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긴급진단] 통계로 보는 공공갈등, 매년 250조 원이 사라진다...갈등공화국?

2025-11-13     김재경 기자

최근 보도에 의하면 세종보 재가동을 둘러싸고 환경단체와 세종시가 갈등을 빚고 있다. 세종시는 세종보 재가동 반대 천막농성 중인 환경단체를 하천불법점용 혐의로 세종남부경찰서에 고발했다. 한편 금강·낙동강·영산강 유역 87개 시민사회단체가 참여한 보 철거를 위한 금강 낙동강 영산강 시민행동은 세종보 재가동을 앞둔 지난해 4월부터 세종시 금강 한두리대교 밑 세종보 인근 하천에서 세종보 철거를 요구하는 천막농성을 500일 넘게 진행하고 있다. 한국 사회의 공공정책을 둘러싼 갈등의 대표적인 최근 사례이다.
 

세종보 재가동 중단 촉구 모습. 뉴시스

갈등지수 매우 심각갈등관리 지수 OECD 30개국중 최하위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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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IMBY(님비, Not In My Backyard)’->참여형 갈등(PIMBY, Please In My Backyard)

[일요서울김재경 기자] 한국행정연구원(KIPA)이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국민의 78%정부의 갈등관리 역량이 부족하다고 응답했다. 정책 결정 과정의 불신과 불투명한 절차가 갈등을 부르고, 이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있다. 공공갈등은 더 이상 단순한 행정 문제나 여론 상의 잡음이 아니다.

2021
년 전국경제인연합회에서 OECD 30개 회원국 대상으로 각국의 갈등현황을 분석한 결과, 우리나라의 갈등지수는 3위로 매우 심각한 수준인 것에 반해 정부의 갈등관리 능력을 나타내는 갈등관리 지수는 OECD 30개국 중 27위로 최하위권이었다. 또한 2021년 영국 킹스컬리지 연구 결과도 우리나라는 12개 갈등 항목 중 7개 항목 이념, 빈부, 성별, 학력, 지지 정당, 나이, 종교에서 갈등이 심각하다고 응답한 비율이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최근 10년사이 공공갈등 사건 100% 증가]그 결과 한국개발연구원(KDI) 2023년 보고서에 의하면 사회적 갈등으로 인한 손실이 국내총생산(GDP)의 약 27%, 연간 250조 원 규모에 이른다고 추산했다. 이는 국방비나 보건복지예산보다도 큰 금액이다. 한국사회갈등해소센터(KADR)의 분석에 따르면, 최근 10년 사이 공공갈등 사건은 연평균 100건 수준에서 200건 이상으로 급증했다. 갈등의 양상도 다양화되었다. 과거에는 지역 간 이해 충돌이나 환경 갈등이 중심이었지만, 최근에는 정책의 공정성, 보상 체계, 참여 과정의 신뢰 문제 등이 주요 쟁점으로 부상하고 있다.

공공갈등이 초래하는 사회적 비용은 숫자로만 측정하기 어렵다. 그 피해는 예산 낭비를 넘어, 국민의 신뢰 상실과 사회적 피로의 확산으로 이어진다. 대표적인 예가 새만금 사업이다. 1991년 착공 이후 20년 넘게 환경단체와 지역주민, 중앙정부 간 갈등이 이어졌다. 환경영향평가 재실시와 보상 문제, 종교단체의 반대 등 복합적 갈등으로 공정이 반복 중단되었고, 총사업비는 당초 3조 원에서 약 9조 원으로 3배 가까이 불어났다. 갈등 해결보다 추진이 우선된 결과, ‘환경-개발 대립의 상징이 되었다.

또 다른 예로 밀양 송전탑 사태는 공공갈등이 어떤 비용을 낳는지를 보여준다. 송전탑 설치를 둘러싼 갈등이 10년 가까이 이어지며 경찰력 투입, 보상금 재조정, 공사 지연 등이 반복되었다. 국가기간사업임에도 주민 참여 부재가 문제의 핵심이었다. 한국전력은 공사를 강행했지만, 결과적으로 1,000억 원이 넘는 사회적 손실과 전력망 불신이라는 비경제적 비용을 함께 남겼다.

밀양 송전탑 사태, 10년간 1000억원 넘는 사회적 손실

밀양 송전탑 철거와 탈핵 촉구하는 시위. 뉴시스

최근에도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2공항 건설, 원전 정책 전환, 수도권 광역철도망 구축 등 다수의 공공정책이 비슷한 갈등 과정을 겪고 있다. 정책 지연에 따른 행정비용과 예산 낭비는 물론, “정부 정책은 이해관계자와의 협의 없이 일방 추진된다는 불신이 확산됐다. 이러한 불신은 새로운 사업의 추진에도 악영향을 주며, 결국 정책 피로 사회-갈등공화국이라는 악순환을 낳고 있다.

