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韓 갈등’ 임시 봉합...‘김건희‧김경율‧공천’ 3대 뇌관 여전

윤석열 대통령(좌)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우)가 충남 서천시장 화재현장을 찾은 자리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뉴시스]
윤석열 대통령(좌)과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우)가 충남 서천시장 화재현장을 찾은 자리에서 악수를 하고 있다. [뉴시스]

[일요서울 l 정두현 기자] 여권 권력의 정점인 윤석열 대통령과 미래권력으로 손꼽히는 한동훈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 사이에 이상기류가 감지됐다. 검찰 시절부터 호흡을 나눠 온 두 사람이 김건희 여사의 명품백 수수 의혹에 대한 대응 방향성에서 크게 엇갈리면서다. 한동훈 비대위는 외연을 넓히기 위해 정국의 핵으로 떠오른 김 여사 의혹에 대해 대국민 해명 및 사과가 필요하다는 취지를 피력했고, 용산 대통령실은 고위 참모진을 통해 당 지도부에 노골적으로 사퇴를 요구하는 등 불만을 전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 와중에 국민의힘 주류인 영남권 친윤 중진들은 윤 대통령을 엄호하며 한 위원장을 향해 동시견제를 폈다. 이에 당정갈등이 삽시간에 ‘친윤 대 친한’ 구도로 전환되며 여권 내 긴장감도 솟구쳤다. 그러나 총선을 70여 일 남겨둔 시점에 ‘적전분열은 공멸’이라는 판단 아래 윤 대통령은 지난 24일 충남 서천시장 화재현장을 찾아 한 위원장의 손을 움켜쥐었다. 한 위원장도 그 후 민감한 사안에 말을 아끼며 로우키(low-key)를 이어가는 모습이다. 다만 이른바 ‘윤-한 갈등’ 불씨가 전소되기까지는 극복해야 할 허들이 적지 않다는 분석이다.

여권 현재권력과 미래권력 사이에 빚어졌던 충돌 양상이 지난 24일 서천시장 회동으로 임시 봉합된 모양새다. 이대로 당정 갈등이 지속되면 총선 필패로 이어질 수 있다는 인식이 작용한 탓이다. 아울러 한 위원장에 윤 대통령의 불쾌한 심기를 전한 이관섭 대통령 비서실장과 ‘친윤(친윤석열) 핵심’ 이철규 인재영입위원장 등이 확전을 막기 위해 적극 중재에 나선 것으로 알려졌다.

이로써 여권은 일단 급한 불은 끈 모습이다. 여당 고위 당직자는 본지와의 취재에서 윤-한 갈등에 대해 “정리됐다고 보는 게 맞다. 이번 일을 계기로 당정관계는 더욱 견고한 밴드(유대감)를 가져가게 될 것”이라며 “(김 여사 문제로) 잠시 견해 차이가 있었을 뿐이다. 두 분은 뗄 수 없는 관계”라고 갈등이 해소됐음을 강조했다. 

정영환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장도 두 사람의 충남 회동 당일 “그렇게 될 줄은 알았는데, 공관위원장으로서 두 분에게 너무 감사하다. 전체 큰 구도에 있어서 굉장히 긍정적이라고 본다”고 안도감을 내비쳤다. 

김건희 여사 [뉴시스]
김건희 여사 [뉴시스]

당정갈등, 봉합은 됐는데...여전히 느슨한 실밥

다만 여권에서는 이들 사이에 풀어내야 할 잔존과제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김 여사를 둘러싼 명품백 수수 의혹을 놓고 당정의 스탠스가 온전히 합치되지 않았다는 점 ▲김 여사 의혹을 사과해야 한다고 주장한 김경율 비상대책위원의 거취에 대한 논란이 지속되고 있다는 점 ▲한동훈 비대위의 견고한 ‘시스템 공천’ 기조에 용산 참모진과 친윤 중진 등 여권 주류가 대거 배제되면서 당정간 충돌이 재점화될 수 있다는 점 ▲미래권력인 한 위원장이 여권에서 독자노선을 구축하며 ‘탈윤’(脫尹)을 시도하고 있는 게 아니냐는 관측에 윤 대통령이 경계벽을 세울 수 있다는 점 등이 4월 총선 전 중대 국면에서 언제든 뇌관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는 모두 윤-한 갈등의 본질로 지목되는 요소들이다. 

