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저출산·고령화시대, 지역 答하다(13), 세종특별자치시편] 출산율 1위, 재도약 준비

2025-09-24     현성식 객원기자

# 한여름 볕이 뜨겁게 내리쬐던 지난 8월 중순, 기자는 세종시 어진동 정부세종청사 인근에 자리한 한 국공립 어린이집을 찾았다. 햇살이 막 번져나오는 시간, 현관 앞에는 유모차를 끌거나 아이 손을 잡은 부모들이 모여 있었다. 출근을 서두르면서도 아이를 맡기는 순간만큼은 조심스레 손을 잡아주고, 머리를 쓰다듬는 모습이 이어졌다. 이곳은 늘 입소 경쟁이 치열하다. “자리가 금세 다 차 버려요. 대기 명단에 이름 올려도 한참을 기다려야 하죠.” 현장에서 만난 한 어머니는 웃으며도 진지하게 털어놨다.

저출산 극복을 위한 세종시-하나은행 업무협약식. 뉴시스

저출산 위기 속 세종의 답...일자리·주거·육아 삼박자 정책
- 미혼남녀 만남부터 아빠 육아까지...‘세종시의 실험


[일요서울현성식 객원기자] 건물 안으로 들어서자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교실은 이미 분주했다. 선생님 품에 안겨 깔깔 웃음을 터뜨리는 아이, 작은 손을 맞잡고 블록을 쌓는 아이들 모습이 한눈에 들어왔다. 부모들은 그 광경을 잠시 지켜보다가 발걸음을 돌렸다. 그 순간, 눈가에 스친 안도와 미소는 세종시가 왜 보육하기 좋은 도시로 불리는지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 활기찬 현장은 전국에서 가장 높은 공공보육 이용률을 자랑하는 세종시의 현실을 그대로 압축해 보여주는 듯했다.

왜 보육하기 좋은 도시가 됐나

세종시는 출범 이후 젊은 도시라는 타이틀을 얻었다. 평균 연령 38.2, 30~40대 인구 비중이 전체의 35%에 달한다. 전국 평균보다 월등히 높은 수치다. 이러한 구조 덕분에 세종은 앞서 2015년 합계출산율 1.89명으로 전국 1위를 기록했다. 그러나 지난 20221.12명까지 추락하며 초저출산 지역으로 분류됐다. ‘출산율 1위 도시라는 타이틀이 무색해진 것이다. 이에 세종시는 최근 부서 명칭까지 인구여성가족과로 개편하며 인구 문제 해결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다.

세종시가 처음 출범할 때는 청년층 유입이 많아서 출산율이 자연스럽게 높았죠. 하지만 이제는 그 청년들이 40대로 접어들면서 출산율이 줄고 있는 겁니다.” 김영희(39, 가명) 씨는 첫째 아이를 어린이집에 맡기고 오는 길에 기자와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말했다. 맞벌이 부부인 그는 세종시의 국공립 어린이집에 큰 만족감을 보이면서도, 둘째 출산은 엄두를 못 내고 있다. “돌봄은 괜찮은데 교육비랑 주거비가 부담돼요. 아이 하나만 제대로 키우자는 생각이 들어요.”

실제로 세종은 주택 공급이 초기보다 줄어들고, 최근 집값 상승세가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젊은층이 대거 몰려온 도시가 이제는 정착 부담이라는 새로운 숙제를 안게 된 것이다. 지난 5월 주말, 세종시에서는 특별한 행사가 열렸다. 시가 직접 주관한 세종연결(세종에서 연애부터 결혼까지) 미혼남녀 인연만들기프로그램이다. 이날은 80명 정원 모집에 무려 326명이 몰려 열기가 뜨거웠다.

