접대문화도 복고풍을 타는 것일까. 요정의 매력에 빠지는 젊은 남성들이 늘고 있다. 흔히 북창동으로 대표되는 룸살롱 접대문화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는 것이다. 북창동하면 남성들의 오감을 만족시켜주는 화끈한 ‘전통 하드코어’가 이루어지는 것으로 유명한 곳.그러나 지속적인 경기침체와 더불어 기죽은 남성들의 ‘입맛’도 변하고 있다. 화려한 조명과 보일듯 말듯 야시시한 복장을 입은 아가씨들의 살랑거리는 애교는 없지만, 정갈하게 한복을 차려입은 단아한 미희가 따라주는 술잔과 그 ‘안방만의’묘한 분위기가 있는 요정의 세계로 들어가보자.

기자가 만난 외국계 화장품회사의 대리 한지훈(31·가명)씨는 며칠전 방문한 미국인 바이어 M씨로부터 고맙다는 전화를 받고 무척 기분이 들떠 있었다. 한씨의 말인즉 자신이 접대를 하기 위해 데려간 곳을 바이어 M씨가 무척이나 마음에 들어했다는 것이었다.한달에도 수차례 업무상 외국인 손님을 자주 만나고 접대해야하는 한씨로서는 매번 ‘이번엔 또 어디를 데려가나’하는 것이 고민거리였다. 강북과 강남을 오가며 내로라하는 업소들을 줄줄이 꿰고 있는 그였지만 사실 따지고 보면 다 거기서 거기인 룸살롱에 가는 것도 지겨웠을 터. 결국 그는 ‘의외로 외국인 바이어들이 홀딱 반한다’는 회사동료의 조언에 따라 ‘요정’을 찾았다.

대감마님이 된 기분으로
이틀전 미리 예약을 해둔 한씨가 바이어 M씨를 데리고 요정에 들어선 시각은 오후 7시.들어서기가 무섭게 마담이 정중하게 그들을 맞이했다.한씨는 “고급요정의 경우 보통 하루전에 예약을 해두는 것이 상례라 들었다”며 “M씨의 경우 외국인일 뿐더러 워낙 중요한 업무로 온 바이어이기 때문에 이틀전에 예약을 했다”고 말했다.마담을 따라 방안으로 들어선 한씨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이는 M씨 역시 마찬가지였다.고풍스런 가구들과 장식들로 꾸며진 널찍한 방안에 들어서자 한씨는 ‘마치 조선시대 명문가의 대감마님이 된 기분이었다’고 회상했다.잠시 후 식사가 들어왔다.드라마 ‘대장금’에서나 나옴직한 궁중 코스요리로 들어온 음식은 대략 30여종.한씨는 “말그대로 끝도 없이 상다리가 부러지도록 나왔다”고 전했다.무엇보다 마음에 들었던 것은 업소측의 배려.M씨에게 전통음식이 잘 맞지 않을까 내심 걱정을 했던 한씨는 업소측에서 특별히 M씨를 위해 별도로 준비한 서양식 요리 4가지에 그만 ‘감동’하고 말았다.기자가 만난 D요정의 이태민(가명) 대표는 ‘요정이 반드시 한식만을 제공한다는 것은 오해’라며 ‘양식은 물론이고 일식 및 중식도 가능하다’고 말했다.잦은 한국 출장으로 한국음식을 즐겨 먹는다는 M씨 역시 업소측의 세심한 배려에 무척이나 유쾌해했다고.

한씨, 어떻게 놀았나
식사가 끝나자 술상이 들어왔고 곧이어 아가씨들도 입장했다. 매번 짧은 치마에 야시시한 복장을 한 아가씨들을 끼고 술을 마시던 한씨는 난생 처음으로 단아하게 한복을 차려입은 도우미를 옆에 두고 술을 마셨다. 그는 그 기분을 ‘아주 묘했다’고 표현했다. 바이어 M씨 역시 여지껏 받아본 접대들과 다른 분위기에 독특해하며 싱글벙글했다는 후문.이 대표는 ‘좌식생할에 익숙지 못한 외국인들을 위해 스탠드식의 룸도 마련해놓고 있다. 그러나 많은 외국인들은 오히려 전통 한국식 안방문화를 경험해보고 싶어한다’고 전했다. 취기가 오르자 한씨 일행은 밴드를 불렀다.사실 룸살롱에서 가능한 하드코어식 서비스를 요정에서 기대하는 것은 무리다. 한 업소의 관계자는 ‘아가씨들이 일반 룸살롱의 아가씨들과는 다르다’며 ‘매너나 품격에서도 차이가 날 것’이라 말했다.그러나 아가씨들이 뻣뻣하고 딱딱해서 재미가 없을 것이라는 것은 편견에 불과하다는 것이 경험자들의 말이다.

과거에 소규모의 요정을 자주 출입했다는 회사원 김영식(32·가명)씨는 “당시 요정의 도우미들도 쇼를 했다. ‘그러나 일반 룸살롱과는 달리 무척 깔끔하게 끝낸 것으로 기억한다’며 과거에 내가 자주 가던 곳의 경우에는 도우미들이 가야금 등에 맞춰 스트립쇼를 하는 것이 매우 독특했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어 “요정은 영업이 일찍 끝나기 때문에 도우미들과 따로 나이트를 가거나 2차를 가서 즐기곤 했다” 고 귀띔했다. 업소측 관계자들은 미리 짜여진 스케줄이 아닌 그날그날 모임의 분위기에 따라 도우미들의 성향이 달라진다고 입을 모은다. 흥에 겨워 한껏 놀다보니 어느덧 다시 출출해진 한씨 일행.그들은 마담을 불렀고 필요한 술과 음식은 필요시마다 즉시 추가됐다.특히 한씨 일행을 기쁘게 했던 것은 요정만의 독특한 시스템.술과 안주를 시킬 때마다 매번 추가 가격이 붙는 룸살롱과 달리 요정은 모든 계산이 명수대로 측정되는 시스템이다. 술과 음식은 ‘드실만큼 충분히 제공한다’는 것이 이대표의 말이다.

