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J 이후 24년만...” 이재명 대표 연임 독약론(毒藥論)
[일요서울ㅣ김준석 언론인] 이재명 전 대표가 화려한 대관식을 앞두고 있다. 차기 전당대회를 앞두고 또대명(또다시 대표는 이재명) 어대명(어차피 대표는 이재명)이라는 힘빠진 신조어가 유행할 정도다. 사상 초유의 당 대표 연임 도전에 나섰지만 아무도 그의 승리를 의심하지 않는다. 오히려 경쟁자조차 없어 찬반투표가 논의될 지경이다. 민주당 안팎에서 ‘이재명 일극체제’에 대한 우려가 적지 않지만 이 전 대표는 요지부동이다. 강성 팬덤인 개딸을 비롯해 친명계 모두 총선 민의를 앞세워 연임 불가피론을 강조하고 있다. 이 전 대표가 8.18 민주당 전당대회에서 또다시 당 대표에 오른다면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 이후 24년만의 야당 대표 연임이다. 정당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린 현대 정치에서는 유례를 찾기 힘든 일이다. 득실은 엇갈린다. 당 안팎의 관측 또한 제각각이다.
- 2026년 8월 임기. 2026년 6월 지선 공천권 행사 이듬해 3월 대선출마
- 3대 毒 국민 피로감, 중도층 약화, 사법리스크 방탄用
이 전 대표가 연임에 성공하면 차기 대선까지 당 주도권을 확보하면서 여야 차기구도에서 절대 강자로 군림한다. 22대 총선 압승으로 이미 ‘여의도 대통령’으로 불리는 상황에서 이 전 대표의 권력이 보다 막강해지는 것이다. 또 최대 아킬레스건으로 불리는 사법리스크 방어에서도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 다만 장점만이 있는 게 아니다. 대표직 연임에 대한 국민적 피로감이 커질 수 있다. 지나친 권력독식에 따라 역대 선거에서 캐스팅보트 역할을 해온 중도층 민심이 돌아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게다가 지나친 사법리스크 방어에 따른 역풍도 우려스럽다. 이 전 대표는 정치적 갈림길에 서있다. 2012년 대선 실패 이후 당권을 장악해 대선 재수에 성공한 문재인 전 대통령의 성공모델 아니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실패모델 둘 중 하나다.
‘마이웨이’, 당안팎 우려 전대출마 ‘또대명’ 확실
이 전 대표는 지난달 24일 민주당 최고위원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조금 전 최고위원회의를 마지막으로 민주당의 당 대표직을 사임하게 됐다”며 사실상 대표직 연임 도전을 공식화했다. 이 전 대표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연임 얘기를 할 때는 웃어넘겼는데 상황이 결국 웃어넘길 수 없는 상황으로 전개됐다”며 “국민들과 나라가 당면한 거대한 이 위기 앞에서 과연 민주당과 저 이재명은 어떤 길을 가야 할 것인지를 깊이 고민하겠다”고 언급했다. 이는 총선과정에서의 언급과는 180도 배치된다. 당시 이 전 대표는 “당대표가 정말 3D 중에서도 3D다. 누가 억지로 시켜도 다시 하고 싶지 않다”고 언급한 바 있다. 이에 민주당 정치원로인 유인태 전 국회 사무총장은 “중도확장에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지금 하는 일은 차곡차곡 감점 포인트를 쌓은 것”이라면서 “3년 후에 대통령을 바라본다고 하면 과연 제일 잘하는 건지는 모르겠다”고 꼬집었다.
2000년대 이후 여야 정당사에서 대표직 연임은 전례없는 일이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과 김종필 전 총리가 주도했던 이른바 ‘3김 정치’가 막을 내린 이후 여야를 가리지 않고 정당 민주주의가 확산됐기 때문이다. 물론 비상대책위원장 역할의 구원투수로 당 대표직을 여러 차례 맡은 경우는 있었다. 여야를 아우른 김종인 전 비대위원장이나 민주당의 전신 정당에서 단골 비대위원장이었던 문희상·정세균 전 국회의장의 사례가 대표적이다. 과거 차기 주자나 유력 정치인들이 대표직 연임을 시도하기는커녕 당권대권 분리 규정을 철저히 준수해왔다.
이 전 대표는 대표직 연임에 대한 당 안팎의 우려에도 마이웨이를 고수하고 있다. 국민의힘 전당대회는 한동훈·나경원·원희룡·윤상현 4파전 구도로 흥행이 고조되고 있다. 사실상 차기 라이벌들이 총출동해서 국민들의 눈과 귀를 사로잡고 있는 것이다. 여권과 비교하면 민주당의 8.18 전당대회는 말그대로 ‘무관심’ 전대다. 전대 흥행은 그야말로 빨간불이다. 전당대회 컨벤션 효과는 기대하기 어렵고 정책비전 경쟁도 무관심 모드다.
