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남녀가 태어나 자라고 성장하는 과정을 한번 짚어 보자. 일단 태어나기 전부터 태교(胎敎)당한다’. 태어나면 영아(嬰兒)건 유아(乳兒)건 교육을 받는다. 그 뒤로 초등학생, 중학생까지 의무적으로 교육을 강제하고, 고등학교는 물론이고 대학도 반드시 거쳐야만 하는 과정이 되다시피 했다. 정규교육만 있는 게 아니다. 너도나도 과외까지 시킨다. 중고생의 절반은 교실에서 잔다. 자식도 생고생이요, 부모는 부모대로 등골이 휜다. 누구도 행복하지 않은 불행의 교육체계. 이게 모두의 행복을 파괴하는 가장 잔인한 덫이 아닐까. 그 결과가 만든 풍경은 어떤가. 경쟁에서 이기려 발버둥 치는 인간, 더 갖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리는 인간, 자신을 끊임없이 타인과 비교하며 불안과 절망에 빠진 인간들이 득실거리는 삭막하고 메마른 사회다.

이렇게 행복이 말살된 사회’, ‘불안과 불행이 일상이 된 사회에서 과연 국가의 필요를 충족시킬 만큼의 출산은 가능할까. <국회미래연구원>이 지난해 7,282가구 16,305명을 상대로 <2023년 한국인의 행복조사>를 실시했다. 상대적으로 안정적이지 못한 월세, 사글세, 무상주택 거주자와 다문화 가구, 저소득 가구 등 사회경제적으로 취약한 집단일수록 행복 수준의 하락 폭이 커지는 경향을 보였다. 행복에 대한 불평등이 확대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사회적 관계, 사회적 자본과 행복과의 상관성을 살펴보니 모두 유의미한 양의 상관관계를 확인할 수 있었다고 한다. 일례로, 갈수록 커지는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임금 격차를 방치하고 다수의 행복저출산 극복을 기대한다는 것은 몽상이다.

조사보고서는 행복을 미래 한국사회의 핵심 키워드로 봤다. 물질적 부()만을 목표로 했던 개발성장 사회에서, 질 높은 삶과 좋은 사회로의 전환이 미래 한국사회가 나아갈 방향이라는 것이다. 특히 행복 수준이 높은 개인이나 사회는 다양한 영역에서 바람직한 특성을 드러내는데 높은 출산율역시 그에 포함되어 있다. <세계행복보고서>10년간 결과도, 친사회적 특성을 가진 국민이 행복할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한다. 우리나라는 경제 수준에 비해 턱없이 낮은 행복 수준을 보인다. 2023<세계행복보고서>에 따르면, 2020~2023년 우리나라 행복지수는 10점 만점에 약 5.94점으로, 150여 개 국가가 중 57위다. 경제 수준이 높아지지만 그만큼 소득격차는 갈수록 더 벌어지는 나라. 비교가 일상이 된 현실에서 저출산은 필연이다.

OECD 국가 중 이스라엘의 출산율은 3.0명으로 OECD 국가 중 가장 높다. 이스라엘의 이런 높은 출산율 배경은 무엇일까. 가장 먼저 꼽히는 것은 종교적 배경이다. 유대교 율법서인 토라(Torah)에 따르면, 창세기 128절에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구절이 있다. 유대인들은 이 율법을 충실하게 따른다고 한다. 자손을 낳는 것에 대해 자연스러운 의무감을 느끼는 이스라엘의 종교적 신념이다. 아이를 많이 낳아야 자신들이 존재할 수 있다는 믿음은 절박감마저 느끼게 한다. 하지만 그런 의무감이 전부는 아닐 것이다. 이스라엘의 가족지원 정책은 난임치료 여성에 대한 유급휴가, 대리모 제도 등 다양하다. 대리모 제도를 이용해 게이 부부뿐만 아니라 미혼남성에게도 열린 출산의 기회를 허용한다. 새로운 형태의 가족을 인정하는 것이다. 종교적 색채에 더해 가족과 공동체를 먼저 생각하는 사회적 환경이 행복한 삶을 가능케 하고, 그것이 출산율을 높이는 이유가 아닐까.

모든 인간의 소망은 행복하게 사는 것이다. 하지만 꿈을 잃어버린 사회에서 아이를 낳아 기르는 일이 가능한가. <죽은 시인의 사회>에서 키팅 선생이, “시와 아름다움, 낭만과 사랑, 이것들이야말로 우리가 사는 목적이야라고 한 말이 우리에게 얼마나 공허한 단어가 되었나. 행복이라는 목적이 없는 상태에서 돈을 벌어야만 한다는 강박에 시달리는 삶은, 그 자체로 가혹한 형벌이다. 돈을 벌기 위해 하는 공부, 돈을 벌기 위해 하는 일이 행복할 리 없다. 지금 우리 사회 젊은이들은 자신들이 하는 일을 좋아하기나 하는 것일까. 재미없음을 누가 대물림하려고 할까.

돈은 저출산 문제의 근본적 해결책이 아니다. 우리 사회의 이 살벌한 경쟁, 우울한 비교, 미래에 대한 불안을 깨부숴야 한다. 그러자면 우리 정치와 행정이 불평등과 차별 해소, 공동체 복원, 삶의 가치와 인간의 행복에 대한 가르침, 종교적 삶이 주는 심적 평화의 중요성 따위에 주목해야만 한다. 행복을 파괴하는 주범은 불평등과 차별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간 임금차별 격차만 해소해보라. 누구나 쉽게 둥지를 마련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보라. ‘행복한 국민을 만들면 행복한 출산은 그냥 따라온다. 우리는 이제 국가의 자원 확보를 위한 출산이 아니라, 소중한 한 인간의 행복한 삶을 위한 출산을 생각해야만 하는 시대를 살고 있다. 기존의 틀을 다 깨부수고 근본을 다시 돌아봐야만 한다.

헤르만 헤세도 행복해진다는 것이라는 자신의 시에서 인생에 주어진 의무는 다른 아무것도 없다네. 그저 행복이라는 한 가지 의무뿐. 우리는 행복하기 위해 세상에 왔지.” 라고 노래했다. 우리에게 행복한 출산은 정말 불가능한 일일까. ‘행복이라는 해답을 찾기 위해 함께 고민하고 실천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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