세종시는 행사에서 팀 레크레이션을 통해 어색한 분위기를 풀고 첫인상 투표, 개별 대화 시간 등을 마련해 각각의 인연을 찾도록 적극적으로 지원했다. 한 참석자는 "이성을 만날 기회가 별로 없었는데 이번 행사를 통해 좋은 만남의 기회를 가질 수 있었다""지자체가 주도하는 청년들의 인연만들기 행사가 많아지면 좋겠다"고 말했다. 시 관계자는 결혼·출산에 대한 인식을 긍정적으로 바꾸는 게 정책의 핵심이라며 이 같은 시도가 다른 지자체에서도 벤치마킹되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가운데 세종시는 초보 아빠들이 육아 고민과 경험을 나누는 '100인의 아빠단'도 주목된다. 3~7세 자녀를 둔 아빠들이 육아 실천을 독려하는 이 모임은 지난 20191기 활동 이후 매년 새로운 100명의 아빠들이 참여, 아빠 육아에 대한 긍정적 효과를 확산하는 양육 친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자녀와 함께 소중한 추억을 만드는 기회가 되는 건 물론 부부가 함께하는 육아 분위기 조성에 적잖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게 시의 판단이다.

세종시는 아빠들의 육아 참여를 장려하기 위해 아빠장려금을 지원하고, 공동육아나눔터 프로그램을 확대하고 있다. 또한 긴급돌봄 체계 개선과 난임치료 지원 확대 등 다양한 제안이 현장에서 나왔다.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률 전국1, 공공보육 이용율 전국 2

세종시 청사 어린이집 방문한 농식품부 직원들과 아이들. 뉴시스

이영옥 보건복지국장은 “100인의 아빠단 활동은 육아에 관심 있는 아빠들이 모여 함께 고민을 나누고 다양한 육아 체험 기회를 공유하는 기회가 될 것이라며 앞으로도 다양한 사업을 통해 공동육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확산시켜 출산과 양육에 친화적인 사회환경을 조성하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세종은 국공립 어린이집 확충률 45.9%로 전국 1, 공공보육 이용률 62%로 전국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또한 36524시간 돌봄 어린이집, 직장맘지원센터, 세종형 공동육아나눔터 등 전국 최고 수준의 인프라를 구축했다.

많은 지자체들이 출산 장려금, 양육비 지원 같은 현금성 정책을 내놓고 있지만, 세종은 조금 다른 길을 택했다. 최민호 세종시장은 현금 지원은 단기 효과는 있지만 근본 대책이 되지 않다부모가 아이를 낳고 기르는 전 과정이 안정돼야 진짜 출산율 개선으로 이어진다. 그래서 시는 보육·교육·일자리·주거까지 종합적으로 접근하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이어 "결혼·출산·양육이 행복한 선택이 될 수 있는 사회환경을 조성하고 청년층이 원하는 체감도 높은 정책을 추진해 가겠다"고 덧붙였다.

이를 위해 세종시는 올해 보건복지 예산을 전년 대비 120억 원 증액한 5751억 원으로 편성했다. 난임부부 시술비 지원 18억 원, 산모·신생아 건강관리 지원 16억 원, 소아전문 응급의료센터 운영비 25000만 원도 포함됐다. 세종시는 지난해 저출생극복추진협의체(저출생 극복 거버넌스)’를 발족했다. 시민, 전문가, 공무원 등 22명이 참여해 실제 체감형 정책을 발굴한다. 이 협의체에는 아이를 키우는 부모와 미혼 청년도 포함돼 있다.

세종의 사례는 여러 지자체들에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단순히 돈을 주는 방식이 아니라, 주거 안정·보육 인프라·문화 인식 개선이 함께 어우러져야 출산율 반등으로 이어진다는 점이다.

지방소멸 막는 세종의 길..전국 지자체 벤치마킹한다

100인의 아빠단 7기 해단식. 뉴시스

세종은 출산율 1위 도시라는 영예와 초저출산 도시라는 위기를 동시에 경험했다. 지금은 다시 도약을 모색하는 기로에 서 있다. 현장에서 만난 부모, 청년, 아빠, 전문가들의 목소리는 한결같았다. “결혼·출산이 부담이 아니라, 행복한 선택이 되는 사회가 돼야 한다”.

젊은 도시 세종의 도전은 전국 지자체가 벤치마킹할 수 있는 소중한 실험이다. 저출산·고령화 시대, 인구 위기의 해법은 더 이상 중앙정부만의 몫이 아니다. 세종이 보여주는 길은, 대한민국 모든 지역이 함께 고민해야 할 미래의 지침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