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ㅣ이기우 언론인] 4·10 총선을 40여일 앞두고 여야 공천작업이 막바지로 접어들었다. 국민의힘은 시스템 공천을 도입하며 잡음 없는 공천을 이어가고 있다. 반면 민주당은 이른바 비명 찍어내기 공천으로 시끄럽다. 양당 모두 공정한 시스템 공천을 강조하고 있지만 당 안팎에서는 여야 모두 시스템 공천에 실패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국민의힘은 당초 강한 인적쇄신을 통한 물갈이가 진행될 것으로 보였으나 현역횡재, 신인횡사라는 말이 나오고 있다. 민주당 역시 친명횡재, 비명횡사라는 신조어가 탄생했다. 국민들이 원하는 인적쇄신을 통한 새 피 수혈은 온데 간데 없다.

21대 국회의원 당선자 기념촬영. 뉴시스
21대 국회의원 당선자 기념촬영. 뉴시스

국민, ‘현역 횡재’, ‘신인횡사시스템 공천 의구심
- 민주, ‘비명.반명 찍어내기공천...현역 줄줄이 낙천

4·10 총선에서 유권자 절반 이상이 현역의원 물갈이를 통한 새로운 인물을 요구하고 있다. 21대 국회에서 정쟁을 거듭하며 민생 정책은 등한시한 여야에 대한 실망감 때문이다. 실제 서울경제가 여론조사 전문기관인 한국갤럽에 의뢰해 지난달 22~23일 양일 간에 걸쳐 성인남녀 115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결과에 따르면 58%다른 사람이 당선되는 것이 좋다고 응답했다. ‘현재 의원이 다시 당선되면 좋겠다는 응답은 28%에 불과했다.

특히 여야 텃밭에선 현역의원에 대한 교체 의견이 절반 이상이나 됐다. 민주당 텃밭인 광주·전라에서는 현역의원 교체 요구가 56%에 이르렀고, 국민의힘 텃밭인 대구·경북에서는 51%를 기록했다. 유권자들의 이같은 요구에도 불구하고 여야는 그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있는 모습이다. ‘현역 횡재’, ‘비명 횡사라는 여야의 공천 장면을 상징하는 말이 등장한 것만 봐도 알 수 있다.

국민의힘 공천 방향 현역횡재, 신인횡사

국민의힘은 비교적 잡음 없는 조용한 공천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친윤 핵심인 장제원 의원의 불출마 선언이 빛을 바라는 등 현역횡재라는 지적이 나온다. 권성동, 윤한홍, 이철규, 박진, 추경호, 윤재옥, 이만희 등이 단수 공천을 받았고, 경선에서 오른 현역의원 대다수가 본선 티켓을 확보했기 때문이다.

실제 지난 2월 25일 발표된 19곳의 경선 결과에서 정우택, 박덕흠, 이종배, 엄태영, 장동혁 의원 등 현역 의원 전원이 모두 승리했다. 하위 평가 20%에 들어가거나 동일 지역구 3선 출마 페널티를 받은 의원들도 모두 생환했다.

지난달 28일 발표된 26개 지역구 경선 결과에서도 현역 불패 기조는 이어졌다. 지역구 현역의원이 포함된 18곳 중 12곳에서 현역의원이 승리하고 3곳에서 현역의원이 결선에 진출했다. 지난 25일 경선 결과와 마찬가지로 감점을 받은 현역의원들이 대거 공천장을 받았다. 실제 김기현 전 대표는 3선 이상의 페널티를 받고도 박맹우 전 울산시장을 꺾었고, 주호영 의원은 대구 수성갑에서 공천을 받으면서 총선 승리 시 6선으로 국회의장 후보로 유력하게 거론되고 있다. 인요한 전 혁신위원장이 불출마·험지출마 대상으로 지목했던 중진 인사들이 모두 자신의 지역구에서 다시 공천을 받았다. 이 외에도 부산에서는 이헌승·백종헌 의원, 울산에선 서범수 의원, 대구에서는 김상훈·김승수 의원, 경북에서는 김정재·송언석·김석기·임이자·구자근 의원이 국민의힘 공천장을 받게 됐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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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의원 중 경선 탈락자는 미미했다. 부산 수영에서 장예찬 전 청년최고위원이 정봉민 의원을 제쳤고, 대구 달서병에선 권영진 전 대구시장이 김용판 의원을 이겼다. 부산 연제에서는 김희정 전 의원이 이주환 의원을 눌렀다. 현역불패 논란에 대해 국민의힘 공천관리위원회는 현역 교체가 지상 최고인 것처럼 얘기하는데 경쟁에서 제일 강한 자가 본선에 나가는 게 절대선이라고 말했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말이 시스템 공천이지 사실상 현역들을 위한 공천이 아니었나라며 현역들이 대거 살아오면서 결국 공천의 시스템이 유명무실하다는 것을 방증했다고 했다.

실제 현역의원이 감점을 받더라도 지역구 관리를 보통 이상으로만 했다면 구조적으로 현역의원이 유리하다. 현역 의원이나 당협위원장의 경우 인지도가 높은 데다 오랫동안 당원 명부를 가지고 지역구를 관리해왔기 때문이다. 도전자 입장에서는 인지도도 낮은 상황에서 경선이 시작돼야 당원 명부를 볼 수 있다. 이런 식의 시스템 공천이 이뤄진 이상 정치신인이 국민의힘 공천을 받기는 쉽지 않다. 결과적으로 공관위의 시스템 공천 구상이 기득권 공천의 부작용을 낳고 있는 셈이다.

