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감 핫이슈] '현대로템'...‘정권 특혜’ 논란 속 국감 소환
'명태균 로비·코레일 전관 채용 의혹'...국회서 진실 밝혀지나
[일요서울 ㅣ이범희 기자] 정치권과 기업의 유착 고리가 최근 진행되는 2025 국정감사에서도 수면 위로 떠올랐다. 철도·방산 분야의 대표 기업 현대로템(사장 이용배)이 입찰 담합과 전관 채용, 로비 의혹 등으로 국회 증언대에 서게 되면서, 재계와 정치권의 미묘한 연결고리가 도마 위에 올랐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와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는 지난 21일 한국철도공사 국정감사에 이용배 현대로템 대표이사를 증인으로 채택했지만 불참했다. 이 대표는 이날 방위산업 특사단 일원로 폴란드 일정에 동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대표를 대신해 김정훈 레일솔루션사업본부장이 참석했다.
현대로템은 2023년 KTX·SRT 고속철 사업 입찰 과정에서 정치 브로커 명태균 씨를 통해 청탁을 시도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사업 수주 이후 명 씨에게 감사 문자와 난을 전달한 정황이 드러났으며, 코레일 고위직 5명을 자문역으로 특별 채용한 사실도 복수의 매체를 통해 외부에 알려졌다.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복기왕 의원(더불어민주당, 아산시갑)은 공정거래위원회가 현대로템의 철도차량 입찰 담합을 적발하고도 불과 반나절 만에 스스로 처분 수위를 취소하는 비상식적 처분을 내렸다고 주장한다.
이는 대기업의 명백한 담합을 확인하고도 제재를 번복한 결정은 대기업 눈치 보기이자 공정위 기능 상실의 전형적인 사례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워 보인다며 논란을 예상했다.
복 의원이 공정위로부터 제출받은 '현대로템 등 3개 사업자의 철도차량 구매 입찰 담합 사건 의결서'를 분석한 결과 공정위는 2022년 9월 7일 전원회의에서 고발․시정조치․과징금 323억 원 부과를 의결하고도 같은 날 해당 처분을 전부 면제하는 의결을 다시 진행했다는 것이다.
공정위는 2013년부터 2020년까지 14건에 걸쳐 한국철도시설공단 등 철도 운영기관 발주 철도차량 구매 입찰 담합 사건을 조사한 결과 현대로템을 비롯한 3개 사업자가 사전에 낙찰 예정자와 입찰 금액을 합의해 경쟁을 제한한 사실을 확인했다.
애초 공정위는 현대로템의 행위가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상 입찰 담합 금지 위반에 해당한다고 판단하고 403억 원의 과징금을 산정했다. 이후 현대로템이 자진 신고와 조사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고발, 시정조치, 323억 원(20% 감경)의 과징금 처분을 결정했다.
그러나 불과 몇 시간 뒤 공정위는 고발 시정조치 과징금 부과를 모두 면제했다. 이 과정에서 감경 처분 상태에서는 면제 결정을 내릴 수 없다는 내부 규정에 따라 공정위는 감경 결정을 먼저 취소한 뒤 다시 과징금 403억 원 부과 결정을 면제하는 절차를 밟은 것으로 드러났다.
복 의원은 “입찰 담합은 국민 세금으로 조성되는 공공사업의 경쟁 질서를 무너뜨리는 중대한 불법 행위임에도 공정위가 스스로 결정을 뒤집어 대기업을 감쌌다”라며 “이는 공정거래 질서를 수호해야 할 기관이 대기업의 눈치를 보며 스스로 공정성을 훼손한 사례”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공정위가 진정으로 공정한 시장 질서의 수호자라면 입찰 담합 사건의 제재 강화와 재발 방지 제도 개선에 즉각 나서야 한다”라며 “대기업 담합을 눈감아주는 관행이 반복된다면 국민은 더 이상 공정위를 신뢰하지 않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안태준 의원(경기 광주을)도 이날 '한겨레21'이 보도한 '정경유착의 끝판왕' 기사 내용을 거론하며, 코레일이 해당 보도에 대해 언론중재위 제소나 정정보도 청구 등 공식 대응을 한 적이 없다는 점을 지적했다.
