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오는 422대 총선을 앞두고 북한의 움직임이 심상치 않다. 정교하게 계산된 도발과 대남 심리전 탓에 한반도가 화약고로 변하고 있다. 정권교체 이후 보수 성향의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황이다. 특히 우발적 군사충돌의 안전판 역할을 했던 9.19 군사합의마저 무력화되면서 국지적 충돌 가능성마저 커졌다. 게다가 최근에는 남북 정상이 툭하면 거친 설전을 주고받으면서 일촉즉발의 전운마저 고조되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북한이 국제사회의 제재에도 아랑곳없이 막무가내 도발을 지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윤석열 정부는 전임 문재인 정부의 대북 저자세 유화기조와는 달리 북한의 도발 및 공세에 대해 원칙적이고 단호한대응 기조를 유지하고 있다. 고강도·저강도 방식을 모두 혼용한 북한의 전방위적인 도발에 이른바 코리아리스크마저 재부상하면서 내우외환의 위기에 처한 한국경제 역시 흔들리고 있다. 22대 총선 최대 변수 중 하나로 떠오른 신북풍론의 허실을 짚어봤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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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대 총선 앞두고 남북 강대강 대치 속 여야 북풍 변수에 촉각
- 우발적 무력충돌·제한적인 교전 시 총선에 미칠 파급효과 막대
87년 대선 ‘KAL기 폭파’·2018년 지선 북미회담북풍 영향력 막강

가장 큰 문제는 22대 총선에 미칠 후폭풍이다. 87년 민주화 체제 이후 역대 모든 선거에서는 북한의 개입이 일상화됐다. 이른바 북풍(北風)의 여파에 따라 선거판이 요동쳤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87년 대선 직전 대한항공 858기 폭파사건이다. 유권자들의 안정 희구 심리를 자극, 노태우 대통령이 승리했다. 20186월 지방선거 직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역사적인 북미정상회담의 여파도 컸다. 민주당은 싹쓸이를 기록하면 기록적인 압승을 거뒀다. 천안함 피격 및 연평도 포격도 대표적인 북풍 이슈였다. 물론 대선·총선·지방선거 등 전국단위 선거에서 나타났던 북풍의 영향력은 예전만 못하다. 다만 4월 총선에서는 안심하기 이른 상황이다. 여야 역시 신()북풍론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전혀 예상치 못한 북한별 변수가 총선 판도를 뒤흔들 수 있다. ‘보수 유리·진보 불리라는 공식이 깨진 적도 한두 번이 아니기 때문에 여야 유불리는 예측불허다.

말폭탄 남북정상국제사회 전면전 발발 가능성 우려

새해 벽두부터 남북관계는 최악의 상황이다.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전방위적인 대한민국 때리기에 나섰다. 사실상 남남갈등을 유도하면서 대한민국의 분열을 노린 협박 선언이다. 22대 총선을 석 달도 채 남겨두지 않은 예민한 시점이다. 북한의 벼랑끝 전술이 단순한 허세가 아니라 직접적인 도발로 이어질 것이라는 경고의 메시지가 나온다. 이른바 신()북풍론이 점화하는 모양새다.

김 위원장은 지난 15일 평양에서 열린 최고인민회의 시정연설에서 상식 이하의 말폭탄을 쏟아냈다. 요약하면 대한민국은 가장 적대적인 국가인 만큼 북한 헌법에 불변의 주적으로 명기하고 전쟁이 일어나는 경우 대한민국을 완전히 점령·평정·수복하고 공화국 영역에 편입시키는 문제를 헌법에 반영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지난해 1230일 노동당 전원회의에서 대한민국을 적대적 교전국으로 규정한 것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간 것이다.

윤 대통령도 원칙적인 맞대응에 나섰다. 윤 대통령은 16일 국무회의에서 북한 당국은 남북 관계를 동족 관계가 아닌 적대적 두 국가 관계로 규정했다북한 정권 스스로가 반민족적이고 반역사적인 집단이라는 사실을 자인한 것이라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앞서 북한의 서해 북방한계선(NLL) 인근 포병 사격에 대해 지금 대한민국 정부는 과거 어느 정부와도 다르다북한이 도발해 온다면 우리는 이를 몇 배로 응징할 것이다. 전쟁이냐 평화냐 협박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경고한 바 있다.