이는 2022년 8월 전대와도 비교된다. 당시에도 ‘이재명 대세론’이 압도적이었지만 ‘미스터 쓴소리’로 불렸던 박용진 전 의원을 비롯한 8명의 후보가 출마해 최소한의 정책·비전 경쟁을 펼쳤다. 민주당 전대의 흥행부진은 ‘해보나 마나’ 이 전 대표의 당선이 사실상 예약됐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민주당 전대는 이 전 대표의 단독 입후보 가능성을 고려해 찬반투표 또는 추대 방식을 거론했을 정도다. 도전자가 아예 없기 때문이다.
따져보면 이 전 대표의 대표직 연임은 예정된 수순이었다. 총선 이후 강성 친명계가 연임 분위기를 주도하면서 이 전 대표는 고심 끝에 수락한 모습을 연출했다. 앞서 당권대권 분리를 규정한 현행 당헌당규의 개정 움직임도 마찬가지다. ‘대선에 출마하는 당 대표 및 최고위원은 선거 1년 전 사퇴해야 한다’고 규정돼 있는데 ‘상당한 사유가 있을 경우 사퇴 시점을 달리 정할 수 있다’는 단서 조항이 추가됐다. 이 전 대표가 차기 전대에서 당 대표에 선출된다면 2027년 3월 21대 대선 1년 전인 2026년 3월까지 물러나야 한다. 차기 대선의 분수령은 2026년 6월 지방선거 공천권 행사가 불가능해진다. 이 전 대표가 지방선거 공천권까지 행사한다면 민주당 대선경선에서 압도적으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할 수 있다. 22대 총선 불출마를 선언하고 정계은퇴를 선언한 우상호 전 의원은 이와 관련, “이 전 대표가 연임하는 게 대권에 도움이 되는지 우려스럽다”며 “당 대표를 계속하면 진영에 가둬진다”고 우려했다.
당권장악 차기고지 우위 점령 vs 국민적 피로감 중도층 이탈 우려
관심사는 이 전 대표의 대표직 연임 도전이 가져올 나비효과다. 전대가 요식행위에 불과한 만큼 이 전 대표의 당선은 기정사실이다. 이는 민주당 역사에서 두 번째다. 과거 김대중 전 대통령이 지난 1995년 9월부터 2000년 1월까지 새정치국민회의 총재를 지낸 바 있다. 문제는 22대 총선 이후 가속화하고 있는 ‘이재명 일극체제’가 상상 이상으로 가속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민주당의 8.18 전대에서는 이 전 대표의 대항마가 전무하다. 한때 당 일각에서는 전대 흥행을 위해 유력 중진들의 이름이 거론되기도 했지만 이 전 대표가 연임 도전을 공식화하면서 사실상 자취를 감췄다. 한때 당 일각에서 전대 흥행카드로 5선 중진인 이인영 의원과 민주당 험지인 부산에서 살아돌아온 전재수 의원의 도전 가능성이 제기됐지만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다.
이 전 대표의 꿈은 누가 뭐래도 차기 대통령이다. 민주당 전대 승리는 이 전 대표의 차기 대관식이다. 사실상 2027년 민주당 차기주자로 이 전 대표를 선출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 전 대표의 입장에서는 차기 라이벌을 사실상 제거하면서 유일무이한 차기주자로서의 지위를 구축하게 된다. 또 대장동·허위사실 공표·성남FC·대북송금 의혹 등 이른바 사법리스크 방어에서 보다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20%대의 낮은 지지율로 사실상 레임덕인 상황으로 고려하면 현 정부 중후반으로 갈수록 검찰권력의 파워 또한 약화될 수밖에 없다. 이 전 대표가 사법리스크에서 자유로워진다면 차기 대선행보는 보다 탄력을 받을 수 있다.
