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기생 장은실 16
은실이 황경욱과 혼간지 절간 뒤뜰 숲에서 잠깐 만나 앞일을 의논한 뒤 권번으로 돌아왔다. 가진 돈을 경욱씨를 위해 쓴다면 아깝지 않다는 생각을 몇 번이나 했다.
은실이 대문을 들어서자 종심이 기다렸다는 듯이 말했다.
“어디 갔다가 그렇게 늦었니?”
“경욱씨 좀 만나고 왔어. 왜 무슨 일 있니?”
“농산 선생님이 찾으셨어. 중요한 일 인가봐.”
은실은 옷도 갈아입지 못하고 농산 권 방장의 거실인 안방으로 갔다.
“선생님 찾으셨습니까?”
농산이 은실을 잠깐 바라보다가 말했다.
“거기 좀 앉아라.”
은실은 농산의 표정이 심상치 않다고 생각하며 다소곳이 무릎 꿇고 앉았다.
“은실아. 너한테 이런 일을 시켜선 안 되지만 워낙 중요한 일이라...”
농산은 잠시 쉬었다가 말을 이었다.
“네가 기방에서 이름을 빼고 자유로운 조선 여자가 되려고 생각하고 있다는 것은 내가 알고 있다. 그런데 이번 일은 기생으로서의 마지막 일이라고 생각하고 좀 해 주어야겠다. 네 이름을 찍어서 요구한 일이라 빼도 밖도 못한다.”
은실은 농산이 무슨 부탁을 하려는지 어렴풋이 짐작이 갔다. 일본 고관의 방에 들어가 달라는 부탁일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본 헌병대의 야마모토 대좌를 아느냐?”
“본적은 없지만 이름은 알고 있습니다.”
야마모토 겐죠 대좌(대령)는 조선 주둔 일본군 중에는 정상급에 속하는 고위층이었다. 조선 사람의 생사여탈권을 가질 정도로 막강한 권력자였다. 원래 주둔지는 서울 용산 일군 사령부지만 비행장 건설을 위해 대구에 내려와 있었다. 조선인 탄압으로 악명이 높은 사람이다.
“오늘 저녁 술 심부름을 좀해야겠다. 이유는 묻지 마라. 조선을 위해 목숨을 건 사람들의 생사가 달린 일이다.”
은실은 짐작이 갔다. 독립 운동을하는 서상일 선생이나 황 대장의 목숨과 바꾸는 일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알겠습니다. 성의껏 야마모토 대좌를 모시겠습니다.”
은실은 그날 밤 해동원으로 갔다.
종업원의 안내로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별채의 방안으로 들어갔다.
“시츠레이 이타시마스(실례하겠습니다.)”
은실이가 인사를 하며 방안으로 들어섰다. 그 순간 은실은 너무 놀라 입을 딱 벌렸다. 벌거벗은 남자가 역시 벌거벗은 여자를 무릎에 앉히고 술을 마시고 있었다. 야마모토 대좌와 기생 황매였다.
“오이, 은시루상 이랏사이(어서와).”
은실은 일어서 나가려고 했다. 그러나 농산이 신신당부하던 말이 그의 발걸음을 멈추게 했다.
“오햐요 고사이마쓰.”
은실은 죽을 각오를 하고 방안으로 들어섰다.
“듣던 대로 과연 미인이다. 오늘밤은 2대1로 한번 박자. 빨리 벗어.”
야마모토는 이미 혀가 약간 꼬부라져 있었다.
17. 거시기 세우기 게임
야마모토 대좌는 벌거벗은 채로 보료 방석 위에 두 다리를 쭉 뻐도 앉아 있었고 그의 허벅지 위에 역시 황매가 올라타고 앉아 있었다.
은실은 도저히 상상도 할 수 없는 음란하고 괴이한 모습에 머리가 띵해졌다. 그러나 전혀 내색을 하지 않고 그냥 미소를 날려 보냈다.
“오이, 하야꾸(빨리). 맛사지...”
야마모토가 합류하라는 독촉을 했다. 은실은 그 말은 들은 체도 않고 대좌 앞에 공손하게 무릎을 꿇고 앉았다.