안 의원은 "코레일이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았다는 건 사실상 보도 내용을 부정하지 않은 것"이라며 전 정권 시절 코레일과 현대로템 간의 대규모 수주 및 감사 문자 수수 의혹을 언급했다.
그는 또, 현대로템이 경쟁사인 우진산전에 입찰 제한을 걸어달라고 부탁한 문자 내용까지 언급하며 "이런 방식으로 사업을 진행하면서 다시 대형 입찰을 추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조국혁신당 차규근 의원(기획재정위원회)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기획재정부가 운용하는 대외경제협력기금(EDCF)의 대개도국 차관 예산 가운데 24%가 현대로템에 집중된 것으로 확인됐다.
내년 EDCF 총예산은 약 2조3000억 원이며 이 중 개도국 차관 사업 예산은 163개 사업, 총 1조6000억 원 규모다. 이 가운데 현대로템이 수주한 단 네 건의 사업이 3897억 원에 달해 전체 예산의 24%를 차지한다.
이 금액은 중동과 중남미 전체 융자 사업 예산을 합친 규모보다 약 2200억 원이 많다. 지역별로 보면 아시아가 89개 사업 8235억 원, 아프리카 46개 사업 6230억 원, 중동·CIS 17개 사업 1634억 원, 중남미 11개 사업 176억 원 수준이다. 특히 현대로템의 사업 네 건 중 세 건은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정부의 EDCF 지원 방침이 결정되고 차관 공여 계약 (L/A, Loan Agreement)까지 체결됐다.
이집트 카이로 메트로 2·3 호선 전동차 구매 사업은 2022년 7월 정부 지원 방침 승인 후 2023년에 L/A가 체결됐고 모로코 교외선 철도차량 공급사업은 올해 1월 승인 후 2월에 L/A가 체결됐다. 우즈베키스탄 고속철도 차량 구매 사업은 지난해 6월 정부 지원 방침 승인과 L/A 체결이 같은 달에 이뤄지는 등 이례적인 속도로 진행됐다. 특히 우즈베키스탄의 경우 국제 경쟁입찰 절차 없이 처음부터 현대로템을 염두에 둔 사실상의 수출금융 방식으로 추진된 것으로 확인됐다.
또한 국토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보면 2023년 9월 추경호 경제부총리는 우즈벡 경제부총리를 만나 “한국기업 수주 시 EDCF 지원이 가능하다"라고 발언했는데 이는 정부 지원 방침이 결정되기도 전의 일이다.
차 의원은 “EDCF는 개도국의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공적개발원조 (ODA) 기금임에도 지난 정부에서 특정 대기업의 수주를 지원하는 수단으로 전락했다”라며 “현대로템과 명태균 간 로비 정황이 이미 드러난 국내 사업을 넘어 해외 수주로까지 이어진 것은 아닌지 정부의 결정 과정이 적정했는지 철저한 조사가 필요하다”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이번 논란들은 단순한 기업 비리 차원을 넘어 정치권과 재계의 유착 구조를 해부하는 계기가 될 전망이다. 특히 이 대표는 현대차그룹 내 최장수 CEO로, 내년 3월 임기 만료를 앞두고 있어 국감 증언이 향후 거취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보인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기업의 윤리경영이 공염불이 되고 있다”라며 “전관예우와 로비가 반복되는 구조를 끊어야 한다”라고 지적한다. 국정감사에서 현대로템의 진정성과 책임이 어디까지 밝혀질지, 국민의 눈은 국회로 향하고 있다.
한편, 이 대표를 대신해 국감에 출석한 김정훈 현대로템 레일솔루션사업본부장은 안 의원의 중소기업 영업 침탈 논란과 공정위 관련 의혹에 대해 "대기업으로서 가져야 하는 사회적 책임에 대해 충분히 이행하고 변화된 모습을 보여드리겠다"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