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윤옥 논설위원] 스마트안전장비, 기술보다 제도가 늦다
산업현장의 스마트안전장비 도입이 확대되고 있다. 위험을 탐지하고 데이터를 기반으로 재해를 예방하는 이 장비들은 단순한 보호구를 넘어 근로자의 생명을 지키는 핵심 기술로 부상했다. 문제는 기술이 시장에 진입하는 과정이다. 아직도 많은 스마트안전제품이 “좋은 기술”임에도 불구하고 사용승인과 제도화라는 문턱을 넘지 못하고 있다.
정부는 2024년부터 스마트건설안전기술 인증제도를 가동하고, 중소사업장을 위한 보조금 지원사업과 Fast-Track 연계 등록을 운영 중이다. 그러나 현장에서 체감되는 현실은 다르다. 인증을 받아도 조달로 바로 이어지지 않고, KOSHA 보조금과도 자동 연계되지 않는다. 무엇보다 스마트안전제품에 대한 사용승인 절차와 법적 규정이 명확하게 정비되어 있지 않다는 점이 가장 큰 문제다.
예컨대 웨어러블 에어백, 스마트 안전모처럼 기존 분류나 코드 체계에 존재하지 않는 제품들은 조달시장 진입 자체가 어렵다. 관련 법령인 건설기술진흥법에도 스마트안전장비 보급·지원을 언급하는 조항은 있지만, 사용승인 요건이나 인증 기준은 별도로 규정되어 있지 않다. 이로 인해 기업들은 기술을 개발하고도 시장에서 “쓸 수 있는가”라는 근본적인 장벽에 부딪히는 것이다.
더욱이 이러한 규정 부재는 신기술의 상용화를 저해하고, 혁신 기업의 시장 진입을 지연시켜 산업 전반의 경쟁력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 정책의 선의가 실제 산업 현장에서 실효성을 발휘하려면, 규정의 정합성과 실행력이 전제되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첫째로 스마트안전장비의 인증·사용승인 절차를 법률로 명문화해야 한다. 하위법령을 통해 성능기준, 분류코드, 적합성 평가 방식 등을 구체화하고, 인증제품이 자동으로 조달청 우수제품, 수의계약 대상에 포함되도록 연계체계를 명확히 해야 한다. 제도화된 통로가 있어야 기업도 시장 진출을 계획하고 투자할 수 있다.
둘째, 기술 발전 속도를 반영해 ‘예비분류 코드’ 또는 ‘샌드박스형 승인 체계’를 도입해야 한다. 기존 체계에 맞지 않더라도 모범규격이나 시범조달 기준으로 임시 사용승인을 부여하고, 일정기간 실증을 통해 정식 코드 편입 여부를 검토하는 방식이 필요하다. 이를 통해 빠르게 진입로를 확보하고, 신기술의 시장 테스트도 가능해진다. 이는 제도가 기술을 선도하는 유연성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다.
셋째, 인증은 ‘성능’뿐 아니라 ‘효과’로 이어져야 한다. 재해감축률, 오경보율, 작업자 수용성 등 현장 기반의 정량적 데이터를 평가 항목에 포함시켜야 하며, 실증 데이터를 제출해야 인증이 완성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이러한 기준이 명확히 설정될수록 인증의 공신력과 시장 수용성이 함께 높아진다. 또한 실증 기반 인증은 발주자의 신뢰도를 높이고, 반복적인 평가 절차를 간소화하는 장점도 있다.
넷째, 발주자는 승인 제품의 사용을 입찰 조건에 포함시키고, 성과기반 발주(PbR)를 통해 기술 도입을 유도해야 한다. 승인 제품 사용 시 조달 가점을 주고, 반대로 승인되지 않은 제품은 제한하는 계약 조항의 명문화가 필요하다. 이는 민간 시장까지 규율을 확대하는 실질적 수단이 될 수 있다. 동시에 시범 적용 결과에 따라 단계적 확대 도입이 가능하도록 매뉴얼을 마련해야 한다.
스마트안전장비는 더 이상 ‘실험적 기술’이 아니다. 하지만 지금처럼 사용승인 제도가 불완전하면, 현장에서 쓰이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이 걸린다. 기술이 제도에 막히는 일이 반복되어서는 안 된다. 정부는 조속히 사용승인과 인증 체계를 법적으로 정비하고, 업계는 실증 중심의 인증 전략을 마련하며, 발주자는 제도권 장비 도입을 주도해야 한다. 기술보다 제도가 늦으면, 아무리 좋은 장비도 현장에서 빛을 잃는다. 이제는 제도의 속도를 기술의 속도에 맞춰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