남북정상의 말폭탄 대치에 남남갈등도 심화되고 있다. 북한의 의도가 먹히고 있는 셈이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의 발언이 논란이다. 이 대표는 지난 19일 당 공식회의에서 윤 대통령의 대북 강경 기조에 북한에 본때를 보이겠다면서 평화의 안전핀을 뽑아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된다강대강 대치로는 평화와 번영을 이룰 수 없는 만큼 북한에 대한 적대적 강경 정책을 전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외교안보 현안은 초당적으로 대처해야 한다는 여야의 불문율에도 불구하고 남북관계 악화의 원인을 북한이 아닌 우리 정부에 돌리는 어불성설이다. 앞서 이 대표는 지난해 12월에도 일각에서는 정치적으로 위기에 처하고 선거 상황이 나빠지면 혹시 과거 북풍처럼 휴전선에 군사도발을 유도하거나 충돌을 방치하는 상황이 오지 않을까 걱정한다고 북풍 음모론을 꺼내들기도 했다.

해외에서도 우려의 시선이 커지고 있다. 지난 1994년 북핵 1차 위기 당시 북미 제네바 합의의 주역이었던 로버트 갈루치 조지타운대 명예교수는 “2024년 동북아시아에서 핵전쟁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을 최소한 염두에는 둬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는 미중이 대만 문제로 대치할 경우 북한이 중국을 지원하기 위해 동북아지역에 위치한 미국의 자산과 동맹에 핵 위협을 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국 일부 전문가들도 한반도 전쟁 발발 가능성을 경고했다. 미국 미들베리국제연구소 소속 로버트 칼린 연구원·지그프리드 해커 교수는 북한 매체에 나타난 전쟁 준비 메시지를 단순히 북한식 허풍의 일종으로 여기지 않는다김정은이 1950년 그의 할아버지처럼 전략적 결정을 내리고 전쟁을 일으키려 한다고 믿는다고 주장했다.

KAL폭파·천안함·북미정상회담 등 메가톤급 이슈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차 리투아니아를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북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과 관련해 현지에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2023.07.12. 뉴시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차 리투아니아를 방문 중인 윤석열 대통령이북한의 탄도미사일을 발사한 것과 관련해 현지에서 긴급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상임위원회를 주재하고 있다. 2023.07.12. 뉴시스

북한의 선거개입 시도는 한두 번이 아니었다. 실제 북풍 이슈는 한국 역대 선거에 막대한 영향을 미쳤다. 대선, 총선, 지방선거를 가리지 않는다. 분단국가라는 특수성이 선거에도 반영된 것이다. 각각의 사건의 파장과 영향력에 따라서는 보수·진보 진영이 반사이익을 누리는가 하면 때로는 역풍에 시달리기도 했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1987년 대선 직전 대한항공 KAL 858기 폭파사건 및 대선 전날 폭파범 김현희의 국내 압송이었다. 87년 대선은 6월 항쟁 이후 민주화 열기 확산으로 민주진영의 승리가 유력했지만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의 단일화 무산과 북풍 이슈로 노태우 민정당 대선후보의 승리로 이어졌다. 92년 대선에서도 안기부가 발표한 거물간첩 이선실 및 남조선노동당 사건의 여파로 민자당 후보였던 김영삼 전 대통령의 승리에 기여했다.

97년 대선 직전에는 이른바 총풍(銃風)’ 사건이라는 희대의 사건도 발생했다. 한나라당이 이회창 후보의 지지율을 높이기 위해 북한 당국에 무력시위를 해달라고 요청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대선 이후 실체적 진실이 밝혀지면서 선거 때마다 소문만 무성했던 북풍의 실체가 처음 드러났다.

이후 북풍의 영향력은 선거를 거치면서 약화돼 갔지만 또다시 북풍이 대한민국 선거를 뒤흔든 적도 있었다. 지난 20186월 지방선거 직전 역사적인 첫 북미정상회담이었다. 북미 정상의 일거수일투족은 국내는 물론 전세계에 라이브로 송출됐다. 진보진영의 대호재로 작용했다. 민주당은 당시 전국 17개 광역단체장 중 대구·경북·제주를 제외한 전국 14개 시도를 장악하며 싹쓸이 압승을 거뒀다.

