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단체 “시간에 쫓겨서 안전이 무시되는 상황”
한화진 환경부 장관 “더욱 세심한 관리 요구돼”

서울 소재 초등학교. (본문과 무관) [박정우 기자]
서울 소재 초등학교. (본문과 무관) [박정우 기자]

[일요서울 | 박정우 기자] 전국 초·중·고등학교에서 1급 발암물질에 해당하는 ‘석면’, ‘비소’ 등이 검출되면서 학부모들의 우려가 쏟아진다. 정부는 오는 2027년까지 교내에 남아있는 석면의 완전 퇴출을 방침으로 내걸었지만, 공사 과정에서 남은 잔재물이 또 다른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에 시민단체, 환경보건시민센터는 학교 석면철거 정책 기한을 늘려 더욱 꼼꼼히 공사를 진행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취재진은 자녀들의 등굣길에 나선 학부모들의 입장을 들었다. 대부분 학부모는 자녀가 속한 학교의 석면 검출 여부를 잘 알지 못하면서도 우려를 숨기지 않았다. 더불어 비소, 조리흄 등이 학교 운동장 및 급식실 등에서 검출되자 학교 현장은 발암물질 ‘비상’이 걸렸다. 

최근 초·중·고등학교에서 발암물질 ‘석면’, ‘비소’ 등이 검출되며 논란이 일고 있다. 특히 석면은 세계보건기구(WHO) 산하 국제암연구소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로 호흡기를 통해 인체에 흡입되며 석면폐증·폐암·악성중피종 등의 질병을 유발하는 매우 위험한 물질이다.

이에 우리나라는 2015년부터 공사 과정에서 석면 사용을 금지했으며, 유치원을 포함한 전국 초·중·고교는 2027년까지 모든 석면을 제거하도록 했다. 하지만 제거 과정에서 문제가 발생했다. 공사 후 석면 가루가 날리거나 잔재물이 남게 된 것이다.

시민단체 환경보건시민센터(시민센터)의 ‘학교석면 조사결과’ 보고서에 따르면 올해 1월까지 석면피해구제법에 의해 공식 인정된 환경성 석면 피해자는 7618명이었다. 연령대는 10대부터 80대까지 다양하다.

석면이 10년 이상의 잠복기를 거쳐 질환으로 발병한다는 사실을 고려할 때 특히 10~50대의 경우 초·중·고 재학 당시 석면에 노출됐을 가능성이 크다. 당시 대부분 학교는 석면으로 건축돼 있었다. 

학교 석면 철거와 실태

기존의 학교들은 20년 이상 노후화돼 천장 텍스, 화장실 칸막이 등 석면 건축자재들의 석면 먼지가 공기 중에 날려 학생과 교직원들의 호흡기로 노출되고 있을 가능성이 크다. 특히 교실이나 복도의 천장재인 석면 텍스의 경우 각종 교육부 자재 시설들이 설치되는 과정에서 안전조치 없이 손상됐을 수 있다.

석면철거는 공정 자체도 위험하기에 다수 학생이 모이는 학기 중에 진행할 수 없다. 이에 여름방학, 겨울방학 기간에 철거 작업이 집중적으로 이뤄지고 있다. 시민센터는 이를 두고 “방학 기간이 짧다는 이유로 석면철거 과정에서 지켜져야 할 안전지침이 무시돼 석면 위험을 없애기 위한 작업이 오히려 석면 위험을 가중하는 결과를 낳는다는 지적이 반복됐다”라고 설명했다.

시민센터는 “2016~2017년의 경우 수도권 여러 학교에서 석면문제가 크게 불거졌을 때 당시 이낙연 국무총리가 나서서 석면안전이 우려되는 학교의 학생과 교직원에 대한 건강 모니터링을 지시했는데, 이마저도 전혀 지켜지지 않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이어 ‘▲ 석면철거가 진행된 모든 학교 공간에 대해 정밀한 잔재물 검사와 잔재물 청소를 시급히 실시해야 한다 ▲ 잔재물 검사의 방법으로 미량의 먼지나 물티슈 시료의 경우 전자현미경 분석법으로 정밀 분석할 필요가 있다 ▲ 2027년까지 학교 석면철거 정책의 집행 기한을 몇 년간 늘려서 시간에 쫓겨서 안전이 무시되는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 한다’라고 제안했다.

