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 파는 곳인가요”… 외국어 앞세운 식당 “이질감 든다”

외국어 간판. [이창환 기자]
외국어 간판. [이창환 기자]

[일요서울 | 이창환 기자] 옥외광고물 등의 관리와 옥외광고산업 진흥에 관한 법률 시행령(약칭: 옥외광고물법 시행령) 제3장 12조 2항에 따르면 ‘광고물의 문자는 원칙적으로 한글맞춤법, 국어의 로마자표기법 및 외래어표기법 등에 맞추어 한글로 표시해하여야 하며, 외국문자로 표시할 경우에는 특별한 사유가 없으면 한글과 병기(倂記)하여야 한다’고 적고 있다. 

일본어, 중국어 등 외국어 표기 오용도 발견돼
법률에 따른 한국어 병기 사용 위반 사례까지

우리가 길을 가다 만나는 간판은 특별한 경우가 없는 한 한글로 표기되거나, 외국어로 표기됐더라도 한글이 함께 기재돼 있어야 한다. 그럼에도 실제로는 한글 없이 외국어만 표기된 경우를 찾는 것이 어렵지 않다. 또 간판의 일부 공간에 해당 상점이나 상가 업종은 한국어로 표기하면서도 명칭은 외국어로만 보여주고 있어, 옥외광고물법을 위반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특히 대학가 인근의 식당을 포함한 상점들은 자신들만의 특색을 드러내기 위해 외국어를 활용하거나, 외국어만으로 표기하는 경우도 종종 눈에 띈다. 물론 이런 일은 어제오늘만의 일은 아니다. 식당들은 손님을 끌기 위해 최신 트렌드를 따를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면 우리말과는 구분되는 외국어나 외국어로부터 유래된 유행어 등을 간판에 쓰기도 한다. 

간판에 등장한 ต้มยำกุ้ง 과 麻辣烫

직접 읽고 확인할 수 없는 외국어라도, 글씨를 마치 이미지처럼 인식해 손님을 끄는 용도로 활용한다는 의미다. 예를 들면 태국어 ‘ต้มยำกุ้ง(톰양꿍)’을 간판에서 그대로 사용하고, 메뉴판이나 입간판 등을 통해 태국요리 전문점인 것을 확인토록 하는 경우나, 중국어(간체) ‘麻辣烫(마라탕)’을 간판에서 사용하고 다른 요소들을 통해 마라탕을 판매하는 식당으로 인식토록 하는 경우 등을 볼 수 있다. 

하지만 이는 대학가에서만 보이는 것이 아니라, 상권이 집중된 다양한 곳에서 나타난다. 서울만 보더라도 중화권 음식점들이 즐비한 구로구와 영등포구뿐 아니라, 대학가로부터 상권이 이어지는 마포구 홍대 인근과 신촌 등에서도 발견할 수 있고 외국인 관광객이 찾는 주요 상권인 중구 명동거리와 동대문구에서도 쉽게 볼 수 있었다. 

동대문구에서는 러시아어로 알려진 키릴문자로 된 간판을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해당 장소는 러시아 문화권에 포함된 우즈베키스탄, 우크라이나 등 구(舊)소련권 국가들을 비롯해 카자흐스탄과 몽골 등의 중앙아시아 거리로도 알려져 있는데 이들이 러시아어를 제외한 언어는 달라도 공통의 문자를 사용하기에 유사해 보이는 간판이 즐비했다. 

물론 한국어가 병기된 간판도 있었지만 키릴문자만 새겨진 간판도 눈에 띄었다. 주요 고객이 한국에 거주하는 외국인이거나 한국을 방문하는 외국인인 경우로 보인다. 하지만 취재진이 해당 지역을 찾았을 때는 식사하는 손님 가운데 내국인도 있고, 외국인도 식사를 하고 있는 식당임에도 외국어 간판으로만 옥외게시물을 보여주고 있는 곳도 있었다. 

간판의 글씨만으로는 식당이 어떤 곳인지 추정할 수 없었고, 식당의 메뉴판이나 유리문에 그려져 있는 몇몇 음식이나 요리에 대한 설명을 봐야만 이해할 수 있는 곳도 있었다. 또 일부 식당이나 상가들은 한국어로 표기됐다 하더라도 외국어나 외래어 표기법이 정상적이지 않은 곳도 있었다. 

2020년 한국일본근대학회가 발간한 연구논문 ‘언어경관에서 관찰되는 일본어 사용실태 조사 -서울 명동지역의 일본어사용 간판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언어 경관이 정확한 내용을 전달하지 못할 때 이를 본 사람에게 잘못된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다. 특히 간판의 경우 짧은 문구 속에 여러 정보를 담아내는데, 오용의 사례(일본어 관련)도 14.6%나 발견됐다. 

‘갈비(カルビ)’ 뜻이 사라진 일본어 표기 ‘カルヒ’

예를 들면, 갈비 전문점의 한 사례를 볼 때 발음나는 대로 ‘カルヒ(카르히)’라고 썼으나 사실은 ‘カルビ(요리 ’갈비‘를 의미하는 단어)’라고 써야 맞다. 오히려 한국어로 제대로 작성하고 외국인들이 우리말의 뜻을 찾아보는 것이 훨씬 더 정확한 정보전달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의미다. 

문화체육관광부는 2020년 7월 ‘공공용어의 외국어 번역 및 초기 지침’을 마련해 문체부 훈령으로 정하고 관광산업 등의 현장에서 이를 적용토록 권고한 바 있다. 당시 문체부는 국어의 공공 용어에 대한 영어, 중국어, 일본어 번역 및 표기의 기본 원칙을 제시함으로써 국가 기관과 지방 자치 단체의 공공 용어 번역의 효율성을 꾀하고 표준화된 번역 용어가 사용되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라고 밝힌 바 있다. 

지난해 6월 한국문화융합합회가 발표한 ‘국어 문화 정책적 관점에서의 언어 경관 실태 연구’에 따르면 제주도 서귀포시는 해당 훈령에 따라 공공시설 1650곳의 외국어 표기 및 번역 실태를 조사하고 간판을 정비한 바 있다. 

또 경복궁역 인근에 위치한 ‘한글가온길’은 2012년 경복궁과 당시 청와대를 찾는 관광객들의 거점 지역을 단장하기 위해 추진했던 사업으로 경복궁 인접 지역의 80% 이상 간판이 한글로 디자인된 것으로 확인됐다. 

이웃하고 있는 일본에서는 근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몇몇 주요 도시들이 자신들만의 문화를 잘 보존하는 동시에 알리기 위해 엄격하게 간판 등의 옥외게시물을 관리하고 있는 사례도 보인다. 더욱 가까이 서울에서도 인사동에 위치한 글로벌 커피전문 체인 ‘스타벅스’ 역시 한글로 정확하게 표기하고 있어 좋은 예가 된다.  

이와 관련 홍대입구역 인근 식당을 찾은 A씨(남, 28)는 취재진에게 “다양한 문화를 즐길 수 있는 점은 좋지만 무방비한 외국어 혼용은 눈살이 찌푸려진다”며 “무분별한 간판보다는 어느 정도 통일성 있는 거리 조성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외국어 간판. [이창환 기자]
외국어 간판. [이창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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