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기생 장은실11

2025-06-05     이상우 작가

“은실은 남녀의 은밀한 일을 몇 해 전에 본 일이 있었다.”
“어머니는 서둘러 안방 문을 닫고 은실이를 곁에 눕혔다.”
“앗! 남자는...”

“종심이 아버지 오 주사 아냐?”
경욱이 나직하게 말했다. 오만상을 찌푸려 가며 배 밑의 여자에게 열심히 엉덩방아를 찧고 있는 남자는 분명히 오형철 주사였다. 오 주사는 면사무소 보조 서기로 있는데, 동네 사람들은 오 주사라고 불렀다. 
"여자는 누굴까?”

은실은 어른이 된 남녀가 은밀히 하는 일이란 것은 무엇인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갑자기 마음이 이상해지고 가슴이 콩콩 뛰기 시작했다. 경욱이 살그머니 은실의 손을 잡았다. 은실은 손을 살그머니 뺐다. 왠지 쑥스럽고 이상했다.

“히히히. 저거 뭐하는 것인지 알아?”
한참만에야 경욱이 나직하게 말했다.
“왜 저러는데?”

은실은 당황스럽고 괜히 부끄러워 얼굴이 빨갛게 물들었다. 왜 남녀가 그런 일을 해야 하는지는 잘 몰라도 그것이 부끄러운 일이란 생각은 하고 있었다.
경욱은 소리를 죽여 웃었다. 자기는 무엇을 하는지 다 안다는 투였다.
은실과 경욱은 숨을 죽인 채 그들의 일이 끝나기를 기다렸다.
은실은 남녀의 은밀한 일을 몇 해 전에 본 일이 있었다.

은실의 고향은 대구에서 좀 떨어진 경상남도 산청이었다. 지리산 자락과 황매 산 사이의 골짜기에 있는 차황면 불골이라는 데서 자랐다. 한자로는 부리(傅里)라고 하는데 옛날부터 불골로 불러온 마을이었다. 이웃 마을에 있는 종심이와 부잣집 아들이었던 황경욱과 한동네였다. 그는 일찍 대구로 유학을 떠나고, 은실이 혼자 쳐져 있다가 나이 열 살이 넘어서 무작정 가출하여 대구로 갔었다.

서당 훈장 출신인 은실의 할아버지 장참봉이 신학문을 반대하여 아버지도 대처에 있는 학교에 가지 못했다.
아버지는 딸이 대구에서 기생이 된 것을 안다면 기절초풍할 것이다. 당장 머리채 끌고 고향으로 데리고 가서 삭발하고 방안에 가두었을 것이다.

은실의 시골집은 안채와 사랑채로 구분되어 있었다. 밥술 정도 먹고 행세깨나 하는 집안은 대개 안채와 사랑채로 구분된 집에서 살았다. 안채는 어머니와 결혼하지 않은 식구들이 살고, 사랑채에는 아버지가 거처했다. 안채와 사랑채 사이에는 지게문이라는 쪽문이 있어서 그 문을 통해 안으로 들어오거나 사랑채로 나갈 수 있었다. 

은실은 안채에서 언제나 어머니와 한방에서 자곤 했다. 그런데 어느 날 밤 자다가 깨어보니 곁에서 자야 할 엄마가 보이지 않았다. 뒷간에 갔으려니 하고 한참 기다렸으나 들어오지 않았다. 은실은 혼자 있다고 생각하니 불안해지기 시작했다. 

창문에는 달빛이 훤히 비치고 있었다. 창호지 밖에서 마당에 있는 감나무가 바람에 흔들리자 나뭇가지의 검은 그림자가 춤을 추었다. 은실의 눈에는 산발한 귀신이 춤을 추는 것처럼 보였다.

은실은 무서워 이불을 푹 뒤집어쓰고 엄마를 기다렸다. 그러나 엄마는 좀체 오지 않았다. 은실은 살그머니 일어나 대청마루로 나가 보았다.
사방은 쥐 죽은 듯이 고요하고 마당은 달빛을 받아 하얀 명주 폭을 깔아 놓은 것처럼 곱게 보였다. 두꺼비 한 마리가 자기 덩치보다 더 큰 다른 두꺼비를 등에 업고 하얀 마당 위를 엉금엉금 기어가고 있었다. 두꺼비들이 달밤의 정사를 즐기는 모습을 어린 은실이가 이해할 리가 없었다. 

