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전방포위에 ‘믿었던 너마저’ 친낙-비명도 선 긋기...‘이낙연 신당’ 좌초 위기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뉴시스]
이낙연 전 민주당 대표 [뉴시스]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이낙연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신당 창당 가능성을 시사하며 친명(친이재명) 지도부 퇴진과 공동비대위 출범을 요구하는 등 이재명 대표를 향한 압박 수위를 높여가고 있다. 이른바 ‘명낙회동’도 거부한 채 올 연말까지 이 대표와 민주당이 적정한 응답을 하지 않을 경우 ‘특단’을 내리겠다는 취지로 선전포고도 날린 상황이다. 탈당 후 신당 창당에 나서겠다는 최후통첩인 셈이다. 그러나 여당이 한동훈 비대위를 띄우는 등 시국이 비상하게 흘러감에 따라 민주당에선 ‘적전분열은 안 된다’는 내부 기류가 굳어지며 이 전 대표를 향한 시선도 싸늘하게 식어가고 있다. 이에 그간 각 언론을 통해 연일 신당 창당을 공식화하다시피 했던 이 전 대표의 입이 무거워졌다. 반명(反明) 연대를 구상했던 김부겸‧정세균 전 총리를 비롯해 심지어 당내 비명(비이재명)계까지 선을 그으면서다. 이에 조급해진 이 전 대표는 당장 외부 전문인사 영입을 시도하고 있지만, 이마저도 이 대표가 사실상 판정승을 거둔 상황에서 쉽지 않아 보인다.

최근 야권을 떠들썩하게 했던 ‘이낙연 신당’의 동력이 점차 빠지는 모습이다. 최근 여의도 정가에서도 이 전 대표의 신당 창당 움직임이 현 정국의 중대 변수가 될 것으로 보는 이는 드물다. 이낙연 신당이 전면 무산될 공산이 높다고 점치는 시각도 많다.

이러한 관측에 힘을 싣는 시그널도 뚜렷하게 감지된다. 이낙연 신당이 창당하면 그 주력이 될 것으로 관측됐던 민주당 비명계 주축인 ‘원칙과 상식’ 멤버들을 비롯해 친낙(친이낙연)계, 김부겸‧정세균 전 총리 등이 모두 이 전 대표와 거리를 두고 있는 것. 여기에 이 전 대표의 신당 창당을 반대하는 당 안팎의 목소리도 거세다. 원내외 조직들이 잇따라 이낙연 신당을 반대하는 입장문‧성명 릴레이를 펴고 있어 이 전 대표로선 그야말로 사면명가(四面明歌)에 처한 상황이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좌), 김부겸 전 총리(우) [뉴시스]
이재명 민주당 대표(좌), 김부겸 전 총리(우) [뉴시스]

이낙연 신당 핵심 동력 ‘3총리 연대설’ 쨍그랑

특히 이낙연-김부겸-정세균 삼각편대를 이루는 이른바 ‘전 총리 3인방 연대설’은 이 전 대표가 신당 창당을 매개로 당내 친명 세력과 대치할 수 있었던 최대 동력으로 꼽혔다. 합리적 성향에 중량감까지 갖춘 두 사람이 이낙연 신당을 지지한다면 친명 체제로 굳어진 민주당에 혁신 요구 수위를 드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대표의 대응은 빨랐다. 이 대표는 지난 20일 서울 모처에서 김 전 총리와 회동을 가진 데 이어 이달 28일에는 정 전 총리와도 만남을 갖는 등 ‘이낙연 전방포위’에 나선 것이다. 

김 전 총리는 이 대표와 만난 자리에서 총선 전 내홍은 피해야 한다며 이 전 대표와 만나 깊은 대화를 나눌 것을 당부했다. 아울러 현행 준연동형 비례선거제 취지를 유지해달라는 당부와 함께 ‘단순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닌 범진보진영을 아우르는 이재명으로 거듭나야 한다’는 제언도 덧붙였다고 전해진다. 이에 이 대표는 당 안팎의 다양한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나가겠다고 화답했다고 한다.

회동에서 오간 대화 내용과 별개로, 두 사람이 이 전 대표에 앞서 이 대표와 공식 석상에 나선 것만으로도 이 전 대표의 제3세력화 구상은 이미 상당부분 금이 갔다는 해석이 주를 이룬다. 두 전 총리로선 아직 실체도 없는 이낙연 신당 구상에 섣불리 호응했다가 총선 전 내홍을 부추긴 민주 원로라는 오명을 쓸 수 있다는 부담에 중립모드를 취한 것으로 풀이된다. 실제로 정 전 총리도 앞서 지난 11일 김영주 국회부의장의 출판기념회에서 총리 연대설과 관련해 “그런 건 없다”고 단언하며 자신은 통합주의자라는 점을 거듭 강조했다.  

