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기생 장은실2
2. 네가 기방 법도를 아느냐?
은실은 더 참지 못하고 중석의 손을 거세게 뿌리치며 일어나 앉았다.
“호오, 이년 보아라.”
중석이 갑자기 은실의 뺨을 후려쳤다.
“으악!”
얼마나 세게 때렸는지 은실이 비명을 지르며 옆으로 나둥그러졌다.
“이년아 네가 요조숙녀라도 되는 줄 아느냐? 내 기방 출입 3년에 너 같은 년 첨 본다.”
중석은 술잔을 들어 은실의 치마에 확 쏟았다.
“이년아 네 아랫도리로 이 술이나 받아 처먹어라!”
중석이 화난 목소리로 행패를 부렸다.
은실은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생각에 다시 벌떡 일어나 앉아 목소리를 높였다. 정색을 하고 호통을 쳤다.
“성중석! 왜놈! 그거나 빨고 사는 주제에 무슨 행패냐? 네가 기방의 법도를 아느냐?”
은실의 한마디에 중석은 말문이 막혀 잠시 동안 가만히 있었다. 그러나 곧 폭발하고 말았다.
“이년이 정말 뒈지고 싶은 모양이구나. 네 이년!”
중석은 안주상을 걷어차는가 싶더니 곧이어 은실의 허리를 두 발로 힘껏 내질렀다.
“아이고, 사람 죽이네! 잘됐다. 오늘 너 죽고 나죽자!”
은실이 일어서서 중석의 멱살을 휘어잡았다. 이판사판이라 생각하고 이를 악 물었다.
“요년, 오늘 한번 죽어봐라!”
중석이 주먹으로 사정없이 은실의 얼굴을 치기 시작했다. 금세 코피가 쏟아져 물 항라 연두저고리가 피로 얼룩졌다.
“으윽...”
은실이 정신을 잃었다.
“아이고 이게 무슨 일이오.”
밖에 있던 월선 큰 언니와 집사가 뒤늦게 방안의 난장판을 알고 뛰어 들어와 두 사람을 뜯어 말렸다.
“서방님, 참으세요. 서방님, 제발...”
월선은 거의 사색이 되어 중석과 은실 사이를 막아서며 싸움을 말렸다
.“이 늙은 여우가 무슨 개소리 하는 거야. 내가 지금 참게 생겼냐?”
중석은 월선의 뺨도 후려쳤다. 어머니뻘 되는 월선에게 서슴없이 양쪽 팔을 휘둘렀다.
그러나 월선은 맞으면서도 중석의 앞을 가로 막고 서서 싸움을 말렸다.
“서방님, 모두가 이 늙은이의 잘 못이니 참으세요.”
월선은 두 손을 모아 비는 시늉을 했다. 월선의 양쪽 뺨이 금세 부풀어 올랐다.
“이 못된 놈아... 너는 에미도 없느냐?”
정신을 차린 은실이 발버둥을 치며 악다구니를 퍼부었다. 그러나 다른 방 기생들이 몰려와 은실이를 끌고 나가는 바람에 싸움은 일단 끝이 났다.
“서방님, 고정 하십시오. 내 그년을 불러다 꿇어앉히고 손이 발이 되도록 빌게 하겠습니다.”
월선은 얼얼한 뺨을 만질 틈도 없이 싹싹 빌면서 중석을 자리에 앉혔다.
월선은 성중석의 위세를 알기 때문에 눈앞이 캄캄했다. 이 망나니가 이런 창피를 당했으니 은실의 가시밭길 앞날이 눈에 불을 보듯 훤했다. 그뿐 아니라 이 해동원도 무사히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일본 관리를 앞세워 문을 닫게 할 수도 있다. 그렇지 않으면 고급 손님들의 발길을 끊게 만들 수도 있다.
성중석의 일본 이름은 사꾸라이 사브로(櫻井三郞)이다. 일본 천황으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은 중석의 할아버지가 창씨개명하면서 붙인 성과 이름이었다.
‘사꾸라이’는 일본의 국화인 ‘벚꽃 나무 밑의 우물’이란 뜻이고 ‘사부로’는 3남이란 뜻이다.
중석의 맏형 대석(大奭)은 달성군청 과장으로 있었고 둘째형 풍석(豊奭)은 일본에서 학교를 다니고 있었다.
삼형제 중에 중석은 성질이 포악하여 대구 유흥가에서는 아무도 맞서지 못했다.
