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26일은 종일 비가 내렸다. 봄비는 봄꽃을 피우기 위해 내리는 것일까. 하루 사이건만 세상이 환해졌다. 아파트단지 화단에 산수유, 매화, 목련, 개나리가 화려하다. 걷기 좋은 봄날이다. 따뜻한 봄 햇살을 받으며 첫 강서구 탐방에 나섰다. 한약 다리는 냄새가 가득할 것 같은 역사적 공간을 걸었다. 조선의 히포크라테스, 허준 선생을 찾아간 것이다.

허준 테마거리.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허준 테마거리.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조선의 히로크라테스 허준 선생을 만나다
동의보감, 조선에서 세계로 특별전특별 전시전

327일 오후 지하철을 두 번 갈아타고 지하철 9호선 가양역에 도착했다. 1번 출구부터 허준 테마거리가 시작됐다. 허준테마거리는 500m 떨어진 허준박물관까지 이어진다. 지하철 출구에서 200여 미터에 이르는 구간의 건물 앞 화단은 허준의 건강 교실이다. 동의보감을 안고 있는 허준 마스코트가 서 있다. 각기 다른 색깔이지만 같은 모양이다. 족히 수십 개는 될 듯하다. 허준 선생이 서 있는 받침대에는 동의보감의 명구가 새겨져 있다. ‘쓴맛은 심장에 좋다’, ‘염려가 많으면 뜻이 흩어진다’, ‘말을 많이 하면 기가 준다’, ‘5곡은 오복이다는 등 다양한 건강 상식이 적혀 있다. 또 화단은 약초밭으로 꾸며져 있다. 민들레, 당귀, 감초 등 한약재로 널리 사용되는 약용 식물이다. 아직 싹이 트지 않았다.

허준 박물관 동의보감건강 명구들 즐비’ 

홈플러스를 지나 우회전하면 허준박물관으로 이어진다. 길을 따라 허준 선생의 일대기와 그가 집필한 동의보감등을 간략하게 소개한 조형물이 가득하다. 보도는 물론 의자에도 건강 수칙이 적혀 있다. “윗니와 아랫니를 씹듯이 자주 마주치면 이가 튼튼해진다”, 손으로 귓바퀴를 계속 비벼주면 귀가 밝아진다는 등 동의보감속 문구를 고스란히 담고 있다. 마치 타임머신 속에서 허준 선생을 만나고 있는 듯하다.

허준박물관에 도착했다. 입구에 커다란 벽화가 있다. 환자를 돌보는 허준 선생의 모습이다. 그 옆에 직업윤리에 관한 허준 선생의 말씀이 새겨져 있다. “옛날 뛰어난 의원은 사람의 마음을 잘 다스려서 미리 병이 나지 않도록 하였는데 지금의 의원은 사람의 병만 다스리고 사람의 마음은 다스릴 줄 모른다라는 게 그것이다. 의대 증원에 반발해 집단행동에 나선 의료 기술자가 떠오른다.

허준 박물관 전경.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허준 박물관 전경.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특별전시전 소재.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특별전시전 소재.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허준박물관 매표소를 들어갔다. 개량 한복을 입은 문화해설사 한 분(양희준)이 다가왔다. 안내를 부탁드렸다. 허준박물관 탐방은 양희준 씨로 들은 내용을 필자의 생각을 덧붙여 정리한 것이다.

정면에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 15주년 기념해서 열리는 동의보감, 조선에서 세계로 특별전을 알리는 플래카드가 보인다. 그 밑에는 국보이자 세계기록문화유산인동의보감서문이 전시되어 있다.

이 서문은 조선 4대 문장가로 불리는 이정구(이조판서)가 쓴 것이다. 물론 허준 선생의 서문은 따로 있다. 서문 오른쪽 맨 꼭대기에 선조의 어보가 선명하게 찍혀있다. 선사지기(宣賜之記)이다. 즉 조선시대에, 왕이 신하에게 하사하는 내사본 서적에 날인 하는 국새라는 얘기다. 또 오른쪽 페이지에는 이 목활자본이 오대산 사고본임을 적시하고 있다.

조선의 4대 사고중 하나 오대산 사고본’ 

동의보감 서문.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동의보감 서문.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오대산 사고본?’ 동의보감은 임진왜란이 끝난 뒤 완성(1610)됐다. 이를 세상에 전해야 했다. 왜의 말발굽에 짓밟힌 조선의 재정은 말이 아니었다. 궁궐은 활자판조차 만들 재정적 여력이 없었다. 훈련도감의 도움을 지원받아 겨우 목활자본 초판 3(1=25)을 찍었다. 그것은 조선의 4대 사고(史庫) 중 오대산, 적상산, 태백산 사고에 보관했다. 그것이 전해져 지금 각각 국립중앙박물관, 한국학중앙연구원, 서울대 규장각에 보관되어 있다. 이 귀중한 사료는 15년 전, 2009년에 세계기록문화유산에 등재됐다.

그런데 3질 모두 된 게 아니다. 규장각 본은 제외됐다. 25권 중 17권이 분실되어 사라졌다. 유네스코는 이를 이유로 한 질의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를 허락하지 않았다. 15년 전 2009322일이었다.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등재되기 전까지 동의보감은 보물이었다. 세계기록문화유산 등재가 보물이던 동의보감국보로 승격하는 계기가 됐다. 물론 지금 남아 있는 3질 모두 국보로 인정했다.

