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때에 수막새와 암막새의 한 세트가 완성되는 과정을 마침내 여러분에게 처음으로 보여 드리게 되었다. 기와의 연구는 그 당시의 정치적 문화적 관계를 고찰할 수 있을 만큼 매우 중요하지만, 양국의 기와 연구자는 기와 문양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비록 양국에 기와 학회가 있지만, 연구 성과는 지지부진한 상태이고 잘못 이해하여 기와가 보여주는 진리에 전혀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의 통일신라를 비롯하여 고려시대와 조선시대의 기와 연구도 따라서 지지부진하다.

도1-1 통일신라 용면와, 월지 출토. 사진=강우방 원장
도1-1 통일신라 용면와, 월지 출토. 사진=강우방 원장
도 1-2, 추녀마루 용면와에서 입에서 나오는 영기문. 사진=강우방 원장
도 1-2, 추녀마루 용면와에서 입에서 나오는 영기문. 사진=강우방 원장

- 통일신라 수막새와 암막새 한 세트 완성 과정 첫 선보여
- 전 세계의 조형예술품들을 해독하고 해석하기 시작 

기와 연구자는 일본에 수천 명에 달하여 기세가 높아 연구가 깊은 줄 알지만, 오류가 너무 심하여 우려스럽다. 한국은 그나마 내가 귀면와(鬼面瓦)를 용면와(龍面瓦)로 바로잡아가고 있어서 그나마 토론이 있고, 일부는 나의 주장을 따르고 있어서 국립경주박물관에서는 진열 카드 전체를 용면와로 바꾸었고,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귀면와라는 용어가 사라졌다.

그런데 뜻밖에도 암막새가 세계 최초로 백제에서 창조되었음을 아는 사람이 거의 없다. 기와 전공자들은 암막새가 통일신라시대에 처음으로 만들어졌다고 믿고 있으며, 백제의 마지막 왕도인 익산(益山)에서 창조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통일신라시대 것이라고 낮추어 보기까지 한다. 이제 그 익산의 제석사(帝釋寺) 터에서 발굴된 암막새 문양의 엄청난 상징을 풀어보려고 한다. 그에 앞서 통일신라의 용면문(龍面文) 추녀마루기와에서 이미 암수막새의 출현을 예고하여 있어서 다루어 보려고 한다.

용문와를 다시 소환하는 이유...

도 2-1, 경주 황룡사 터 출토 용면문 수먹새. 사진=강우방 원장
도 2-1, 경주 황룡사 터 출토 용면문 수먹새. 사진=강우방 원장
도 2-2, 채색분석. 사진=강우방 원장
도 2-2, 채색분석. 사진=강우방 원장

이미 다루었던 용면와를 다시 소환한다.(1-1) 여기에서 입에서 나오는 영기문(靈氣文)만 남기고 모두 지워 버린다. (1-2) 사다리꼴 모양의 용면 대신 둥근 용면문 수막새를 대체할 수 있음은 당연한 일이다. 황룡사 터 출토 수막새 기와(2-1)를 채색분석하면 굉장하다.(2-2) 그 채색분석한 것에 앞선 영기문이 그 입에서 나오도록 대입하면, (1-1)(3-1)이 같음을 알 수 있다. 더 단순화하면 (3-2)가 되고, 마침내 암수막새의 탄생을 예고 있다.(3-3)

도 3-1. 용면문 수막새로 대체. 사진=강우방 원장
도 3-1. 용면문 수막새로 대체. 사진=강우방 원장
도 3-2, 단순화. 사진=강우방 원장
도 3-2, 단순화. 사진=강우방 원장
도 3-3, 암수막새를 예고. 사진=강우방 원장
도 3-3, 암수막새를 예고. 사진=강우방 원장

암막새와 수막새의 관계를 이처럼 유추할 수 있으나, 뜻밖에도 암막새는 이미 백제가 세계 최초로 창안했는데 그 의미를 아는 사람은 없다. 왜냐하면 용면을 귀면이라 여기고 있기 때문이며, 용이라 여겨도 용의 입에서 나오는 영기문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영기문은 현실에서 본 적이 없기 때문이다. 드디어 세계 최초의 백제 제석사 터에서 나온 암막새를 살펴보기로 하자.