이뿐만이 아니다. 북풍이 국내 선거에 영향을 미친 사례는 한둘이 아니다. 이명박정부 시절 천안함 피격 및 연평도 포격 도발 사건이 대표적이다. 20106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북한의 잇단 도발에 집권 여당이던 한나라당의 무난한 승리가 예상됐다. 결과는 예상밖이었다. 민주당이 전쟁 vs 평화구도로 반격에 나서면서 엇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표면적으로 호재였지만 결과적으로 악재로 작용한 적도 있었다. 2000년 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북한 국방위원장의 1차 남북정상회담과 2007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정일 전 국방위원장의 2차 남북정상회담이 주요 사례다. 1차 남북정상회담은 200016대 총선을 앞두고 발표됐지만 되레 역풍이 불었다. 2차 남북정상회담도 마찬가지였다. 200712월 대선을 앞두고 이명박 대세론에 무기력했던 대통합민주신당은 남북정상회담을 히든카드로 사용했지만 선거 판세를 되돌리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명박 전 대통령의 압도적인 승리를 막을 내렸을 뿐이다.

촉각 곤두세운 여야북풍에 보수진보 전망 엇갈려

이재명과 한동훈. 뉴시스
이재명과 한동훈. 뉴시스

이제 더 큰 문제는 총선 국면 북한의 직접적인 도발 가능성이다. 총선 국면에서 만일 군사충돌이나 교전 등의 북풍 이슈가 발생하면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는 블랙홀로 작용할 수밖에 없다. 물론 국내외 대다수 외교안보 분야 전문가들은 선을 긋고 있다. 북한의 의도는 북핵협상 및 북미대화의 주도권 확보와 더불어 경제난에 따른 주민 불만을 방지하기 위한 내부결속용이라는 것이다.

다만 김 위원장이 남북관계를 기존 동족이 아닌 적대적 교전국으로 규정한 것은 위험 요인이다. 대한민국을 통일의 대상이나 대화·협상의 파트너가 아닌 무력 적화통일의 대상으로 분명히 한 것이기 때문이다. 국가안보를 책임지는 신원식 국방부장관도 북한의 총선 개입을 우려했다. 신 장관은 지난 4일 영국 BBC코리아와의 인터뷰에서 북한이 오는 4월 우리의 총선에 개입하기 위해 대한민국을 겨냥해 지대공 미사일 발사 등의 직접적인 군사 행동에 나설 수 있다북한은 2010년 천안함 폭침 때처럼 한국을 겨냥한 국지적 도발을 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언급한 바 있다.

여야 정치권이 북풍에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이유다. 결론은 누구에게 유리할 것인가라는 점이다. 과거와 마찬가지로 22대 총선 국면에서 남북한간 우발적인 무력충돌이나 제한적 교전 이 벌어진다면 후폭풍은 예측불허다. 이에 대해서는 여야의 전략가들조차 말을 아끼는 상황이다. 정치9단으로 불리는 박지원 전 국장원장도 여야의 유불리를 계산할 수 없다고 못박았다. 박 전 원장은 선거 전 남북관계가 터진다. 김정은이 남쪽을 향해서 뭘 쏴버릴지 모른다그러면 그것이 신북풍이 되는데 그랬을 때 민주당이 유리할지 국민의힘이 유리할지 모른다고 지적했다. 만일 북한의 위협이 허풍이 아니라 실질적인 군사도발로 이어진다면 평화가 중요하다는 여론이 확산되면서 민주당이 유리할 수 있다는 해석도 나온다. 반면 북한의 총선 개입성 군사도발에 대한 부정적 여론이 확산될 경우 민주당이 타격을 입고 오히려 국민의힘이 반사이익을 누릴 수도 있다는 분석도 있다. 총선 정국에서 북풍은 기정사실인데 여야의 득실 계산은 예측불허라는 것이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현 남북관계는 냉전시절 전면전이 우려스러운 수준으로 되돌아갔다. 22대 총선에서 북풍의 위험성은 어느 때보다 커졌다면서 북한은 대선이나 총선 등 우리나라의 주요 정치일정이 있을 때마다 남남갈등 유불이나 남북관계 주도권 장악을 위해 어떤 식으로든 개입해왔다. 과거와 달리 북풍의 선거 영향력은 제한적이라지만 여전히 안심할 수 없는 수준이라고 지적했다. 아울러 구체적인 북풍의 성격과 영향력에 따라 여야 주도의 총선판도 요동칠 수밖에 없을 것이라면서 여야 어느 쪽이든 불안정한 남북관계를 국내 정치나 총선판에 당리당략을 앞세워 이용한다는 여론이 형성될 경우 중도층을 중심으로 유권자의 냉정한 심판이 내려질 수도 있다고 언급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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