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檢 대장동 항소포기 후폭풍-하나] 다시 불붙은 검란(檢亂)
검란(檢亂)이 다시 불붙을까. 검찰의 대장동 개발 비리 사건 항소 포기를 둘러싼 후폭풍이 검란으로 번졌다. 일선 검사장들이 ‘납득할 수 없다’며 노만석 검찰총장 권한대행에게 일제히 해명을 촉구하고, 일부는 사퇴까지 요구하며 집단 반발에 나섰다. 결국 노 권한대행이 자진 사퇴하며 검찰 내부 반발은 사그라들 것으로 보이지만 서울중앙지검 수사팀과 대검 수뇌부 간, 대장동 1차 및 2차 수사팀 간 내분 양상도 보였던 만큼 임시 봉합 상태에 불과하다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검찰 내부에서는 법무부의 외압 의혹과 관련한 명확한 경위 규명이 위선이라 보는 시선이 많아 노 권한대행 사의 표명만으로 논란이 완전히 해소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 법무부.檢 수뇌부 대장동사건 항소포기 결정 대검참모.지검장.지청장.평검사 집단반발
- 서초동, “내년 검찰청 폐지 앞두고 검사들 항소포기 ‘최후의 검란(檢亂)’ 나서" 평가
[일요서울ㅣ이기우 언론인] 서초동 법조계에서는 “내년 10월 검찰청 폐지를 앞두고 검사들이 대장동 사건 항소 포기를 계기로 ‘최후의 검란(檢亂)’에 나섰다”는 말이 나온다. 과거 검란들 역시 대부분 정부의 하명에 검찰이 반발했듯 현 정부의 개입 가능성이 거론되면서 검찰도 현 정부와의 전면전 및 후폭풍을 피할 수 없는 형국에 처하게 됐다. 민주당은 당장 검찰 반발이 확산하는 것을 국기 문란으로 규정하는 등 최고수위 대응에 돌입했다.
서울중앙지검은 지난 7일 유동규 전 성남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 등이 연루된 대장동 개발 특혜 의혹 사건 항소를 포기했다. 이후 노 권한대행이 서울중앙지검에 항소 포기를 지시한 사실이 드러났다. 아울러 노 권한대행이 이진수 법무부 차관으로부터 법무부가 이 사건 항소에 부정적이라는 입장을 전달받고 서울중앙지검에 항소 포기를 지시한 사실이 밝혀져 논란이 커졌다. 검찰 내부에서는 노 대행에게 정확한 경위 설명과 함께 사퇴를 요구하며 집단 반발하면서 ‘검란’으로 비화됐다. 일선 검사장들이 특정 현안에 대해 수장에게 집단으로 거취표명을 요구한 것은 2012년 검란 사태 이후 13년 만이다.
노만석 권한대행, 결국 자진사퇴했지만...후폭풍 ‘여전’
실제 박재억 수원지검장 등 일선 검사장 18명은 검찰 내부망인 이프로스에 ‘검찰총장 권한대행께 추가 설명을 요청드립니다’라는 글을 통해 “대장동 개발 비리 의혹 사건의 1심 일부 무죄 판결에 대한 권한대행의 항소 포기 지시를 두고 검찰 내부뿐만 아니라 온 나라가 큰 논란에 휩싸였다”며 “권한대행의 입장엔 항소 포기의 구체적인 경위와 법리적 이유가 전혀 포함돼 있지 않아 납득이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공소유지 업무를 책임지는 일선 검사장으로서 항소 포기 지시에 이른 경위와 법리적 근거에 대한 상세한 설명을 다시 한번 요청한다”고 했다. 항소 포기 사태를 둘러싼 후폭풍이 검찰 내부 집단 반발로 이어지자 노 권한대행은 자진사퇴했다.
검란으로 비화된 ‘대장동 항소 포기’ 논란은 이재명 대통령과 연관이 있다는 시각이다. 이 대통령은 같은 사안으로 별도 재판을 받고 있어 이번 재판의 직접 당사자는 아니다. 그러나 대장동 재판에서 확정될 사실 관계가 이 대통령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 때문에 노 권한대행이 ‘대장동 항소 포기’ 논란과 관련해 내놓은 발언들은 의미심장하다. 그는 대검 간부들에게 “검찰이 어려운 상황이나 용산(대통령실), 법무부의 관계를 생각해야 한다”고 말한 데 이어 “전 정권이 기소한 것이 현 정권에서 문제가 되고, 저쪽(정권)에선 지우려고 하고 우리(검찰)는 지울 수 없는 상황 때문에 부대꼈다”고 밝혀, 법무부나 대통령실 쪽과 이견이 자주 있었다는 취지로 읽힌다. 이 대통령의 재판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만큼, 대통령실의 개입 여부를 시사할 수 있는 말로도 해석된다.
