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이기우 언론인] 요즘 총선 출마자들 사이에서는 이른바 ‘한비어천가’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총선 출마자들은 의정보고서 등에 한 한동훈 비상대책위원장과 찍은 사진을 내걸고 있을 정도로 한 위원장의 인기가 상당하다. 일명 ‘한동훈 모시기 전쟁’이 벌어졌다는 말이 나올 정도다. 이 같은 현상은 지지율 30%대에 머물고 있는 윤석열 대통령보다는 한 위원장을 부각시키는 게 총선에 도움된다는 판단을 한 것으로 보인다. 한 위원장 역시 윤 대통령과 의도적으로 거리두기를 하고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취임 연설과 신년인사회 등에서 윤 대통령을 언급하지 않고 있다. 특히 김건희 명품백 의혹에 대해 한 위원장은 “국민들이 걱정할 부분이 많다”며 우려를 표했다. 나아가 한 위원장과 교감 하에 일부 인사들이 사과를 주장하기도 했다. 이를 두고 여권 내에서는 한 위원장이 ‘자기정치를 하고 있다’는 분석과 함께 대통령과 한 위원장 사이에 갈등이 불거질 수도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부산 시민들과 셀카 찍는 한동훈 위원장. 뉴시스
부산 시민들과 셀카 찍는 한동훈 위원장. 뉴시스

- 국힘 수도권 출마자.의원들 윤보다 한동훈 부각시키려는 분위기. 
- 용산출신 출마자 세비반납운동 한동훈 찍은사진 언론보도 활용
- 수도권 일부 출마자들, 용산 김건희 관련의혹 입장 표명 요구 


지난 17일 서울 마포구의 한 예식장에서 열린 서울시당 신년인사회에서 서울 전·현직 의원들과 구청장, 당협위원장 등이 참석해 ‘한동훈’을 연호했다. 한 위원장은 방문하는 곳마다 ‘지역 맞춤형’ 메시지를 내놨다. 대구·경북 지역에서는 ‘정치적 출생지’, 호남에서는 ‘5·18 정신 헌법 전문 수록’, 부산·경남에서는 야구 사랑이 각별한 지역 민심을 겨냥해 롯데가 마지막으로 우승한 해인 ‘1992’ 셔츠를 입었다. 

한동훈 모시기 전쟁, 尹 대신 韓 띄우기

눈길을 끄는 대목은 한 위원장이 취임한 후 각종 공식 석상에서 윤석열 대통령을 단 한 차례도 언급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전국 순회 일정을 소화하는 동안 윤 대통령을 언급하지 않다가 마지막 서울시당 행사에서 “대통령께서 노후 아파트 규제를 대폭 완화할 것을 약속했다”는 말을 꺼낸 것이 처음이다. 

특히 한 위원장은 방문하는 행사마다 지지자들의 셀카와 사인 요청 사례를 받기도 했다. 이로 인해 개인 지지도도 급상승했다. 실제 한국갤럽이 지난 9~11일 전국 만 18세 이상 1천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차기 대통령감으로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가 23%,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22%의 지지를 받았다. 국민의힘 지지자 중에서는 53%가 한 위원장을 꼽았고, 이어 홍 시장(6%) 순이었다. 

그런 분위기 탓에 국민의힘 의원 물론 총선 출마자들도 윤석열 대통령보다는 한 위원장을 더 찾는 분위기다. 페이스북에 한동훈과 함께하는 사진을 공유하는 의원들도 늘었다. 심지어 의원들은 의정보고회 등에 한 위원장을 모시기 위해 전방위적으로 압박(?)을 하면서 요즘 핵심 당직자들이 적잖은 속앓이를 하고 있다는 후문이다.

이와 관련, 여권 한 인사는 “‘대통령과 찍은 사진’은 여당 정치인에게 일종의 경선 프리패스로 통한다. 대통령실 인사나 장·차관이라면 당연히 대통령과 함께 찍은 사진을 소중하게 챙겨 명함, 홍보 전단 등에 쓰이는 경우가 대부분”이라면서도 이번 총선 분위기는 사뭇 다르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대통령실 출신 인사들까지도 윤 대통령과 찍은 사진이 아니라 한 위원장과 함께 찍은 사진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는 상황”이라며 “한 위원장은 ‘미래’ 라는 분위기를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실제 충청권 등 경합지역에서는 윤 대통령보다 한 위원장의 사진이 더 큰 비중으로 실리고 있다.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을 맡았던 정진석 의원은 지난 8일 의정보고서 표지로 한 위원장과 찍은 사진을 사용했다. 충청 충주를 지역구로 둔 이종배 의원 역시 한 위원장과 자신의 ‘셀카’ 사진을 의정보고서에 넣었고, 엄태영 의원은 의정보고서 사진에 윤 대통령의 비중보다 한 위원장에게 더 큰 비중을 뒀다. 한 위원장과의 대정부질문 사진을 포함해 함께 찍은 셀카가 포함됐다.

윤석열 정부 국무위원 출신으로 수도권에 출마한 예비후보들도 각종 홍보물에 한 위원장과 찍은 사진을 게재하고 있다. 국무위원으로 활동하며 법무부 장관이던 한 위원장과 대화하는 사진이 주다. 배철순 전 정무수석실 행정관은 지난 17일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에 한 위원장과 찍은 사진을 올렸고, 김기흥 전 대통령 부대변인도 지난 16일 인천시당 신년 인사회에서 한 위원장과 함께 찍은 사진을 페이스북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하기도 했다. 장예찬 전 최고위원도 롯데 자이언츠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기념하는 회색 티셔츠를 입고 찍은 사진을 공개했다. 