박물관내 초상화.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박물관내 초상화.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동의보감.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동의보감.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3층 전시실로 올라갔다. 커다란 허준 선생의 초상화가 걸려있다. 하지만 초상화 속의 얼굴은 실제 허준 선생의 모습이 아니다. 사실 허준 선생에 관한 기록은 거의 남아 있지 않다. 그가 30여 세 때 궁궐로 들어가기 전까지 어디서 살았는지, 한의학은 어떻게 배웠는지도 모른다. 심지어 언제 태어나서 어디서 자랐는지조차 알려진 게 없다. 양천읍 출신이라는 문서나 사료조차 없다.

그는 서자 출신이다. 족보도 없다. 분명한 것은 허준 선생은 무과 출신의 양천 허씨 출신이라는 것뿐이다. 부친의 고향과 호적 등을 근거로 양천읍을 탄생지로 추정하고 있다. 초상화도 그런 근거에서 그려졌다. 최근 그림을 잘 그리는 한의사 한 분이 허준박물관 근처에 있는 양천 허씨 본관 집성촌, 능안마을(현재 등촌2)의 남성의 특징을 모아 그린 것이라고 한다.

1 전시실...국보 동궐도와 옥당

1전시실은 내의원과 한의원이다. 여기서 내의원의 는 궁궐을 의미한다. 내의원과 한의원을 미니어처로 제작돼 생동감 있게 볼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 국보인 동궐도옥당’(홍문관 관청)이 있다. 창덕궁과 창경궁의 전경을 조감도 형식으로 그린 그림이다. 이유 없는 전시는 없다. 당시 궁궐에서 가장 중요한 건물은 법궁(창덕궁=인정전, 창경궁=명정전)이다.

조선시대 내의원.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조선시대 내의원.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한의원.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한의원.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법궁에 가장 가까이 있는 부속건물이 바로 내의원이었다. 내의원 안에 홍문관이 있었다. 홍문관은 조선의 삼사(사헌부, 사간원, 홍문관) 중에서도 가장 권위를 인정받는 기관이었다. 내의원이 얼마나 중요한 기관인지를 보여주는 설명인 셈이다.

허준기념실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동의보감이다. 동의보감을 비롯 허균 선생이 쓴 <구급간이방> <신찬벽온방>을 포함한 의서류가 전시되어 있다. 각종 의약 기기, 약재 등도 볼 수 있다.

허준박물관에는 다른 박물관에 없는 특이한 전시가 있다. ‘오류 수정 코너. 사실 우리가 아는 허준 선생은 허구와 사실이 혼재되어 있다. 대표적 오류는 과거시험(의과) 합격, 스승의 시신 해부 등이다. 허균 선생은 시험이 아니라 추천(미암 유희춘)으로 내의원에 들어갔다. 스승은 유의태가 아니라 현직 어의 양예수이다.

중국판.일본판 동의보감 전시

동의보감, 조선에서 세계로 특별전에는 중국판·일본판 동의보감이 전시되어 있다. 또한 일본판 동의보감을 중국에서 번역해 간행한 동의보감, 청대 부춘당 소장 판본 동의보감, 대구에서 재간행한 목판본 동의보감 등 다양한 동의보감을 전시하고 있다. 중국과 일본에 수출된 인기 도서였음을 실감한다.

옥상정원은 약초원과 이어지고 있다. 동의보감에서 소개하고 있는 100여 가지 약초를 재배하고 있어 한층 볼거리를 더해준다. 허준박물관과 구암근린공원은 붙어 있다. 구암(龜巖)은 허준 선생의 호이다. 자연철학자이기도 한 구암의 정신을 공원에 담은 듯하다. 전혀 인공적이지 않다. 커다란 바위로 둘러싸인 연못에는 수초와 물고기가 보였다. 이 연못 가운데에는 광주방위가 있다.

구암공원내 연못과 광주바위.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구암공원내 연못과 광주바위.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사진=김경은 여행작가

옛날 홍수 때 광주에서 양천까지 떠내려온 바위라는 전설이 있는 바위다. 연못 위에는 누워있는 환자를 진맥하는 의성(醫聖) 허준 동상과 동의보감이 있다. 구암근린공원은 허가(공암)바위 길과 통한다.

옛날 공암나루터 근처에 있던 허가바위는 양천 허씨 시조인 허선문이 이 바위 동굴에서 태어났다는 전설에서 비롯된 이름이다. 바위에 동굴이 있어 한자로 공암(孔巖)’이라고도 한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다본 공암은 동굴처럼 보이지 않는다. 바위 밑이 파인 것 같다. 허준 선생이 이 바위 밑에서 동의보감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이 당시 허준 선생은 공식적으로는 선조의 죽음에 책임을 지고 의주로 유배된 상태다.

동의보감마무리 구암 근린공원 허가바위

하지만 옛날에 유배 가는 길에 처벌이 해제되는 경우도 왕왕 있었다. 광해군의 동생 임해군도 그랬다. 허균 선생도 그런 경우가 아닐지 잘 모르겠다. 의주까지 선조가 준 의학 자료(500)을 챙겨간다는 것은 가능하지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어떤 이유인지 이곳에서 숨어서 지내면서 궁궐 내의원에 있던 자료를 이용했을 것으로 추측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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