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림중앙시장 일대는 대림동 차이나타운으로 불린다. 한국 내 중국인, 특히 중국 동포의 중심지이다. ‘조선족의 문화 수도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설 연휴 끄트머리인 12일 대림중앙시장을 찾았다. 그들의 설날이 궁금했다. 대림중앙시장에서 중국의 춘절 분위기를 엿볼 수 있을까.

중국춘절을 상징하는 부적.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중국춘절을 상징하는 부적.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중국 춘절을 상징하는 홍등.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중국 춘절을 상징하는 홍등.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조선족의 문화 수도이자 중국 동포의 중심지
- 국내 차이나타운중 중국 식자재 구매 가능한 유일한 곳

지하철 1호선 대림역 12번 출구를 나왔다. 핫플레이스였다. 출구 주변은 만남의 장소 같다. 누군가를 기다리는 사람이 곳곳에 모여 있다. 잔칫집처럼 떠들썩하다. 대림중앙시장 골목으로 접어들었다. 우리가 아는 시장이 아니다. ‘설 대목에도 썰렁했던 우리의 전통 재래시장과는 다르다. 완전히 다른 세상이다. 시장 골목은 발 디딜 틈 없이 인파가 넘친다. 서울 명동보다 더 활기찼다. 유창한 중국어 사이에 어눌한 한국말이 섞여 있다. 그들의 차림은 명동 패션과는 거리가 있다. 깨끗하지만 멋진 차림은 아니다. 하지만 얼굴은 모두 밝고 환했다. 설 명절을 맞아 타향살이의 외로움과 고향의 향수를 달랠 수 있기 때문일까.

골목골목 발 디딜 틈 없는 인파...활기 넘쳐

대림시장 풍경.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대림시장 풍경.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그들은 누구인가. 조선족이다. 조선족은 중국 내 소수민족 중 하나다. 한국어를 쓰는 중국인이라는 뜻이다. 중국인이 부르는 호칭이다. 한국에 정착한 조선족이라고 불러야 할까. 아니면 한민족의 혈통을 잇는 중국 동포로 불러야 할까. 대림중앙시장의 설날 풍경을 통해 그들이 누구인지를 확인해본다.

시장 골목을 따라 걸었다. 쉼 없이 오가는 인파는 여느 재래시장과 다르지 않다. 풍기는 분위기는 전혀 다르다. 한자로 쓴 간판이 골목을 덮고 있다. 마치 붉은 물고기 비늘처럼 광택이 난다. 먹거리도 색다르다. 짙은 향신료 냄새가 코를 찌른다. 이국적이다. 한국 속의 중국이다. 전철 타고 온 중국 같다.

탐방객을 처음으로 맞은 건 줄지은 좌판의 길거리 음식이었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건 조선족의 만능 반찬인 수공 건두부(干豆腐)였다. 이어 붙인 간이탁자 위에 건두부가 얇은 차렵이불처럼 켜켜이 쌓여 있다. 간이테이블 단 두 칸의 상점이지만 여기에도 간판이 있다. 테이블 앞에 매단 간판에는 노금 수공 건두부(老金 手工 干豆腐)’라고 적혀있다. 헛웃음이 난다.

필자는 상점 주인에게 요리법을 물었다. 중국어로 대답이 돌아왔다. 옆에 있던 일행이 서툰 한국어로 설명했다. 건두부를 썰면 두부 면이 된다. 이것을 무쳐 먹거나 삶아 국수로 먹기도 한단다. 또 다른 좌판 주인은 막대기 모양의 사탕수수를 이로 뜯고 있다. 또 한 남성은 커다란 항아리 하나를 앞에 두고 성조가 뚜렷한 중국말로 호객행위를 한다. 알고 보니 항아리는 고구마 굽는 화덕이었다. 이런 좌판은 골목 끝까지 이어졌다. ‘좌판이라고 표현했지만 대림중앙시장의 좌판에는 쪼그려 앉은 이는 없다. 모든 다 선 채 장사를 한다. 중국의 입식 문화를 시장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중국식 좌판 끝없이 이어져...입식 문화

