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인간의 새로운 조건을 묻다
[사이 인간] 저자 김대식·김혜연(주애령) / 출판사 문학동네
[일요서울 | 김정아 기자] 인공지능(AI)의 등장은 인간의 삶을 근본적으로 바꾸고 있다. 과거 지식의 총량이 곧 힘이 되던 시대는 저물고 있다. 이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묻느냐’다. 질문의 방향이 곧 창조의 가능성을 열어주고, 인간만의 고유한 사고를 드러내는 시대가 열린 것이다.
뇌과학자 김대식과 생성형 AI를 기반으로 작업하는 안무가 김혜연은 이러한 문제의식을 바탕으로 신간 「사이 인간」을 출간했다. 두 저자는 뇌과학과 예술이라는 서로 다른 영역을 접점 삼아, 인문·사회·문화·예술·공학·언어 등 각 분야의 최고 전문가 15명과 대담을 나눴다. 그 주제는 결국 일과 업계의 미래를 넘어, 결국 인간의 미래에 초점을 맞췄다.
책의 제목이기도 한 ‘사이 인간’은 현재 인류가 선 자리를 상징한다. 그것은 곧 호모 사피엔스가 이룩한 문명과 AI가 열어가는 새로운 문명 사이에 존재하는 인류, 즉 전환기의 인간을 뜻한다. 저자들은 “우리가 누려온 현대 문명은 곧 끝나리라”고 단언한다. 경험을 축적하며 지혜를 얻었던 호모 사피엔스는 이제 입력값과 프롬프트에 의존하는 신인류, ‘호모 프롬프투스(Homo promptus)’로 이행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 사이에는 중간 지대가 있다. 두 저자는 인류의 현재를 ‘호모 메디우스(Homo medius)’, 곧 ‘사이 인간’으로 정의한다. 이들은 인터뷰집을 통해 이 중간 존재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갈 것인지, 또 새 문명의 가능성이 어디에 있는지를 탐색한다.
각 분야 전문가 15인의 목소리
신간 「사이 인간」의 큰 특징은 다양한 영역의 전문가들이 참여한 인터뷰에 있다. 진화생물학자, 철학자, 소설가, 건축가, 영화감독, 기업 경영자, 예술감독 등 각기 다른 분야에서 활동하는 이들이 저자와의 대화를 통해 인간과 AI의 공존, 그리고 그 속에서 인간이 맡게 될 역할을 진단한다.
먼저 진화생물학자 최재천, 데이터 분석가이자 작가 송길영, 소설가 장강명, 건축가 유현준, 영화감독 김태용 등이 참여하여 사회와 직업 세계에서의 변화상을 짚는다. 글쓰기, 건축, 영화와 같은 영역에서 AI가 이미 불러온 변화와 앞으로의 가능성을 탐색하며, 인간 고유의 창의성과 감수성이 어떤 방식으로 발휘될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문화산업 종사자들의 목소리도 담겼다. SM엔터테인먼트 공동 대표 이성수, 다큐멘터리 PD 한상호, 예술감독 이대형, 연출가 이대웅, 인도학자 강성용은 AI와 예술, 대중문화의 융합 사례를 소개한다. 아이돌 그룹 ‘에스파’와 버추얼 아이돌 ‘나이비스’가 이어가는 세계관, 생성형 AI를 활용해 제작된 다큐멘터리 「위대한 인도」 등은 이미 현실 속에서 구현된 새로운 협업 방식이다.
한편 철학자 최진석, AI 반도체 스타트업 리벨리온 대표 박성현, 문학평론가 이광호, 사진가 김용호, 언어학자 신지영은 인간을 정의하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기술적 전환기 속에서 철학·공학·문학·예술·언어 분야가 인간적 능력을 어떻게 재규정할 수 있는지를 성찰한다.
AI와 인간, 두 개의 답변
책 「사이 인간」이 독창적인 또 하나의 지점은 ‘이중 인터뷰’ 형식이다. 저자들은 인터뷰의 배경 정보와 활동을 학습시킨 생성형 AI에게 동일한 질문을 던졌다. 따라서 책에는 실제 인터뷰이의 육성 답변과 AI가 내놓은 답변이 나란히 실려 있다.
이 두 가지 답변을 비교하는 경험은 독자에게 특별한 사유를 불러일으킨다. 인간은 감정과 맥락을 담아 대답하고 AI는 방대한 데이터와 패턴을 통해 응답한다. 같은 질문에 대한 상이한 접근은 오히려 인간 고유의 사유 방식과 감각을 더욱 선명하게 드러낸다. 저자들이 말하는 ‘사이 인간’의 정체는 바로 이러한 비교 속에서 드러난다.
책 「사이 인간」은 현시점의 AI 시대의 전망만을 담은 책이 아니다. 그것은 더 깊이, 인간 자체를 묻는 책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는 호모 사피엔스의 문명이 종말을 고하고 호모 프롬프투스의 시대가 막을 올리는 문명적 전환기에 있다.
그렇다면 인간은 무엇으로 인간일 수 있는가? 창의성, 공감 능력, 상상력은 여전히 인간만의 영역일까? 아니면 AI와의 협업 속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재정의될 것인가? 신간 「사이 인간」은 이러한 질문을 전문가들의 목소리와 AI의 대답을 병치함으로써 독자에게 던진다.
저자 김대식과 김혜연은 말한다. “앞으로 중요한 것은 무엇을 아느냐가 아니라, 무엇을 묻느냐이다.” 질문은 지식의 시작이자 인간 사유의 출발점이다. 신간 「사이 인간」은 그 질문을 통해 지금 우리가 어디에 서 있는지, 또 어디로 나아가야 하는지를 사유하게 한다.
AI 시대의 인간은 올바른 질문을 던지고 새로운 관계를 창조하는 존재다. 이 책은 바로 그 ‘사이’에 선 우리를 성찰하게 만드는 안내서다.
이 책과 함께 읽을 만한 도서로는 저자 김원학의 ‘독을 품은 식물이야기’, 저자 백지연의 ‘잊혀진여성’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