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서울|오두환 기자] 조계종 총무원장 선거를 둘러싸고 조계종 내부가 시끄럽다. 본격적인 선거를 앞두고 현 총무원장과 고위 종무원들이 관련된 비리 제보가 끊이지 않고 있다. 21일에는 한 스님이 조계종 고위층이 연루된 비리를 발표하려다 강제로 조계종 호법부에 연행되기도 했다. 이후 불교계 시민단체들은 진실규명을 요구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기자회견 계획한 스님 강제 연행해 간 조계종 호법부
호흡곤란·가슴통증·발가락골절 등으로 입원 하기도

8월 21일 오후 2시.
조계사 옆 우정총국 앞에는 긴장감이 흘렀다. 카메라를 든 기자들, 승복을 입은 승려, 재가종무원 그리고 무전기를 든 경찰들이 한 사람만을 기다리고 있었다. 10분 뒤 도로 반대편에서 길을 건너는 스님 한명이 눈에 띄었다. 바로 적광스님이다.

적광스님은 이날 기자들을 대상으로 조계종 고위층이 연루된 비리와 관련된 기자회견을 하기로 했다. 하지만 적광스님은 우정총국 앞에 도착하자마자 조계종 총무원 호법부 상임감찰들에게 제지를 당하며 강제로 호법부 조사실로 끌려갔다. 결국 조계종 고위층과 연관된 비리에 대해서는 한마디도 말하지 못했다.
 

상임감찰들이 적광스님을 끌고 가는 과정에서 소란이 일었다. 적광스님은 끌려가면서 “집회 신고를 했다. 백주대낮에 이러는 게 아니다. 경찰, 기자 여러분 나를 도와 달라. 112에 신고해 달라”고 외쳤다. 하지만 상임감찰들이 적광스님의 팔과 다리를 강제로 잡고 드는 바람에 적광스님은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한 상임감찰은 적광스님을 데려가며 “조계종 사미가 해종행위를 하니 연행해서 조사를 하겠다”고 말했다.
상임감찰들은 적광스님을 들고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지하로 내려갔다.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지하 2층에는 호법부 조사실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호법부 조사실은 창문도 없는 밀실이다.
 

당초 적광스님은 기자회견을 위해 19일 옥외집회 신고서를 서울종로경찰서에 접수했었다. 하지만 적광스님의 기자회견 계획은 상임감찰들의 강제연행으로 수포로 돌아갔다. 이날 현장에는 종로경찰서 경찰들도 현장에 있었다. 하지만 종로경찰서 관계자는 “종교문제라 관여할 수 없다. 우발적 상황에 대비해 왔지만 스님들이 스님을 데려간 것을 우발적 상황이라 보긴 어렵다고 말했다.

적광스님은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으로 끌려간 지 1시간이 넘도록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오후 4시경 호법부에서 적광스님 강제연행에 대해 브리핑을 했다. 호법부 팀장은 “적광 사미는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내 호법부 조사실에서 기자회견 개최 배경 등에 관한 진술조서를 작성하고 3시 20분 귀가했다. 호법부를 나갈 당시 적광 사미는 승복을 벗고 호법부가 준비한 개량한복으로 갈아 입었다”고 밝혔다.

또 강제 연행에 대해 “사미의 신분으로 종단과 관련한 의혹을 제기하는 것은 종단의 위계질서에도 부합하지 않는 만큼 부득이 기자회견을 저지할 수밖에 없었다”며 “적광 사미 역시 호법부의 임의동행을 이해하고 수용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적광 사미는 진술조서를 작성한 후 환속제적원을 제출하며 다시는 이 같은 일이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환속제적원을 제출한 만큼 더 이상 승복을 입는 것은 맞지 않다면서 승복도 반납했다”고 말했다.