대림시장 좌판.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대림시장 좌판.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좌판에서 파는 길거리음식은 이만이 아니다. 화쥐안(花捲·꽃빵), 후삥(胡餠·호떡), 지엔삥(煎餠·전병), 만토우(饅頭·진빵) 등 수없이 많다. 특히 대림중앙시장의 명물인 유탸오(油條·꽈배기)가 자주 눈에 띈다. 시식 삼아 유탸오를 샀다. 세 개에 2,000원이다. 고작 하나 먹었을 뿐인데 배가 불러온다. 유탸오는 우리식 표현으로 하자면 왕꽈배기. 그만큼 크다. 이들 음식은 조선족과 함께 들어온 중국식 음식이다. 이들은 간식용 길거리 음식이 아니다. 조선족의 아침과 점심 식사 대용 음식이다.

좌판에는 이것만 있는 게 아니다. 두리안, 사탕수수, 용과 등 우리 시장에서 볼 수 없는 과일이 많다. 고수, 쎄일 등 낯선 채소는 물론 고추, 더덕, 오이와 같은 흔한 채소 앞에는 중국이라고 접두어가 붙어 있다. 중국 채소와 우리 채소가 뭐가 다른지 둘러봤다. 시장 구경 재미가 짭짤하다. 서울에는 연희동, 구의동에 차이나타운이 있다. 인천, 부산에도 있다.

하지만 중국 식자재 구매가 가능한 곳은 대림중앙시장 뿐이다. 식자재를 통해 중국 식성을 알 수 있다. 우리랑 가장 큰 차이를 보이는 것은 술안주인 듯하다. 돼지코, 돼지 귀, 오리목, 오리 머리 등이 안주용 요리 재료로 팔리고 있다. 또 산 개구리도 어항에 담겨 있다. 한 고깃집 주인은 우리 집에서는 부위별로 20여 가지를 판다면서 음식 종류로 따지면 40여 가지는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와 나눈 대화에서 오리목, 오리 머리, 오리 발 등 오리 부위 요리를 핫오리라고 부르는 것을 알았다.

시장 골목길을 따라 걸으면서 간판을 유심히 봤다. 식당과 주점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어림잡아도 200개는 훨씬 넘을 듯하다. 그런데 흥미로운 게 있다. 중국 지명으로 된 간판이 수두룩했다. ‘옌볜 냉면’, ‘상하이 노래방’, ‘하얼빈 반점’, ‘무단지앙(牧丹江) 양고기꼬치’, ‘쓰촨샤오츄(四川小廚)’과 같은 것이다. 이는 지명을 통한 인적 네트워크가 작동되고 있다는 증거다. 이주민이 한국에 살면서 향수를 자극하는 네이밍인 셈이다. 그렇다. 낯선 타지에서의 최고 인연은 지연이다.

식당과 주점 압도적 간판은 중국명 수두룩

대림역 주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대림역 주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그만이 아니다. 향수를 자극하는 음식도 적지 않다. ‘옌볜 순대’ ‘상하이 소시지와 같이 지명이 붙은 음식도 많다. 음식은 위안을 준다. 그리움을 달래는 음식이다. 음식에 대한 향수는 타향에서 더 짙어진다. 특히 이곳에 옌볜 출신의 조선족이 많다는 것도 이런 음식을 통해 알 수 있다.

특히 옌볜 찰떡옌볜 냉면’, ‘옌볜 순대와 같은 지명이 붙은 음식이 많았다. ‘옌볜 순대집 앞에 섰다. 옌볜 조선족의 말투에서 경상도 사투리 억양이 들린다. 경북 영천 출신인 필자에게는 귀에 익은 말투다. 아마도 이 점포 주인은 일제 강점기에 간도로 이주한 우리 조상의 후손일 것이다. 이 집은 중국식과 한국식 순대를 만들고 있다.