반대로, 갈등을 조기에 조정하고 협의로 풀어낸 성공사례도 있다. 대표적인 모범사례는 서울시 난지물재생센터 현대화 사업’(2019~2022)이다. 과거 혐오시설로 인식되던 하수처리시설을 도시공원형 복합문화공간으로 바꾸는 과정에서 서울시는 초기 단계부터 주민대표·시의원·전문가가 참여하는 민관협의체를 구성했다. 갈등이 본격화되기 전 정보공개·상생기금 협의·환경영향 재점검을 병행하면서 3년 간의 사업이 큰 충돌 없이 마무리됐다. 결과적으로 주민 만족도는 85%를 기록했고, “사전소통이 가장 효율적인 비용절감책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또 다른 예는 충남 태안 신두리 풍력발전단지 조정 사례이다다. 풍력발전기 설치를 두고 어민·환경단체·지자체 간 갈등이 있었지만, 행정안전부 갈등관리지원단이 중재에 나서 갈등영향분석과 경제·환경 타당성 검토를 동시에 진행했다. 분석 결과가 주민에게 투명하게 공유되자,찬반이 극명하게 갈리던 지역여론이 점차 완화되었고 협의안이 도출되어 사업이 재개됐다. 이 사례는 정부의 공공정책갈등관리지침이 현장에서 실제 효과를 낸 첫 성공사례 중 하나로 꼽힌다.

결국 공공갈등의 비용은 정책 자체보다 절차의 문제에서 비롯된다. 새만금이나 밀양처럼 일방적 추진이 실패를 낳은 반면, 난지물재생센터나 신두리 풍력단지처럼 사전 소통과 데이터 기반 협의가 이뤄진 경우, 사업 효율성과 사회 신뢰가 동시에 향상되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KIHASA)2024년 발표한 사회통합 실태조사에 따르면, 국민의 65%한국 사회가 공정하지 않다고 응답했다. 이 인식은 곧 정책 결정의 불신으로 이어진다. 국민이 절차를 신뢰하지 못하면, 결과가 아무리 타당하더라도 저항과 갈등이 발생한다. 과거에는 정부가 공공사업을 국익의 이름으로 일방 추진할 수 있었지만, 오늘날은 이해당사자들의 정보 접근성과 목소리가 강화되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많은 사업이 사전 협의·설명 없이 통보되는 구조에서 시작된다. , 갈등의 핵심은 정책의 내용이 아니라 정책을 만드는 과정의 투명성과 참여 수준이다.

경제적 보상, 지역활성화, 의사결정 참여권 요구

난지도 개발 성공 스토리 공유 컨퍼런스(2016.10), 뉴시스

한때 갈등의 전형은 ‘NIMBY(Not In My Backyard)’였다. 하지만 최근 갈등은 단순한 반대가 아니라, “제대로 된 보상과 절차를 요구하는 참여형 갈등(PIMBY, Please In My Backyard)”으로 진화했다. 예를 들어, 주민들은 단순히 시설 건립을 반대하기보다 경제적 보상, 지역 활성화, 의사결정 참여권을 요구한다. 갈등은 반대의 문제가 아니라 협의 구조의 부재로 확대되는 것이다. 정부가 사전 단계에서 주민의견을 수렴하고, 객관적 데이터를 기반으로 결정 과정을 공개한다면 갈등의 강도는 현저히 줄어들 수 있다.

OECDGovernment at a Glance 2025에 따르면, 한국의 정부 신뢰도는 32개국 중 하위권에 머물렀다. 특히 정책결정의 투명성항목에서 낮은 평가를 받았다. 이 신뢰의 결핍은 공공사업뿐 아니라 세금, 복지, 환경정책 등 전 영역으로 확산된다. 국민이 정부의 의도를 의심하면, 정책효과는 반감된다. 정책에 대한 정당성 결여가 사회적 비용으로 전이되는 구조다. 갈등으로 인한 비용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결국 국민의 세금으로 치러진다. 사업 지연에 따른 예산 증액, 중복 행정, 재설계, 소송비용 등은 모두 국가 재정의 추가 부담으로 이어진다. 예산은 늘었지만 실질 성과는 없는 효율성의 붕괴가 반복된다.

더 나아가 갈등은 정책 회피·결정 지연 문화를 고착시킨다. 정책 담당자는 비난을 피하기 위한 무위행정을 택하고, 그 사이 사회적 문제는 방치된다. 이런 구조는 장기적으로 국가 경쟁력과 사회적 신뢰를 갉아먹는 보이지 않는 세금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정책 결정 지연에 따른 사회적 비용이 GDP1% 이상일 경우, 정책 효율성은 구조적으로 붕괴된다고 지적했다. 한국의 현실은 이미 이 경고선에 근접하고 있다. 공공갈등은 피할 수 없는 사회 현상이다. 중요한 것은 갈등의 유무가 아니라, ‘갈등을 다루는 방식이다.

지금까지 한국 사회는 사후조정과 정치적 타협으로 문제를 봉합해왔다. 앞으로의 정책은 결과보다 과정의 정당성, 성과보다 절차의 신뢰를 중시해야 한다. 사전 소통과 데이터 기반의 투명한 정책결정이야말로, 사회적 비용을 줄이고 신뢰를 회복하는 가장 경제적인 방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