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 수 부족 부터 수가 문제, 전공의 혹사 등 알면서 폭탄 떠넘기기
-  의료공백 한 달여 해결 실마리...보건복지부 공개 반성과 사과해야

의대정원 확대로 시작된 의료대란이 한 달여가 지난 26일 정부와 의료계가 본격적인 대화, 협상에 나설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

이번 사태의 핵심인 전공의들은 아직 정부와 의대교수 비대위 모두 보이콧하지만 일단 해결을 위한 실마리가 조금씩 풀려나갈 기미를 보이고 있다.

서울대 교수단체인 교수협의회(교협)26일 긴급 제안문을 내고 "무엇보다 전공의와 학생이 스승과 사회 구성원 모두를 믿고 내일이라도 복귀할 것을 간절히 청한다. 정부와 의료계가 협의할 동안만이라도 복귀해 달라"고 호소했다.

이에 앞서 지난 18일 방재승 서울대 의대 비대위 위원장은 "가장 큰 희생자인 국민의 아픔을 저희가 돌아보지 못했다" "국민 없이는 저희 의사도 없다는 걸 잊었다"국민 여러분 정말 죄송하다"고 공개 사과했다.

지난 242000명 정원확대와 처벌 원칙만을 강조해온 윤석열 대통령도 '행정처분 유연' '의료계와의 협의체' 구성을 지시하는 등 한발 물러섰다.

그동안 지켜만 보던 한동훈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은 지난 24일 전국의과대학 교수협의회와 만나 중재 역할을 자임하고 나섰다. 안철수 의원 등 여당 중진들도 단계적 증원 등 조정안을 제시하며 조속한 전공의 복귀와 의료 정상화를 촉구했다.

그러나 이번 사태의 원인인 의료정책을 담당하는 보건복지부는 말이 없다. 지난 20여 년간의 무능과 안일, 업무과오에 대한 사과 한번 없다. 남의 집 얘기하듯 '환자를 버린 전공의'라며 의료계 비난과 강공모드 일색이었다. 더구나 연이은 말실수로 화만 돋고 사태해결 노력도 제대로 없다.

의료인력 부족 문제는 2000년 의약분업으로 의사들을 달래기 위해 의사 정원 10%(351) 감축을 결정할 때 이미 예정됐다.

당시는 물론 그 후 24년간 복지부는 의료인력 부족을 예상하고 알고 있었다. 2020(문재인 정부) 정부가 의대 정원 확대와 공공의대 설립을 추진한 근본적인 배경에는 의사 수 부족에 있었다.

하지만 복지부는 번번이 의사들의 집단행동에 두 손 들고 백기 투항했다. 도리어 의료계를 달래기 위해 그동안 추진하던 비대면 진료나 간호법 개정, 문신 허용 등 개선안마저 포기했다.

또한 보건복지부는 수련생 신분인 전공의가 없자 병원이 돌아가지 않는, 외국에선 찾아볼 수 없는 기현상을 알고 있었다.

병원 의사 중 수련중인 전공의가 차지하는 비중이 미국 등 선진국은 평균 10%인 반면 한국은 33.8%~46.2%. 전공의가 없어서 각 과들이 전공의 쟁탈전을 벌이는 나라도 우리밖에 없다.

전공의 이탈이 정원확대에도 있지만 사실 그동안 참아왔던 가혹한 노동과 형편없는 처우에 대한 불만, 즉 병원과 교수의사들에 대한 쌓인 불만이 폭발한 것이라고 한다.

전공의 월평균 임금이 3979000원으로 전공의 근무시간인 주당 평균 77.7시간으로 따지면 최저임금 수준이다. 근무시간은 더 열악하다. 전공의법이 제정되기 전에는 주 120시간 근무했으나 2019년 개정 등으로 거쳐 지금은 주 80시간, 법정 연속 근무 36시간 이내다. 120시간이면 일주일 168시간 중 72%, 80시간이라도해도 48%를 일한 것이다. 그것도 생사여탈의 초긴장 속에서.

2023년 기준 전국 의대 학비 평균이 약 673만원인데 의대는 이보다 30~40% 더 비싸다. 그렇게 6년을 다녀서 인턴, 레지던트 4~5, 다시 군 복무 3년 총 7~8년간 최저임금을 감내해야 한다.