도 4-1. 암막새와 수막새 한세트. 사진=강우방 원장
도 4-1. 암막새와 수막새 한세트. 사진=강우방 원장
도4-2, 수막새와 암막새의 결합 원리. 사진=강우방  원장
도4-2, 수막새와 암막새의 결합 원리. 사진=강우방 원장
도  4-3, 채색분석. 사진=강우방 원장
도 4-3, 채색분석. 사진=강우방 원장
도 4-4, 제석사 암막새와 수막새의 결합, 사진=강우방 원장
도 4-4, 제석사 암막새와 수막새의 결합, 사진=강우방 원장

(4-1) 발굴 당시 나는 현장에 있었는데 얼마나 놀랐는지 모른다. 지금 그 작품을 채색분석하고 글을 쓰면서 그때 생각한 것이 현실로 되었다. 함께 출토된 연화문 수막새를 채색분석해 보았다.(4-2) 그런데 연꽃 앞들이 둥근 보주를 머금고 있음에 주목하기 바란다. 매우 긴 암막새를 채색분석해 보았다.(4-3) 그런데 중앙에 용 얼굴이 있고 양쪽으로 영기문이 뻗어나가고 있다. 단순화해 놓았으니 관심을 가지고 살펴보기 바란다. 암수막새를 채색분석한 것을 이으면 괄목할만한 모양이 된다.(4-4)

도 5-1. 수막새와 암막새가 결합한 암막새. 사진=강우방  원장
도 5-1. 수막새와 암막새가 결합한 암막새. 사진=강우방 원장
도 5-2. 수막새와 암막새의 결합 원리. 사진=강우방원장
도 5-2. 수막새와 암막새의 결합 원리. 사진=강우방원장
도 5-3. 중앙에 용면문 수막새로 대체. 사진=강우방원장
도 5-3. 중앙에 용면문 수막새로 대체. 사진=강우방원장
도 5-4, 연화문 대신 용면으로 대체. 사진=강우방 원장
도 5-4, 연화문 대신 용면으로 대체. 사진=강우방 원장

그러면 다음에 암막새를 분석해 보자. (5-1) 반드시 채색분석해 보아야 비로소 보인다. 그런데 암막새의 중앙에 용 얼굴이 있는 예는 유일하다. 그 용 얼굴을 지워보았다. (5-2) 그 둥글게 지운 자리에 둥근 용면을 대입해 보니, 그대로 수막새에서 양쪽으로 뻗어나가는 암막새가 되지 않는가! (5-3) 그리고 상호관계가 완전하지는 않으나 중앙에 연화문 수막새 대신 용 얼굴 수막새를 두어 보았다. (5-4) 결국 수막새가 연화문이든 용면이든 어느 경우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러면 용과 연화문은 상징이 같아야 한다. 이 글은 빈틈없이 논리적이므로 충실하게 따라서 가면 된다.

통일신라 절터 암수막새 채색분석해보니...

도 6-1, 공주 주미사 출토 수막새와 암막새. 사진=강우방 원장
도 6-1, 공주 주미사 출토 수막새와 암막새. 사진=강우방 원장
도 6-2. 2개 이어서 채색분석. 사진=강우방 원장
도 6-2. 2개 이어서 채색분석. 사진=강우방 원장
도 6-3. 양쪽만 채색분석. 사진=강우방 원장
도 6-3. 양쪽만 채색분석. 사진=강우방 원장
도 6-4. 연화문과 용면문 병존, 사진=강우방 원장
도 6-4. 연화문과 용면문 병존, 사진=강우방 원장

공주에는 통일신라 절터가 있는데 그 주미사(舟尾寺) 터에서 암수막새가 출토된 것을 채색분석하여 이어 놓으면 매우 흥미 있다.(6-1, 6-2, 6-3) 이번에는 통일신라의 초기 암막새에 중기 수막새를 결합해 보았다.(6-4) 재미있지요? 재미없으면 할 수 없지요. 그러면 용과 연꽃이 같다는 것을 증명하면 대성공이다.

