은 이번 사건 이후 “앞으로 강력히 대응하겠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경복궁 담벼락이 이틀 연속 스프레이 낙서로 인해 훼손됐다. 지난 16일 오전 1시42분경 경복궁 영추문 인근과 국립고궁박물관 담벼락 등 3곳이 불법 영상 공유 사이트 등으로 얼룩졌다. 낙서로 훼손된 범위는 44m에 달했다.

지난 17일 오후 10시20분경에는 서울종로경찰서에 영추문 좌측 담벼락에 낙서가 추가됐다는 신고가 들어왔다. 역시 스프레이가 사용됐으며, 특정 가수의 이름과 앨범 제목 등을 써 문화재보호법 위반 혐의를 받고 있다.

여론은 들끓었다. 다수 언론사 보도의 댓글에는 “숭례문 방화 사건이 연상된다”, “숭례문 방화 사건 이후로 여전히 변한 게 없다”, “역사의식이 이렇게 떨어져 있다”, “강력한 처벌이 이뤄져야 한다” 등 다양한 의견이 나왔다.

훼손·복구 거듭하는 문화재, 스프레이부터 화재까지 ‘난국’

2008년에는 국보 1호 숭례문에 화재가 발생했다. 숭례문은 방화 5시간 만에 전소되었고, 결국 누각을 받치고 있는 석축 부분만 남겨졌다. 방화범은 자신이 소유한 토지가 신축 아파트 건축부지로 수용되는 과정에서 토지보상에 대한 불만을 품고 범행을 벌였다.

사건 직후 숭례문 복원작업이 착수됐다. 실측 도면이 있어, 기술적으로 원형을 복원할 수는 있었으나 주요 부분들이 불에 타버려 원래의 모습을 되찾기는 어려웠다. 결국 복원하는 데 5년 3개월이 걸렸다.

그로부터 10년 후 2018년에는 보물 1호 흥인지문 일부가 불에 탔다. 범인은 흥인지문 출입문 옆 벽면을 타고 몰래 들어와 2층 누각 내에서 미리 준비한 라이터로 종이박스에 불을 붙여 방화를 시도했다.

방화범은 교통사고 보험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억울함에 불을 지른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히 범인을 발견한 시민이 112 신고를 했고, 현장에 출동한 경찰이 긴급체포하며, 불은 4분 만에 꺼졌다. 흥인지문 담벼락 일부가 탔지만, 인명·재산피해는 발생하지 않았다.

낙서 테러도 처음이 아니다. 2017년 언양읍성 성벽 4곳에 붉은 스프레이 페인트 낙서가 칠해졌다. 미국을 비하하는 내용과 욕설이 적혔다. 범인은 문화재보호법 위반과 공용물건 손상 등의 혐의로 기소됐다. 

더불어 지난해 1월 경기도 지정문화재인 여주시의 영월루도 스프레이 낙서로 훼손이 됐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수원화성 성벽에도 낙서가 새겨진 적이 있다. 이처럼 문화재 훼손 사건은 반복돼 왔다.

서경덕 교수 “장기적으로 문화재 관련 교육 필요”

서경덕 성신여대 교수는 자신의 SNS에 “경복궁 궁내 각 처소는 이미 낙서로 도배된 지 오래”라며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에 이런 일들이 벌어져 왔다는 사실이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라고 밝혔다.

이번 사건을 두고는 “현실적으로 경복궁 안팎 CCTV를 늘리는 게 가장 효율적인 대안이 될 수는 있지만, 장기적으로는 어렸을 때부터 관련 교육이 강화돼야 한다”라며 “우리 문화재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자부심,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환경을 조성한다면 이런 낙서 테러는 현저히 줄어들 것”이라고 분석했다. 

반복되는 문화재 훼손 “문화재청 책임 못 피해”

반복되는 문화재 훼손을 두고 문화인류학과 전공자들의 시선도 곱지 않다. 모 대학 문화인류학 석사 A씨는 “우선 문화재의 완전한 원형복원에 비용이 많이 소모된다”라며 “원형복원이 가능할지도 의문이지만,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인 것은 분명하다”라고 밝혔다.

이어 “문화재청도 책임을 피할 수 없다”라며 “지난해 세계문화유산 정릉에 대규모아파트 단지가 건설돼 국민적 비판을 받지 않았는가. 훼손이 반복된다는 것은 역사의식의 문제도 있지만, 관리 주체의 운영부실도 한몫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문화인류학 박사 B씨는 “문화재 경시 태도가 만연해지고 있다는 것을 몸소 느낀다”라며 “우리는 (문화재를) 단순한 랜드마크가 아닌 국가 정체성과 정통성의 상징으로 인식해야 한다”라고 밝혔다.

아울러 “이번 경복궁 낙서 테러의 경우에도 문화재청의 대처가 이뤄지겠지만, 보안 강화와 강력 대응보다도 우선돼야 할 것은 훼손에 대한 책임 즉, 반성과 성찰 그리고 개선 의지를 보이는 것이다”라고 꼬집었다.

경복궁 피해 현장을 바라보던 C씨는 취재진에게 “국가의 얼굴에 낙서를 한 것이나 마찬가지다”라며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하지 않도록 선제적 대응이 필요하다”라고 말했다.

문화재청 조치계획 “강력 대응 예정”

이번 문화재 훼손 사건과 관련해 문화재청은 지난 18일 조치 계획을 밝혔다. 우선 경복궁 담장 경찰 배치 및 순찰을 강화하고, 전문가를 통해 훼손 현장을 보존 처리한다는 입장이다. 이어 담장 외부구역 관리를 강화하고, 향후 국가유산 훼손과 관련해 강력한 대응을 시사했다.

문화재청은 “이번 사건은 문화재보호법에 따라 강력하게 대응할 것이며, 앞으로도 국가유산의 훼손에 대해서는 경찰과 공조해 엄중하게 책임을 물을 것이다”라고 입장을 밝혔다.

한편 여론은 문화재 테러범에 대한 비판과 함께 문화재청의 반복되는 사후 대처를 두고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라며 지적을 이어가고 있다. 향후 문화청의 대응에 귀추가 주목된다. 

광화문 현장. [박정우 기자]
광화문 현장. [박정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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