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자식으로부터 매를 맞는 부모가 늘고 있다. 인터넷 포털사이트 게시판에는 존속폭행과 관련한 비난의 글이 쏟아지고 있고, 각 신경정신과 상담게시판에는 이에 대한 상담을 의뢰하는 사연이 봇물을 이루고 있다. 한양대학교 구리병원 신경정신과 박용천 교수에 따르면 존속폭행을 당하는 부모들은 대부분 자신도 가해자 경험이 있다고 한다. ‘가정폭력’이 ‘대물림’된다는 것을 입증하는 셈. 존속폭행의 가장 큰 특징인 ‘누적된 분노’의 사연은 어떤 것들이 있을까. ‘매 맞는’ 부모들의 실태를 들여다봤다.

‘게임중독’에 의한 폭행

“틈만 나면 컴퓨터를 붙잡고 게임하려는 아이를 ‘어릴 때는 다 그래’라며 그냥 놔뒀는데 결국 ‘야수’를 키운 셈이 됐어요….”지난 8월 청소년 인터넷 중독 전문치료병원을 찾은 최모(43)씨의 하소연이다. 최씨의 아들은 현재 고등학교 2학년. 아들은 최씨가 “게임 좀 그만하라”고 잔소리한다고 부모에게 주먹에 이어 둔기까지 휘둘렀다. 아들의 난동에 경찰과 119까지 동원, 파장은 실로 대단했다. 아들의 공격적이고 거침없는 행동에 부모는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다 큰 아들이 이성을 잃은 상태에서 폭언·폭력을 휘두르는 것을 감당하기란 쉽지 않았을 터. 아들은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매일 8시간씩 게임에 몰두했다. 방학 때는 거의 하루 종일 하다 낮밤이 바뀐 ‘올빼미 생활’을 했다. 학기 중엔 새벽 2~3시까지 게임만 하다 학교에서 자고 방과 후 PC방에 가는 것이 일과였다. 아들의 심각한 게임중독과 폭력에 대해 고심하던 최씨 부부는 현재 정신과 상담을 받고 있다. 이들은 “아들과 시비 붙을 것이 두려워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겠다”며 불안함을 호소했다.

만취해 ‘주사’부리며 난동

자식이 술에 취해 부모를 폭행하는 사건은 이제 ‘일상’이 된 듯하다. 지난 11월 말 전주에서는 10대 여고생 김모(19)양이 자신의 집 거실에서 어머니 박모(50)씨를 발로 마구 차는 폭행 사건이 일어났다. 경찰조사 결과 김양은 이날 술에 취해 집에 돌아와 어머니 박씨와 말다툼을 벌이다 박씨가 “음주운전하고 온 것 같으니 112에 신고하겠다”고 하자 이 같은 일을 저지른 것으로 드러났다. 이보다 앞서 10월 초 충남에서는 중풍으로 거동이 어려운 노모를 2시간 동안 방안에 감금하고 자살을 강요하며 폭행한 사례도 있었다. 경찰에 따르면 전모(39)씨는 자신의 집에서 술에 취해 흉기를 휘두르며 어머니 최모씨(70)를 발로 차고 “자식 고생시키지 말고 차라리 죽으라”며 차마 입에 담지 못할 말들을 내뱉기도 했다. 육체뿐만 아니라 정신적 충격까지 안겨준 사례다.

‘용돈 주지 않는다’며 상습폭행

뿐만 아니다. 지난 9월에는 아버지를 상습폭행, 존속상해 혐의로 박모(37)씨가 경찰에 붙잡혔다. 자신에게 관심이 없고 용돈을 주지 않는다는 것이 폭행 이유. 경찰조사결과 박씨는 아버지에게 심한 욕설을 퍼붓고 두 손으로 밀어 넘어뜨린 뒤 가슴을 발로 여러 차례 밟은 것으로 드러났다. 12월13일에는 부자간에 서로 폭행한 경우도 있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1,300만원을 빌려가 갚지 않고 용돈도 주지 않아 아버지가 아들 얼굴을 주먹으로 때린 것. 이에 질세라 아들도 아버지를 무차별 공격해 ‘부전자전’이라는 말을 실감케 했다.

‘기분따라, 수시로’ 폭행

수시로 휘두르는 대학생 아들의 폭력 때문에 피신 나오는 아버지와 어머니도 적지 않다. 아들이 집안에서 부모에게 휘두르는 폭행이유는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가는 수준. ‘밥을 안해놓았다’ 혹은 ‘빨래를 제대로 개켜놓지 않았다’ 심지어 ‘여자 친구를 소개시켜 주지 않는다’며 집기를 집어던지고 갖은 폭행을 일삼는 등 그야말로 ‘패륜의 극치’를 보여주는 사례가 비일비재하다. 어머니는 아들에게 맞아 이가 빠지고 머리가 뜯기고 뼈가 굽어진 상태. 아들은 어머니에게 일상적으로 욕을 퍼붓는가 하면, 머리를 발로 힘껏 차버리기까지 했다. 지난 11월 22일 SBS-TV ‘긴급출동 SOS24’에서 소개된 이 사건은 지금도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실정이다.

부모들, ‘낳은 죄?’ ‘기른 죄?’

존속폭행에 대한 부모들의 입장은 두 가지다. ‘낳은 죄’인가 ‘기른 죄’인가.하지만 실제로 자녀를 탓하는 부모는 거의 없다고 박 교수는 말한다. 어려서부터 좋지 않은 가정환경에서 자녀를 키운 점을 되레 미안해하고 두둔한다는 것. 한 어머니가 미혼모인 상태서 낳은 아들이 스무살이 넘도록 자신을 마구 때리는데도 아들이 처벌될 것이 두려워 그동안 경찰에 신고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는 ‘긴급출동 SOS24’의 사례는 박 교수의 주장을 뒷받침하고 있다.

# 인터뷰한양대 구리병원 신경정신과 박용천 교수‘존속폭행’ 해법 대화·가정환경 중요

▲ 존속폭행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 ‘패륜범죄’다. 그러나 한꺼풀 벗겨보면 보통 가해자들 입장에선 그럴 수밖에 없는 사연이 있는 경우가 부지기수다. 자녀들은 부모를 보고 배우기 때문에 어려서부터 ‘가정환경’이 매우 중요하다. 어떤 변명도 ‘폭력’ 앞에서는 정당화될 수 없다.

▲ 존속폭행의 특징은.
- 절대 한순간에 터지지 않는다. 즉 ‘누적된 분노’라는 것. 평상시 겉으론 잘 드러나지 않지만 어느 순간 발끈, 폭발해 돌이킬 수 없는 범행을 저지르기도 한다.

▲ 존속폭행에 대한 부모들의 입장은 어떤가.
- 자녀의 범행을 두둔하는 경우가 많다. 실제로 피해자인 부모 중 과거 자신이 가해자였던 경우도 적지 않다. 가정폭력의 ‘대물림’을 다시한번 입증한 셈이다.

▲ 존속폭행의 해결방법은.
- 임시변통 방법으로는 자녀의 불만, 분개가 터지지 않도록 잘 달래고 봉합하는 것이다.그러나 무엇보다 ‘대화’로 해결하는 것이 최선책. 자녀의 적개심 정도를 파악해 그때그때 해결하고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어려서부터 ‘효’, ‘인륜’사상을 각인시키고 부모 혼자 ‘일방통행’식으로 교육하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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