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승만-박정희 대통령의 ‘자유-공화 정신’을 이어온 국민의힘의 정체성이 사라졌다. 국민의힘의 도태우-장예찬 후보 등에 대한 ‘원칙 없는 공천 번복’이 뿌리 깊은 정통 보수정당을 위기로 몰아넣고 있다.

한동훈 위원장은 이번 4.10 총선 지역구 공천에서 운동권 좌파 출신들과 민주당을 탈당한 인사들을 꽃가마 태워 대거 공천했다. 대다수의 정통보수 세력은 다소 의아하게 생각했지만 ‘이기는 공천’을 위한 한동훈의 고육지계(苦肉之計)라고 받아들였다.

3월 14일. 국민의힘이 5년 전 5.18 민주화운동 관련 발언과 문재인 전 대통령에 대한 비판 발언(태극기 집회)을 문제 삼아 도태우 변호사의 총선 후보(대구 중남구) 자격을 끝내 박탈했다. 이 사태를 바라보며 보수의 정체성과 보수정당의 길을 따져보지 않을 수 없다.

문재인 정권은 청와대에 TF까지 만들어 ‘적폐청산’을 추진하여 무고한 인명 피해와 함께 자유우파 인사 수백 명을 사장(死藏)시키는 결과로 이어졌다. 당시 한동훈 검사는 적폐청산 작업을 수행했지만, 보수우파가 한동훈 위원장을 지지한 것은 대한민국 체제를 바로 세우기 위해 기본이 되는 총선 승리에 목말랐기 때문이다.

치밀하게 기획된 탄핵의 방아쇠가 당겨졌던 2016년 10월 24일을 잊어서는 안 된다. ‘손석희 JTBC’가 “최순실이 태블릿PC를 통해 박근혜 대통령으로부터 청와대 기밀문서를 받아 ‘국정을 농단(隴斷)’하였다.”는 식의 허위·조작·선동 방송을 쏟아내자 ‘조선일보’를 비롯한 거의 모든 신문·방송이 ‘마녀사냥식’ 광기(狂氣)를 발산했다.

‘일견폐형 백견폐성(一犬吠形 百犬吠聲)’, ’한 집의 개가 사람을 보고 짖으면 여러 집의 개들이 짖는 소리만 듣고 따라 짖는’ 오류를 범한 것이다. 탄핵정국에 오보가 신문 지면을 가득 채웠고, ‘카더라 뉴스’가 종편을 주름잡았다. 이 같은 ‘아니면 말고’ 식의 선동 기사가 자유민주주의를 질식시켰고, 자유 대한민국을 후퇴시켰다.

박근혜 대통령 한 사람의 탄핵을 넘어 대한민국 체제가 탄핵당했던 엄혹했던 시절. 박 대통령의 변호를 맡았던 도태우 변호사는 광장에서 ‘바른 보수의 길’과 ‘옳은 자유의 길’을 외친 전사(戰士)요, 의인(義人)이다. 당시 문 정부의 ‘무단 통치’에 대해 도 변호사가 비판할 때 지금 국민의힘 지도부는 무엇을 하고 있었나?

도 변호사는 2019년 8월 3일 서울 대한문 앞 태극기 집회 연설에서 문 대통령이 보인 일련의 ‘기이한 행동들’은 “혹자(或者)가 말했듯이, 죽으면 다 끝난다고 생각해서 한 짓이었나”라고 물었는데, 이게 ‘막말’이었다는 것이다.

또한 도 변호사가 제기한 5.18 관련 ‘북한군 개입 조사’는 ‘5·18 민주화운동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에도 명시되어 있는 항목이다. 조사의 필요성이 이미 제기돼 있었다는 말이다.

경제학 교과서에도 없는 소득주도성장 정책은 ‘소득주도빈곤정책’이 되어 나라 경제의 근간을 파괴했고, 탈원전 정책은 대한민국 원전산업을 완전히 망쳤다. 자유 대한민국의 품에 안긴 탈북자를 강제 북송했고, 무엇보다 평양에 가서는 자신을 ‘남쪽 대통령’이라 부른 문 대통령에 대해 ‘기이한 언동들’이라고 명명한 것이 어떻게 ‘막말’이 될 수 있는지 묻고 싶다.

흔히들 좌파는 뻔뻔하고 우파는 비겁하다고 한다. 도태우 변호사를 내친 국민의힘은 비겁했고, ‘표현과 양심의 자유’를 압살했다. 국민의힘의 많은 당원은 좌익세력의 공세에 밀려 경선으로 공천된 사람을 과거 개인 생각을 이유로 공천 취소한다면 자유민주 정당이 아니라고 믿고 있으며, “탈당은 물론 국민의힘을 찍지 않겠다”고 호언(豪言)하고 있다.

총선은 대선과 달리 투표율이 높지 않아 지지층을 투표장에 나오게 하느냐 여부에 달린 게임이다. 보수보다 좌파가 적극 투표층이 많으므로 집토끼를 홀대하는 중도 확장 노선은 내부 분열만 가져오는 필패의 길이다. 21대 총선에서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이 참패한 이유이다.

18일 발표한 국민의미래 비례대표 공천 결과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당을 위해 헌신해온 정통보수들과 사무처 당직자를 홀대한 한동훈의 사천(私薦)이다. ‘국민 눈높이’를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휘두르면서 정작 종북좌파를 상대로 함께 싸울 ‘우파 눈높이’는 포기했다. 한동훈 위원장은 보수우파의 정체성을 상실한 국민의힘 사태를 직시하고 ‘결자해지(結者解之)의 해법’을 제시해야 한다.

일요서울 논설주간 우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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