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기생 장은실8
“은실이 돈을 들고 어리둥절해하자 안내양이 재빨리 다가왔다.”
“중석은 은실이가 새싹에 걸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냥 웃기만 했다.”
“없어요. 자, 마권을 사야지, 3시 5분전이오.”
중석이 갑자기 벌떡 일어섰다.
“은실씨도 마권 사요.”
“전 아무것도 모르는데요. 돈도 안 가지고 왔고요.”
은실이 당황스러워하자 중석이 빙긋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돈 꿔 줄게요. 나중에 따거든 본전만 갚고요. 못 따면 그만이고.”
“마권 한 장에 얼마예요?”
은실이 손지갑을 열고 들여다보며 중석에게 물었다. 웬만하면 중석의 돈을 받을 생각이 없었다.
“한장에 2원. 내가 10원 꿔 줄 테니 다섯 장 사서 해 보시지오.”
은실은 지갑 안에 1원 50전이 들어 있다는 것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알고 있었다.
“자, 받아요.”
중석이 5원짜리 종이 돈 두 장을 주었다.
“그럼 10원 꾸는 거예요.”
은실이 미소를 띠며 말했다. 마음에 내키지 않는 일이지만 중석의 성의를 무시할 수 없어 하자는 대로 따라 했다.
“어디서 사죠?”
은실이 돈을 들고 어리둥절해하자 안내양이 재빨리 다가왔다.
“절 따라 오시지요.”
은실이 안내양을 따라 일어서자 중석이 어이없다는 듯이 쳐다보았다.
“아니, 어느 말에 걸 것인지도 정하지 않고 덮어놓고 가면 어떻게 해요?”
“모두 운에 달린 것 아녜요?”
“운에 달려? 하하하. 그렇기도 해요. 하지만 어느 말이 유망하다는 것은 알고 마권을 사야지요. 이문은 박하겠지만 마스오라를 사는 게 안전해요.”
“저는 아무도 안 걸 것 같은 말에 걸 작정인데요. 어차피 제 돈도 아니고...”
은실의 무모한 행동에 중석은 더 이상 말을 하지 않았다.
은실은 마권으로 단돈 십전도 벌 생각이 없었다. 조금 전에 출주마 평에 ‘새싹’이라는 말이 있었다. 모두 일본 이름인데 오직 한 말만 조선말 이름을 가지고 있어서 그 말을 살 생각이었다.
마권 판매 창구에서 안내양이 물었다.
“마스오라 사실 거죠?”
“아닌데요. 새싹 다섯 장 사 주세요.”
“예? 새싹이라고요?”
안내양이 놀라 은실이를 옆으로 데리고 가서 말렸다.
“제가 이런 말씀 드리면 안 되지만요, 사꾸라이 상 손님이니까 드리는 말씀입니다. 오늘 출주마 중에 꼴찌가 분명하다고 예상된 말이 새싹입니다. 다시 생각해 보세요. 새싹에 10원을 몽땅 건다는 것은 돈을 그냥 버리겠다는 뜻입니다.”
“괜찮아요. 전 도박으로 돈 벌 생각은 없고요, 새싹이 불쌍해서 그냥 주고 싶어서 그래요.”
“후회하지 않겠습니까?.”
은실은 새싹에 10원을 걸었다.
중석은 은실이가 새싹에 걸었다는 이야기를 듣고 그냥 웃기만 했다.
“처음에 훈련을 잘 받아야 돼요.”
드디어 2천 7백미터 경주가 시작되었다. 새싹은 출발부터 꼴찌를 면치 못했다. 다리에 살이 오르고 목이 굵어 미련하게 보이는 말이었다. .
“새싹은 오늘 출전하는 말 중에서 가장 둔해 둔마새싹이라고들 하지요. 1등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요. 하지만 불쌍한 말과 기수에게 동냥 한푼 준 걸로 생각하고 꼴찌로 들어오더라도 너무 맘 상하지 말아요.”