옌볜 순대는 몹시 굵은 게 특징이다. 돼지막창을 이용해서 만들기 때문이란다. 이 가게 주인은 시래기와 찹쌀로 만드는 옌볜 순대는 조선식 순대라면서 옌볜에서도 고달픔을 달래던 음식이라고 말했다. ‘옌볜 찰떡도 마찬가지란다. “찰떡은 고급음식이라면서 손님 밥상이나 명절·생일상에 오른다라고 말했다. 우리와 별 차이가 없다는 얘기다.

식당과 주점 사이에 청과물과 옷 가게와 식료품점, 미용실, 핸드폰 가게, 노래방 등 다양한 점포가 점박이처럼 끼어 있다. 그중에서도 환전소, 직업소개소, 국제택배, 여행사, 공인중개사, 법률사무소 등이 자주 눈에 띈다. 모두가 한국과 중국(가족) 생활을 잇는 연결고리 역할을 하는 점포다. 이곳의 여행사와 환전소는 우리가 아는 여행사나 환전소가 아니다. 여행 상품을 팔거나 외화를 바꾸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이 있다. 체류 기간 연장 등을 돕는 일이다. 환전소도 송출금은 물론 다양한 민원 업무를 처리한다. 이런 점포의 분포는 시장의 수요에 따라 변하게 마련이다. 일자리, 결혼이민, 유학 등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일자리는 전문직보다 단순 노동직 비율이 높다 보니 이런 업종의 점포가 늘어난 것이다. 하지만 정작 중국 거리에서 떠올리는 중국요릿집은 한 군데도 없었다. 대림중앙시장에서 짜장면이나 탕수육은 먹을 수 없다.

조선족 시장에서 짜장면, 탕수육은 없어

중국 마트.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중국 마트.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어느덧 대림중앙시장을 한 바퀴 돌았다. 이곳에서 한국의 설과 중국의 춘절 분위기를 느낄 수 있는 기물은 거의 없었다. 조선족 고유의 음식점이 문전성시를 이루고 있다는 게 색다를 뿐이다. 홍등도 포장마차에 걸려 있는 게 유일했다. 만약에 대림중앙시장이 중국이었다면 홍등 거리가 되었을 것이다. 춘절을 축하하는 부적도 붙인 곳을 거의 보지 못했다. 그것도 문이 닫혀 있던 한 가게에서 봤을 뿐이다. 이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대림중앙시장은 중국 문화가 지배하고 있다. 부인할 수 없다. 중국 동포를 상대하다 보니 생긴 일이다. 하지만 요란하기로 유명한 춘절의 풍습을 발견할 수 없었다. 오히려 조용하면서도 가족 친지를 챙기는 한국의 설날 풍습을 따르는 듯했다. 그것은 중국 동포 스스로 한국혈통임을 자각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대림중앙시장에 터를 내린 상인 대부분은 가족을 중국에 두고 혈혈단신으로 한국에 왔다. 가족 대신 고향 사람을 의지하며 살았다. 그렇게 집성촌을 이루게 된 것이다. 중국 동포 유입 초창기에 그들에 대한 장벽도 컸다. 차별도 있었다. 정체성의 고민도 많았을 것이다. 그들은 자조했다. 중국을 떠날 때는 동포였는데 한국에 도착해보니 조선족이었다고.

대림중앙시장은 둘러보고 안심이 된다. 중국과 한국, 서울과 옌볜이 함께 어우러진 광장이었다. 중국 동포는 한국과 중국 문화의 혼종화의 주인공이었다. 조선족 고유성을 잃지 않으면서 중국의 문화를 전달하고 한국과의 유대 확대하고 있었다. ‘조선족의 한국이 아니라 한국의 조선족을 만들어가고 있다.

중국에서 꼬리빵즈라고 천대와 멸시받았던 그들의 한국 정착기를 둘러본 듯하다. 가슴이 뻐근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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