나아가 “모든 석면철거 학교에서 환경단체, 학부모, 전문가로 이뤄진 감시 모니터링단을 꾸려 충분한 시간을 갖고 문제 사례를 조사하고 파악해 문제점이 반복되지 않도록 철저한 감시체계를 갖춰야 한다”라고 덧붙였다.

“국민 절반, 학교 석면 여부’ 몰라”, 현장은?

시민센터는 시민들이 학교건축물에 ‘1급 발암물질’ 석면 사용 여부를 모른다는 상황도 문제로 제기하며 정보를 공유했다. 조사 결과 국민 56.7%가 자신의 자녀가 다니는 학교건축물에 석면이 사용됐는지, 여부를 모른다고 답했다. 이어 국민 10명 중 4명(42.1%)은 자신이 생활하는 주택이나 사무실, 공장건물 등이 석면 건축물인지, 여부를 모른다고 밝혔다.

지난 14일 취재진은 2022년 5월 공개된 전국 석면 학교 명단에 포함된 서울 소재 초등학교를 방문했다. 등굣길에서 만난 학부모 40대 여성 A씨는 학교의 석면 검출 논란에 대해 전혀 모르고 있었다.

A씨는 “전혀 듣거나 받은 게 없다. 이번에 입학했는데 아이 건강에 해로울까 될까 걱정된다. 이번에 제거 공사를 한다면 한 번에 확실히 해줬으면 한다”라며 “공사 과정이나 사후 결과도 알려줬으면 좋겠다”라고 말했다.

학부모 40대 남성 B씨는 “석면과 관련해 학교 측에 전혀 들은 바가 없다”라며 “깨끗하고 안전하게 좀 해결됐으면 한다”라고 밝혔다. 한편 언론이나 가정통신문을 통해 석면 문제를 전해 들은 학부모도 있었다.

또 다른 학부모 C씨는 “언론 보도를 통해 이제 안전하다는 이야기를 접했다”라며 “뉴스로 소식을 접해 듣기는 했지만, 우리 초등학교가 검출된 적이 있으니 여전히 우려되는 건 마찬가지다”라고 말했다.

학부모 30대 여성 D씨는 학교 측에 연락을 받았다고 전했다. “가정통신문을 통해 교내 시설이 안전하다는 소식을 접했다”라며 “부모 마음으로는 재검사를 실시해 다시 한번 재평가를 받고 통지를 해줬으면 좋겠다”라고 밝혔다.

한편 정부는 노후화된 학교 시설 공간을 재구조화하며, 안전을 해치는 요인을 제거하고 학교 복합 시설 조성에 5년간 총 29조 원을 투입할 계획이다. 이번 사업을 통해 교내 발암물질인 석면, 비소 등을 완전히 제거한다는 방침이다.

국회, 정책 토론회 나서

국회는 지난 2월27일 석면 등 발암물질 발산에 따른 유해성과 국민 건강에 미치는 영향 등을 조망하고 개선 대책을 모색하기 위해 토론회를 주최했다. 시멘트 구조물 철거 중 발생이 우려되는 석면 등 환경유해물질의 무방비 노출을 방지하기 위한 대책과 합리적인 개선 방안을 도출하고자 한 셈이다.

강득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노후화된 학교시설물 해체·철거 과정에서 여러 환경·안전 문제가 발생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라며 “교육부, 환경부, 교육청 등 관계자들이 참석한 만큼 긴밀한 협업을 통해 실효성 있는 대안을 모색해 줄 것”을 주문했다.

김철민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기존 건물을 해체·철거하면서 학생, 교사, 주변 주민들까지 환경유해물질에 무방비로 노출돼 있는 것이 현실”이라며 “아이들의 안전과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는 학교 시설에 들어가는 시멘트 제품에 대한 안전관리 기준을 만들고 감독을 철저하게 할 필요가 있다”라고 강조했다.

