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기생 장은실 18

2025-07-25     이상우 작가

황매도 순식간에 일어난 이 사태에 엉거주춤했다. 그러나 야마모토와 은실의 자세를 보고는 슬그머니 일어서서 부동자세를 취했다.
은실은 잠깐 뜸을 들였다. 그 사이 거수경례를 하고 있던 야마모토는 마술에 걸린 듯 꼼짝도 못했다. 

“덴노헤이까노 신민도시테...”
(천황폐하의 국민으로써...)
은실은 여전히 부동자세로 서있는 야마모토의 얼굴을 정면으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고노 미오 덴노헤이까니 사상에루도 고자이마스.

(이 몸을 천황폐하께 바칠 것입니다.)
“소레떼...”
(그러므로...)

은실은 다시 잔뜩 긴장한 야마모토를 흘깃 보고 말을 이었다.
“와타구시와 고고꾸 신민도시테 고노 카라데오 기레이니 오까나게레바나리마셍.”
(저는 황국신민으로서 이 몸을 깨끗이 지킬 것입니다.)
그때였다. 
“똑똑똑. 스미마셍.(실례합니다.)”
문 밖에서 월선 원장의 목소리가 들렸다. 이상한 소리들이 방안에서 들리자 놀란 월선이 동정을 살피려고 문을 두드렸다.

방안의 분위기는 얼음처럼 식어버렸다. 야마모토는 아무 말도 못 하고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천황폐하에게 바칠 몸이라는 데 감히 어떻게 하란 말인가. 
은실은 필살기를 날렸다고 생각하고 반응을 기다리고 있었다. 
흥은 다 깨졌다. 두 기생을 데리고 온갖 음란한 짓을 다하며 하룻밤을 의미 있게 지내고 싶던 대좌의 꿈은 산산조각이 났다.
천황폐하를 위한 몸이니 네가 감히 건드리려고 하느냐.
이 말에 대항할 말을 잊은 것이다.

‘천황에게 바치기 전에 나한테 먼저 수청 들어라.’ 이렇게 말 할 수는 없는 일 아닌가.
기습을 당한 야마모토는 문 밖을 향해 소리쳤다. 야마모토는 바닥에 얌전하게 접힌 채 놓여있는 유카다(실내복)를 걸쳤다.
“오이, 술 상 올려.”
은실과 황매는 다시 옷을 입었다. 그리고 단정하게 야마모토 곁에 앉았다.

곧 총각 둘이 거창하게 차린 진수성찬 술상을 들고 들어왔다. 황매도 함께 들어와 마사무네(정종) 첫 잔을 야마모토 대좌한테 올렸다.
“마다무 상.”
야마모토가 다시 평상을 되찾은 모습으로 말했다.
“하이. 야마모토 사마.” 
“은시루는 권번 기생이라도 아무나 함부로 건드리면 큰 일 날거야.”
“예? 무슨 말씀이신지요?”

월선이 하던 손을 멈추고 야마모토를 쳐다보았다.
“그건 나중에 따로 들어보게. 자, 오늘은 월매 술에 한번 취해보자.”
야마모토가 빈 잔을 월선에게 계속 들이밀었다. 무슨 일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으로 알았다. 그래서인지 야마모토의 비위를 맞추려고 신경을 쓰고 있었다.
“오이, 마다무 상.”
“하이.”
“샤미셍 한가락 읊어요.”

샤미셍이란 일본 전통 현악기를 말한다. 기생이면 누구나 익숙한 필수 악기였다.
황매가 일어서서 곧 샤미셍을 들고 왔다.
“다이사(대좌) 나으리. 제가 한 곡조 타겠습니다.”
샤미셍을 들고 온 황매가 한 곡조 탈 포즈를 취했다.
“네년의 능력은 내가 믿을 수 없어. 손발 주둥이 다 동원해도 실패했잖아.”
“다시 기회를 주시면...”

황매가 말을 얼버무렸다.
“샤미셍 월선이한테 넘겨. 오늘밤 월선이하고 한번 해야겠어. 오래 쉬었잖아. 늙은 맛도 괜찮을 걸. 흐흐흐”
“예?”
놀란 것은 월매였다. 
                                                                                      
20. 조선 남자는 조강지처 때문에...

