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미성년자의 자살 동기를 둘러싸고 의문이 꼬리를 물고 있다. 의문의 장본인은 고2 남학생 K군(17). 그는 지난해 3월7일 오전 성폭행 혐의로 긴급체포돼 46시간 동안 경찰조사를 받은 뒤 9일 의정부 인근 야산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K군의 자살 원인에 대해 유가족은 “경찰이 압박수사로 K군에게 심리적 압박을 가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찰의 부당한 수사가 아들을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것. 반면 경찰측은 “K군의 죽음이 경찰의 압박수사 때문이라고 단정 짓기 어렵다”며 유가족의 주장을 반박하고 있다. K군(17)이 이번 사건의 발단이 된 A양(14·성폭행 피해자)을 처음 만나게 된 것은 지난해 3월6일. A양은 K군 친구의 친한 후배였다. 이들은 얼굴만 알고 지내던 사이였을 뿐 그 이상도 그이하도 아니었다. 이들이 만난 곳은 K군 친구가 아르바이트를 하며 머무는 숙소. 일종의 ‘아지트’인 셈이다.

K군 친구 후배 A양의 만남

이날 아지트엔 K군과 친구 2명, A양과 친구 1명 등 남학생 세명과 여중생 둘이 모였다. 이들은 주변 슈퍼마켓에서 술을 사다 마시며 흥겨운 저녁시간을 보냈다. 분위기가 무르익으면서 K군은 A양에게 ‘작업’을 시작하기에 이른다. K군은 갑자기 A양을 끌어안더니 입을 맞추며 몸을 더듬기 시작했다. 술에 취한 상태였지만 A양은 K군의 손길을 강하게 뿌리쳤다. 그러나 K군은 순순히 물러나지 않았다. K군은 이미 ‘특수강간죄 전과범’이라는 전력을 가진 학생이었다. K군은 반항하는 A양에게 협박을 하면서 폭행했다. 그런 뒤 쓰러진 A양의 옷을 벗기고 강제로 자신의 욕심을 채웠다. A양으로서는 꼼짝 없이 당할 수밖에 없었다.

욕심을 채운 뒤 K군은 집으로 돌아갔고 겨우 몸을 일으킨 A양은 이 사실을 부모님에게 알렸다. K군에게 뜻하지 않은 일이 일어난 것은 A양 부모님이 성폭행 혐의로 K군을 경찰서에 고소하면서부터. 경찰에 따르면 처음에 K군은 자신의 범행을 강하게 부인했다고 한다. 그러나 경찰이 K군의 ‘특수강간죄’ 전력을 들춰내며 조사를 벌이자 이내 K군은 자백했다. 자백내용의 골자는 자신이 A양을 성폭행했음을 인정한다는 것. K군의 자백으로 이번 사건은 쉽게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경찰조사를 마친 K군은 집으로 가는 길에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에 유가족들은 경찰의 ‘강압 · 압박수사’ 때문이라며 해당 경찰서장에 대한 주의 조처와 담당 경찰관 징계를 요구하는 등 사태는 확대됐다.

경찰조사후 자살

자살 동기를 둘러싼 논란은 여기서부터 시작된다. 유가족에 따르면 경찰은 미성년 피의자를 긴급체포하고 부모에게 연락하지 않는 등 부당한 수사(인권침해·위법)를 벌여 자살에 이르게 한 책임이 있다는 것이다. 또한 “경찰은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권리를 피의자에게 고지하고 그 가족에게 체포 사실을 알릴 의무가 있지만 수사관들은 이를 어겼다”며 “미성년자에 대한 한밤의 임의동행과 긴급체포, 46시간 동안의 휴식이나 수면 없는 조사 또한 부당한 공무집행에 해당된다”고 밝혔다.반면 경찰의 입장은 이와 다르다. 임의동행 시간 등 구체적인 사실은 맞지만 잠을 재우지 않고 밤샘 조사를 하지 않았고 K군이 경찰조사의 압박감 때문에 자살했다고 단정하기는 어렵다는 것.

또 조사과정에서 K군과 식사도 같이 하며 편안한 분위기 조성에 힘썼을 뿐더러 강압, 압박수사는 전혀 없었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경찰은 K군이 자살직전 남긴 유서를 근거로 해명하기 시작했다. 의정부 인근 야산에서 발견된 K군의 유서는 이번 사건 이후 그의 심리상태를 잘 보여주고 있다. K군의 유서에 따르면 ‘부모님께 죄송하다’ ‘앞으로 일이 더 커질 것 같다’ ‘후회된다’등의 말만 반복해 쓰여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결국 K군은 자신의 범행에 대한 ‘죄책감’ 때문에 자살했다는 추론이 가능해진다. 의정부 경찰서 여성청소년계 황남원 경사는 “만약 경찰의 압박수사로 인해 자살한 것이라면 유서에 이번 수사와 관련한 어떤 메모라도 있었을 것”이라며 “자살 책임을 무조건 경찰에게 돌리는 것은 억측”이라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인권위 관계자는 “물론 경찰조사가 자살의 직접적 원인이라고 구체적으로 입증하기는 어렵지만 당시 다른 성폭행 혐의로 보호관찰을 받던 K군이 경찰조사 중 얼마나 심리적 압박을 받았으면 자살까지 했겠느냐”고 반문했다. 또 “조사과정 혹은 석방 이후 가족이나 변호인 도움이 있었다면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을 막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경찰 수사상 허점을 짚었다. 현재 인권위는 유가족들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대한변호사협회에 법률구조를 요청한 상태. K군의 죽음으로 사건은 일단락됐지만 자살의 의문이 아직 가시지 않은 가운데 양측 의견은 여전히 팽팽하다.


# 인터뷰-경기도 의정부 경찰서 황남원 경사 “자살설에 곤혹스럽다”

- 왜 가족에게 K군의 체포사실을 바로 알리지 않았나.
▲ 알리지 않은 게 아니다. 여러 번 시도했지만 가족과 연락이 닿지 않았다.

- (불가피한 상황이 아니었음에도)왜 미성년자에게 가혹행위가 될 수 있는 심야조사를 했나.
▲ 피해자의 신고가 밤 11시에 접수됐다. 딸이 성폭행 당했다며 흥분하는 피해자를 두고 느슨한 수사를 진행할 수 없었다. 그러나 밤샘조사를 하지 않았고 새벽 3시에 재워 6시에 다시 조사를 했다. K군과 식사도 함께 하는 등 강압적이고 살벌한 수사 분위기가 아니었다.

- K군 자살의 직접적 원인이 ‘경찰의 압박조사 때문’이라는 의견이 우세하다.
▲ 억측이다. 미성년자에게 강압이나 압박을 가해 수사할 것도 없었다. 그저 자백을 받아내기 위해 몇 가지 물어봤을 뿐이다. 6시간 조사결과 K군의 자백을 받아낼 수 있었다.

- 자백 내용은 무엇인가.
▲ 자신의 성폭행 및 강간 혐의를 인정한 것이 주된 내용이다. A양의 옷을 ‘강제로’ 벗기고 아지트라는 밀폐된 공간에 ‘감금’했으며 반항하지 못하게 ‘힘으로 밀어붙였다’는 것이 주내용이다.

- 유가족들은 뭐라 하나.
▲ 유가족들은 경찰의 압박수사 때문이라며 오열하고 있다. 인권위는 유가족들이 손해배상을 받을 수 있도록 대한변호사협회에 법률구조를 요청한 것으로 알고 있다.
저작권자 © 일요서울i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