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5060 노후안정 프로젝트 시즌2: 은퇴, 그 새로운 시작(14)] 실버세대 시장의 주역
# 서울 종로구 인사동의 한 갤러리 카페. 60대 초반의 김정숙(62, 가명) 씨는 손주와 함께 도자기 체험을 즐긴 뒤, 바로 옆 매장에서 최신 스마트워치를 구매했다. “예전엔 은퇴하면 소비가 줄어드는 줄 알았는데, 오히려 지금이 제2의 청춘 같아요. 여행도 다니고 건강 관리도 챙기고 하고 싶은 게 많습니다”.김 씨의 이같은 이야기는 최근의 5060 세대를 대변한다. 이들은
단순한 ‘실버 소비자’가 아니라, 여행·뷰티·패션·IT 시장까지 새로운 트렌드를 이끄는 ‘골드세대 소비 주역’으로 떠오르고 있다.
- 은퇴 후 소비 중심에 서다...5060이 이끄는 ‘골드 마켓’
- 5060 세대, 새로운 소비 주역으로...중년 이후, 시장 움직여
[일요서울ㅣ현성식 객원기자] 은퇴자는 더 이상 소비를 줄이며 소극적으로 살아가는 세대가 아니다. 최근 한 통계연구기관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50~69세 가구의 월평균 소비지출은 약 325만 원으로 30대(308만 원)보다 오히려 높았다. 특히 여행·문화·건강 관리 지출 비중은 10년 새 두 배 가까이 늘었다.
서울 마포구에서 만난 58세 직장인 최모 씨는 “은퇴를 앞두고 있지만 지갑은 오히려 더 열리고 있어요. 자녀 교육비가 줄어든 대신 제 삶에 투자하고 싶거든요”라고 했다. 이처럼 ‘나이 들어서 쓰는 소비’가 ‘낭비’가 아닌 ‘삶의 질 향상’으로 인식이 바뀌고 있다.
작년 50-69세 가구 월평균 소비지출 325만원
최근 기자는 부산 해운대구의 한 고급 여행사 사무실을 찾았다. 벽면엔 유럽 와인 투어, 동남아 웰니스 여행 패키지, 국내 고급 온천 기행 상품이 줄지어 붙어 있었다. 상담 창구 앞에는 은퇴 후 여행 계획을 세우는 50~60대 부부들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곳 여행사 관계자는 이렇게 설명했다. “5060 고객은 단순히 싸고 빨리 다녀오는 여행보다, 역사와 문화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프리미엄 여행을 선호합니다. 실제로 60대 이상 고객의 1인당 여행비 지출은 30~40대보다 평균 1.5배 이상 높습니다”.
부산 수영구에서 만난 은퇴 공무원 이경호(65, 가명) 씨는 아내와 함께 지중해 크루즈 여행을 예약했다. 그는 “현역 시절엔 바빠서 못 했는데, 이제야 여유를 찾았다. 여행은 제 노후의 최대 보람”이라며 웃었다. 서울 강남구 신사동의 한 뷰티 편집숍에서는 50~60대 여성 고객들이 줄지어 피부 관리 기기를 체험하고 있었다. 과거 뷰티 시장의 주 고객층이 20~30대였다면, 이제는 ‘동안’을 꿈꾸는 5060 소비자가 중심이다.
60대 여성 소비자 정선희(가명) 씨는 “요즘엔 ‘할머니답게’ 사는 게 아니라, ‘나답게’ 사는 게 중요하다"면서 "화장품도 성분과 효과를 꼼꼼히 따져서 고르고, 패션도 젊은 층 못지않게 신경 쓴다"고 말했다.
패션 업계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모 국내 브랜드 관계자는 “중년 고객은 충성도가 높고, 자신에게 맞는 브랜드를 찾으면 꾸준히 소비한다”면서 “실제로 시니어 모델을 앞세운 광고가 매출 상승으로 직결되는 사례가 늘고 있다”고 전했다.
“아이폰 새 모델이 나왔다는데, 예약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죠”. 제주시 인제동의 한 통신사 매장. 60대 초반 남성 두 명이 매장 직원에게 질문을 쏟아냈다. 최신 스마트폰을 바꾸기 위해 줄을 선 사람들 가운데 절반은 50대 이상이었다. 제주 지역에서 만난 은퇴 교사 안성호(63, 가명) 씨는 “손주 사진을 찍고, 영상 통화도 해야 하니 스마트폰은 필수”라며 “요즘은 유튜브로 골프 레슨도 듣고, 인터넷으로 주식 투자까지 한다”고 했다.
