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기생 장은실14

2025-06-27     이상우 작가

아저씨는 무엇인가 짐작 가는 것이 있는 듯 씩 웃고는 더 묻지 않았다. 벌써 은실의 마음을 꿰뚫고 있는 것 같았다.
트럭이 함양을 지나 거창에 다다랐을 때는 거진 점심때가 가까웠다.
아저씨는 한창 어울린 장터 구석 쇠전 옆에 트럭을 세우고 장사를 시작했다. 장작을 지고온 인근 총각들이 지게를 받쳐놓고 있기도 했다.
“아저씨 고맙습니다. 저는 가 볼게요.”

은실은 차비는 주지 않아도 될 것 같아 얼른 떠나려고 했다.
“가만, 은실아 조금만 기다려. 점심때가 다 되었는데 국밥이라도 같이 먹자.”
딱히 갈 곳도 없는 은실은 그대로 주저 앉아 아저씨가 숯 파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아저씨 나이는 서른을 훨씬 넘은것 같은데 장사하는 솜씨가 어린 은실의 눈에도 영 서툴러 보였다.

숯 두 가마를 겨우 팔고 난 아저씨가 은실의 손을 잡고 국밥집으로 갔다.
“여기 국밥 두 그릇. 돼지 고기 뭉턱 좀 넣어주시오.”
기름에 젖은 앞치마를 휘날리며 바쁘게 국밥을 나르던 아주머니가 아저씨를 보자 반겼다.
“백 총각 오랜만이네. 웬 딸내미야?”

아주머니가 은실을 내려다보며 물었다.
“조카.”
은실은 그제야 아저씨 성이 백 씨이고 총각이라는 것을 알았다.
두 사람은 맛있게 국밥 뚝배기를 비운 뒤 다시 숯 트럭으로 갔다. 
해가 뉘엿해질 때까지 숯 장사는 시원치 않았다.

“은실아. 오늘 장사는 망쳤으니 낼 고령장 서는 날이라 저녁에 그 곳에 가야겠다. 고령서 대구는 더 가까우니 거기까지 아저씨가 태워주마.”
은실은 그냥 아저씨가 고마울 뿐이었다.
해가 뉘엿해지자 파장이 되고 모두 장 보따리를 싸고 떠났다.
“우리도 가자. 스타찡 돌려라.”

은실은 아저씨를 따라 고령으로 갔다. 어두워져서야 고령 읍내에 도착한 은실과 아저씨는 조그만 여관에 들어갔다. 그러나 거기서 아저씨가 돌변할 줄은 은실은 짐작도 못했었다.
좁은 여관방에는 석유 램프가 켜져 있고, 윗목에 이불과 요 한 채가 개켜져 얌전히 놓여 있었다. 그러나 어찌 보면 때에 절은 것 같기도 하고 낡아서 그렇게 보이는 것 같기도 했다.
“기름 닳는다고 불 끄라고 할테니 얼른 잠이나 자자.”
아저씨가 요와 이불을 폈다. 그러나 한 채뿐이었다.
“이불 한 장 더 얻어야겠네.”

아저씨가 주인을 부르자 주인 아주머니가 미리 알고 얇은 이불 한 자락을 들고 들어와서 방바닥에 휙 던지고 나갔다.
“저는 여기서 잘게요.”
은실이 이불 한 자락을 덮고 한 자락으로 몸을 말아 누웠다.
“벌서 잔다고? 이쪽으로 와. 그거 덮고는 추워. 내 이불 속으로 들어와.”
“...”

은실이 놀라 말을 못했다. 나이 열 두 살이면 알만한 것은 다 아는 나이다. 낯선 남자와 한 이불을 덮고 자서는 안 된다는 것 쯤은 벌써 알고 있었다.
“괜찮아요. 아저씨나 편히 주무셔요.”

은실이가 벽 쪽으로 돌아누웠다. 그러나 어쩐지 겁이 나서 오금이 자꾸 오그라들었다.
아저씨가 움직이는 소리가 들렸다. 램프 불을 끄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은실이가 겁내는 일이 벌어졌다. 아저씨가 뒤에서 누운 채로 은실을 껴안았다.
“은실아.”

아저씨가 귓가에 대고 낮은 목소리로 불렀다.
“아저씨 잠깐만.”
은실이 몸을 빼내려고 했다. 그러나 억센 아저씨의 손은 용납하지 않았다. 그 손이 가슴을 만지기 시작했다.