은실은 마당에 내려섰다가 쪽문을 열고 사랑채로 가보았다.
아버지의 방문 앞에 이르렀을 때 섬돌 위에 엄마의 흰 고무신이 놓여있는 것을 보았다.
은실은 반가워 얼른 사랑방 문고리를 잡았다. 그때였다. 엄마의 가녀린 신음소리와 아버지의 가쁜 숨소리가 문틈으로 새어 나왔다.

12. 하얀 달밤 엄마의 신음소리 

은실은 살그머니 방문을 열고 방안을 들여다보았다. 은실은 놀라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보름달이 창문을 비쳐 방안의 모습이 거의 분명하게 보였다. 아버지가 엄마를 짓누르며 몹쓸 짓을 하고 있었다. 아버지는 밑에 깔려 몸부림치는 엄마를 사정없이 엉덩방아질로 짓눌렀다. 시뻘건 아버지의 엉덩이가 달빛 아래 번득거렸다. 엄마가 괴로워 신음소리를 내는데도 아버지는 숨을 헐떡이며 계속 괴롭히고 있었다. 엄마를 죽이려는 것 같았다.
“엄마!”
은실은 엄마를 부르며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눈물이 주루룩 쏟아졌다.
“아부지. 엄마 죽는다!”

은실은 울부짖기 시작했다.
“은실아.”
놀란 것은 엄마도 마찬가지였다. 황급히 속곳을 치켜 올린 엄마가 달려와 은실을 껴안았다.
“어험!”
아버지도 바지를 추스려 입으며 헛기침을 했다. 은실의 눈에는 아버지가 나쁜 도깨비처럼 보였다. 밤중에 엄마를 데려다가 그렇게 짓뭉갤 수가 있단 말인가? 
“은실아. 왜 자지 않고 나왔노?”

어머니는 은실을 쓸어안고 쪽문을 지나 안방으로 들어갔다. 은실은 엄마 품이 갑자기 낯설게 느껴졌다. 엄마 품에 안기면 어릴 적의 젖 냄새에 젖어 마음이 편안해 지던 옛날과는 달라 진 것 같았다.
“무슨 일이오?”
안채 건넌방에서 자던 오빠 용주가 눈을 비비며 섬돌로 내려섰다. 잠귀가 밝은 용주는 선  잠을 깬 듯 눈시울 자꾸 비볐다.

“아무 일도 아니다. 들어가서 자거라.”
어머니는 서둘러 안방 문을 닫고 은실이를 곁에 눕혔다.
“아부지가 왜 그랬어? 엄마 아픈데 없어?”
은실은 어느새 울음을 그치고 엄마를 걱정했다.
“응, 엄마가 배가 아파 주물러 달라고 한 거야.”
“아냐. 아부지가 엄마를 죽이려고 했던 것 아냐.”

그 뒤에도 자다가 손을 뻗어 엄마를 더듬어 본 일이 여러 번 있었다. 엄마가 없는 날이 한 달에 서너 번 씩 있었다. 그럴 때 마다 은실은 사랑방으로 살금살금 걸어가서 문 앞에서 귀를 기울였다. 전에처럼 어마의 신음 소리는 듣기 어려웠지만 옷을 만지는 부스럭거리는 소리는 여러 번 들었다. 
그 때 아버지가 배 아픈 엄마를 만져주었다는 대답이 어쩐지 믿기지 않았다. 은실은 분명 무슨 짓인가를 했는데 죽이려고 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했다.

어느 날 은실은 마음속에 꼭꼭 묻어 두었던 사랑방의 엄마 아빠 이야기를 소꿉장난을 하다가 오빠 용주한테 이야기했다.
오빠는 웃는 것도 우는 것도 아닌 묘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한참동안 말이 없다가 대답했다.
“봉 서방이 그러는데...”

봉 서방이란 은실이네 집 총각 머슴이었다.
“그게 아기 만드는 거래. 동생이 또 생길라나 봐. 딴 데 가서 그 이야기 하지 마라. 챙피하게...”
오빠가 적잖게 당황하는 것으로 보아 그 짓이 비밀스러운 것이라고 생각했다. 오빠가 말한 동생을 만드는 일은 아니 것 같았다. 아이들은 늘 읍내 다리 밑에서 주워 왔다고 하지 않았나.
그러나 시간이 지날수록 그 짓이 남녀 간에 일어나는 비밀스럽고 재미나는 일이라는 것은 어렴풋이 짐작했다.

종심이네 대나무 밭에서 일어난 오 주사의 일은 좀처럼 끝나지 않았다.
“저거 뭐하는지 나 알아.”
은실이가 옛일을 떠 올리며 경욱에게 나직하게 말했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화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 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 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