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 부여읍 외리 절터에서 1937년에 뛰어난 작품이 발굴되었다. 벽전(壁塼)의 크기는 가로와 세로 각각 29cm, 두께 4cm로 정방형이며, 측면의 연결구 홈으로 미루어 벽면에 연결하여 장엄했을 것이다. 130여 매가 발견되었다. 국립부여박물관 소장 8점이 보물 343호로 지정되어 있다.

- 고구려 무덤벽화 한국 백제는 용을 어떻게 표현했나?
-우주의 순환하는 기운, 즉 영기문(靈氣文)’이 실상(實相)
용은 모든 영수(靈獸) 대표, 봉황은 모든 영조(靈鳥) 대표

도1-1. 용 문양 벽전. 사진=강우방 원장
도1-1. 용 문양 벽전. 사진=강우방 원장
도1-2. 채색분석한 것. 사진=강우방 원장
도1-2. 채색분석한 것. 사진=강우방 원장

발굴 당시 상황을 보면, 바닥에 깐 것은 아니고, 중요한 영역의 벽을 장엄했던 것이라고 짐작하지만 정확한 원래 상황은 알 수 없다. 모두 108점의 벽전이 있는데 같은 문양의 종류가 8가지라는 말이다. 주제는 용, 봉황, 곤륜산, 회전하는 제1영기싹, 연꽃 모양 등이다.

, ‘우주의 끊임없이 반복 순환하는 기운’ 

용은 세 가지 다른 조형이 있는데 우선 회전하는 모양 몇 가지를 다루어 보겠다. 이 작품들은 용의 본질을 가장 잘 나타낸 것이다. 용은 우주의 기운을 압축하여 놓은 것이라고 이미 설명했으나, 더 정확히 말하면, ‘우주의 순환하는 기운이라고 말해야 한다. 그런데 우주의 순환하는 기운이란 관념적이어서 이해하기 어렵다. 물리적으로 쉽게 설명해 보면, 땅의 물이나 습기가 운무가 되어 하늘에 퍼지면 천공의 구름이 되고, 구름은 비가 되어 땅에 떨어지고, 땅에 떨어진 비는 다시 구름이 되어 비가 되는 것과 같이, 끊임없이 반복하여 순환(循環)이란 개념이 생겨난다.

그러므로 회전(回轉)이라는 물리적인 밀을 쓰지 않는 것이 좋다. 그런 우주에 충만한 기운의 순환을 조형적으로 나타낸 것이 지금 소개하려는 백제 벽전의 용 표현이다.(1-1) 벽전은 회색 한 가지여서 파악하기 어려우나 채색하며 분석해보니, 우주의 순환하는 상태가 뚜렷하지 않은가.(1-2) 그 하나를 넷으로 연결하여 보았다.(1-3) 더 넓게 여덟 개를 연이어 보니 한없는 확장이 가능하다.(1-4) 그렇게 연이어서 배치하여 벽을 장엄했으리라. 지금 이 글을 쓰면서 이런 용 표현이야말로 용 모양은 허상(虛像)이고, ‘우주의 순환하는 기운, 즉 영기문(靈氣文)’이 실상(實相)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용은 존재하지 않지만, <조형언어로 이루어진 조형예술품>에서는 실재한다.”라고 말할 수 있다. 내가 찾은 <조형언어, 4가지 형태소인 보주, 1영기싹, 2영기싹, 3영기싹 등>에서는 비로소 용의 실상을 읽어낼 수 있다. 더 나아가 세계 최고의 신이라고 읽어낼 수 있다. 동양 최고의 신이 아니라 세계 최고의 신이다.

도1-3. 벽전을 넷 이은 것. 사진=강우방 원장
도1-3. 벽전을 넷 이은 것. 사진=강우방 원장
도1-4. 12개를 이은 것. 사진=강우방 원장
도1-4. 12개를 이은 것. 사진=강우방 원장

서양 사람들은 서양이 세계의 중심이라 믿고 세계라든가 인류라는 말을 마음대로 쓰고 있지만, 이제 동양 사람들도 세계라는 말을 떳떳하게 쓰기로 한다. 조형언어를 한국인인 내가 처음으로 세계 최초로 찾아내어 세계미술을 풀어내고 있지 않은가.

이제 채색분석한 용의 형태를 살펴보자. 용의 얼굴을 매우 크게 나타냈다. 두 뿔은 연이은 제1영기싹으로 이루어졌고, 눈은 보주이고, 치아도 보주인데, 용의 전체 모습을 강조하기 위하여 세부를 다른 여러 가지 색으로 칠하지 않았다. 네 다리가 있고 발톱은 제1영기싹으로 나타냈다. 꼬리는 길게 돌아 용의 머리에 이르렀는데, 마주 오는 길고 강력한 빨간 영기문과 마주하고 있다. 용의 주변에는 크고 작은 영기문이 있으며 빨간색으로 칠했다. 바로 여기저기 있는 그런 빨간 영기문에서 푸른 용이 화생하기 때문이다.

용주변 빨간 영기문은 푸른 용이 화생 의미

그리고 입 바로 앞으로 입에서 발산하는 영기문이 있고, 목덜미 부근에서 몇 가닥 빨간 영기문이 발산하고 있다. 이 제한된 둥근 원 안에 용 모습을 기막히게 나타냈다. 백제인의 뛰어난 솜씨가 놀랍기만 하다. 그리고 두 줄기 둥근 선 사이에 빨간색으로 칠한 연이은 둥근 보주, 즉 연주문(連珠文)이 있는데, 이 모든 것도 용의 입에서 발산된 보주를 가리킨다.