은실이 몸부림치자 아저씨는 은실의 몸위에 가로 타고 앉아 은실이를 눌렀다.
은실은 대나무 숲에서 오 주사가 강남이 엄마에게 하던 짓이 머리에 떠 올랐다. 오 주사 놀이를 하면 아기가 생긴다는 것도 알고 있었다.
“아저씨 잠깐만, 잠깐만요.”

은실은 아저씨의 손을 잡았다. 그러나 아저씨의 손은 치마를 벗겨내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
“그냥 있어. 내가 기분 좋게 해줄게.”
아저씨는 놓아주지 않았다.
          
 15. 위기일발

아저씨는 간절한 은실의 애원을 들은 체도 하지 않았다. 
아저씨의 거칠고 우악스러운 손이 은실의 무명 팬츠를 헤집고 들어왔다. 아직 2차 성징도 없는 민둥산 은실의 둔덕을 쓰다듬었다. 숨소리까지 거칠어졌다. 옆구리에 딱 붙인 아저씨의 몸에서는 딱딱한 무엇이 은실의 몸을 찔러대는 것  같았다.
은실은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큰일이 날 것 같았다.  고향 대나무 숲에서 본 남녀의 모습이 떠올랐다. 아저씨가 위에서 그 짓을 한다면 아기가 생길지도 모른다. 아버지가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아저씨가 은실의 아랫배 위로 올라와서 작업을 계속했다. 그보다 어쩐지 피가 거꾸로 흐르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이러고 있다가는 죽을 것만 같았다.
은실은 급한 대로 사정을 했다.
“아저씨 제가 벗을게요. 잠깐만요.”
그때야 아저씨는 하던 짓을 멈추었다. 그의 거친 손이 은실의 사타구니에서 빠져나갔다.
“잠깐만요. 아저씨가 위에 올라가니까 오줌보가 터질 것 같아요. 가서 오줌 누고 올게요. 잠깐만 기다려요.”

아저씨가 은실이를 놓아 주었다. 은실은 보따리도 놓아둔 채 무조건 문을 열고 나갔다.
캄캄해서 사방을 분간할 수도 없었다.
은실은 급한 대로 여관을 뛰쳐나오기는 했으나 사방이 캄캄한 낯선 땅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랐다. 잠깐 망연하게 서 있던 은실은 멀리 보이는 불빛을 찾아냈다. 은실은 무작정 그 곳으로 걸어갔다. 숯장수 아저씨와 될 수 있는 대로 멀리 떨어져야 한다고 생각했다. 은실이 찾아간 곳은 제법 큰 동네였다. 불빛이 유난히 밝은 곳에는 한자로 ‘가야여관’이라고 쓰여 있었다.

할아버지한테 천자문을 배운지라 그 정도의 글자는 읽을 수 있었다. 은실은 돈이 없어 들어갈 수는 없고 현관문 앞에서 기웃거리고 있을 때 마침 현관을 나오던 사람과 마주쳤다. 양머리를 한 젊은 여자였다. 양장을 하고 있었다. 은실은 양장한 여자의 모습을 생전 처음 보았다. 조선 사람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여자는 은실을 흘깃 보고 문안으로 들어가려고 하다가 무슨 생각이 났던지 다시 현관문을 열고 나와 은실의 모양을 천천히 살폈다.
은실이 그냥 돌아서 가려는데 여자가 불러 세웠다.
“얘야, 잠깐만.”

“저요?”
은실은 다시 멈추어 섰다.
“집이 어디냐?”
여자는 은실이가 무슨 곡절이 있어 밤중에 이곳에 왔다고 생각한 것 같았다.
“먼 데예요.”

“왜 여기까지 왔냐?”
은실이 대답을 못하고 우물쭈물하자 여자가 다시 물었다.
“너 집 나온 아이지? 지금 갈 데가 없는 것이지?”
은실은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였다.

“우선 이리 들어와. 추우니까 방안에서 나와 이야기 좀 하자.”
은실은 젊은 여자를 따라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여자와 좁은 방에 마주 앉았다. 여자는 은실의 행색을 자세히 살펴보더니 입을 열었다.
“엄마한테도 말하지 않고 집을 나온 것이냐?”
은실은 고개만 끄덕였다.
“집이 어디냐?”

은실은 집을 나와서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대충 해주었다. 여자는 한숨을 길게 내 쉰 뒤에 물었다.
“숯장수 아저씨는 지금 여관방에 있느냐?”
 

[작가소개] 이상우는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화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 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 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