성중석 3형제의 아버지 사꾸라이 마사오(櫻井 正雄)는 본명이 성백준으로, 1910년 대한 제국이 일본에게 강점당한 직후 동경에서 돌아와 일본 관리들에게 적극 협력하여 마침내 자작 작위까지 받은 거물이었다.
성백준이 한창 날리던 1920년대 월선은 대구의 뭇 한량의 가슴을 두근거리게 한 군계일학의 기생이었다.
보통 기생 값은 한 시간에 1원 50전이었으나 월선은 2원 50전을 받았다. 기생들의 꽃값은 출장을 나간 요정에서 권번으로 보냈다. 권번에서는 수수료와 인력거 요금 등을 떼고 월급제로 기생에게 지불했다. 권번에 소속되지 않고는 기생 노릇을 제대로 할 수가 없었다.
기생이 되려면 상당한 지위에 있는 주위 사람의 추천을 받아 어릴 때 입학해야 한다. 몇 년 동안 노래, 춤, 예절, 서예를 배우고 관청의 심사를 거쳐 기생 자격증을 따게 된다.
달성 권번의 경우 졸업할 때가 되면 대구부청 일본인과 조선인 관리로 구성된 심사위원회의 심사를 거처야 한다.
인물은 출중한데 노래나 춤 같은 재주가 약한 기생은 화초(花草)기생이라고 하여 연회나 회식 자리에 장식용으로 등장한다. 화대는 물론 다른 기생과 차이가 있었다.
월선은 성백준의 청을 거절하지 못하고 기생첩이 되어 한때는 사꾸라이 하루꼬로 이름을 바꾸기도 했다.
세월이 흘러 월선이도 늙고 시들어 화류계를 물러났다. 이제 퇴기들의 마지막 길인 요정 얼굴 마담노릇을 하고 있었다.
기생 노릇을 하다 보면 온갖 수모를 다 겪게 되지만 모두 입술을 깨물며 참아왔다.
이날 은실이처럼 한량과 맞서는 일은 있을 수 없는 실수였다. 더구나 서슬이 시퍼런 세도가 도련님을 망신시켰으니 이제 기생 세계에서 떠날 수밖에 없었다.
월선이 중석의 아버지의 기생첩이었으니 중석은 비록 생모는 아니지만 어머니뻘 되는 사람에게 행패를 부린 셈 이다. 그러나 월선은 그런 수모를 한두 번 겪고 살아온 사람이 아니기 때문에 속으로만 설움을 삼켰다.
월선이 자신은 참을 수 있었지만 은실이가 불쌍했다. 월선은 은실이를 인물도 뛰어나고 머리에 먹물도 제법 들어 기생 세계에서 일생을 마치기는 아까운 아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런 일을 저질러 놓았으니 안타깝기 그지없었다.
3. 벌집 건드린 화류계
“서방님, 모두가 이 늙은이 불찰입니다. 제발 화 푸시고 너그러이 봐 주세요.”
아직도 씩씩거리며 분을 삭이지 못하고 서 있는 중석을 보고 월선이 싹싹 빌었다.
“얘들아, 여기 술상 새로 봐 올리고 황매 좀 들어오라고 하여라.”
월선이 바깥을 향해 소리쳤다. 황매란 중석이가 좋아하던 기생 조합 소속 기생인데 마침 해동원에 와 있었다. 중석은 황매가 인물은 좀 빠지지만 밤일을 썩 잘해 좋아했다. 특히 황매의 혀 놀림은 중석을 까무러치게 한다고 소문이 나있었다. 곧 이어 두 청년이 마주 든 주안상이 들어왔다.
“어느 미친놈이 이런 대접 받고 술 마시겠어.”
중석은 새로 들어온 주안상을 다시 발로 걷어차 엎어 버리고 밖으로 휑하니 나가버렸다. 그렇게 좋아하던 황매한테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다.
이튿날 월선은 하서동 달성 권번으로 농산 권번장을 찾아갔다. 같은 시대 명기로 이름을 날렸지만 농산과 월선은 격이 달랐다.
월선은 미인 형으로 사교에 능하다면, 농산은 재주가 뛰어나고 머리를 잘 쓰는 명기였다. 놀기만 좋아하는 한량들은 월선을 찾았고, 거물급 관리나 갑부, 지식인들은 농산을 찾았다. 1930년대 초반을 줄음 잡은 쌍벽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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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이상우는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화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 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 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