중석이 웃으면서 말했다. 은실의 실수를 덮어주려는 심성이었다. 성질 나쁘기로 소문난 중석에게 그런 면도 있었다.
드디어 문이 열리고 말이 달리기 시작했다. 우승 후보인 마스오라는 처음부터 앞장을 서지는 않았다. 중간쯤에서 달리기 시작했다.
“마스오라, 달려 달려!”
벌집 쑤신듯 관람석에서 아우성이 쏟아져 나왔다.
“마스오라, 일등 못하면 뿌리를 뽑아버릴 거다.”
“이 사람아 마스오라는 암놈이라서 원래 뿌리가 없어.”
9. 일곱살 낯붉힌 첫사랑
아우성과 욕설과 탄성이 뒤섞인 관람석은 아수라장이었다.
1천 미터를 달리자 마스오라가 서서히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마스오라는 드디어 3, 4등 사이에서 달리기 시작했다.
은실이의 말인 새싹은 예상대로 꼴찌를 면하지 못했다.
마스오리가 마침내 1등으로 나서자 관람석의 아우성은 절정에 달했다. 모두가 일어서서 주먹을 휘두르며 떠들었다.
“새싹이 꼴지는 면하게 될 것이오. 3번 마와 7번 마가 부상인 것 같으니까 둘 중 한 마리가 꼴찌를 하게 될 거요.”
중석이 은실이를 위로하며 웃어보였다.
“부상 입은 걸 어떻게 아세요?”
“늘 보던 사람은 알지요. 3번과 7번은 걸음걸이가 평소와 달라요.”
두 말은 정말 뒤로 처지기 시작했다. 새싹은 그 덕에 6등 자리로 올라왔다.
마스오라가 줄기차게 앞장서서 차고 나갔다. 이제 남은 거리는 1천여미터였다. 마스오라와 새싹의 거리는 1백 미터가 훨씬 넘게 벌어져 있었다. 우승 가망은 전혀 없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이상한 일이 일어났다. 6번으로 달리던 은실의 새싹이 갑자기 무서운 속력을 내면서 앞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와아, 와아. 새싹이 미쳤다.”
관중석에서 탄성이 쏟아졌다.
“아니. 저런, 저런...”
중석도 탄성을 올렸다.
“저 기수가 미쳤어. 은실씨, 저 새싹 기수 좀 보아요.”
은실이 기수를 자세히 보았다. 말채찍으로 말의 엉덩이를 치는 것이 보통인데 새싹 기수는 말의 눈을 후려치고 있었다. 눈을 얻어맞은 새싹은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5등에서 4등으로 다시 3등으로....
“새싹아 달려라!”
은실이도 흥분해서 목이 터지게 고함을 질렀다.
새싹은 갑자기 미친 듯이 달려 마침내 선두의 마스오라와 나란히 뛰게 되었다.
“새싹! 새싹!”
경마장은 흥분의 도가니가 되었다. 미친 새싹은 마스오라의 2배나 되는 속력을 내는 것처럼 보였다.
“마스오라, 안 돼! 안 돼!”
드디어 골인. 새싹이 반 머리 차이(말머리 하나 길이를 골인 단위로 삼는다)로 마침내 우승을 했다. 대구 경마 사상 처음보는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 것이다.
“은실 씨 축하해요. 대박 났어, 대박!”
중석이 은실의 손을 덥석 잡으며 기뻐했다.
은실은 처음에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잘 몰랐다. 사방에서 미친 듯이 떠드는 통에 정신이 얼떨떨할 뿐이었다.
장내 마이크로 성적 발표와 배당금 발표가 울려 퍼졌다.
“우승, 새싹. 기수 김용백. 2등 마스오라, 기수 스즈끼 다께오, 3등 후지산, 기수 사토 가즈히도.”
김용백은 마부 출신으로 이름 날리던 기수였다.
이어서 은실이 기절할 정도로 놀랄 발표가 이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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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이상우는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화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 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 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