이밖에 민주당이 이 전 대표 중심의 단일대오로 정권탈환에 나설 수 있는 것도 강점이다. 과거 친노·친문패권주의를 둘러싼 당 내분에 따른 봉숭아학당에서 벗어나 윤석열정부를 강력 견제하기 위해서는 일사분란한 단일대오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반대로 대표직 연임은 ‘독이 든 성배’라는 비판도 나온다. 이 전 대표가 절대권력을 보유한 민주당 대표로 4년간 연임한다면 국민적 피로감이 커질 수밖에 없다. 더 뼈아픈 점을 대표직을 연임할 경우 사법리스크 방어를 위한 방탄정당 프레임에서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는 우려다. 22대 총선 압승으로 벌어놓은 점수를 까먹을 수도 있다는 경고다. 총선 압승의 원동력이었든 수도권과 중도층 민심이 차기 대선국면에서 돌아서면서 마이너스 효과가 커질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밖에 당내 민주주의 후퇴도 우려된다. 민주당은 22대 총선 공천 과정에서 ‘친명횡재 비명횡사’로 홍역을 치른 바 있다. 이 전 대표와 가까운 측근들은 텃밭에 공천을 받았고 친문계나 비명계는 공천에서 탈락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만일 이 전 대표가 연임에 성공하고 친명계가 대거 포진한 친위부대 중심의 지도부가 구성될 경우 당 안팎에서 이견 제기는 어렵다. 20대 국회 시절 민주당의 대표적인 소장파 그룹이었던 ‘조금박해(조응천·금태섭·박용진·김해영)’의 목소리나 여야의 대표적인 소장파 그룹이었던 남원정(남경필·원희룡·정병국)이나 천신정(천정배·신기남·정동영)의 자취나 흔적이 아예 제거되는 셈이다. 당내 민주주의의 분명한 후퇴다.
대표직 연임 찬반 여론 팽팽…대표직 이후 더 분수령
여의도에서 벗어나면 여론은 심상치 않다. 이 전 대표의 대표직 연임을 둘러싼 찬반양론은 팽팽하다. 여야 지지층은 예측 가능한 결과가 나왔지만 중도층 민심은 확연히 달랐다. 지역적으로도 마찬가지였다. 민주당 텃밭인 호남·제주(찬성 56.3%, 반대 34.3%)에서 연임 찬성 여론이 높았을 뿐 서울(반대 48.5%, 찬성 39.1%)과 인천·경기(찬성 45.4%, 반대 43.6%) 등 역대 선거의 풍향계였던 수도권은 반대 여론이 더 높거나 팽팽했다.
뉴시스가 최근 에이스리서치에 의뢰해 실시한 여론조사(표본오차 95% 신뢰수준에서 ±3.1%포인트)에 따르면, 이 전 대표의 당 대표직 연임에 대해 ‘찬성하다’는 응답은 42.1%, ‘반대한다’는 응답은 46.4%로 각각 나타났다. 여야 지지층으로 살펴보면 극명하게 엇갈련다. 민주당 지지층(찬성 80.3% vs 반대 11.6%)은 연임 도전 찬성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반면 국민의힘 지지층(반대 73.6% vs 찬성 16.5%)은 연임 반대 도전 반대 여론이 압도적이었다. 주목할 점은 지지 정당이 없는 중도층 성격의 무당층은 반대(53.1%) 여론이 찬성(28.2%)보다 2배 가량 높았다.
대표직 연임을 둘러싼 찬반양론에도 민주당은 이재명 일극체제가 보다 강화되고 있다. 친명계 최대 조직인 더민주전국혁신회의가 최대 계파로 떠오른 가운데 개딸로 불리는 강성팬덤의 목소리도 날로 커지고 있다. 추미애 의원이 낙선한 국회의장 경선 파동이 대표적이다. 차기 전대를 앞두고 이러한 기조는 더욱 커지고 있다. 사실상 이 전 대표의 연임이 확정된 가운데 지도부 입성을 노리며 최고위원 도전에 나선 후보들은 비전과 가치보다는 친명 마케킹에만 열중인 상황이다. 지난 전대의 경우 친문 비명계인 고민정 최고위원이라도 있었는데 이번 전대에는 순도 100%의 친명 지도부 구성이 유력하다. 오죽하면 친명계 좌장인 정성호 의원마저 “최고위원으로서 민주당을 어떻게 혁신하고 차기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한 비전과 가치를 제시해야 하는데 이 전 대표와 가깝다는 이야기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꼬집을 정도다.
여야 사정에 정통한 한 정치평론가는 “대표직 연임 도전이라는 이재명 전 대표의 고집과 무리수는 사법리스크 방어라는 측면을 고려하면 어느 정도의 불가피성은 있다”면서도 “절대 과반을 보유한 민주당 수장으로 지방선거 공천권까지 행사할 경우 차기 대권에서 가장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지만 국민적 피로감과 중도층의 이탈로 최악의 선택이 될 수도 있다”고 경고했다. 아울러 “제왕적 총재로 불린 3김 정치 이후 정당 민주주의의 확산을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당권대권 분리는 여야 모두의 분명한 원칙이자 기조였다”며 “여의도 정치시계를 거꾸로 되돌리는 이 전 대표의 선택은 예측불허의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문재인의 성공모델보다는 이회창의 실패모델로 귀결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