이로 인해 국민의힘 시스템 공천이 실패했다는 말이 나온다. 이기기 위한 선수를 뽑는 데 치중한 국민의힘 선택은 이번 총선에서 유리하게 작용할 수 있을지는 몰라도 인적쇄신과 혁신 면에서는 실패했다는 것이다. 여권 한 관계자는 무소속 출마를 방지하기 위해 컷오프 대상도 경선에 많이 올린 것 같다. 이 경우 감점을 확실히 줬어야 했다“‘새로운 얼굴을 원하는 여론의 눈높이에 맞춰 시스템 공천 방향도 변화를 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재명 경쟁자 제거 비명 찍어내기 공천?

민주당 역시 시스템 공천을 두고 비명 찍어내기 공천논란이 일고 있다. 민주당은 공정성을 담보하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사천 논란이 불거지며 시스템 공천은 무너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당헌·당규에 따르면 공천 룰은 선거일 1년 전 기준을 확정해야 한다. 그러나 민주당은 지난해 12월 하위 평가 10% 현역 의원의 지역구 후보 경선 시 득표를 감산하는 당헌 개정안을 의결했다.

실제 하위 10~20% 의원은 경선 득표수의 20%, 최하위 10%30%를 빼는 시스템을 마련했다. 그러나 하위 평가 통보를 받는 의원들은 탈당하거나 공정하지 않다며 반발했다. 공천관리위원회로부터 하위 20%를 통보받은 김영주 국회부의장은 반명으로 낙인찍고 떨어뜨리기 위한 명분이라며 탈당을 선언했다. 하위 10%에 포함됐다는 통보를 받은 설훈 의원도 탈당했다.

경선 룰도 친명계에 유리한 구조였다. 민주당은 권리당원과 일반 여론조사가 50%씩 반영된다. 권리당원은 지난 대선과 이재명 대표 체제를 출범시킨 이른바 개딸로 불리는 강성 지지층 위주다. 이들은 이 대표 체포동의안 국회 본회의 표결 때 찬성표를 던진 비명계 의원 색출에 앞장서기도 했다. 공천 국면에선 친명계 후보에게 몰표를 던지다시피 하고 있다. 이 때문에 비명계 의원들이 일반 여론조사에서 만회하더라도 하위 평가로 감점을 받으면 열세를 극복하기 어렵다. 조오섭·이형석·윤영덕·송재호 의원 등이 친명계 후보들에 밀려 패배하는 이유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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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상황에서 친명계 인사들이 비명계 현역 의원의 지역구에서 자객 출마하거나 현역 의원을 배제한 비공식 여론조사가 진행되는 등 계파 갈등만 부각됐다. 나아가 총선기획단·공관위 등이 친명계 위주로 꾸려지고 이 대표 측근들을 중심으로 한 밀실공천 논란이 일며 파장은 커졌다. 이른바 친명과 비명 간의 갈등으로 불거지는 것이다.

실제 친문계 핵심인 임종석 전 대통령 비서실장은 서울 중·성동갑에서 컷오프됐고, 친문 좌장인 홍영표 의원의 지역구도 전략지역으로 분류되면서 사실상 컷오프되는 분위기다. 이 때문에 민주당 공천 파동 이면에 이재명 대표의 잠재적 경쟁자들 제거가 진행된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온다. 민주당을 친명계 중심으로 바꾸기 위한 비명횡사공천이 진행되고 있을 뿐 아니라 이 대표에게 반기를 들 세력들을 사전에 정리하는 공천이 이뤄지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당 윤영찬 의원은 지난 2월 28BBS 라디오 인터뷰에서 “(임 전 실장의 공천배제는) 이재명당의 완성, 사당화의 완성 때문이라며 “8월 당대표 경선이나 2027년 대선 이런 측면에서 볼 때 라이벌의 싹을 아예 잘라버리겠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문재인 정부 청와대 정무수석 출신인 최재성 전 의원도 “(임 전 실장의 공천배제는) 100% 이 대표의 생각으로, 이 대표가 기괴하게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송갑석, 박용진 의원 등은 차기 당권 주자로 거론되는 인물인데, 이들 모두 하위 20%, 10% 평가를 받았다.

한 비명계 의원은 이 대표에겐 총선이 우선 목적이 아닌 듯하다총선이 아닌 8월 전당대회를 목표로 한 당 장악이 최우선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이미 여러 현역 의원이 시스템 공천을 비판하며 탈당한 상황에서 추가 탈당까지 있을 것으로 보여, 당내 내홍 수습은 당분간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전문간들 비판 쇄도 말뿐인 시스템 공천

여야의 이같은 공천 방식에 전문가들은 양당이 말만 시스템 공천을 외칠 뿐이라고 평가한다. 한 정치평론가는 여야 공히 시스템 공천이라는 이름으로 공천하는 것이 부끄럽다현역 의원 감점 비율이나 신진 가산점 등을 언급한 것에 기대했지만, 결국 현역불패와 비명횡사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지적했다.

또 다른 평론가는 시스템 공천은 좋은 인재를 공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그러나 국민의힘은 기득권, 민주당은 자기 계파 챙기기에 유리하도록 설정됐다중앙당의 개입이 이뤄지는 이런 시스템을 붕괴시키고, 국민들의 민의와 민주주의 정신에 맞는 오픈프라이머리 등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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