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현장취재] 롯데칠성 무기계약직 “직장 내 괴롭힘 신고·임금차별 고발”, 무슨 일
정규직과 같은 공정서 일하지만 수당·성과급 배제...“불이익·괴롭힘까지 이어져”
[일요서울 l 이지훈 기자] 롯데칠성음료 강릉공장에서 근무하는 무기계약직 여성노동자들이 직장 내 괴롭힘과 임금차별 문제를 제기하며 집단 행동에 나섰다. 정규직과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각종 수당과 보상에서 배제되고, 내부 신고 이후에는 오히려 불이익과 괴롭힘이 이어졌다는 주장이다. 노조는 “롯데칠성의 구조적 차별이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을 이중으로 고통스럽게 하고 있다”며 고용노동부의 철저한 조사와 시정조치를 요구하고 나섰다.
-“정규직과 같은 일, 다른 대우”... 10년 넘게 이어진 구조적 차별
-노동자 “신고했더니 불이익” vs 회사 “괴롭힘 사실 아니다”
지난 20일 강릉 고용노동부 지청 앞은 기자회견을 찾은 취재진과 노조 관계자들로 분주했다.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와 전국금속노동조합 강원지역지회(준)가 주최한 이번 기자회견은 롯데칠성음료 강릉공장에서 근무하는 무기계약직 여성노동자들이 겪고 있는 직장 내 괴롭힘과 임금차별 문제를 공론화하기 위해 마련됐다.
기자회견은 이대우 금속노조 전략조직국장의 사회로 진행됐다. 현장에서는 무기계약직 여성노동자 3명이 직접 증언에 나섰으며, 김남순 민주노총 강원지역본부장이 롯데칠성의 불법행위를 규탄하고, 이상섭 금속노조 수석부위원장이 고용노동부의 엄중한 조사를 촉구했다. 기자회견 후에는 고발장을 접수하고 정언숙 고용노동부 강릉지청장과의 면담도 진행된 것으로 전해진다.
이날 현장에 참석한 이들은 무기계약직 여성노동자들이 2000년대 초반 하청업체 소속으로 근무하다 2016년 계약직으로 전환된 뒤, 2018년 4월 무기계약직으로 전환됐다고 설명했다.
문제는 정규직과 오랜 시간 같은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각종 수당을 받지 못하고, 근로계약서상과 다른 업무를 배정받는 등 지속적인 차별을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또한 폭언과 퇴사 강요, 보상 차별, 악성 소문 유포 등 직장 내 괴롭힘 사례가 반복됐으나 회사는 사건을 불인정 처리하며 문제를 은폐했다는 주장이다.
노조는 기자회견을 통해 “롯데칠성의 구조적 임금차별과 직장 내 괴롭힘은 명백한 불법”이라며 “고용노동부가 직접 나서 엄정 조사하고 강력히 처벌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성과급·복지 제외... 같은 식당서 밥 먹어도 차별받았다”
이에 더해 노동자들은 직장 내 괴롭힘과 임금차별이 단순히 개인의 문제를 넘어선다고 지적했다. “같은 공정에서 일하면서도 임금과 수당에서 차별받고, 신고 후에는 오히려 불이익을 받는다”며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회사 내 조직 문화와 고용체계 전반과 맞닿아 있다”고 입을 모았다.
기자회견에서는 구체적 사례도 공개됐다. 한 노동자는 2021년 근무 중 허리를 다쳐 병가를 내고 치료했으나, 회사는 산재 처리 대신 개인 비용으로 치료를 강요했고, 이후 성과급 지급에서도 배제됐다. 또 다른 노동자는 정규직 전환을 미끼로 허위 진술을 요구받고, 유급휴가라는 명목으로 두 달 반 이상 강제 휴직하며 극심한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고 증언했다.
노조 측은 이러한 사례를 근거로 “노동자의 건강과 권리를 무시한 채, 구조적 차별과 괴롭힘이 지속되고 있다”며 “이번 기자회견과 고발이 단순히 사건 하나를 알리는 것이 아니라, 대기업 현장 전체의 불평등 구조를 드러내는 계기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본지는 롯데칠성음료 강릉공장에서 근무하는 노동자들이 고용노동부에 제출한 직장 내 괴롭힘 호소문을 입수해 살펴봤다. 호소문에는 10년 넘게 같은 공정에서 일해 온 여성노동자들의 좌절과 분노, 그리고 구조적 차별에 대한 문제의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14년째 근무 중인 피해자 A씨는 “정규직이라는 희망 하나로 버텨왔지만, 돌아온 건 차별과 갑질뿐이었다”고 털어놨다. 그는 “정규직 노조 간부가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동료들에게 험담을 하고, 근무지를 바꿔버리겠다는 협박까지 했다”며 “같이 일하지도 않는 사람에게 밥줄을 쥔 듯 행동하는 현실이 너무 억울하다”고 호소했다.
A씨는 지난 1월 동료들과 함께 법무법인의 도움을 받아 회사에 갑질을 신고했지만, “두 차례 조사와 구제위원회 소명에도 회사는 ‘사실관계 부정’으로 사건을 종결했다”며 “노무사가 갑질이라 지적했는데도 회사는 가해자 편만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의 조사 결과를 더 이상 신뢰할 수 없다. 노동부가 직접 나서 진실을 밝혀달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10년째 근무 중인 피해자 B씨 역시 “일터는 더 이상 안전한 공간이 아니다”라고 토로했다. 그는 2021년 근무 중 허리를 다쳐 병가를 냈으나, “회사는 산재 처리를 도와주지 않아 사비로 병원비를 냈다”며 “그런데 이듬해 성과급에서 제외됐다”고 말했다.
-롯데칠성 “사실관계 확인 중... 재발 방지 대책 마련하겠다”
B 씨는 작업반장이 "병가를 쓰면 인사고과 D를 받는다"며 "생활 마인드를 돌아보라"고 핀잔을 줬을 때 사람으로 존중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호소했다. B씨는 이후 인사발령으로 다른 층으로 옮겨졌고, 허위 진술 강요와 반복된 추궁에 시달렸다고 주장했다.
그는 “동료들과 용기 내서 본사에 신고했지만, 회사는 ‘진술이 일관되지 않는다’며 가해자의 손을 들어줬다”며 “지금도 가해자로 지목된 반장을 마주치면 가슴이 두근거리고, 언제 보복을 당할지 두렵다”고 말했다.
본지와 이야기를 나눈 롯데칠성음료 측은 무기계약직 노동자들의 주장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회사는 “강릉공장 무기계약직 근로자들은 단순 노무 업무에 종사하고 있으며, 이와 동일한 업무를 수행하는 정규직 직원은 존재하지 않는다”며 “임금체계만 다를 뿐 복리후생은 정규직과 동일하게 적용되고 있다”고 밝혔다.
직장 내 괴롭힘 의혹과 관련해서도 회사는 “해당 사안을 올해 초 노동청 진정을 통해 인지한 후 외부 노무사를 선임해 공정한 조사를 진행했다”며 “이후 외부 노무사 2명과 사내 인권침해구제위원회가 심층 심의를 거친 결과, 직장 내 괴롭힘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결론이 나왔다”고 설명했다.
롯데칠성은 조사 결과를 고용노동부 강릉지청에 제출했으며, “지청에서도 조치 결과에 이상이 없다고 판단해 사건은 종결됐다”고 전했다. 이어 “조사 이후 신고인과 피신고인 모두에게 충분히 설명했고, 무기계약직 근로자들이 요청한 개선 사항을 반영해 후속 조치를 마련했다”며 “직장 내 괴롭힘 예방 차원에서 별도의 교육까지 실시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