은실의 기상천외한 행동으로 황매도 위기를 넘겼다. 
“마다무 상, 내 제의에 답이 없으므니까?”
야마모토가 정종 잔을 월산에게 내밀면서 물었다. 월선이 술을 따르면서 말했다.
“모시다마다요. 그렇지 않아도 저도 너무 오래 쉬어서 약이 잔뜩 올라있어요. 오늘밤 끝내드릴게요.”

“천하의 월선을 그냥 내버려 두다니. 조선에는 상남자가 없단 말인가?”
야마모토의 물음에 월선이 조선말 반 일본말 반을 섞어서 말했다.
“조선 상남자들은 조강지처 때문에 주눅이 들어 기생 년을 봐도 전혀 끌리지를 않는답니다.”
“끌린다는게 무슨 말이야?”

야마모토가 은실을 보고 물었다. 정말 무슨 말인지 뜻을 모르는 모양이다.
은실은 무엇이라고 답해야 될지 몰라 잠시 망설였다. 남자들이 음담패설을 할 때 들어본 것도 같지만 실제로 경험해본 일이 없어 남자의 어떤 상태를 그렇게 말하는지 정확한 뜻을 몰랐다.
은실이가 망설이자 월선이 얼른 대답했다.

“오도코노 모노(남자의 물건)가... 음... 시타이(하고싶다) 상태를 말해요.”
조선말 반 일본말 반을 섞어 설명했다. 그러나 야마모토는 정확히 알아듣지 못한 것 같았다.
은실은 월선의 말을 듣고서야 설명할 말이 떠올랐다.

“가만데끼 나이호도 아리타쿠 낫다요.(참을 수 없을 정도로 원한다)”
은실은 그 말을 해놓고는 얼굴이 붉어졌다.
“소우데쓰까. 나는 하고 싶어도 준비하는데 경비가 좀 들어요. 흐흐흐...”
황매가 입을 가리고 킥킥 웃었다.

그날 밤 야마모토는 월선을 데리고 한바탕 일을 벌였는지 어쩐지는 은실이도 알지 못했다. 아마 그 정도의 반응 느린 몸으로 월선 사장도 고생깨나 했을 것이다. 
그러나 반평생 남자의 잠자리 심부름을 해온 역전노장 월선이가 아닌가. 월선은 단 10분만에 야마모토의 항복을 받았을 것이다. 

해동원 원장의 특별한 침실에 초대된 야마모토는 처음부터 덤볐다.
“오이. 나이가 얼만데 이렇게 싱싱한가? 과연 이름난 기생이었다는 것이 맞네.”
야마모토는 황급히 옷을 벗어재끼고 벌써 맨몸이 된 황매한테 버떡 엎어졌다.
"잠깐만요. 천천히..."
월선이 야마모토를 부드럽게 밀어냈다.
"이제 여기부터 시작해요."

월선이 가슴의 젖봉오리를 가리켰다. 퇴기라고 하지만 아직도 젖가슴은 쓸만했다.
월선의 잠자리 기술은 대구 건달들에게는 한때 전설이었다.,   
황매와 월선이는 그날 밤 10원씩 화대를 받아 권번 경리한테 가져다주었다. 화대 10원이란 엄청난 거금이었다.

[작가소개] 이상우는 60여 년간 편집기자와 경영인으로 일한 언론인 겸 추리 소설가다. 한국일보, 서울신문, 국민일보, 파이낸셜뉴스 등 13개 언론사에서 편집국장, 대표이사 등으로 일했고, 스포츠서울, 스포츠투데이, 굿데이를 창간했다.

오랜 경험과 기록을 바탕으로 역대 정권의 언론 탄압과 견제, 정계의 비화를 다룬 저서와 소설이 4백여 편에 이른다. 특히 추리와 정치를 깊이다룬 소설가로 유명하다. 대한민국 문화포장, 한국추리문화 대상 등을 받았다. '신의 불꽃', '역사에 없는 나라', '악녀 두번 살다', '세종대왕 이도' 등 베스트 셀러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