이 뿐만 아니다. 대통령실 출신 인사 등이 당선시 불체포특권 포기 서약, 금고형 이상 형 확정시 재판기간 동안 지급받는 세비 전액을 반납 서약에도 동참하며 한 위원장의 행보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후보들, 정권 심판론 높아 한동훈 내세우는 듯

국민의힘 의총장 한 위원장. 뉴시스
국민의힘 의총장 한 위원장. 뉴시스

이에 대해 여권 한 관계자는 “그만큼 윤 대통령에 대한 여론이 좋지 않다는 의미”라며 “여론에 가장 민감해 하는 것은 예비후보들”이라고 했다. 그는 이어 “한 위원장이 공천권을 가지고 있지만 ‘정권 심판론’이 ‘야당 심판론’을 앞서는 여론조사 결과 등이 현장에서도 느껴지기 때문”이라고 덧붙였다. 사실상 30%대 초중반에 머무른 지지율이 좀처럼 오르지 못하는 윤 대통령과 비교해 한 위원장의 사진이 득표에 도움이 된다는 얘기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충청권과 경기도 등 여론에 민감한 지역일수록 한 위원장을 당의 ‘얼굴’로 쓰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실제 윤 대통령의 지지율은 30%대에 머물고 있다. 한국갤럽이 지난 16~18일 전국 만 18세 이상 유권자 1천2명을 대상으로 전화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윤 대통령 지지율이 32%를 기록했다. 대통령이 현재 대통령으로서의 직무를 잘 수행하고 있다는 응답은 32%, 잘못 수행하고 있다는 응답은 58%였다. 이에 앞서 한국갤럽이 지난 9~11일 전국 만 18세 이상 1천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윤 대통령 직무 수행을 긍정 평가한다는 응답은 33%였다. 

나아가 정권 심판론에도 힘이 실리고 있다. 엠브레인퍼블릭·케이스탯리서치·코리아리서치·한국리서치가 지난 8~10일 전국 만 18세 이상 1천1명에게 휴대전화 가상번호 100% 전화면접조사 방식으로 물은 결과 ‘오는 4월에 치러질 국회의원 선거에서 국정운영을 더 잘하도록 정부와 여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응답(정권지원론)은 39%, ‘정부와 여당을 견제할 수 있도록 야당에 힘을 실어줘야 한다’는 응답(정권심판론)은 50%로 나타났다. 

김건희 리스크 놓고 한동훈-용산 갈등?

그래서일까. 여권 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대표적으로 윤 대통령의 부인 김건희 여사 명품 가방 수수 의혹과 관련해 한 위원장이 우려의 목소리를 냈다. 

한 위원장은 명품백 수수 의혹과 관련해 “기본적으론 (취재 방식이) 함정 몰카이고 처음부터 계획된 것”이라면서도 “전후 과정에서 분명히 아쉬운 점이 있고, 국민들이 걱정하실만한 부분이 있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그래서 제가 제2부속실 설치와 특별감찰관 임명 검토 문제를 전향적으로 말씀드렸던 것”이라며 공개적으로 김 여사 관련 의혹에 우려를 나타냈다. 해당 의혹은 김 여사가 지난해 12월 한 목사로부터 명품 가방을 선물 받았다는 의혹이다. 

네덜란드 순방을 마치고 국내에 들어온 윤석열 대통령 내외. 뉴시스
네덜란드 순방을 마치고 국내에 들어온 윤석열 대통령 내외. 뉴시스

당내에서도 김 여사가 직접 사과할 필요가 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김경율 비대위원은 “(김 여사와 관련) 여론수집을 해왔는데, 수도권 험지 출마자들의 목소리는 여사 리스크를 해소하지 않고서는 총선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라며 “김건희 여사 리스크를 해소하지 않으면 수도권 선거는 없다고 하더라”라고 전했다.

그는 또 “(한 위원장과) 서로 논의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고,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으로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 위원장과 교감 속에서 이뤄졌다는 점을 언급기도 했다. 

하태경 의원 역시 “디올백 같은 경우 부적절했다는 부분에 대해 솔직하게 사과하고 이해를 구하는 것이 공인으로서 바람직한 자세라고 본다”며 “본인이 직접 사과하는 게 제일 깔끔하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박정하 수석대변인도 명품백 의혹에 대해 사과해야 한다는 당내 비판에 대해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많은 부분 공감하고 발언에 대해 존중한다”고 했다.

김건희 리스크에 대한 여당 내부의 비판의 목소리가 향후 한 위원장과 용산 대통령실 및 친윤 핵심 그룹 간 갈등으로 번질 수 있다는 전망이 나온다. 실제 국민의힘 의원총회에서 윤재옥 원내대표가 “(디올백 의혹의) 본질은 정치 공작”이라며 당내 의원들의 방송 인터뷰 등 발언 주의를 당부하자 하 의원이 “수도권 선거를 망치려고 하는 것”이라며 즉각 반발했다고 한다. 

김 비대위원도 한 방송 인터뷰에서 ‘윤 원내대표가 정치공작이라고 정의를 했다’는 질문엔 “그게 우리 당내 대구ㆍ경북의 시각이다. 본인의 선수가 늘어나기만을 바라는 분들”이라며 “그분들은 과연 수도권 선거는 관심이 있는 건가. 수도권의 아우성을, 이렇게 쓰러져가는 전사자들의 목소리를 심각하게 들을 필요가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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