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농구사상 최악의 사태가 벌어졌다. 지난 20일 안양에서 열린 SBS-전주 KCC전에서 경기종료 5분여를 남기고 심판판정에 불만을 품고 SBS가 경기를 포기하자 심판이 몰수게임을 선언한 것. 이 파문으로 KBL 지도부는 총사퇴를 표명했다. KBL은 또 경기를 포기한 SBS측에 벌금 1억원을 부과했고 단장, 코치에 대해 자격정지라는 중징계를 내렸다. 프로농구가 시작된 이래 최초로 ‘몰수패’라는 초유의 사태까지 벌어진 위기의 농구계를 진단했다. 1997년 프로농구 출범이후 사상 최초로 몰수패가 선언된 경기는 지난 20일 안양에서 열린 SBS와 전주 KCC 전.

테크니컬 파울을 놓고 설전, 결국 몰수패로 이어져

이날 경기종료를 5분여 남겨놓은 상황에서 심판진이 68-75로 뒤지고 있던 SBS의 알렉스 칼카모의 반칙을 지적하며 파울을 선언했다. 그러나 글로버는 심판에게 다가서며 혼잣말을 했고 심판은 이를 항의로 받아들여 테크니컬 파울을 바로 선언한 것. 이에 이미 3쿼터 중반 테크니컬 파울을 한차례 받아 감정이 고조돼 있던 정덕화 감독이 벤치구역을 벗어나 심판에 격렬하게 항의하다 두 번째 테크니컬 파울을 받고 퇴장당했다. 정 감독의 퇴장이후 이상범 코치가 지휘한 SBS는 연달아 두차례 작전시간을 요청하며 심판에게 판정에 대한 해명을 요구했다. 그러나 부심은 “정 감독에게 해명했으니 필요없다”고 말했다.

이에 SBS가 두 번째 작전타임을 써가며 항의했지만 “불만이 있으면 KBL재정위원회에 회부하라”고 말하자 흥분한 이 코치는 선수들을 코트로 내보내지 않았다. 이같은 상황이 5분여 동안 계속되자, 박웅렬 주심은 SBS의 몰수패를 선언했다. 그러나 파문은 KBL 집행부의 사퇴표명 등 농구계 전체로 일파만파 확산됐다. 김영기 KBL 총재는 21일 기자회견을 갖고 “일어나선 안될 엄청나게 중대한 사건이 발생한 것에 책임을 통감하고 총재직에서 물러나겠다”며 “아마종목에는 종종 이런 일이 있었으나 팬과 스폰서가 있는 프로스포츠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로 후임자가 정해질 때까지 공백이 없도록 만전을 기하겠다”고 사퇴의사를 표명한 것. 또 상근 이사인 박효원 사무국장과 이인표 경기위원장, 유희형 심판위원장 등 3명도 동반 사임하기로 했다.

KBL 집행부는 사퇴표명과는 별도로 이번 사태를 초래한 SBS에 대해 강도 높은 징계를 내렸다. 구단에 역대 최고액인 1억원의 벌금을 부과하고 경기 중단을 방치한 이충기 단장에게 2004~2005시즌까지 2시즌, 정덕화 감독 퇴장 후 선수들을 코트에서 철수시킨 이상범 코치에게 2005~2006시즌까지 3시즌씩 자격을 정지시킨 것. 경기를 운영한 심판에 대해서도 KBL은 23일 박웅렬 주심에게 2시즌 자격정지, SBS로부터 거친 항의를 유발했던 홍기환 부심에겐 3시즌 자격정지, 그리고 허영 부심에겐 1시즌 자격정지 처분을 내렸다. 또 이보선 경기감독관에겐 견책과 벌금 50만원을 부과했다.구단과 심판진 모두에게 가혹하리만큼 강도 높은 징계조치를 통해 뒷수습에 나선 것.

심판자질과 KBL 행정력 개선이 시급


그러나 농구계 일각에서는 이번 사태는 집행부의 사퇴와 징계조치로 해결될 사안이 아니라는 지적이다. 그동안 쌓여왔던 심판진에 대한 불신이 초래한 결과이자 KBL의 운영미숙도 이번 사태를 낳게 만들었다는 것. 심판진에 대한 각 구단들의 불신은 이미 한계수위를 넘어섰다는 분위기다. 그 동안 심판의 경기운영 불만에 대한 목소리는 한 두 차례가 아니었다. 올시즌 개막일에(10월 25일) 최희암 전 모비스 감독이 퇴장당한 것을 필두로 심판의 오심문제가 끊임없이 터져 나왔고, 심판과 각 구단 벤치의 테크니컬 파울을 둘러싼 갈등은 정도가 심각해져갔다. 이에 오심 여부를 심의하는 심판설명회만 시즌 1라운드에 여섯차례가 열렸을 정도다. 통상 리그 중반 이후에 심판설명회가 자주 열리는 관례에 비춰볼 때 갈등의 심각성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실제 몰수패를 당한 SBS는 21일 “경기포기라는 극단적인 상황을 초래한 것에 대해 프로농구를 사랑하는 농구팬들과 안양홈팬들에게 진심으로 사죄한다”면서 “자질이 부족하고 무능한 심판들은 물러나야 한다”며 일부심판에 대한 강한 불만을 토로했다.이 때문에 전문가들은 심판들의 자질향상을 위한 체계적인 프로그램을 만들고 아마추어부터 경험을 쌓은 뒤 프로무대에 올라오는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는 지적이다. 여기에 KBL의 리그 운영 방식도 문제를 키워왔다는 주장도 일고 있다. 예방보다는 사고 터진 뒤 수습하는데 급급했다는 것. KBL은 특히 지난 시즌 챔피언 결정전의 계시기 오조작 사건으로 자칫 최대위기를 맞을 뻔했다. 또 단장들에 대한 편법 판공비 지급문제와 용병의 ‘뒷돈’ 거래설 등 농구계의 잘못된 문제점에 대해 한 걸음 뒤에 물러서 있었다.

최근 대체용병 안드레 페리를 둘러싼 삼성과 오리온스와의 스카우트 분쟁에 대해서도 KBL은 명확한 규정 없이 허둥대는 모습을 보였다. 여기에 KBL의 징계·분쟁을 처리하는 재정위원회도 이름뿐이라는 지적이다. 재정위원회는 자신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판단할 수 있는 권한이 없고 심판들의 판정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는 심판설명회도 유명무실한 상황이다. 심판과 구단의 골을 허물기 위한 노력이 절실한 상황에서 협회가 안일하게 손을 놓고 있었다는 주장이다. 그러나 농구계는 이번 일을 KBL이 새롭게 탄생할 수 있는 계기로 만들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농구계 관계자는 “이번 일은 분명 팬들의 비난을 면키 어렵다”며 “하지만 그 동안 농구계 발전을 저해해 왔던 장애물들을 모두 제거하는 계기점을 삼는다면 팬들도 기쁘게 코트로 몰려 들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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