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저출산·고령화시대, 지역 答하다(10), 경상북도편] ‘리버스 도시화’의 희망
# 지난해 4월, 경상북도는 전국 광역지자체 중 최초로 ‘저출생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단순한 선언이 아니었다. “지금 행동하지 않으면 경북의 내일은 없다”는 위기감 속에서, 도청 내부는 곧바로 ‘저출생극복위원회’와 전담 조직을 꾸렸다. 경북도청 관계자들은 ‘출산 장려금 확대’ 같은 단편적 대책을 넘어 지방 소멸 위기를 근본적으로 되돌리기 위한 대전환을 준비했다.
- 폐교서 시작된 청년 귀촌, 경북의 인구 위기 해법
- 광역 최초 ‘저출생 전쟁’ 선포, 경상북도의 실험과 도전
-“소멸 위기 마을의 반격...경북형 청년 정착 프로젝트”
[일요서울ㅣ현성식 객원기자] 최근 일요서울 취재팀이 찾은 곳은 경북 의성군 다인면 달제리. 과거 학생 수 부족으로 폐교된 초등학교 건물이 지금은 경북 최초의 종합안전체험관으로 변모해 있었다. 이곳에선 학생과 교직원뿐만 아니라 일반 도민들에게도 지진과 소방, 교통, 자연 재난 등 실생활과 밀접한 안전 분야를 직접 체험하며 위기 대응 능력을 향상하는 교육을 제공하고 있다.
작년 도입 폐교 활용 공모사업 실험 ‘가능성’
지난해 경북교육청이 시범 도입한 폐교 활용 공모사업은 가능성을 보여줬다. 지방자치단체나 주민공동체가 폐교를 소득·복지·문화 공간으로 무상 대부받아 쓰도록 한 것이다. 영양군 신암분교는 특용작물 재배와 마을 체육시설로, 구미 해평초 향산분교는 스마트팜과 평생학습 공간으로 변신했다. 포항 이가초는 어촌체험장, 경주 의곡초 일부 분교는 유정란 생산시설로 재탄생했다.
청년 귀촌 창업가인 이도현(32, 가명) 씨는 “서울에서 스타트업을 하다 이 지역으로 내려온 지 1년이 좀 넘었다. 폐교를 개조한 사무실에서 같은 또래 청년들과 일하고, 마을 주민들과 농업 관련 협업도 하고 있다”면서 “무엇보다 집세 부담이 없어 안정적으로 정착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경북의 폐교 활용은 단순히 빈 건물을 채우는 차원을 넘어 주민 참여를 통해 공동체 정신을 회복하고 지속가능한 발전을 모색하는 선 진적 모델로 평가된다. 경북도는 이같은 폐교 활용 청년 거점을 10여 곳 조성하며, ‘리버스 도시화(Reverse Urbanization)’ 실험을 이어가고 있다. 이는 단순히 귀농·귀촌을 장려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청년이 지역에서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고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구조다.
경북도청 한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청년들은 단순히 보조금을 받아 귀촌하기보다, 지속 가능한 일자리와 주거, 문화적 기반이 필요합니다. 폐교 활용은 비용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청년 커뮤니티 형성을 촉진하는 효과가 있습니다.”
취재팀은 경북 고령군을 찾았다. 고령군의 경우 청년이 돌아오고 머무를 수 있는 정주 기반을 탄탄히 다져나가고 있다. 청년농촌보금자리, 청년복합귀농타운, 천년건축 시범마을 등 청년친화형 주거공간을 조성하고 있으며, 청년 임대주택 공급을 확대해 결혼, 출산, 양육에 이르는 생애주기 전반을 아우르는 맞춤형 지원정책도 강화하고 있다.