도 7-1. 연화문에서 무량보주로. 사진=강우방 원장.
도 7-1. 연화문에서 무량보주로. 사진=강우방 원장.
도 7-2. 채색분석. 사진=강우방 원장
도 7-2. 채색분석. 사진=강우방 원장

불교미술에 표현된 연꽃은 그 일체가 연꽃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 중대성은 너무 커서 충격적이다. 연화대좌나 연화문 와당에서 보이는 연화는 연화가 아니고 보주라 말하면 세계의 모든 사람은 내 멱살이라도 잡으며 화를 버럭 낼지도 모른다. 평생 배운 것이 무너지는 것 같을 것이다. 중국 북제(北齊)시대 연화문 수막새가 있다. (7-1) 채색분석해 보면 전체가 무량보주가 아닌가!!! (7-2) 굳이 중국에서 찾지 않더라도 백제와 통일신라초기 수막새에서 얼마든지 볼 수 있다. (8-1, 8-2, 8-3, 8-4) 연화가 무량보주라고 파악했듯이 용도 무량보주이기에 수막새에 용이나 연꽃 모양을 둘 수 있디.

도 8-1. 연잎이 보주로 변모, 통일신라 것이나 백제의 영향 받은 것. 사진=강우방 원장
도 8-1. 연잎이 보주로 변모, 통일신라 것이나 백제의 영향 받은 것. 사진=강우방 원장
도 8-2. 연잎이 보주로 변모. 사진=강우방  원장
도 8-2. 연잎이 보주로 변모. 사진=강우방 원장
도 8-3, 백제 영향을 받은 통일신랴ㅏ 초기의 보주문 수막새. 사진=강우방 원장
도 8-3, 백제 영향을 받은 통일신랴ㅏ 초기의 보주문 수막새. 사진=강우방 원장
도 8-4, 쌍 보줌분 수막새, 통일신라, 사진=강우방 원장
도 8-4, 쌍 보줌분 수막새, 통일신라, 사진=강우방 원장
도 8-5, 용 얼굴이나 무량보주이므로 보주문이나 마찬가지. 사진=강우방  원장
도 8-5, 용 얼굴이나 무량보주이므로 보주문이나 마찬가지. 사진=강우방 원장

자 여기에서 우리는 중대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든다. 즉 용이나 연꽃은 무량보주이므로 거기에서 양쪽으로 발산하는 영기문을 세계 학계에서는 덩굴무늬(한국), 唐草文(카라쿠사몽, 일본), 蔓草文(중국), 아라베스크(Arabesque, 이슬람) floral scroll(서양) 등으로 모두 덩굴무늬로 알고 있으나 모두 올바르지 않다.

이런 틀린 용어들이 세계적으로 만연되어 있어 있다. 포도 덩굴무늬, 연화 덩굴무늬, 모란 덩굴무늬, 보상 덩굴무늬, 혹은 흔히 힌지로 포도당초문, 연화당초문, 모란당초문 등은 모두 틀린 용어들이다. 연화와 모란은 덩굴지지 않는다. 덩굴 화()하는 행위는 영화(靈化)하는 것을 말한다. 즉 덩굴무늬를 분석해 보면, 모두가 연이은 제1영기싹 영기문으로 귀결한다. 용의 입에서 어찌하여 덩굴무늬가 나오는가. 어찌하여 당초문이 나오는가. 우주의 대 기운을 한갓 풀이라 부르는가. 이 큰 문제는 귀신을 용이라 부르는 것에 지지 않는 우리가 고쳐야 할 중대한 나쁜 버릇이다.