“대구 권번 기생 장은실 인사 올립니다.”
치마저고리 차림의 은실은 일어서서 큰 절을 했다.
“요씨, 그럼 옷 벗고 옆에 앉아,”
야마모토는 독촉을 계속했다. 은실은 더 꾸물거리다가는 무슨 벼락이 떨어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으로 머리가 어지러웠다.
그러나 천천히 저고리 고름을 풀었다. 하얀 속적삼이 알맞게 부푼 유방을 감싸기에는 버거운 것 같았다. 은실은 다시 천천히 겉치마를 벗어 옆에 곱게 개어 놓았다. 역시 하얀 속치마는 은실의 도톰한 엉덩이를 감싸고 있었다. 육감적인 굴곡이 선명해 대좌의 음심을 자극하기에 충분했다.
“빨리, 빨리.”
야마모토는 침을 꿀꺽 삼키며 독촉했다.
은실은 기생 학교 권번에서 엄격한 수업을 받았지만 남자 앞에 실오라기하나 걸치지 않고 알몸이 되는 교육은 받지 못했다.
-왜 이런 짓까지 해야 되지.
은실은 스스로에게 물어 보았다. 그러나 농산 원장이 신신당부하던 말이 떠올랐다.
- 어떤 요구를 해도 다 받아 주어야 한다. 네 몸뚱이를 나라에 받쳤다고 생각해라.
황매가 야마모토의 허벅지 위에서 내려앉았다. 야마모토의 불룩한 배 밑에는 축 늘어진 그의 물건이 보였다. 저게 과연 발기를 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 정도로 형편없는 모양이었다.
“하야꾸, 하야꾸(빨리, 빨리)!”
그러나 은실은 아랑곳 하지 않고 천천히 속적삼을 벗었다. 봉긋한 유방의 정점에 팥빛의 작은 유두가 떨고 있었다.
은실은 이어 속치마와 속옷을 벗어 고이 접어서 옆에 놓았다.
하얀 나신이 눈부셨다. 가슴과 허리 둔부, 그리고 매끈하고 곧게 뻗은 두 다리가 명품 조각을 보는 것 같았다.
“오우, 쓰바라시(대단해),”
야마모토 대좌가 감탄했다.
“요씨. 여기 와서 내 옆에 앉아요.”
“조선 기방에서는 한 남자가 두 여자를 한꺼번에 교접하는 법은 없습니다. 음양의 원리에 어긋난다고 배웠습니다. 대좌께서 교접을 원하신다면 오늘 밤은 한 여자만 선택하시고, 다음날 다른 여자를 선택하시는 게 어떠실 지요?”
은실은 자신의 말이 이치에 맞는다고 생각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무슨 말이라도 해서 이 절체절명의 위기에서 벗어나야한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야마모토는 잠깐 생각하더니 입을 열었다.
“요오씨. 그럼 내가 내기를 하나 걸 테니 응하겠느냐?”
“말씀하십시오. 따르겠습니다.”
야마모토는 은실의 몸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마른입술에 혀로 침을 계속 발랐다. 속 타는 표정이 역력했다.
야마모토는 옆에 있는 가방에서 큰 봉투를 꺼냈다. 그리고 다시 봉투에서 돈뭉치 한 다발을 꺼내 놓았다.
일원짜리 지폐 한 다발이었다.
“여기 현찰 백 원이 있다. 이 돈을 걸고 내기한 번 하자.”
일원짜리 백장 다발이었다. 기생에게는 엄청나게 큰돈이었다. 황매와 은실은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했다.
야마모토는 돈다발을 묶은 띠지를 풀었다. 풋풋한 새 지폐가 탐스러웠다.
“너희들이 벗은 채로 춤을 추는 거야. 내 마음을 움직이면 이 돈을 다 준다.”
“옛?”
황매와 은실이 동시에 입을 딱 벌렸다. 이런 터무니없는 내기를 걸다니. 은실은 야마모토의 보잘 것 없는 몸매를 보았다. 무슨 재주로 흥분을 시킨단 말인가. 처음이지만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달랐다. 부끄럽고 실망스러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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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이상우는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화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 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 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