수도권에서 최근 이 지역으로 보금자리를 튼 청년 아티스트 김나래(28, 가명) 씨는 “서울에서 예술 활동을 이어가기 힘들었는데, 이곳은 생활비가 저렴하고 지역민들의 관심도 뜨겁다”면서 “여기서 활동하면서 전국적으로 네트워크를 확장할 수 있어 좋았다”고 귀뜀했다.
이같은 청년 정착 거점 조성은 지역 공동체에도 활력을 불어넣고 있다. 폐교 활용 센터를 중심으로 지역 상권이 되살아나고, 주민-청년 간 협력 프로젝트도 활발하다. 마을 주민 김순자(68, 가명) 씨는 “한때 마을이 텅 비어가는 게 무섭기까지 했는데, 요즘은 젊은이들이 모여와 활기가 돌고 있다”며 웃음을 지었다.
경북의 한 지역에서는 ‘청년농부 창업학교’가 운영 중이다. 지역의 유휴 농지를 활용해 청년들이 직접 작물을 재배하고, 스마트팜 기술을 접목해 새로운 농업 비즈니스를 실험하는 공간이다. 이곳에서 만난 박정우(34, 가명) 씨는 “저는 원래 IT 기업에서 일했는데, 농업과 기술을 접목하는 모델에 관심이 있어 내려왔다”며 “경북이 아니었다면 이런 기회를 얻기 어려웠을 것”이라고 밝혔다.
실제 경북도는 청년농부 창업학교를 통해 매년 100여 명의 청년 농업인을 배출하고 있으며, 이들이 지역 정착을 이어가는 비율은 60%를 넘는다. 단순한 인구 유입이 아닌 지역경제를 견인하는 신세대 농업인의 등장이란 점에서 의미가 크다.
경상북도의 정책은 단순한 지방 차원의 대응을 넘어 중앙정부와의 협력 강화 모델로 확산되고 있다. 지난해 경북도는 정부에 ‘저출생 극복을 위한 중앙-지방 공동 대응’을 공식 제안했다. 이를 통해 청년 주거비 지원, 공공 보육시설 확충, 지역대학 활성화 등을 패키지로 묶어 추진하고 있다.
“저출생과 전쟁선포...일본 지자체 연구 도움돼”
경북도가 안고 있는 가장 시급한 현안은 저출생, 고령화, 수도권 집중이다. 갈수록 줄어드는 인구와 젊은 층의 수도권으로의 유출은 경상북도가 해결해야 할 최우선 과제다. 이철우 경북도지사는 “저출생과 인구감소 문제는 어느 한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방이 무너지면 대한민국이 무너진다”며 “지난해부터 저출생과 전쟁을 선포하고 저출생 극복을 위해 많은 정책을 내놓은 일본 지자체를 연구해 왔다. 협의체 구성 시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지자체가 참여할 수 있도록 정책을 설계해야 한다. 저출생과 전쟁에 나선 도가 앞장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경북의 정책 차별성은 ‘균형 발전’을 향한 시도에서도 드러난다. 도는 낙후 지역과 상대적으로 발전한 지역 간 격차를 줄이기 위해, 도청 북부지역에는 의료·보육 인프라를 집중 지원하고, 남부지역에는 청년 일자리 중심의 산업단지 연계 정책을 추진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경북연구원은 경북의 시도는 저출산·고령화 대응을 단순히 출산율 제고로만 보지 않고, 지역 균형 발전 전략과 함께 풀어내려 한다는 점에서 주목할 만하다고 평가한다. 다른 지자체들도 참고할 수 있는 모델이란 것이다. 경북도의 도전은 아직 진행 중이지만 지역이 스스로 답을 찾으려는 노력은 이미 전국적 주목을 받고 있다.
경북의 시도가 성공할지는 앞으로의 과제다. 하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있다. 저출산·고령화 위기 극복의 해법은 더 이상 중앙정부의 책상 위에서만 나올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장에서, 지역에서, 그리고 사람과 사람 사이에서 만들어지는 정책 실험이야말로 한국 사회의 새로운 돌파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