호법부에서는 적광스님이 3시 20분경 귀가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밖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은 아무도 적광스님이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을 떠나는 모습을 본 사람이 없다.
호법부는 적광스님이 포항 오어사 산내 암자인 자장암 암주 자격을 교구본사인 불국사로부터 부당하게 박탈당했다고 주장해 왔다고 했다. 그래서 각종 루머를 퍼트린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그간 적광스님과 인터뷰를 진행해 왔던 기자들은 호법부의 이러한 발표에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21일 호법부의 강제연행 이후 연락이 되지 않았던 적광스님은 22일 한 불교계 언론매체의 인터뷰를 통해 동국대일산병원에 입원한 사실이 알려졌다. 적광스님은 인터뷰를 통해 “온 몸이 지금, 어제는 목이 졸리고 숨을 못 쉬게 해 죽음을 느꼈다. 지금도 가슴이 많이 아파 숨을 못 쉰다”며 “어제 오후 9시 이후에는 너무 아팠다. 기다시피 했다. 처음 엑스레이 촬영에서는 갈비뼈가 갈라졌다고 해서 충격 받았다. 지금도 검사 중이지만 가슴뼈는 괜찮은 것 같다고 한다. 발가락뼈가 부러지고 온몸 멍들고 아프지 않은 곳이 없다”고 전했다.

적광스님의 인터뷰로 미뤄볼 때 호법부 조사실에서 폭행이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적광스님은 구체적인 언급을 피했다. 다만 인터뷰를 통해 심각한 폭행을 가한 종무원 A씨에 대해서는 민형사상조치를 취할 것임을 시사했다.
 

적광스님은 인터뷰를 끝내기 전에 “이번 일을 계기로 제 자신의 처지를 겸허히 돌이켜보고, 많은 어른 스님들과 선배 스님들이 잘 하시리라 믿고, 저는 이제 그만두겠습니다. 저는 이제 포항으로 돌아가겠습니다”고 밝혔다.
 

한편 불교계 시민단체들은 적광스님에 대한 조계종 호법부의 부당한 행위를 확인하고 규탄에 나섰다. 정의평화불교연대 민불동지모임은 22일 ‘조계종 호법부의 적광스님에 대한 폭력행위를 규탄한다’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성명서에는 “적광스님은 적법한 시위신고를 한 후에 최근 초미의 관심사인 조계종 고위층 스님들의 도박의혹과 관련하여 기자회견을 할 예정이었다”며 “적광스님은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지하 2층의 조사실에서 수 시간에 걸쳐 심문을 받고 옷을 갈아입힌 채 나와 상임감찰들과 숙소에 머무르는 것으로 알려졌으나, “몹시 아프다”는 표현을 한 후에 다시 사라져 여러 재가자들의 근심을 초래했다“고 전했다.
 

또 “적광스님은 밤늦게 상임감찰들의 동행 하에 모 병원 응급실에서 치료를 받고 일반병실으로 옮겨진 것이 확인되었다. 지난 수개월 간 조계종 고위층 스님들의 재가자 폭행, 여성 불자들에 대한 성추행과 성폭행 관련 기소 사건, 해외원정도박과 횡령의혹, 언론인 폭행 등 흉흉한 소식이 끊이지 않아, 재가자들은 차마 고개를 들어 하늘을 보기가 부끄러웠다”며 “여기에 더해, 호법부 상임감찰들에 의한 피해자의 강제연행, 심한 고통을 초래한 심문, 이유를 알 수 없는 동행과 외부로부터의 격리까지 행해졌다. 조폭들이나 할 수 있는 납치, 감금, 린치행위에 관한 의혹을 금할 수 없었다”고 전했다.
 

이어 성명서를 통해 무참한 폭행을 가한 행위에 대해 철저한 진상조사와 처벌, 경찰의 호법부 상임감찰들과 종무원에 의한 적광스님의 납치·감금·린치행위 수사, 호법부의 폭행 가담 스님들 전원 사퇴, 조계종 총무원을 둘러싼 모든 의혹에 대해 참회, 조계종 총무원의 책임 있는 조처가 있을 때까지 34대 총무원장 선거에 관한 일체 행위 중단 등의 요구사항을 발표했다.
 

조계종 내부는 총무원 선거 때마다 각종 비리 폭로로 진흙탕 싸움이 계속되고 있다. 기존 총무원장을 둘러싼 기득권과 신진 세력 간의 마찰로 보일 수 있지만 이는 폐쇄적이고 권위적인 조계종의 잘못된 구조에서 비롯된 것이다. 조계종 내부에서의 개혁이 진행되지 않는다면 조계종의 미래는 장담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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