역사적으로 세계의 누구도 들어가 보지 못한 조형언어의 영기문의 세계를 문자언어로 설명해 보았다. 이렇게 항상 조형언어를 문자언어로 바꾸어 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은 나의 운명이다. 매번 이렇게 쓸 때마다 나는 시지프가 된다. 시지프는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코린토스를 건설한 왕으로 신들을 기만한 죄로 죽어서 바위를 산꼭대기로 굴러서 올리는 형벌을 받았다. 산정(山頂)으로 올린 바위가 다시 굴러서 떨어지면 다시 올려야만 했다. 이 영원히 반복하는 형벌은 나에게로 이어진 듯하다.

조형언어로 읽은 것을 문자언어로 번역할 때마다 항상 같은 고통을 반복하여 느낀다. 매번 사투(死鬪)였다. 어떤 독자는 내 글을 처음 읽을지 모르기 때문이다. 2000년 이후 대중을 상대로 신문에 끊임없이 글을 써오면서 항상 현실의 엄청난 오류를 고쳐가고 있는데, 어쩌면 반항일지도 모른다. 그래도 항상 절망하지 않고 끊임없이 도전해 오면서 사상가(思想家)로 변모해왔다.

젊은 시절 알베르 까뮈의 이방인을 읽지 않은 대학생은 없을 것이다. 그는 에세이집 시지프 신화에서 시지프의 반복되는 형벌과 같은 삶을 현대인의 부조리한 삶에 비유한다. 부조리하고 무의미한 삶에 그는 반항하며, 삶의 의미를 창조해야 한다고 말한다. 나 자신을 시지프에 비유하는 까닭은 나의 작업이 시지프와 같은 고통스러운 길을 반복하여 걷고 있기 때문이다. 인류 역사상 아무도 몰랐던 조형언어의 세계를 알아내어 인간의 사유 영역을 무한히 넓히고 있으나,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하고 있어서 항상 처음부터 시작해 가야 하는 힘든 작업이다. 그렇게 반복해 가는 동안 그 무거운 바위가 조금씩 가벼워지고 있음은 틀림없다.

용의 세계가 바로 미지의 세계 중심에 자리

도2-1. 봉황문 벽전. 사진=강우방 원장
도2-1. 봉황문 벽전. 사진=강우방 원장
도2-2. 채색분석한 것. 사진=강우방 원장
도2-2. 채색분석한 것. 사진=강우방 원장
도2-3. 네개를 이은 것. 사진=강우방 원장
도2-3. 네개를 이은 것. 사진=강우방 원장
도 2-4. 여덟 개를 이은 것. 사진=강우방 원장
도 2-4. 여덟 개를 이은 것. 사진=강우방 원장

내가 작업하는 목적은 사양의 르네상스 이전의 조형예술품을 읽어내어 전 세계의 르네상스를 일으키자는 것으로 실제로 올해에 세계미술사가 출간된다. 전 세계 사람들은 빙산의 일각에서 보든 행위가 일어나고 있지만, 지금 우리는 바닷물 밑의 무한한 크기의 전인미답의 산세계를 탐험하며 매일매일 조금씩 몰랐던 세계를 넓혀가고 있는 과정에 있다. 지금 다루고 있는 용()의 세계가 바로 미지의 세계 중심에 자리 잡고 있다. 학문의 세분화로 전공이라는 감옥에 갇혀 있는 모든 사람을 해방하려고 한다. 시지프는 영원히 반복하여 형벌을 받으며 절망하지만, 나의 작업은 인간을 절망에서 희망으로 인도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추상적인 작업이 아니고, 인류가 창조한 일체 조형예술을 구체적으로 해독하고 해석하며 모든 분야에 영향을 주고 있다.

백제 벽전의 순환하는 봉황은, 용과 근본적으로 같은 존재이다.(2-1, 2-2, 2-3, 1-4) 모두 입에서 보주를 내고 있기 때문이다. 다만 용은 동물 모양을 대표하고, 봉황은 모든 새 모양을 대표하고 있을 뿐이라고 말하면 쉽겠지만, 용은 모든 영수(靈獸)를 대표하고, 봉황은 모든 영조(靈鳥)를 대표한다고 말하려면, 시지프처럼, 무거운 바위를 밀어 오르며 산정으로 올라가야 한다.

도 3-1. 순환하는 제1영기싹 변전. 사진=강우방 원장
도 3-1. 순환하는 제1영기싹 변전. 사진=강우방 원장
도 3-2. 채색분석 한 것. 사진=강우방 원장
도 3-2. 채색분석 한 것. 사진=강우방 원장
도3-3. 네개를 이은 것. 사진=강우방 원장
도3-3. 네개를 이은 것. 사진=강우방 원장

용과 봉황은 비교적 구상적이지만, 백제 벽전 가운데 중심에 연꽃 모양을 두고 추상적인 제1영기싹들이 순환하고 있는 작품이 있다.(3-1, 3-2, 3-3) 용의 순환과 봉황의 순환을 단순화하면 제1영기싹으로 귀결되는 놀라운 조형이다. , 이제는 절망하는 시지프가 아니고 환희작약(歡喜雀躍)하는 시지포스다. 부조리에 반항하지 않고 부조리를 해소한다. 무거운 바위가 점점 작아지며 가벼워진다.

강우방
·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원장
·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 미국 하버드대 미술사학과 박사과정 수료
· 국립경주박물관장
· 이화여대 초빙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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