이 밖에도 ‘윤심(尹心) 경호’에 치중한 나머지 중간에서 초유의 사태를 사실상 방치한 용산 고위 참모진의 세련되지 못한 정무감각과, 이번 사태를 계기로 표출된 한 위원장을 향한 당내 주류의 반감도 화약고라는 분석이다.

한 위원장은 윤 대통령과 면담을 가진 이후에도 ‘김건희 리스크’에 대해 “내 생각은 이미 충분히 말했다”며 기존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다만 추가 언급을 자제하며 대통령실과의 마찰을 최소화하려는 모습이다. 그간 민심 눈높이를 강조해 왔던 한 위원장으로선 김 여사에 대한 입장을 선회할 경우 졸지에 ‘용산 2중대’로 전락하며 비대위의 존재가치가 소실될 수 있음을 인지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또 이는 ‘민의’를 강조했던 ‘정치인 한동훈’의 정치생명과도 직결되는 만큼, 김건희 리스크와 공천 등에서 기존 스탠스를 유지할 것이란 관측에 힘이 실린다.

그 연장 선상으로 당 안팎에서 사천(私薦) 논란이 일었던 김경율 비대위원에 대한 마포을 전략공천 노선도 변동이 없을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김 비대위원은 1월 말 현재 비대위 사퇴 및 총선 불출마 생각이 없다고 공공연히 밝히고 있다. 이는 곧 한 위원장의 의지로도 해석되고 있다.   

결국 윤 대통령의 ‘디올(Dior)백 대국민 입장표명’ 여부가 당정갈등의 본질적 해소 실마리가 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에 따르면 26일 현재까지 대통령실은 명품백 담화 여부를 고심 중인 것으로 전해진다. 만약 대통령실이 국민 눈높이에 충실한 해명으로 결자해지에 나설 경우 한동훈 비대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가 되며 여권 단일대오가 굳어지는 반면, ‘몰카 공작’ 등을 주장하며 정면대응을 포기한다면 당정 분열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국민의힘 수도권 의원은 “지금 상태를 봉합됐다고 보기엔 여러모로 불안한 요소가 많다”라며 “이제는 용산이 결자해지해야 할 시점으로, 공은 대통령께 넘어간 상황이다. 이런 문제일수록 (윤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국민을 납득시켜야 당 지도부도 힘을 받고 총선도 이기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시스]
정청래 더불어민주당 최고위원이 12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시스]

尹-韓 갈등, 사전 논의된 합작품?

한편 이번 당정 초유의 갈등 사태를 바라보는 야권의 의문섞인 시선도 분출한다.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이번 갈등 사태를 의도했다는 것이다. ‘21년 지기’인 윤 대통령과 한 위원장이 돌연 갈등을 빚은 것도, 불과 일주일여 만에 상황이 일사불란하게 수습된 것도, 사태 후 한 위원장이 건재한 것도 모두 석연찮다는 게 ‘약속대련’을 주장하는 야권 논리다.    

정청래 민주당 최고위원은 지난 22일 당 최고위회의에서 “윤석열 부부와 한동훈 국민의힘의 짜고 치는 고스톱, 약속대련 같은 국민 속이기 전략일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윤석열 부부의 얼굴을 지우기하고 한동훈 얼굴로 선거를 치르겠다는 암묵적 합의가 있었다면 다소 무리한 감이 없지 않으나 제2의 6.29 같은 ‘한동훈 돋보이기’ 작전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 

같은 당 고민정 최고도 “국민의힘이 이번 총선을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할 일은 대통령 리스크와 당을 분리하는 것”이라며 “수준 낮은 약속대련이 맞는 것인지, 정말 당무개입까지 하면서 대통령과 불화설이 맞는 것인지는 결국은 한 위원장의 행동이 무엇으로 보여지는냐에 따라 달라진다고 생각한다”고 맞장구를 쳤다. 

이에 여권은 야당이 이번 사태를 음모론에 입각해 총선 프레임화하고 있다며 일축하고 나섰다. 안철수 국민의힘 의원은 “야당의 저는 그건 너무 정치를 공학적으로 보는 것 아닌가”라며 “음모론에 입각해서 주장하는 것 아닌가 생각한다”고 민주당의 이같은 주장에 일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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