이렇듯 요정은 룸살롱과는 달리 따로 안주를 주문할 필요없이 다양한 요리가 지속적으로 제공되는 원스톱 서비스라는 특징을 가지고 있고 중간중간 술과 음식을 마음껏 즐길 수 있어 특히 접대시에 편리하다. 요정을 즐겨 찾는다는 Y(53·중소기업 대표)씨는 “공적인 접대시에 2차, 3차로 자리를 옮겨가다보면 대화가 끊기기 마련이고 정신없이 시끄러운 곳에서 유흥을 즐기다보면 정작 해결해야 할 중요한 사안에 대해서는 몇 마디 나누지도 못한 채 자리가 끝나고 마는게 보통이다. 요정은 내집 안방같은 한 장소에서 모든 것이 해결되기 때문에 접대시 적합한 장소다”라고 말했다.이렇게 오후 7시경부터 식사로 시작된 한씨의 접대는 11시경에 모두 끝났다.한씨는 “여지껏 매번 새벽까지 이어지는 접대로 인해 다음날 업무를 하기에 무척 힘들었던게 사실”이라며 “식사와 음주가무를 한자리에서 해결할 수 있을 뿐더러 밤 11시경이면 자리를 마무리할 수 있어 다음날 무척 가뿐한 상태로 업무에 임할 수 있었다”고 만족스러워 했다.

요정의 화려한 부활을 꿈꾸며
‘요정정치’라는 말이 있었듯 요정은 과거 군사정권시절 국가 정·재계의 거물급 인사들이 그들만의 로비나 밀회를 위해 이용하던 은밀한 장소로 통용되었다. 따라서 권력과 재력을 지닌 이들이나 고위층 간부들이 이용하는 초호화 술집으로 인식되었던 것이 사실이다.그러나 최근 강남과 강북 곳곳에는 비즈니스 요정이라는 이름으로 요정의 대중화를 시도하는 업소가 생겨나고 있다.사직터널을 지나 독립문 가기전에 자리한 요정 ‘D’는 여전히 전통 요정의 명맥을 유지하고 있는 몇 안되는 명소로 꼽힌다. 특히 현대식과 한옥의 멋이 조화를 이룬 건평 550평의 건물에 들어서는 순간 과연 국내 최대 요정의 명성이 전혀 무색하지 않음을 실감할 수 있다.일반요정이 방석형의 룸만 있다면 D요정은 좌식에 익숙지않은 외국인들을 위해 소파와 테이블로 구성된 스탠드식 룸도 갖추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그러나 과거에 화려한 명성을 누렸던 일부 요정은 경기침체에 따른 불황을 피하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다. 실제로 모 업소의 관계자는 기와집 한달 전세만해도 2,000~3,000만원이라며 비싼 전세값을 맞추기도 어렵다고 토로했다. 그는 이어서 “주방에서 일하는 사람만 12명이 넘는데, 그 인건비만 2,000만원에 달한다”고 말했다. 또 다른 업소의 대표 역시 “요즘 경기가 안좋아서 장사가 도통 안된다”며 인터뷰조차 꺼려했다.

요정 대표 인터뷰 “95% 이상 접대 손님”
“북창동식 쇼 기대하면 무리”국내 최대 크기를 자랑하는 요정에 다다른 순간 그 으리으리함에 기자는 말문을 잃고 말았다.실내로 들어서자 전통과 현대가 어우러져 룸살롱이나 일반 주점에서는 느낄 수 없는 색다른 멋이 느껴졌다. 외국인을 위해 준비했다는 현대식 스탠드룸에서 이태민 대표(가명)를 만났다.

- 요정만의 매력이 있다면.▲ 적절한 가격으로 최고급 접대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고급스럽고 격조높은 서비스를 누릴 수 있는 최적의 장소다.

- 주로 어떤 손님들이 오는가▲ 요정의 대중화를 시도한 결과 평범한 30대 중반이 많다. 95%이상이 접대를 위해 찾으며 예약제다.

- 도우미들은 어떤가.▲ 학벌수준이 높으며 기품있고 단아하다.

- 간혹 일부에서는 일반 업소 여성들과 비교해볼 때 외모가 떨어진다고 하던데.▲ 그렇지 않다. 한마디로 한복을 입느냐 미니스커트를 입느냐의 차이다. 아무래도 한복은 양장에 비해 몸매나 스타일이 가려질 수 밖에 없다.

- 도우미들이 얌전해서 재미가 없을거라는 편견도 있는데.▲ 확실히 일반 업소와는 다르다. 특히 북창동식의 쇼를 기대한다면 무리다. 우리 업소의 경우 일부 룸살롱 등에서 하는 변태식 쇼 등은 하지 않는다. 성의껏 술을 따르고 손님을 서브하며 분위기에 맞춰 가무를 하는 정도다.

- 건물외관과는 달리 현대식 룸(등받이 의자를 갖춘 스탠드식 룸)도 갖추고 있는데 .▲ 외국인을 위해 만들었으나 그들은 한국의 전통을 경험해보고자 오히려 좌식룸을 선호한다.

- 고객관리는 어떻게 하나.▲ 절대 바가지가 없다. 오시는 모든 손님께 내집같은 편안한 자리를 제공함과 동시에 풍부한 술과 음식으로 정성을 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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