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동규 정론직필] 격변기 맞은 한반도 평화, 안보 시계
- 李 대통령 ‘새로운 비핵화 해법’(E·N·D), ‘핵 동결 수용’ 가능성은 파격적 접근
- 북,중,러 신냉전체제 결속 북핵 강화 요인 작용, 경주APEC 한반도 논의 마중물 가능성
이재명 정부는 최근 취임 100일을 넘긴 그야말로 新 정부다. 하지만 이미 국제외교 무대에서 굵직 굵직한 정상외교와 한.미.일 정상 회담까지 소화하며 李 대통령의 실용 외교 데뷔전을 치르고 있다.최근 유엔 방문 시 국제사회를 향해 대한민국의 정상 국가로의 복귀를 알리며 ‘새로운 한반도 평화정책’ 방향을 천명하는 등 숨 가쁜 외교전에 나서기도 했다.
정상 국가로의 복귀 선언과 함께 국제사회와 북한에 대해 이재명 정부의 ‘새로운 비핵화 해법’과 ‘평화 공존 로드맵’을 제시하여 향후 북한의 반응과 미국과의 공조 방향에 대해 상당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李 대통령은 유엔연설 시 천명한 한반도 평화 공존의 방향에서 이른바 ‘E·N·D 이니셔티브’를 제안했다. 최종 목표는 물론 ‘비핵화’와 ‘남북 평화 공존 시대’의 개막을 열겠다는 것이다. 교류(Exchange), 관계 정상화(Normalization), 비핵화(Denuclearization) 단계를 거쳐 포괄적인 대화로 적대와 대결의 시대를 종식(END)하고 평화 공존과 공동 성장을 이루겠다는 구상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민주당 정권의 역대 한반도 평화 정책의 ‘큰 틀’ 속에서 짜여진 로드맵으로 우선순위를 두지 않고 위성락 안보실장의 발표대로 ‘상호 추동하는 방식’으로 비핵화를 추진한다는 점이 특징이다. 그런 측면에서 李 대통령은 연설에서 직접적인 표현은 아니라도, 이미 북한을 ‘사실상의 핵 보유국’ 임을 전제로 ‘핵 개발 중단-축소-폐기’ 3단계 접근법을 제시했다. 북.미 간 ‘핵 동결 합의’를 하더라도 수용하고 비핵화를 궁극적인 목표로 두고 교류, 남북간 정상적 교류 협력 등을 거치면서 평화 공존의 방법을 찾아 가겠다는 것이다.
과거 역대 민주당 정권의 비핵화 해결 방법은 대부분 소위 ‘톱 다운 방식’으로 북.미, 남북을 비롯한 당사국 정상 간의 일괄 타결 방식으로 접근해 왔지만, 대부분 사실상 성공하지 못했다. 남북,북.미간 잠시의 평화 무드가 조성되어 일시적 교류 협력이 활성화되고 9.19 군사합의 같은 성과도 있었지만, 보수정권이 들어서면 곧 대결 국면이 조성되고 북한의 긴장 고조와 핵 무력 노선만 강화되는 악순환이 거듭돼 왔다.
하지만 李 대통령의 ‘핵 동결 수용’이라는 다소 파격적 의지 표명에도 불구하고 북한 김정은 위원장은 최근 ‘비핵화 협상은 영원히 없을 것’이라거나 ‘남한과 마주 앉을 생각은 전혀 없다’ 는 등 비핵화 언급 자체를 무력화시키려 하고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 내에선 李 대통령의 북핵 동결수용 후 북한에 대한 대북 제재 해제와 핵 개발 지속 이라는 최악의 시나리오를 우려하는 여론이 상당한 것도 사실이다.
좀 더 냉철하게 본다면, 李 대통령의 북핵 동결 수용 및 남북, 북.미 간 교류 및 관계 정상화 조치라는 이전 비핵화 접근법과 다른 파격적 의지표명에도 불구하고 그 실현 가능성을 높게 보지 않는 이유는 결국 북한의 ‘핵 포기 절대 불가’라는 대원칙하에 ‘불가역적(不可逆的) 핵 보유국 지위’ 인정 확보 정책 때문이다.
더구나 우크라이나 전쟁에서 북-러 군사 밀착과 혈맹 관계 재정립, 북.중.러 신냉전 체제 강화로 미국 중심의 민주 진영에 대한 ‘공산사회주의 연대 대항 체제’가 과거 어느 때보다 강한 결속을 유지하고 있다. 이러한 신냉전체제 결속은 북한의 핵보유국 지속화에 큰 힘을 보태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다만, 한가지 희망적인 흐름은 분명히 있다. 오는 10월 31일~ 11월1일 경주 APEC 정상회의시 미 트럼프 대통령과 중국 시진핑 주석의 방한 가능성이 높고 북한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의 전격 회동 가능성까지 나오는 점이다. 이스라엘 전쟁, 우크라 전쟁 등에서 아무런 진전도 확보 못한 트럼프로선 한반도 문제에서라도 뭔가 성과를 내려는 의욕이 강할 수 있다는 것이다. 미. 중 간 관세 전쟁 역시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전격적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다. 한국과의 관세 세부 합의도 남아 있다. 이 모든 결단과 성과가 트럼프와 시진핑의 방한 시 뭔가 돌파구를 얻을 수 있다는 기대감 때문인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반도 문제가 일회성 만남으로 정리될 문제 아님은 너무도 복잡다기한 사안이기 때문이고 많은 시간과 인내, 당사국간의 ‘신뢰의 벽’을 쌓아가는 문제가 큰 과제이기도 하다.한반도 비핵화와 평화 공존의 문제는 북한의 비핵화가 없이는 공염불임은 세계가 인지하는 문제이다. 통미봉남(通美封南)속 ‘대북 제재 허물기’와 ‘핵보유국 인정’을 통한 대남 군사적 우위 확보는 북한 정권의 숙명적 과제이다.
이재명 대통령의 새로운 비핵화 접근방식과 해법이 결코 경주 APEC 정상회의나 북.미 간 깜짝 회담 등 일회성 이벤트로 실현될 사안은 아니지만, 적어도 李 대통령이 제시한 ‘E·N·D 이니셔티브’ 구현을 위한 논의의 출발점은 될 수 있을 것이다. 북한 역시 자신들에게 호의적인 두 번의 트럼프 시대와 한국의 남북 평화공존을 추구하는 새로운 민주당 정권의 출범은 쉽게 오지 않는 기회이기에 변화를 언제까지나 거부할 순 없을 것이다. 그만큼 한반도 평화, 안보 시계는 말 그대로 격변기에 들어선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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