일본 암막새와 수막새를 다뤄보니...

도 9-1, 일본 암수막새, 나라시대, 사진=강우방 원장
도 9-1, 일본 암수막새, 나라시대, 사진=강우방 원장
도 9-2. 암막새와 밑그림, 사진=강우방 원장
도 9-2. 암막새와 밑그림, 사진=강우방 원장
도 9-2-1, 채색분석. 사진=강우방 원장
도 9-2-1, 채색분석. 사진=강우방 원장
도 9-2-2, 채색분석2, 2가지 채색법, 사진=강우방 원장
도 9-2-2, 채색분석2, 2가지 채색법, 사진=강우방 원장

그려면, 이제부터 일본 암수막새를 다루어 보자. 일본 나라(奈良)시대, 710~794)의 암막새와 수막새를 다루어 보자.(9-1) 채색분석해 보아야 한다.(9-2, 9-2-1. 9-2-2. 9-3, 9-4) 여러 가지 채색분석법을 시도해 보았다. 또 다른 일본의 암수막새를 채색분석한 것만 삳는다.(10) 한 예를 더 들어본다.(11-1, 11-2, 11-3.)

도 10, 사진=강우방 원장
도 10, 사진=강우방 원장
도 11-1, 사진=강우방 원장
도 11-1, 사진=강우방 원장
도 11-2. 사진=강우방원장
도 11-2. 사진=강우방원장
도 11-3,  사진=강우방 원장
도 11-3, 사진=강우방 원장

고려시대에는 의종(毅宗) 11(1157)에 양이정(養怡亭)을 짓고 청자기와를 올렸다고 한다. 오래 전부터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매년 강진 고려청자 가마터를 발굴했었는데, 1968년 그 가마터에서 나에게는 바로 그 고려청자 기와를 흙에서 찾아 손으로 만져보는 행운이 있었다. 그 완전한 세트를 전시하기도 했다.(12-1) 암막새와 그 밑그림이다. (12-2) 그다음 수막새와 그 밑그림이다.(12-3) 수막새의 영화(靈花)를 채색분석했다.(12-4) 이어서 암막새를 채색분석했다.(12-5) 학계에서는 수막새 문양을 모란이리고 부르고, 암막새 문양을 당초문이라 부르고 있지만, 이 고려청자 기와에서는 모란이라고 부르는 것이 용과 연꽃 모양과 어깨를 나란히 겨루는 것이어서 역시 보주를 상징하므로 모란이라 부르면 안 된다.

도 12-1, 고령청자 암막새, 사진=강우방 원장
도 12-1, 고령청자 암막새, 사진=강우방 원장
도 12-2, 암막새 밑그림, 사진=강우방 원장
도 12-2, 암막새 밑그림, 사진=강우방 원장
도 12-3, 수막새 밑그림, 사진=강우방 원장
도 12-3, 수막새 밑그림, 사진=강우방 원장
도 12-4, 수막새 채색분석. 사진=강우방 원장
도 12-4, 수막새 채색분석. 사진=강우방 원장
도 12-5, 암막새 채색분석, 사진=강우방 원장
도 12-5, 암막새 채색분석, 사진=강우방 원장
도 12-6 전체 채색분석, 사진=강우방 원장
도 12-6 전체 채색분석, 사진=강우방 원장

여러 번 강조했듯이 조형미술품에는 현실에서 보는 모란이나 덩굴무늬는 결코 없다. 모란인 경우는 보주라고 증명하려면 매우 어려운 대목이다. 채색분석한 암수막새 전체를 연결시켰다.(12-6) 보기에 좋지 않은가. 우리가 모란이라 부르는 것 일체가 모란이 아니다. 국립고궁박물관에 가면 모란 병풍이 매우 많다. 그 병풍은 왕이 붕어했을 때, 능으로 시신을 옮기기까지 며칠 걸리는데 그 과정에서 모란 병풍은 왕의 시신을 항상 둘러싸고 있다.

