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국불교(護國佛敎)’는 불교를 굳게 믿음으로써 국가의 번영을 생각하는 현세 불교적 신앙으로 다른 불교국가에서는 유례를 발견하기 어려운 한국불교 특유의 불교사상이다. 호국불교 근거의 대표적 경전은 <인왕호국반야바라밀다경>이다. 이 경전의 ‘호국품’에 부처님이 파사익왕(波斯匿王, 석가모니 생존시 북인도 코살라왕국의 왕)에게 “내치와 외치에 있어서 정법을 가지고 인과의 이치를 바르게 알고 믿어 지혜를 닦아 나라를 다스려야 한다.”라는 호국하는 방도를 설하는 내용이 나온다.

한국불교는 삼국 초기부터 왕실의 지원으로 ‘흥국(興國)·흥복(興福)’을 위한 이상으로 채택되었기 때문에 불교와 국가 간의 관계는 긴밀함을 유지하였다. 백성들에게는 피화초복(避禍招福)하는 불교를 권장하고, 국가는 새로운 종교사상에 의해 국론을 하나로 결집하여 부국강병을 꾀하려 했다.

신라에서는 <인왕경(仁王經)>을 강설하는 백고좌법회가 생겼으며, 원광법사의 <세속오계(世俗五戒)>는 엄격한 불교의 계율을 세속사회에 탄력적으로 적용했다. 선덕여왕 때는 자장율사(慈藏律師)의 건의로 황룡사구층목탑을 세워 부처님의 위신력(威神力)으로 중국과 일본 등 주변국 제압을 발원했다. 문무대왕 때는 당병(唐兵)을 물리치고 삼국의 옛 영토를 회복한다는 이념 아래 사천왕사(四天王寺)를 건립했다.

신라 원효대사(元曉大師) 때에 확립된 호국불교는 높은 정신문화를 창출해 국민총화를 이루어 삼한일통에 크게 이바지했다. 고려시대에는 문종 때에 국가의 안녕과 평화를 기원하는 목적으로 흥왕사(興王寺)를 창건했고, 고종 때에 펼친 판각 사업의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은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한 호국불사였다.

조선시대에는 숭유억불 정책으로 불교의 탄압이 극에 달했지만, 서산대사(西山大師)와 사명대사(四溟大師) 등은 임진왜란 때 승군을 일으켜 분연히 일어섰다. 일제강점기 때, 3.1 만세운동에 만해(萬海) 스님 등이 민족대표 33인에 참여하여 호국불교 정신을 계승하였다.

불교가 삼국에 들어오기는 고구려-백제-신라 순인데, 신라의 불교 융성은 ‘나중 된 자가 먼저 된’ 좋은 사례이다. 신라의 불교 도입에 가장 큰 공헌을 한 이가 이차돈(異次頓, 502/506~527)이다. 성은 박씨이고, 이름은 거차돈(居次頓) 또는 염촉(猒髑)이라고 한다. 부친의 이름은 미상이지만, 조부는 아진종(阿珍宗)으로 습보갈문왕의 아들이다.

제23대 법흥왕은 귀족 세력을 누르고 중앙집권적인 고대 국가체제를 완비하기 위한 이념적 지주로 불교를 활용했다. 이차돈은 법흥왕의 근신(近臣)인 사인(舍人)의 직을 수행하며 왕의 개혁정책과 불교수용이 신라가 도약하는 길이라고 확신하였다.

527년. 26세의 하급 관리 이차돈은 나라를 위해 순교(殉敎)하기로 결심하였고, 법흥왕은 이를 가상하게 여겼다. 목을 베인 자리에서 흰 젖이 솟아나 한 길이나 되었다. 하늘은 어두워지고 땅은 진동하였으며, 사방에서 꽃비가 내리는 등 이적(異蹟)이 나타났다. 이 땅의 정신사에 말로는 형용할 수 없는 한 떨기 흰 연꽃이 피어나는 순간이었다.

이차돈은 “나라를 위해 몸을 없애는 것은 신하의 절의요, 임금을 위하여 목숨을 바치는 것은 백성의 곧은 의리입니다. 거짓으로 왕명을 전한 죄를 씌워서 신의 머리를 베신다면 만백성이 굴복하여 감히 왕의 명을 어기지 못할 것입니다.”라는 말을 남기고 짧은 생을 마감했다. 그의 순교를 계기로 신라는 불교를 공인하였으며, 법흥왕은 천경림(天鏡林)에 흥륜사(興輪寺)를 지어 이차돈을 추모했다.

<이차돈 설화>는 법흥왕의 불법(佛法) 진흥 의지와 왕권 강화 의도가 반영된 것이다. 최초의 순교자 이차돈의 절개와 장렬함을 경모하는 필자의 자작 한시를 소개한다.

探跡南行千載屯(탐적남행천재둔) (성인의) 자취 찾아 남행 천년 언덕(경주)에 왔는데

孤單半月幾何春(고단반월기하춘) 외로운 반월성 몇천 년 봄 보냈던가

苦行正法求仁異(고행정법구인이) 불법을 위해 고행하고 인을 구해 이적(기적) 일고

不惜形身殉義神(불석형신순의신) 몸을 아끼지 않고 의를 위해 죽어 신이 되었네

傳說煌煌驚動宇(전설황황경동우) (젖 같은 피) 전설이 환히 빛나 우주를 놀라게 했고

鐘聲曲曲化成民(종성곡곡화성민) 사원의 종소리가 방방곡곡 모든 백성 덕화했네

散華一劍三韓留(산화일검삼한유) 한칼에 꽃다운 목숨 졌지만 삼한에 이름 남아

特立燈明護國遵(특립등명호국준) 특별히 우뚝 선 등불 호국불교로 공경하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 종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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