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저출산·고령화시대, 지역이 答하다-(3)] 강원도편

2025-07-14     현성식 객원기자

# “셋째 낳으면 200만원이 나와요. 그런데 그게 전부는 아니잖아요.”

해가 막 떠오른 강원도 철원군 김화읍. 읍내 하나뿐인 보건지소 앞에서 유모차를 끌고 들어서는 임지은(29·가명) 씨의 목소리엔 망설임이 묻어났다. 서울에서 첫아이를 낳고 남편의 귀농과 함께 철원으로 전입한 지 2년째. 셋째 출산을 앞두고 수백만원의 출산장려금을 받을 예정이지만, 그녀는 여전히 고민 중이다. “서울에선 어린이집도 많고, 병원도 가까웠어요. 여긴 아프면 한 시간 넘게 차를 타고 가야 해요. 남편은 농사일로 바쁘고, 돌봐줄 사람도 없고요. 그냥 돈만 주고 잘 살아봐라는 것 같아요.”

지자체 저출산 극복 우수시책 경진대회 강원도 수상. 뉴시스

-아이 하나에 마을이 달라진다
- 강원도, 인구 정책의 패러다임 전환
-돈보다 중요한 건 아이 키울 수 있는 여건

[일요서울ㅣ현성식 객원기자] 임 씨의 말은 강원도의 인구정책이 직면한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현금 지원은 시작일 뿐, 정착과 정주는 전혀 다른 문제라는 것이다. 강원도는 2000년대 초반부터 전국에서 가장 먼저 출산 및 전입장려금 제도를 도입한 지역이다. 철원, 화천, 양구, 인제, 평창, 정선 등 도내 대부분의 군 단위 지역에서 결혼·출산·귀촌 인구를 유치하기 위해 수백만 원의 현금 혜택을 앞다퉈 제시했다.

철원군, 첫째 50만원, 둘째 150만원, 셋째이상 최대 200만원

실제 철원군은 첫째 50만원, 둘째 150만원, 셋째 이상은 최대 200만원을 지급하며, 청년농부에게는 3년간 매달 최대 110만원의 귀농정착금도 지급하고 있다. 이웃 화천군, 양구군 역시 유사한 규모의 장려금 제도를 운영 중이다.

하지만 효과는 제한적이다. 통계청에 따르면 지난 20151.32였던 강원도 합계출산율은 20230.89로 급락했다. 같은 기간, 정선군과 태백시, 삼척시 등 도내 탄광 지역의 출생아 수는 연 100명 이하로 추락하며 소멸 고위험 지역으로 분류됐다. 주민등록 전입 통계만 반짝 증가할 뿐, 출생아 수와 장기 거주 인구 증가에는 기여하지 못한 것이다.

강원도의 한 군청 인구정책팀 관계자는 정말 안타깝지만, 전입장려금만 받고 다시 떠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토로했다. “6개월에서 1년 정도만 거주한 뒤 다시 도시로 복귀하거나, 실제 거주 없이 주소지만 남겨두는 위장 전입도 많아요. 원룸 하나 얻어놓고 주민등록만 옮긴 사례도 다수 확인됐습니다.”

이같은 실태는 지역 주민들도 체감하고 있다. 김화읍에 거주하는 조상현 씨(64, 가명)전입지원금 받는 사람들 중엔 마을 행사도 안 나오고, 아이들 학교도 보내지 않는 이들이 많다고 말한다. “숫자만 늘린다고 마을이 살아나는 건 아니지요.”

2020년 서울에서 정선으로 이주해 작은 카페를 운영 중인 윤지애 씨(34·가명)는 출산장려금과 전입지원금을 모두 수령했다. 하지만 그녀는 정작 버티게 해준 건 공동육아방이었다고 말한다. “돈은 한두 달이면 끝나요. 그런데 아이를 봐줄 사람이 없으면 아무것도 못 해요. 주민센터에서 공동육아방을 열어줘서 숨통이 트였죠.”

