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산·고령화시대, 지역이 答하다-전남편] “출산율 0명대 시대, 희망은 지역에 있다”

2025-07-01     현성식 객원기자

출산율 0.7명대, 고령화율 18% 돌파. 대한민국이 인구절벽 시대에 진입한 지 오래다. 출생보다 사망이 많은 자연감소는 전국 곳곳의 시군구에서 현실이 됐으며 학교가 폐교되고 병원이 사라지는 지방소멸은 이제 미래가 아닌 현재의 과제다. 이같은 인구 위기 대응은 더 이상 중앙정부의 몫만은 아니다. 기초와 광역 지자체가 현장에서 마주하는 인구 문제는 더욱 구체적이며 절박하다. 각 지자체는 청년 유입, 정주 여건 개선, 돌봄 확대, 일자리 창출 등 종합적 전략을 세워 생존을 넘어 '지역 재생'을 시도하고 있다. 본지는 이번 기획 시리즈를 전국 지방자치단체장의 인구 대응 전략을 르포 형식으로 밀착 조명해 본다. 정책의 방향성과 효과, 시민의 반응까지 함께 짚으며 현장의 움직임이 국가의 인구정책을 어떻게 보완하고 확산시킬 수 있을지를 모색한다. [편집자주]

저출산 고령화 포럼 인삿말하는 김영록 전남지사. 뉴시스

전남도 지방소멸? 우린 청년으로 소생한다
소멸 위기 넘은 지자체, “그들은 다르게 움직였다

[일요서울ㅣ현성식 객원기자] 전라남도 고흥군 점암면의 한 마을. 5년 전만 해도 아이는 물론이고 젊은 얼굴조차 보기 힘들던 이 마을에 최근 들어 신기한 풍경이 펼쳐지고 있다. 폐교 위기를 넘겼던 한 초등학교 앞 작은 공터엔 유모차를 끌고 산책을 나선 젊은 엄마들이 웃으며 담소를 나누고, 마을 회관 옆 허름한 창고를 개조한 카페에선 직접 재배한 허브로 만든 차를 파는 청년 바리스타가 분주히 손님을 맞는다.

이 마을 주민 김순례 씨(68, 가명)한동안 노인정도 문을 닫을까 싶었는데, 요즘은 애기들 울음소리가 들리니 살 것 같다며 활짝 미소를 짓는다. 그 변화의 출발점엔 전라남도가 추진 중인 청년 농촌 정착 지원 사업이 있다.

전남도는 지난 2021년부터 전남에서 살아보기, 청년 귀농인 육성, 로컬 일자리 연계 등 일명 청년 정착 패키지를 본격 가동했다. 단순히 땅을 주거나 귀농 교육만 시키던 기존 방식과는 다르다.

전남도 인구청년정책과 관계자는 청년이 농촌에 머무르려면 단지 생계 수단이 아니라 삶 전체를 설계할 수 있어야 한다면서 “6개월~1년의 임시 체류부터 주거, 농지, 창업, 돌봄까지 종합적으로 지원하는 게 핵심이라고 설명했다.

사업 대상은 만 18~39세 청년. 이들에게는 정착 준비 기간 동안 주거 공간, 생활비, 멘토 농부와의 연계, 그리고 창업이나 영농 기반을 위한 자금(최대 5000만원까지)이 제공된다. 이후에는 지역 내 로컬 비즈니스 창출(협동조합, 카페, 마을기업 등)로 연결되도록 지원 체계가 이어진다.

전남. 임시체류부터 주거, 농지, 창업, 돌봄까지 종합적

해남군 황산면에 정착한 청년 귀농인 강지형 씨(33, 가명)는 아내와 함께 작은 농가카페와 약초 텃밭을 운영하고 있다. 서울에서 영상디자인 일을 하던 그는 회사에선 하루 12시간 넘게 일하고도 허무했는데, 여기선 아이랑 밭에서 뛰놀 수 있다며 환히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는 처음 이주했을 때 동네 어르신들과 밥을 같이 먹고, 마을 일손을 도우면서 함께 산다는 느낌을 받았다고 한다. 강 씨는 단순히 땅만 주는 게 아니라, 관계망을 연결해준 게 이 정책의 진짜 힘이라고 덧붙였다.