한화진 환경부 장관은 “현재 우리나라 초미세먼지(PM2.5) 발생량(5700만 톤) 중 비산먼지(PM2.5)가 차지하는 비중은 28.8%(1600만 톤)이고, 그중 건설공사 현장에서는 17.4%가 발생하고 있다”라고 밝혔다.

이어 “특히 올해부터 교육부에서 추진 중인 공간조성혁신사업 건축물 해체·철거 과정에서 폐콘크리트 등 비산먼지의 노출로 인해 학생·교사·주민 등에게 건강피해가 발생할 수 있어, 건설공사장의 더욱 세심한 관리가 요구된다”라고 덧붙였다.

이날 발제자로 참여힌 최병성 시멘트대책위원회 상임대표는 “한국은 독일, 영국, 일본, 미국 등 외국의 쓰레기 시멘트 소비량 보다 3배가 넘는 쓰레기 시멘트 소비 세계 최고 국가”라며 “시멘트가 가장 안전해야 하지만, 환경부의 시멘트공장 비호 덕에 방사능 라돈과 발암물질과 유해물질 뿜어내는 가장 위험한 주거공간에 국민과 우리 아이들이 살아가고 있다”라고 비판했다.

토론 참석자들은 교육부 예산 17조 5000억 원을 투입해 진행되는 학교공간혁신조성사업(미래학교사업) 추진과정에서 시멘트 구조물 철거 중 발생이 우려되는 석면 등 발암성 환경유해물질의 무방비 노출을 방지하기 위해서는 친환경 스마트 공법 적용이 필요하다는데 모두 동의했다.

‘운동장, 급식실’도 안전지대 아니다

지난 2월23일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수원 소재 고등학교 운동장의 마사토에서 발암물질 비소가 기준치의 1.27배 많게는 1.78배 검출됐다. 비소는 1급 발암물질로써 피부암과 폐암을 일으킬 수 있다.

이어 근육경련, 심실성부정맥, 설사, 피부 잣무름, 정맥염증, 근육약화, 식육감쇠 등도 유발한다. 이에 도 교육청은 마사토가 깔린 운동장에 대해 5년마다 유해성 검사를 진행했고, 지난해에는 5~10월 동안 5차례 간이검사를 실시했다.

검출 여부를 두고 도 교육청은 “운동장 전수조사 등 적극적인 조치를 통해 안전한 학교 환경 조성에 힘쓸 것”이라는 입장이다.

이어 급식실의 조리흄(cooking fumes) 위험성도 보고되며 대책 요구가 쏟아졌다. 하지원 에코맘코리아 대표는 “조리 시 발생하는 요리 연기의 유해성과 올바른 관리방안 및 정책 마련에 대한 논의는 이제 시작 단계인데, 조리원뿐만 아니라 조리실과 붙어 있는 급식실을 이용하는 학생, 교사, 근로자들의 건강이 우려된다”라고 설명했다.

임종한 인하대학교 의과대학장도 “식품 조리 시 발생하는 조리흄은 세계보건기구가 지정한 1급 발암물질로 모두 초미세먼지(PM2.5)”라며 “초미세먼지에 노출되면 심혈관계와 호흡기계에 영향을 끼쳐 뇌졸중, 폐암과 같은 질병을 유발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주의력 결핍 과잉 행동 장애(ADHD), 우울증, 치매와 같은 심리적, 행동 문제와 연관된 질환을 일으킬 수도 있다. 조리흄을 비롯한 실내대기오염 물질에 대한 관리가 시급하다”라고 덧붙였다.

학교 교실, 운동장, 급식실 등 교내 시설이 발암물질로 위협받는 가운데, 뾰족한 대책이 나왔는가에 대해서는 의문부호가 붙는다. 일각에서는 “가장 안전해야 할 곳이 가장 위험한 곳으로 됐다”라며 시급히 정부가 개선 방안을 마련해 줄 것을 촉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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