정 전 총리와 현직 시절 가깝게 지냈다는 한 야권 관계자는 “정세균 전 총리는 현직 때도 여야 안 가리고 인맥 폭이 넓은 인사로 여의도에서 유명했다”며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평소 온화하고 갈등보다는 대화로 사안을 풀어가려는 성품이라 지금 당 내홍의 중심에 있는 (이낙연) 신당에 동조하거나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했다.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원칙과상식', 더불어민주당 혁신 제안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원욱, 김종민, 조응천, 윤영찬 의원. [뉴시스]
윤영찬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14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 소통관에서 열린 '원칙과상식', 더불어민주당 혁신 제안 기자회견에서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이원욱, 김종민, 조응천, 윤영찬 의원. [뉴시스]

“믿었던 너마저” 비명‧친낙도 이낙연 신당 거리두기

심지어 연말을 기해 이 전 대표와 제3지대 노선을 공유할 것으로 유력하게 점쳐졌던 비명계와 친낙계조차도 이낙연 신당 합류에 회의적인 분위기다. 

통상 신당 창당의 성패에는 현역 의원의 합류 여부와 그 규모가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신당으로서 총선 파급력을 가져가기 위해선 그간 의정 활동으로 인지도와 지역구 조직을 갖춘 현역 의원을 최대한 포섭해야 국회 의석수 확보가 훨씬 수월하다는 게 정치권 정설이다. 또한 신당 창당에는 막대한 자금이 소요되는 만큼, 비정치인 출신보다 정치 후원금 모금에 유리한 현역이 선호되는 이유다.

이에 이 전 대표의 신당이 총선 전 도움닫기를 하려면 현재 친명과 대립각을 세우고 있는 ‘원칙과 상식’ 소속 비명계 의원들과 설훈 의원 등 친낙계의 지원사격이 필수인 셈이다. 

그러나 ‘믿었던 도끼’인 친낙계 윤영찬 의원부터 이 전 대표의 신당 창당 드라이브에 찬물을 끼얹은 상황이다. 윤 의원은 최근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이 전 대표의 신당 창당과 관련해 “속도가 너무 빠른 것 같다”라며 “신당과 관련해 이 전 대표와 이야기한 적은 없지만, 왜 이렇게 서두르시는 거냐는 말씀은 드린 적 있다”고 속도조절을 주문했다고 밝혔다.

또 다른 친낙계 핵심인 이개호‧이병호 의원 역시 ‘현상유지’를 주장하며 이 전 대표와 거리두기에 나섰다. 이개호 의원은 자신의 SNS를 통해 과거 2016년 호남에서 안철수 국민의당이 녹색 열풍을 일으켰을 당시에도 자신은 꿋꿋이 민주당을 지켰다며 민주당 잔류 의사를 밝혔고, 이병훈 의원은 지난 13일 기자회견에서 “신당 참여 의사가 없다”고 단호한 입장을 밝혔다.

이낙연 신당의 잠정 대들보로 지목됐던 김종민·이원욱·조응천 의원도 현재 이 전 대표의 신당 합류설에는 침묵하고 있다. 다만 이 의원은 이 전 대표가 한 언론과의 인터뷰를 통해 신당 창당 가능성을 언급한 데 대해 “당황스럽다”는 반응을 내비치며 비명계의 입장을 대변하기도 했다.

이들은 이 전 대표와 마찬가지로 올 연말까지 민주당이 특단의 혁신을 보이지 않는다면 탈당도 불사하겠다는 취지로 이재명 지도부를 향해 최후통첩을 던진 상태다. 그러나 정작 이 전 대표 신당 창당설에 대한 당 안팎의 반응이 심상치 않자, 동향을 예의주시하며 신중을 기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주당 한 관계자는 “특히 현역 의원은 지금과 같은 중대시국에 탈당을 경정하기가 결코 쉽지 않다. 한 번의 선택으로 정치인생이 끝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더라도 변절자라는 주홍글씨를 안게 된다”면서 “제아무리 이해관계가 동질인 비명계, 이낙연계라고 해도 현실정치는 냉혹한 법이다. 이 전 대표가 이번 일로 신당이 무산되면 정치생명에도 큰 위기가 닥칠 것”이라고 진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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