그의 아내 김연아 씨(31, 가명)아이가 태어나고 지역 보건소에서 아이돌보미까지 바로 연계되더라면서 복잡한 서울보다 여기가 더 안전하고 따뜻하다고 느껴진다고 말했다.

전남도에 따르면 지난 2021~2024년 약 1500여 명의 청년이 이 사업을 통해 농촌으로 유입됐다. 이 중 70% 이상이 실제로 장기 정착 의사를 밝히고 있으며 일부는 마을 단위의 공동 창업에 참여하거나 지역 청년단체를 이끌기도 한다. 특히 청년 1인 유치에서 청년 커플·가구 중심으로 전략을 전환하면서 마을의 출산율이 반등하는 효과도 나타나고 있다.

실제로 고흥군 남양면은 2020년 신생아 수가 0명이었으나, 2023년에는 귀촌 청년 부부들의 출산으로 6명의 아기가 태어났다. 어린이집 정원도 늘었고, 유치원 재개설을 논의하는 지역도 있다.

강진군 군동면의 한 폐가에서는 서너명의 청년이 협동조합을 만들어 로컬베이커리 공방을 운영하고 있다. 이 공방에는 농가에서 남는 찹쌀, 보리, 쑥 등을 활용해 만든 쿠키가 SNS에서 화제를 모으며 주문이 밀려드는 중이다. 공방 관계자는 서울에서 창업하면 빚만 쌓였겠지만, 여기선 마을 주민들이 가게를 같이 만들어줬다장사는 우리가 하고, 손님은 마을이 불러준다고 말했다.

강진군, ‘넥스트로컬생활권 단위 로컬브랜딩 활성화

전남 강진군 농업기술센터. 사진=강진군 제공

현재 강진군은 서울시의 '넥스트로컬'과 행정안전부의 생활권 단위 로컬브랜딩 활성화사업을 활용해 청년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넥스트로컬은 서울 청년이 수도권 밖 인구 감소 지역의 유무형 자원을 활용해 지역 연계, 또는 지역 내에서 창업하도록 지원하는 사업이다. 청년 개개인이 스스로 계획을 세워 사업을 펼칠 수 있도록 자금과 컨설팅 등을 조력한다. 7년 차를 맞은 넥스트로컬은 지난해까지 609개 팀, 1128명의 청년이 참여했다. 올해는 77개 팀, 133명이 선발됐다.

전남도는 이같은 사업을 인구정책이 아니라 지역 회복정책으로 본다. 청년을 숫자가 아니라 지역 생태계를 복원하는 기점으로 보고 있는 것이다. 전남도 관계자는 청년이 지역에 머무르기 위한 결정적 조건은 결국 삶의 질과 인간관계라면서 이제는 단기 정착 지원을 넘어서 지속 가능한 생활 생태계를 설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전남도는 향후 청년커플 맞춤형 임대주택 확대와 로컬 돌봄시설 신설, 아이 돌봄-교육 연계, 창업형 귀농 지원 강화 등의 로드맵을 마련하고 있다. 지방소멸 위기라는 거대한 흐름 속에서, 전남도의 실험은 작지만 분명한 균열을 내고 있다. 아이 울음소리, 공동체의 웃음, 귀촌 청년의 소소한 꿈. 이 모든 것들이 모여 다시 살아나는 마을이라는 기적을 만들어낸다. 그 기적은 결코 중앙정부의 예산만으로는 만들어지지 않는다. 현장에서, 지역에서, 그리고 사람 사이에서 시작된다.

전남의 사례는 단순히 인구를 늘리는 수단과 지방이 생존을 넘어 소생을 준비하고 있다는 신호탄이다. 현재 고흥, 해남, 강진, 구례 등 전남 전역으로 이 정책은 확산 중이며 이와 같은 유사한 모델이 또다른 시·군에서도 벤치마킹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