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이버 지식인·블로그·카페 등에서 버젓이 활동
수사 어려운 ‘텔레그램’ 통해 진단 서류 조작까지

특사경 신설. [뉴시스]
특사경 신설. [뉴시스]

[일요서울 | 박정우 기자] 신체검사 등급 판정을 위한 진단서 조작 등 법의 허점을 노려 병역 면탈을 돕는 일명 ‘병역 브로커’가 성행하고 있다. 지난해 10월 ‘가짜 뇌전증’ 진단 수법으로 수백 명의 면탈을 도운 브로커가 재판에 넘겨진 바 있으나, 또 다른 브로커들이 여전히 다양한 수단을 통해 활동 중이다. 특히 이들은 국내에서 수사하기 어려운 텔레그램을 통해 진단서를 위조하며 범죄의 범위를 확대해 나가고 있었다. 이에 병무청은 본청에 사이버조사과를 신설하고, 특별사법경찰도 증원하는 등 대응에 나섰다.

법을 악용하거나 신체검사 진단을 조작해 병역 면탈을 돕는 이른바 ‘병역 브로커’가 수면 위로 드러났다. 지난 10월 ‘가짜 뇌전증(간질)’ 진단 수법을 사용해 병역 면탈을 도운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병역 브로커 A씨에게 검찰이 징역 5년 형을 내려달라고 법원에 요청했다.

뇌전증의 경우 환자의 30~40%는 뇌파검사에서 이상 소견이 발견되지 않아 진료기록만으로 뇌전증 진단을 받을 수 있다. 이에 A씨는 단순 입영 연기 대상자들에게도 면제를 권유한 것이다.

A씨는 허위 뇌전증 진단서를 발급받는 수법으로 병역 의무자들이 병역 등급을 낮추거나 면제 판정을 받도록 돕고 그 대가를 받았다. 서울남부지검과 병무청은 2022년 12월부터 이미 병역면탈 합동수사팀을 꾸리고 수사를 벌였다.

군 수사관 출신인 A씨는 서울 강남구에 사무실을 차리고 인터넷 포털사이트에 병역 의무자를 위한 상담 카페를 개설했다. 이후 자신이 설계한 대로 발작 등을 호소하게 해 의뢰인들의 병역 면탈에 가담했다. 

또 블로그를 통해 병역 처분 변경 실적을 적극적으로 홍보해 상담 비용을 구체적으로 제시하기도 했다. 특히 병무청의 불법 행위 조사를 피하기 위해 상담은 일대일로만 진행한 것으로 밝혀졌다.

네이버 지식인, 블로그에 버젓이 ‘상담가’ 활동

브로커들은 국내 최대 포털사이트 네이버 지식인과 블로그에서도 버젓이 활동했다. 병역 고민을 토로하는 게시물이 올라오면 간단한 답글로 유료 상담을 권유했다. 한 브로커가 지식인에 남긴 권유 답글만 5만4000여 개에 달한다. 

한 브로커의 블로그에 따르면 6개월 동안 중개한 신체등급 변경 371건 중 256건을 변경 처리했다. 블로그에는 “공정한 병역 업무 이행에 이바지할 목적으로 활동하고 있다”라고 소개돼 있었다.

네이버 병역정보 공유 카페에서도 스텝 일부가 병역 브로커들의 사업을 홍보해온 것으로 밝혀졌다. 입영 연기와 병역 판정 변경 방법 등을 묻는 게시글이 게재되면 브로커를 소개해주는 수법을 행했다.

브로커 “면제 위조 건 여전히 문의 많다”

취재진은 SNS 플랫폼 텔레그램을 통해 브로커에게 상담을 받았다는 허 모(21, 남) 씨를 만나 상세한 과정을 들을 수 있었다. 허 씨는 “군 관련 위조 서류 제작이 가능한지 문의했고, 뭐든지 가능하다고 답했다”라고 밝혔다.

허 씨에 따르면 브로커는 “기본적인 서류는 50만 원부터 시작이며, 당일 제작해 당일 시안 확인이 가능하다. 다음 날 오전에 배송해 수도권은 퀵, 지방은 택배로 전달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어 허 씨는 공익이나 면제 판정을 받을 수 있도록 관련 서류도 제작이 가능한지 물었고, 브로커는 “‘성명, 생년월일, 성별, 주소, 병명, 진단내용, 발병일, 진단일, 발급일자, 병원, 배송주소, 연락처’를 전달해 주면 완벽하게 위조가 가능하다”라고 설명했다.

브로커는 나아가 “사용 못할 걸 다들 위조해갈 이유가 없다. 현재도 면제 사유로 많은 문의를 받고 있다”라고 덧붙였다. 이처럼 경찰의 추적이 어려운 텔레그램과 같은 매체를 이용해 여전히 병역 면탈은 이뤄지고 있었다.

병무청 “병역 면탈 근절에 박차”

병무청 관계자는 지난 11일 취재진의 ‘병역 면탈 예방을 위한 현 병무청의 정책 현황’ 질의에 “갈수록 지능적으로 변하는 병역 면탈 범죄에 대응하기 위해 본청에 사이버조사과와 경인지방병무청에 병역조사과를 신설했다”라고 밝혔다.

본청 사이버조사과는 온라인상의 병역 면탈 조장정보 게시 및 유통자 단속과 병역판정검사 및 징·소집 기피자 색출, 디지털 증거 수집과 분석을 담당한다. 경인지방병무청 병역조사과는 그간 서울지방병무청에서 관할하던 인천·경기지역의 병역 면탈 범죄 수사를 직접 수행한다.

이에 따라 병무청 특별사법경찰 조직은 본청 2개 과와 지방 3개 광역수사청, 11개 현장청으로 운영되고, 전담인력도 기존 40명에서 60명으로 증원됐다.

관계자는 “병무청 특별사법경찰이 2012년 처음 도입된 이후 병역 면탈 범죄는 매년 증가하고 있으며, 범죄 유형도 기존 7종에서 49종으로 증가됐다”라며 “그러나 이를 담당하는 특별사법경찰 인력은 40명으로 고정돼 범죄에 대응하는 데 한계가 있었다”라고 말했다.

이어 “뇌전증을 활용한 위장 병역 면탈과 관련해서도 예방·단속을 위한 제도 개선을 적극 추진해 왔다”라고 덧붙였다.

지난 4일 이기식 병무청장은 “올해는 병무청 특별사법경찰이 새롭게 도약하는 한 해가 될 것”이라며 “병역 면탈 범죄에 대한 신속하고 엄정한 단속과 수사를 통해 공정하고 정의로운 병역문화 조성에 기여하겠다”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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