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재-여류 추리작가 '권경희'의 추리퀴즈-당신의 추리력은?] 저린 손 끝 [5]
민기 형의 죽음은 형수 때문이었다. 형수는 형이 사우디에서 보내온 돈을 불리겠다고 3년 동안 모은 돈으로 한꺼번에 땅을 사 두었다. 형이 돌아온다고 하자 요즘 땅값이 얼마나 하는지 가보겠다고 어깨를 우쭐거리며 네 살 난 조카를 데리고 나간 형수에게서는 그 길로 소식이 끊겼다.
얼마 후 형수의 친구라는 여자가 전해 준 말이, 형수가 산 땅은 사기꾼의 것으로 형수가 명의를 갖고 있는 동안에도 주인이 수없이 바뀌었으며 형수는 그 땅에서 한 푼도 건지지 못했다, 형수가 그 돈을 다시 벌을 때까지는 집에 들어가지 않겠다고 고집을 피워 자기가 지금 집으로 돌아가라고 설득하는 중이라는 것이었다. 형수에 대한 소문은 엉뚱하게 번져, 형은 돌아오는 뱃전에서 형수가 바람이 나 돈도 모두 써 버리고 아이까지 데리고 도망갔다는 와전된 말을 듣고 술김에 바다로 뛰어들었다는 것이었다.
따지고 보면 어머니와는 전혀 관계가 없는 죽음들이었다. 그러나 어머니는 그들이 자기 때문에 죽었다고 철석같이 믿었다. 그래야만 너무도 어처구니없는 아버지와 형의 죽음에 이유가 생기기 때문이었다.
민기는 어머니의 병이 나아간다는 의사의 말을 믿고 싶었다. 그러나 민기가 물 근처에만 가도 배 타지 말라며 근심하는 어머니를 보면 이제 다 나았다고 퇴원을 시킨 의사들이 통 믿기지 않았다.
민기는 어머니의 완쾌를 지접 확인하고 싶었다. 그래서 송전 지서 근무를 자원했고 송암리로 돌아왔다. 어머니의 대를 이은 미친 자가 나타나면 어머니는 더 이상 정신병 환자가 아니기 때문이었다.
민기의 마음속엔 은근히 내 가족이 아닌 다른 어떤 자가 어서 광인이 되어 나타나 주었으면 하는 무서운 마음이 불쑥불쑥 생기곤 했다.
(3) 독살 미수
지서 안은 적막하기까지 했다. 잠에서 막 깨어나 집에 변명 전화를 해대는 음주 운전자, 새벽 3시에 집단 패싸움 현장에서 검거되고도 아무 죄 없는 사람을 왜 끌고 왔느냐고 밤새도록 항의를 하는 폭력 혐의자, 밤새 일어난 큰 건수를 놓친 건 아닌가 하고 귀를 쫑긋 세우며 들어오는 출입 기자 등, 새벽시장처럼 북적대던 서울의 경찰서와는 달리 송전 지서는 너무도 한가했다.
민기는 관할 면인 송전면의 현황을 숫자로 보고 있었다. 면적 606만 8000 평방미터, 인구 9천 883명. 주요 관청으로는 면사무소, 경찰지서, 농협, 우체국 각각 하나씩이고, 학교는 초등학교 하나, 농업 중/고등학교 하나였다.
이 학교들에 대해서는 민기가 누구보다도 잘 알았다. 그 초등학교를 나와 그 중학교를 졸업한 때문이었다.
송전 중/고등학교는 군내에 하나뿐인 사립학교이다. 민기가 중학교에 막 들어가던 해에 타계한 오석인 이사장이 일제 때 세운 학교였다. 그는 지금은 송지 저수지 밑에 가라앉은 그 일대의 꽤 넓은 땅을 아무런 보상 없이 헌납하는 대가로 학교를 세웠다고 한다.
오석인 이사장이 죽은 후에는 그의 며느리가 이사장으로 취임했다. 그의 하나뿐인 아들이 아버지보다 먼저 세상을 떴기 때문이었다.
황정자란 이름으로 기억되는 여자 이사장은 학교에 잘 나타나지 않았다. 새 학기가 시작될 때 한 번, 학교 운동회나 규모가 큰 연극제 등에 한두 번, 그리고 늦봄에 시아버지 제사를 지내러 왔다가 들르는 것뿐이었다. 학교 일은 전 이사장의 조카라는 교장 선생이 알아서 했고, 학생들도 전에는 교장 선생 이름보다 더 친숙했던 오석인 이사장을 금세 잊어버렸다.
여 이사장이 학교에 전혀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닌 듯하기도 했다. 자신의 아들과 딸을 송전 학교로 전학시킨 것으로 미루어 짐작되는 일이었다. 둘이 오면서부터 학교에 큰 변화가 있었기 때문에 민기는 그들이 온 무렵과 떠난 때를 거의 정확히 기억한다.
둘 다 새 학년이 시작될 때 왔다가 1년 만에 떠나갔다. 아들인 오정식은 고교 3학년, 딸인 오정아는 중학 3학년으로 왔다.
오정식은 학교에 꼬박꼬박 출석은 했지만 교사들이 가르쳐 주는 공부는 하지 않았다. 인문계와는 다른 농업학교의 교과과정이라 그러기도 했겠지만 본래 조용히 대학 입시 공부를 하기 위하여 절간 가는 셈 치고 전학한 것이라 했다.
서울의 학교에서는 미술, 음악 등 입시와는 전혀 관계없는 수업에 너무 많은 시간을 빼앗기 때문이라는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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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소개] 권경희는 한국 여류 추리작가이다. 1990년 장편소설 '저린 손끝'으로 제1회 김내성 추리문학상을 수상하고 문단에 등단했다. 주요 작품으로 장편 추리소설 '거울 없는 방', '물비늘', 실화소설 '트라이 앵글', 단편으로 '검사는 무엇으로 사는가' 등 수십 편이 있다. 수필집 '요설록', '흔들리는 삶을 위한 힌트'등이 있다. 중견 소설가이면서 상담심리 전문가로 <착한벗 심리상담 센터>를 운영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