전공자들은 의문을 가지고 있지만 결국 답을 구하지 못한다. 모란 모양은 현실에서 보는 모란이 아니다. 결국 보주를 뿜어내는 용이나 해태나 기린처럼 이들을 포괄하는 영수(靈獸)처럼, 여러 가지 영화(靈花)가 보주를 뿜어내고 있음을 알지 못해서 그렇다. 이 영화는 항상 왕과 함께 있다.

도 13-1, 선정릉 병풍석에 긴 장대석 중심부터 돌출하여 걸려 있다.사진=강우방 원장
도 13-1, 선정릉 병풍석에 긴 장대석 중심부터 돌출하여 걸려 있다.사진=강우방 원장
도 13-2 장대석 머리에 새긴 영화, 사진=강우방 원장
도 13-2 장대석 머리에 새긴 영화, 사진=강우방 원장

나는 조선왕조 왕릉들을 평생 조사해왔는데, 최근 왕릉에서 모란 모양 영화(靈花)를 알아내어 매우 놀랐다. 즉 왕릉 봉분 속에서부터 솟아 나온 장대석 머리에 영화를 새겨놓았다.(13-1, 13-2) 기능적으로 아무 역할을 하지 않는 오로지 상징적 석 부재일뿐이다. , 바로 봉분 속의 왕의 몸에서 뿜어져 나오는 무량보주가 아닌가. 국립고궁박물관에 100회 정도 가서 왕의 존재를 밝히려 했는데, 이제 그 마지막 드라마가 성취되는 순간이었다.

암막새와 수막새가 한짝임을 증명...깔딱고개 넘어

도 14-1, 일본 암막새, 헤이안 시대,  사진=강우방 원장
도 14-1, 일본 암막새, 헤이안 시대, 사진=강우방 원장
도 14-2, 양쪽 끝에 몽 마니 파드메 훔, 사진=강우방 원장
도 14-2, 양쪽 끝에 몽 마니 파드메 훔, 사진=강우방 원장
사진 14-3 중앙에 금강저, 사진=강우방 원장
사진 14-3 중앙에 금강저, 사진=강우방 원장

 

끝으로 일본 10~11세기에 창안된 놀라운 암막새 한 점을 소개하려고 한다.(14-1) 양쪽 끝에 연꽃 속의 보주조형이 있으며(14-2), 거기에서 중앙의 긴 금강저가 화생한다.(14-3) 금강저 중심에 보주가 있는 것은 일반적인 금강저의 형태이다. ‘옹 마니 파드메 훔과 금강저를 내가 최초로 풀어냈으므로 매우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일본의 기와는 나름의 독창성을 띠며 전개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도 15 채색분석해서 단순화와 전개의 작업, 사진=강우방 원장
도 15 채색분석해서 단순화와 전개의 작업, 사진=강우방 원장

이제 정상에 가까이 이르렀다. 이미 정상에 이른 것인지도 모른다. 암막새와 수막새가 한 짝임을 증명하기 위하여 가파른 산을 힘들게 오르내린 것이다. 무거운 바위가 이제는 산정에 정착하여 고정된 듯하고, 나는 그 산정의 바위 위에 서서 사방의 세계를 내려 보고 있다. 이제 바야흐로 전 세계의 조형예술품들을 해독하고 해석하기 시작한다. 영기문의 마지막 기본 형태를 제시한다.(15) 사람들은 왜 내가 이 마지막 영기문을 제시하기 위하여 그토록 심혈을 기울이며 형극의 길을 오르려 했는지 모를 것이다. <보이지 않는 보주에 이르는 길>은 험난하기 짝이 없다.

강우방

· 일향한국미술사연구원 원장
· 서울대 독어독문학과 졸업
· 미국 하버드대 미술사학과 박사과정 수료
· 국립경주박물관장
· 이화여대 초빙교수 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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