전공의는 수련의다. 의사자격증이 있는 학생이라는 뜻이다. 근로조건이 형편없음에도 병원이 전공의 한 명을 교육(?)하는데 연간 9993만원이 들어간다.(고려대 산학협력단 '전공의 수련교육 공공성 강화 방안 연구' 보고서)

미국·일본·캐나다 등 주요 선진국은 전공의 수련비를 대부분 건강보험·예산·기금이 부담한다. 미국은 메디케어(노인건강보험)에서 전공의 1인당 21411만원, 영국은 예산으로 5060만원 지원한다. 일본은 초기 2년은 중앙정부가, 후기 2년은 지방정부가 지원한다. 우리는 없다. 전적으로 병원 부담이다.

전공의들이 "최장시간 근로를 고려하면 최저시급을 받는다""정부가 우리에게 해주는 게 뭐가 있느냐"고 반발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신영석 고려대 보건대학원 교수는 "한국 병원들은 '근로자 전공의'의 헌신적 노동에 의존해 왔다"고 지적했다.

보건복지부는 전공의들이 피부과와 성형외과, 안과 등을 선호하면서 내·외과, 소아과, 산부인과 등 필수의료가 약화하고 있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청소년과의사회에 따르면 국내 소청과 평균 진료비는 약 13000원으로 미국이나 일본의 10분의 1 수준인 것으로 알려졌다.

소아청소년과의 경우 특성상 입원보다는 단순 진료만 받는 환자 비중이 높은데, 수가가 입원 환자 기준으로 책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역의사 부족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지난 20여 년간 보건복지부는 이 같은 많은 문제와 원인, 해법을 알면서도 할 일을 하지 않았다.

복지부는 억울할 수 있다. 한 복지부 고위관계자는 "(정책 전문가인) 우리가 그때는 모르고 오늘 갑자기 깨달은 게 아니다. 필요성, 시급성 모두 알았지만 공무원은 여론, 특히 청와대와 정치권을 이길 수 없다"고 하소연했다. 공무원은 무엇보다 국정운영의 영속성과 안정을 우선해야 한다. 따라서 좋은 정책이지만 여론이 나쁘면 정책 최종 결정자나 정치권을 거역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문제는 지금이다. 전공의와 의사들이 '어떻게 2000명이냐'는 질문에 속 시원하게 답을 내놓지 못한다. 처음부터 2000명이 무리한 목표라는 것을 알고 있었거나 정원 숫자를 고등수학이 아니라 +, ×, ÷ 산수로 답을 내놨기 때문일 것이다.

심지어 700, 1000, 2000명 등 증원 규모에 대한 공청회도 없었다. 의료시스템의 핵심인 전공의와도 협의가 없었다고 한다. 집을 살 때 자금조달계획을, 대출받을 때는 상환능력을 심사한다. 그런데 대학별 정원 배분을 하면서 각 대학에 내년에 교육 가능한 여건에 대해 알아보지도 않았다. 오죽하면 전공의들이 "의사도 정부도 믿지 못하겠다"고 하겠나.

한심한 일이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복지부는 자신들의 과오와 실수에 대한 공개적인 반성이 없다. 대통령이 나서서 길을 터주었으면 이를 최소한의 리스크로 목표를 달성해야 하는 책무가 공무원에게 있다.

더구나 지금 국민 절대 다수가 의대 정원 확대를 지지하고 있다. 분위기 때문에 말 못하던 일부 의료계가 사과하고 '확대 인원과 시기'를 협의하자고 용기 있게 나섰다.

지금이야말로 의료정책의 주무부처인 보건복지부가 그동안의 과오를 공개 사과해야 한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는 입을 꾹 닫은 채 눈만 껌뻑껌뻑 먼 산만 바라보고 있다. 보건복지부는 지난 20여 년간 문제점을 알면서도 다음 담당자에게 폭탄을 떠넘겨왔다는 비난을 피할 수 없다. 그리고 최소한의 반성도 사과도 없다. 정말 보건복지부는 비겁하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