그녀의 사례는 장려금보다 돌봄 인프라가 더 중요한 정주 조건임을 시사한다. 실제 강원도청 지역소멸대응정책팀이 작성한 내부 보고서에 따르면 현금 지원은 전입 유도에는 효과가 있으나, 정주 유도에는 의문이다라고 말한다. 보고서는 주거·교통·의료·교육·돌봄 등 복합 요인을 해결하지 못한 채 제공하는 현금은 휘발성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정선군, ‘빈집 리모델링 젊은 부부왔다 다시 도시로인프라 부족

강원도 철원군 출산장려 및 첫돌 축하금 안내 홈페이지 갈무리.

일요서울 취재진이 최근 찾은 정선군 남면의 한 마을. 지자체가 빈집 리모델링을 통해 젊은 부부에게 매각한 집 앞엔 아직 아이 장난감이 놓여 있었지만,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이웃 주민 김명순 씨(72, 가명)두 달 정도 살다가 떠났어요. 병원도 멀고, 아이 봐줄 사람도 없다 보니 결국 다시 도시로 갔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이처럼 인프라 미비는 정주 유지의 핵심 걸림돌이다. 한 지자체 관계자는 출산이나 전입보다 더 중요한 건 생활의 지속 가능성’”이라며 장려금으로는 더 이상 버티기 어렵다는 게 내부 판단이라고 전했다.

최근 강원도 인구가 1년 새 11900여 명이 감소하는 등 총인구 150만 명선 붕괴가 초읽기에 들어갔다. 150만 명은 그동안 강원도 인구의 심리적 마지노선으로 여겨져 왔으며, 현 추세라면 이르면 내년 하반기 이 선이 무너질 수 있다는 우울한 전망이 나온다.

강원연구원이 발간한 정책톡톡보고서에 따르면, 서울 등 수도권에서 강원도로의 순이동 비율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다. 하지만 최근 10년간 전체 연령층과 청년층의 이주자 수는 지속적으로 줄어든 것으로 나타나, 실질적인 정주 인구 유입 효과는 약화되고 있다는 분석이 제시됐다.

이에 강원도는 최근 들어 인구 정책의 방향을 대대적으로 전환하고 있다. 예컨대 정선군은 현재 국공립 어린이집과 연계한 돌봄센터 확대, 지역내 대학과 연계한 부모 교육과정 개설, 청년 귀촌 정착촌 조성 등 새로운 사업을 기획 중이다.

속초시의 경우 가팔라진 인구 감소세에 저출산과의 전쟁을 선포하고 나섰다. 임신부터 육아에 이르는 생애 전주기 파격 지원책을 내놓으면서다. 속초가 꺼내든 인구절벽 극복 슬로건은 '아이 낳고 키우기 좋은 도시'. 출산, 양육에 최적화된 여건을 조성하겠다는 시 차원의 의지를 담은 문구라는 게 시의 설명이다.

이병선 속초시장은 "저출생이라는 국가적 위기를 극복하려면 단순한 지원을 넘어 종합적인 육아 친화 환경을 조성해야 한다"라며 "시민이 체감할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정책을 꾸준히 추진해 미래세대가 행복하게 성장할 수 있는 속초를 만들겠다"고 밝혔다. 주위에선 작지만, 확실한 변화의 씨앗이 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아이가 버틸 수 있는 삶의 조건 조성이 해답

강원도의 한 산골 마을에서 만난 초등학교 교장은 아이 하나가 들어오면 마을 전체가 움직인다고 말했다. “통학 차량 노선이 다시 생기고, 방과후 교사도 배정되고, 식당과 병원 이용객도 늘어나요. 그 아이 중심으로 어른들의 삶도 재구성되는 거죠.”

결국 해법은 단순히 인구 숫자를 늘리는 데 있지 않다. 아이가 버틸 수 있는 삶의 조건을 만드는 것. 강원도의 인구정책은 이제 그 지점에서 출발하고 있다. ‘아이를 유치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살 수 있는 마을을 만드는 일. 인구 절벽이라는 절망의 골짜기에서, 지역이 찾은 해답은 바로 사람이 머무는 이유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