한국정보통신진흥협회 등 지난해 발표한 여러 조사에 따르면 50대 이상의 스마트폰 보급률은 대부분 95%를 훌쩍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특히 50대의 경우 99% 이상으로 사실상 포화 상태에 도달했다. 이는 단순히 기기를 쓰는 수준을 넘어 디지털 소비의 핵심층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실버 마케팅 건강.보험상품에서 여행.뷰티.패션.IT까지 ‘확산’
과거 ‘실버 마케팅’은 건강식품, 보험 상품 등에 국한됐다. 하지만 지금은 달라졌다. 여행·뷰티·패션·IT를 아우르는 전방위적 시장이 됐고, 기업들은 5060 세대를 더 이상 ‘나이든 소비자’로만 보지 않는다.
관련 전문가들은 “5060 세대는 안정된 소득과 자산을 보유한 경우가 많다”면서 “이들이 어떤 선택을 하느냐가 곧 시장 판도를 바꾸는 시대다. 중요한 건 ‘늙음’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능동적이고 주체적인 라이프스타일을 존중하는 접근”이라고 설명했다.
실제로 몇몇 지자체는 시니어 전용 쇼핑·문화 공간을 조성해 지역 경제 활성화와 연계하고 있다. 서울시는 5060 전용 문화센터인 ‘50플러스센터’를 열어 취업 지원부터 취미, 여가, 건강까지 중장년층의 관심사를 반영한 맞춤형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있다.
저출산·고령화로 인해 오는 2060년이면 전체 인구의 절반 가까이가 50대 이상이 될 것으로 관측된다. 수도권과 지방의 인구 격차는 심화되지만, 동시에 지방 중소도시는 시니어 소비층을 겨냥한 맞춤형 마케팅으로 활로를 찾을 수 있다.
최근 한 지자체에서는 ‘5060 맞춤형 장보기 체험 프로그램’을 운영해 큰 호응을 얻은 바 있다. 5060 세대의 변화는 현장에서 만난 목소리에서도 확인된다. 제주 지역에서 만난 김정숙(62, 가명) 씨는 “은퇴 이후, 나를 위한 소비가 시작됐다. 오히려 삶의 활력을 찾았다“며 “건강과 여가에 돈을 쓰는 게 가장 보람 있다”라고 은퇴 후 소비의 가치를 강조했다.
이런 가운데 또 다른 흐름은 디지털 분야에서 드러난다. 은퇴 교사 안성호(63, 가명) 씨는 “젊을 때보다 스마트폰을 더 자주 이용한다. 제 생활의 중심”이라며 시니어 세대가 더 이상 아날로그에 머물지 않음을 보여줬다. 서울에서 만난 정선희(61, 가명)씨 역시 “이제는 나이보다 취향으로 소비를 정의해야 한다”며 5060 세대의 소비가 단순한 생계형 지출이 아닌 개성과 선택의 문제임을 강조했다.
이처럼 각기 다른 목소리는 은퇴자들이 더 이상 ‘나이 듦’의 틀에 갇히지 않고, 삶의 방식과 소비의 기준을 스스로 새롭게 세우고 있음을 보여준다. 5060 세대는 더 이상 조용히 늙어가는 세대가 아니다. 이들은 사회의 골드세대, 새로운 소비 주역으로서 시장의 방향을 바꾸고 있는 것이다. 여행지에서, 뷰티숍에서, 온라인 쇼핑몰에서, 그리고 동네 전통시장까지, 이들의 소비는 단순한 돈의 흐름이 아니라, ‘나이 듦의 재정의’를 보여주고 있다.
한국 사회의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체계적 지원 ‘절실’
앞으로 필요한 것은 단순한 상품 판매를 넘어서는 전략이다. 지역사회·기업·정부가 함께 협력해 ‘5060 세대’의 요구를 제도적으로 반영하고, 이들의 소비와 참여가 곧 한국 사회의 새로운 성장 동력으로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지원해야 한다는 게 공통적인 시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