정성호 법무장관, “신중히 판단 의견 전해”, 野 사퇴 등 총공세
야권도 이 대통령 변호인 출신 인사들이 대통령실 민정 라인과 법무부 등에 포진해 있으면서 어느 정도 역할을 했을 것으로 의심하고 있다. 검찰청은 주요 사건의 수사·재판 경과를 수시로 대검에 보고하고, 대검은 법무부에 보고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법무부는 대통령실 민정수석실에 보고하는 게 관행이다. 이 과정에 이 대통령의 최측근들이 대거 포진돼 있다. 정성호 장관은 이 대통령의 최측근 그룹인 이른바 ‘7인회’ 좌장이고, 정 장관을 지근거리에서 보좌하고 있는 조상호 장관 정책 보좌관이 대장동·쌍방울·위증교사 사건의 변호인 출신이다.
또 봉욱 대통령실 민정수석 밑에 있는 비서관 4명 중 3명이 이 대통령 변호인 출신이다. 이태형 민정비서관은 대장동 사건을 비롯해 쌍방울의 불법 대북 송금 사건의 변호인이고, 이장형 법무비서관도 쌍방울 사건의 변호인 출신이다. 전치영 공직기강비서관 역시 대법원이 지난 5월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이 대통령의 선거법 위반 사건의 변호인이었다.
이런 가운데 법무부 장관·차관의 수사지휘권 행사 논란도 기름을 부었다. 정 장관은 “신중히 판단하라는 의견을 전한 것뿐”이라며 반박했지만, 이진수 법무부 차관이 항소 포기 결정 전에 노 대행에게 전화해 법무부의 ‘신중히 판단하라’는 의견을 전한 사실이 드러났다. 검찰 내에선 정 장관이 구체적 사건에 대해 보고받는 것을 넘어 ‘신중 검토’ 의견을 밝힌 것 자체가 사실상의 압박으로 해석될 소지가 크다고 지적한다. 나아가 정 장관이 자체 판단으로 자신의 의견을 전달한 것인지, 대통령실 등 외부와 소통한 것인지 규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국민의힘은 서울중앙지검의 항소 포기 결정에 대검찰청과 법무부, 나아가서는 대통령실의 지시가 있었을 거라고 의심 중이다. 국민의힘 송언석 원내대표는 “항소 포기에는 분명히 정성호 장관의 외압이 연루돼 있다. 당연히 외압을 행사한 정 장관부터 책임지고 사퇴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나아가 추후 이 대통령에 대한 대장동 재판 재개 국면에서 공소 취소를 지시하기 위한 빌드업(사전 준비)을 하는 것으로 보고 있다.
與 검란 제압 나서...검찰 내부 불만 ‘여전
반면, 여권은 내년 10월 검찰청 폐지를 앞두고 정치 검사들이 집단 항명을 통해 마지막 몸부림을 친다는 인식이다. 이에 검찰 내부의 집단 반발을 ‘마지막 발악’으로 규정하고 “싹을 잘라야 한다”는 강경론이 확산되고 있다.
민주당 정청래 대표는 “명백한 국기 문란”이라며 “불법 수사, 봐주기 수사를 했던 검사들이 수사 대상이 되니 겁 먹은 것이다. 겁 먹은 개가 요란하게 짓는 법”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법무부가 해당 검사들에 대한 징계에 즉각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민주당 김병기 원내대표도 “법 위에 군림하는 정치 검사들을 더 이상 용납하지 않겠다”며 “정치 검사들의 특권을 보장하는 제도부터 폐지시키거나 과감히 뜯어고치겠다”고 강조했다. 실제 항명 검사들에 대해선 최고 ‘파면’까지 가능하도록 검사징계법을 뜯어 고치고 사법처리까지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나아가 조작 기소와 항명 사태를 규명할 단독 국정조사 추진과 함께 검찰의 특수활동비도 정부 원안보다 20억 원이나 감축했다.
민주당이 초강경 총공세에 나선 건 검사들과의 기싸움에서 밀릴 경우 숙원인 검찰개혁의 동력이 약화할 수 있다는 판단 때문으로 읽힌다. 검찰이 민주당 정권 아래선 대통령과의 갈등까지 서슴지 않는다는 오랜 불만도 작용했다.
검찰 내에서는 성토가 이어지고 있다. 한 검사는 “‘납득되지 않는 항소 포기 결정의 경위를 설명해달라’는 당연한 내부 반응에 정치권이 ‘검찰의 반발’이라는 부당한 프레임을 씌우고 있다”라고 주장했다.
정 장관에 대한 불만도 표출됐다. 임풍성 광주지검 형사3부장은 11일 저녁 검찰 내부망에 ‘검사의 명예를 더 이상 더럽히지 말라’는 제목의 글을 올리며 “장관님,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했다 하셨다”며 “도대체 그 ‘신중’은 무엇을 말하시는 거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제 수사 경험상 깡패 두목이나 행동대장들이 빠져나가려고 할 때 ‘나는 지시한 적 없다. 밑에서 하겠다고 하니 신중하게 결정하라고 했을 뿐이다’ 이런 식으로 책임을 떠넘긴다”며 “지위에 걸맞게 진상이 무엇인지 제대로 밝히시라. 그렇게 안 하실 거면 부끄러운 줄 아시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검찰청 폐지 문제 등으로 인한 검찰 내부의 심상치 않은 반발기류가 집단행동으로 표출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